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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병의 아포칼립스-51화 (52/227)

51화 정착기 (1)

“주위에서 좀비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제 막 휴대용 버너로 라면을 끓여 저녁을 즐기려던 최정수는 다급한 얼굴로 달려온 후배를 빤히 바라보았다.

바로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던 학교 내부에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니? 심지어 그 장소에는 보는 눈도 많을 텐데.

“다짜고짜 좀비가 쳐들어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그, 그게…… 저녁이 가까워지는 시간대에 갑자기 터진 일이라 저희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누군가가 사람 시신을 본관 건물 밖에 던지고 불태웠습니다. 좀비들이 어둠 속에서 그 빛을 보고 순식간에 몰려들어서 저희도 미처 대응할 수가…….”

“그건 변명이고 새끼야! 1층에서 사건이 터졌으면 1층에서 일 보고 있던 놈들이 처리하는 게 상식 아니냐? 이 새끼들 요즘 좀 풀어 줬다고……!”

그의 동료 박호영이 테이블을 쾅 내려치며 으르렁거렸다. 각성을 하면서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된 건지, 그는 사소한 일에도 발끈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선배고 후배고, 각성자고 비각성자고를 떠나서 문제가 이미 터진 상황. 누구 탓을 하며 책임을 떠넘기기보다는 해결을 하든가 늦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

“일단 진정해. 그런데 시체라고? 시체가 왜 나오지? 우리 중에 죽은 사람은 없잖아. 설마 허가 없이 외부인을 죽이거나 한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외부인들은 모두 오후 작업 끝내고 안에 가둬 놨어요!”

현재 이 건물 내에 ‘시체’는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허가 없이 외부인을 죽여서 밖에 내던진 것도 아니다.

“……!”

벌떡 일어난 최정수는 즉시 박호영에게 ‘아드레날린’으로 몸을 달궈 놓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박호영은 평소 광적일 정도로 헬스 같은 자기 단련 운동을 좋아하는데, 마침 그가 각성으로 얻게 된 직업도 ‘트레이너’였다.

원할 때에 아드레날린을 대량으로 분비해 엄청난 육체적 능력을 얻고, 필요하다면 극한 상황에서도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주는 무시무시한 능력이 즉시 발현되었다.

“……학교 내부에 침입자가 있다. 아마 내부 인원 중 몇 명은 이미 당한 것 같은데, 우리와 적대 관계인 타 생존자 그룹 소속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인원이 많고 젊은 20대 비율도 높으니까 홈마트를 차지하기 전에 견제를 하는 게 틀림없어.”

“다 죽이면 되나?”

“반만 죽여. 사지를 분지르든 눈 하나를 뽑든 네 자유지만, 반드시 숨통은 붙여서 이리로 끌고와. 침입자가 어디 소속인지는 알아야 다음을 대비할 수 있으니까.”

성난 황소처럼 쉬익쉬익 뜨거운 숨결을 내뱉고 있던 박호영은 최정수의 ‘간단한 지시’를 받자마자 즉시 움직였다. 그 기세가 태산 같아서 주변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웅크리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정수는 시민대표라는 직업 특성상 모두를 이끄는 상황에선 멘탈 유지에 큰 보정을 받는다. 그 정도로 쫄았다면 이 짓거리도 못 했으리라.

“1층 상황은 지금 어때?”

“일단 사람들이 들러붙어서 필사적으로 막고는 있는데…… 솔직히 오래 못 버틸 것 같습니다. 학교 부지 내부에 좀비들이 너무 많아서 이미 어그로가 상당히 끌렸을 겁니다.”

“쯧.”

원래 자신들은 저녁이 가까워지면 미리미리 각 층의 창문마다 커튼을 쳐서 빛이 새어 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오후에 작업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일찌감치 안으로 들여서 소음까지 원천 차단했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기숙사의 멍청이들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버틸 수 있었는데, 난데없는 침입자의 등장으로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 좋든 싫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차피 좀비들이 어그로에 끌려서 몰려든 상황이고 1층 바리게이트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하면, 가능한 빨리 외부인들을 미끼로 던지고 우린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게 맞아.’

