52화 정착기 (2)
최정수는 텅 빈 옥상과 마주했을 때 순간적으로 난간을 타넘고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보다 어떻게 해야 더 편하게 죽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이다. 물론 그 고민조차 그리 길지는 않았다.
“일단 전부 옥상으로 나가! 옥상에 있는 휴게실 벽이든 벤치든 다 뜯어서 입구 막아!”
거대한 대학교 본관 건물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좀비 떼가 옥상을 향해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는 뭔가 해야만 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가장 먼저 미쳐 버릴 것 같았으니까.
학생들은 옥상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손에 잡히는 거라면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옥상 입구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힘이 가장 강한 박호영은 아예 아크릴 판으로 구성된 휴게실 벽 하나를 통째로 뜯어냈다.
“잠깐, 여기 시체가……!”
“침입자가 그랬겠지! 시발! 처음부터 우리가 말려들어갔던 거야!!”
시신 3구가 휴게실 한쪽에 축 늘어져 있었는데, 그게 저 아래에서 뛰어올라오고 있는 좀비 떼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침입자가 어떻게 학교에 침투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단서로 소모된 게 전부였다.
급하게 동원한 자재들로 옥상 입구를 틀어막았으나, 이 자리에 모인 수십 명의 학생은 대부분 표정이 밝지 않았다.
적어도 지면과 20m는 떨어져 있을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자니 최소한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지거나 운 없으면 즉사, 천운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건물 주변에 좀비들이 많았다. 이미 어그로가 잔뜩 끌렸기 때문이다.
좀비들이 뒤쫓고 있는 자신들이 전부 죽거나 확실히 도망쳐서 어그로를 풀지 않는 한, 이곳에 모여든 좀비들은 단 1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들을 노릴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제 답은 나왔다.
이대로 옥상에서 버티면서 타 세력의 기약 없는 구조를 기다리든가, 아니면 몇몇 각성자들과 합심해서 어떻게든 좀비들의 포위망을 풀고 탈출하든가.
순수 근력으로는 고릴라조차 압도할 게 분명한 박호영은 분명 좀비 따윈 맨손으로도 쳐부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박호영도 감염에 대한 면역은 없기 때문에 쉽사리 맨몸으로 나설 수는 없다.
제아무리 강력한 힘을 휘두른다고 한들, 좀비가 한 번이라도 할퀴거나 물어뜯으면 결국 순식간에 사라질 터. 결국 모두가 힘을 합쳐서 좀비들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건데…….
“선배님, 이제 어떡합니까?”
최정수는 자신과 함께 붙어 다니던 각성자 동료이자 후배인 차지혁을 향해 돌아보았다. 차지혁이 각성한 직업은 ‘군기반장’.
재학 중 친한 선배들의 위세를 등에 업고, 주로 대학 새내기들을 기합 주거나 군기를 잡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된 직업이었는데, 그 효과는 시민대표가 이끄는 특정 세력의 내부를 단속하는 데 용이하게 쓰였을 뿐, 그 외에는 별 쓸모가 없었다.
일반인보다는 힘이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좀비 대군을 이겨 낼 수 있을 만큼 먼치킨이 된 건 아니라는 뜻. 이건 최정수도 같았기 때문에 둘 모두 난감해졌다.
“애들이랑 박호영이 힘을 합치면 옥상으로 들어오려는 놈들 뚝배기를 하나하나 까는 건 쉬워. 입구도 잘 막아 뒀으니까 한 놈씩 처리하면서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어그로가 풀리겠지. 그때 이동하면 돼.”
너무 급하게 도망쳐 나오느라 식량과 식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데다, 하필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추위까지 그들을 괴롭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버티기만 하는 건 명백한 하책이었지만, 그런 희박한 가능성에라도 희망을 품지 않으면 정말 답이 없었다.
그나마 이 중에 늙거나 병든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든 버틸 체력과 의지가 있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최정수는 하루아침에 털려 버린 기숙사의 멍청이들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옥상 입구에 몰려들어 시루 속 콩나물처럼 서로를 짓뭉개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던 좀비들이 갑자기 입구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뚫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일단 물러난 것인지, 아니면 들어오는 순서대로 뚝배기를 터뜨려 주겠다는 박호영의 흉흉한 기세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인지, 어느 쪽이든 일단 절호의 기회인 건 확실했다.
이대로 놈들이 물러나 준다면, 어떻게든 다시 학교 내부를 정리해서 전력을 가다듬고, 이번에야말로 삼안동에 있는 홈마트를 집어삼킬 수 있다. 지금까지처럼 한 번만 더 행운이 작용해 준다면…….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흐읍, 흡. 뭐야…… 누가 깜빡이 없이 방귀라도 꼈냐? 냄새가 좀 독한데?”
“쓰읍…… 이 정도면 팬티에 지린 수준 아니냐? 장난 아닌데?”
갑자기 일행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상한 대화에, 최정수는 자신도 모르게 초겨울의 싸늘한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러자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온갖 역겨운 냄새가 찌들어 있는 하수구 악취 같은 것이 코끝을 맹렬하게 찔렀다. 만약 배부르게 밥 먹은 뒤에 이 냄새를 맡았다면 무심코 토해 버렸을 만큼 지독한 악취였다.
“어후, 씨발, 무슨 냄새가…….”