시간이 지체될수록 좀비들이 더 많이 몰려들어 결국 건물 전체를 에워쌀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빠져나갈 구멍조차 사라진다.

이렇게나 많은 인원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갑자기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 영 내키지 않지만, 일단 지금 당장 살아남아야 뒷일을 도모할 수 있다.

홈마트를 지키고 있다던 그 남녀를 오밤중에 습격하면 거점을 쉽게 뺏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다시 내려가서 애들한테 빠질 준비 하라고 해. 그리고 박호영에게도 침입자를 잡는 대신 좀비들의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갈 생각부터 하라고 전해. 최대한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짐은 최소한으로 챙기고.”

“예!”

그렇게 후배가 달려나가려던 그 순간, 학교 내부에서 절대로 들리면 안 될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탕!

“…….”

“…….”

“…….”

달려나가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후배,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눈알만 굴리는 최정수,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하고 다시 라면을 먹으려던 최정수의 동료들 모두 무언가에 짓눌린 듯 입을 열지 못했다.

폭죽도 아니고 총성이라고? 자신들 중에 총을 가진 사람은 없다. 절대적인 내부 권력을 자랑하는 최정수조차 총은 분쟁의 씨앗이자 생명 경시를 상징하는 흉물일 뿐이라며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던 이유가 더 컸지만.

“지금…… 총성이었지?”

“누가 쏜 거야?”

“몰라 씨발…….”

“설마 근처에 군대라도 왔나?”

“군대는 이미 일주일 전에 좆망해서 좀비밥 되거나 김해공항으로 철수했는데 뭔 개소리야.”

여기저기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잡담 사이에서도 최정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침입자다. 틀림없이 침입자가 총을 들고 있는 거다. 어째서 지금까지 총을 사용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급박해지니 결국 총을 쓰게 된 것 같았다.

좀비들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음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실험을 통해 확인한 바 있지만, 문제는 학교 부지 내부에 있는 좀비들이었다.

놈들은 찢어질 듯한 총성을 들었을 것이고, 때마침 자신의 동료들이 몰려 있는 이 건물을 타깃 삼아 열심히 달려올 것이다. 어쩌면 벌써 수백 마리에 달하는 좀비들이 몰려들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짐 챙겨. 아니, 짐도 챙기지 마. 최소한의 준비만 갖추고 당장 움직여! 더 늦으면 외부인을 미끼로 쓰기도 전에 우리가……!”

최정수가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또 다른 후배가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는 몸 곳곳에 붉은 피를 묻히고 있었으며, 처음 달려들어온 후배보다 훨씬 더 급박하고 경직된 표정이었다.

“뚜, 뚫렸습니다! 1층 바리게이트가 뚫렸어요!!”

“씨발!!”

반쯤 열린 문 너머, 긴 복도를 타고 익숙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끔찍한 형태로 바뀌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치 사태 첫날에 거리에서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던 그 절규와 비슷했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절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소름 끼쳤다. 그리고 상황이 잘못되면 자신들 역시 저런 비명을 내지르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외부인들은 어떻게 됐지? 놈들을 먼저 미끼로 던져 두면 당장 좀비들이 위로 올라오기 전에 시간은 벌 수 있을 텐데!”

“그게…… 총을 든 누군가가 외부인들을 데리고 비상계단으로 먼저 올라가 버렸습니다! 상섭이가 그걸 막으려다 총을 맞아서……!”

“빌어먹을!!”

한발 늦은 것도 아니라 두발이나 늦었다고? 그럼 상대는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일단,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전부 움직여. 호영이한테도 2층, 아니지. 3층에 있는 자재 싹 긁어모아서 주요 계단 막으라고 해. 일단 다 같이 옥상으로 대피한 다음 좀비들이 빠져나가면 틈을 봐서 우리도 탈출하면 돼.”

잠깐, 침입자가 외부인들을 데리고 비상계단으로 ‘올라갔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설마. 그럴 리는…….’

최정수는 급하게 주변 인원들만 데리고 3층까지 대피해 온 사람들과 합류했다. 박호영도 때마침 침입자를 찾다가 1층이 뚫렸다는 소식에 당황하고 있던 참이었다.

“박호영! 침입자는 이미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으로 가자!”

늦으면 안 된다. 아니, 설령 늦는다고 해도 옥상에 대피해 있을 괘씸한 침입자와 거기에 붙어먹은 외부인들을 모두 아래로 던져 버리면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좀비들은 먹이가 한가득 있는 바깥으로 다시 몰릴 것이고, 그 틈에 자신들은 뒷문으로 빠져나가면 된다.

어느새 상대가 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렸지만, 그 부분은 박호영을 비롯한 각성자들이 어떻게든 하면 된다. 애초에 이쪽 숫자가 이렇게나 많은데 총 한 자루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지.

침입자도 총 한 자루로 이 건물을 빠져나가긴 힘드니까 일찌감치 옥상으로 대피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주요 계단을 대충 던져넣다시피 한 자재들로 막아 두고, 박호영을 앞세운 인제대 학생들은 한달음에 옥상까지 올라갔다.

철컥철컥!

“옥상 문을 잠갔어!”

“그냥 박살 내 버려! 어차피 저놈들을 미끼로 던지고 우린 다시 빠져나가면 돼!”

박호영이 흡! 하고 힘을 주자 통짜 금속문이 우드득 하고 비틀렸다. 상대가 평범한 인간이나 좀비라면 문자 그대로 찢어 버리는 것도 가능한 힘 덕분이었다.

곧 우드득 하고 잠금 장치가 떨어져나가자 반쯤 찌그러진 금속문이 저절로 열렸다.

문짝을 반쯤 뜯어내다시피 하여 입구를 확보했지만,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텅 빈 옥상이었다.

“……어?”

* * *

사실 처음 내가 생각했던 계획은 소란이 일어난 틈을 타 민간인들을 데리고 빠르게 옥상으로 올라가서 존버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간인들 모두 평소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며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계단으로 단숨에 옥상까지 올라갈 체력이 없었다.

결국 우리가 한 일은 비상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는 척 하면서 사실은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물론 중간에 들켰다간 속셈이 간파당할 우려가 있어, 나는 일부러 대학생들 중 한 명에게 총을 쏴서 다른 생각을 못 하게 만들었다.

이 난리통에서 우리가 건물 뒷문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굳이 비상계단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보고를 받은 이 생존자 그룹의 웃대가리들은 틀림없이 우리가 ‘옥상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좀비들은 일찌감치 1층을 돌파해서 내부를 헤집기 시작했으니 뒷문으로 빠져나갈 틈은 없고, 방어에 실패한 대학생들은 우르르 위로 올라갔다.

그 상황에서 먼저 비상계단으로 움직인 우리가 옥상에서 존버를 타고 있을 게 뻔하니, 자신들도 옥상으로 올라가서 우리를 밀어내고 탈출각을 보겠다. 뭐 대충 그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까?

아직 사회인이 되어 본 적도 없는 대학생의 대가리에서 나올 수 있는 계획은 고작 그 정도니까.

우리는 지하에서 숨 죽인 채 위층에서 우당탕탕 울려 퍼지는 무수한 발소리들을 들었다.

내 실험에 의하면 좀비들은 후각이 없어서 능동적으로 숨어 있는 인간을 수색하거나 추적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청각과 시각은 멀쩡했다. 즉,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는 대신 어그로에 굉장히 잘 끌린다는 거다.

그런 놈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오자마자 어떻게 행동할까? 저 위에서 들려오는 대학생들의 소리를 듣고, 대피가 늦었던 대학생들의 뒤를 맹렬히 쫓으면서 한 층 한 층 위로 올라가겠지.

대학생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한 곳은 사람 한 명 없는 텅 빈 옥상, 좀비 떼가 도달할 곳은 먹잇감으로 넘치는 옥상(진수성찬). 우리는 누구도 찾지 않을 안전한 지하.

이게 바로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좀비들과 오봇한 시간 보내라고.’

내가 한숨 자는 사이에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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