시민대표가 되면서 나름대로 품위를 유지하겠다며 쌍소리를 자제하던 그조차 무심코 육두문자를 내뱉을 정도의 악취. 정말로 단체로 팬티에 지리기라도 했나 싶어 코를 싸쥐고 주변을 돌아보던 그때, 어두컴컴한 옥상 입구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분명 계단 아래쪽에는 횃불도, 전등도 없어서 암흑천지일 텐데 대체 어떻게 빛이 새어 나오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지능이 좀 딸리는 친구들은 혹시 지원군이라도 온 거 아니냐며 좋아했지만, 최정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초록색 형광빛을 예의 주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발광체가 계단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최정수는 등줄기를 가로지르는 오한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구륵, 기륵, 구르르르륵.”
비척비척, 느릿느릿,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도 어울릴 것 같은 불안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온 것은 수박만 한 크기로 부풀어 오른 거대한 형광색 종양을 전신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왕방울만 한 눈알을 또르륵 굴려 옥상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바리게이트와 그 너머에 있는 수십 명의 인간들을 살피더니, 곧 구애의 울음소리를 내뱉으려는 개구리처럼 종양을 크게 부풀렸다.
“입구 근처에서 당장 떨어……!”
간신히 쇼크에서 해방된 최정수가 경고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그의 목소리가 다른 학생들에게 닿기도 전에 형광빛을 흩뿌리고 있던 그것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옥상 입구를 구성하고 있던 콘크리트 벽이 무너지고, 바리게이트는 풍압에 의해 흔적도 없이 날아가거나, 진득한 초록색 점액질에 의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운 나쁘게 근처에 있다가 콘크리트 파편이나 점액에 맞은 이들은 어찌할 틈도 없이 신체 부위 일부가 사라지거나 타들어갔다.
콘크리트 조각에 맞아 머리가 사라진 학생은 몇 초 정도 가만히 서 있다가 털썩 쓰러졌고, 점액질이 바지에 튄 학생은 그대로 다리와 청바지가 함께 녹으면서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아, 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씨, 씨발…… 뭔데! 대체 이게 뭐냐고!!”
“커흑, 그륵…… 누가 내, 다리, 다리좀……!”
“미친! 미친! 씨발!!”
수류탄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옥상 입구를 중심으로 확 퍼져 나간 파편과 형광빛 점액질. 그 기괴하게 생긴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터뜨린 것만으로도 모든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박호영은? 좀비 따윈 몇 마리가 달려들어도 어린애 손목 비틀듯이 제압할 수 있는 박호영은 어떻게 됐지?
“크흑, 쿨럭! 대체 무슨 일이…….”
다행히 그는 살아 있었다. 파편이 날아들긴 했지만 능력이 발동된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던 모양이다. 최정수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에게 자신을 업고 옥상에서 뛰어내려 도망쳐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이미 주변 사람들의 안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시민대표고 나발이고 일단 살아야 뭐라도 해볼 것 아닌가.
떨리는 몸을 어떻게든 다잡으면서 박호영에게 다가간 최정수가, 그에게 최후의 수단을 요청하려던 찰나 바닥에 흘러내린 무언가를 포착했다.
후두둑, 후두둑.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박호영의 몸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는 피부와 살점 조각들이었다.
“호영이, 너……?”
박호영은 자신의 가슴팍에 박혀 미친 듯이 꿈틀대며 살점과 피부를 찢어발기고 있는 형광빛 벌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뼈가 박살 나고 살점이 찢어발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망각하려는 듯 손으로 상처 부위를 더듬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분 나쁜 벌레는 이미 박호영의 체내에 완전히 파고든 상태였다. 그리고 ‘새로운’ 종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쿨럭!”
거구의 박호영이 요란하게 기침을 하며 앞으로 쓰러지자 그의 피부가 조금씩 밝아지며 부풀어 올랐다.
“쿨럭! 쿨럭! 케흑! 컥! 쿨럭!!”
결핵 환자처럼 기침 소리가 더욱 커지고 잦아지면서 그의 몸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더 밝게, 더 크게.
“그륵, 그윽?”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박호영에게서 뒷걸음질 치던 최정수는 급기야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든 해보라며 소리치려 했다. 아직 시민대표의 능력은 발동하고 있었으니 자신의 발언권이 약하지는 않을 터.
최악의 경우 자신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아.”
그때 뻥 뚫린 옥상 입구로 기다렸다는 듯 좀비 떼가 밀려 올라온다. 꽉 막혀 있다가 결국 역류하는 변기처럼, 피와 내장을 질질 흘리는 살덩어리 군대가 싱싱한 인간의 살점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정체불명의 폭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학생들은 가장 먼저 살덩어리의 급류에 휩쓸렸다. 제대로 된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그들에게 집어삼켜져 문자 그대로 분해되었다.
패닉에 빠진 몇몇 이들은 가망 따위 없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무작정 난간 너머로 몸을 던졌다. 최소한 눈앞의 좀비 떼에게서 살아남을 수는 있겠지 하고 허공에 몸을 던진 그들이 도달한 곳은 또 다른 지옥이었다.
지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좀비들은 팔다리가 부러진 그들의 절규를 무시한 채 편하게 살점과 피를 취했다.
사방팔방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때문에 최정수의 고막은 터질 것만 같았다. 아니, 그 이전에 뇌가 먼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박호영의 거대한 형광빛 육체가 그의 눈앞에서 또 한 번 폭발하기 전까지도, 그는 ‘인과응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애초에 그런 인간이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