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생존기 (50)
민간인 소개 작전이 하달될 경우 현장에서 직접 뛰는 군인들은 크게 두 가지를 걱정한다.
하나는 민간인의 명령 불복종, 다른 하나는 민간인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의 기습 내지는 민간인까지 싸잡아 공격하는 쓰레기들의 패악질이다.
대부분의 민간인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을 직접 겪어 보지 않아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뜬소문, 혹은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폭음이나 총성에 지레 겁먹고 자신들의 안위부터 챙긴다.
적대 세력에 대한 저항이나 무질서한 도주보다는 일단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적대 세력이 가까이 접근하면 우선 항복하고 협조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들이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북한군이든 한국군이든 당장 와서 자기들을 보호해 주길 원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유독 국제인도법에 민감한 한국군과 미군은 민간인들은 최선을 다해 보호해야 했는데, 이때 적지 않은 인력과 시간이 소모되었던 터라, 우리들은 전장의 민간인들을 ‘까다로운 화물’이라고 불렀다.
그냥 버려 두고 가자니 명백히 국제인도법을 위반하는 행위였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전장에서 민간인들을 보호하고자 자국군이 피해를 입는 건 너무나도 뼈아팠다.
그렇다고 아프간처럼 뒤로 몰래 군수물자를 지원해 줘서 적의 적을 손 안 쓰고 처리하게 하는 방법은 아예 논외였다. 이미 역사적으로 그런 방법은 실패만 낳았다는 사례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요점은 지금이 전시 상황이었고 내가 여전히 상층부의 지시를 받는 충성스러운 군인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아마도 민간인들을 구하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퇴역해서 군인도 뭣도 아닌 내가 다시 민간인 구출에 나서다니. 세상이 이 지경이 아니었더라면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겠어.’
인제대 본관 건물 내부에는 상당히 많은 대학생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뭘 해도 자신감과 활력이 넘치는 한창 때라 그런 걸까, 다들 세상에 종말이 닥쳤음에도 패닉에 빠지거나 막연히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라면 이런 난관쯤은 무난하게 타파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복도 구석에 숨어 있는 나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최정수를 비롯한 그 동료들의 영향이 크리라.
전기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까, 아직 완전한 저녁이 되지 않았음에도 바깥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건물 내부에 상당한 음영이 들어섰다.
그늘로 뒤덮인 구석진 곳에 바짝 붙어서 숨죽이고 있으면 코앞에 사람이 지나쳐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인제대 학생들도 아주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복도마다 드문드문 횃불 같은 걸 달아 두거나, 본인들이 직접 비상용 손전등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야간 근무와 전투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다. 오죽하면 각성하자마자 개인 고유 스킬로 야간 경계(B++)를 획득했을 정도니까.
조잡하게 나무 막대에 기름 먹인 헌옷을 둘둘 말아 횃불처럼 사용하고 있는 한 대학생이 코앞을 스쳐 지나가려 할 때, 재빨리 대검을 뽑아 쇄골과 목뼈 사이의 물렁한 틈새로 찍어넣었다.
“크흐읍?!”
우득!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려찍은 대검의 손잡이를 순식간에 옆으로 비틀어서 기관지와 주요 혈관에 해당하는 쇄골하동맥을 단숨에 끊어 냈다.
겉보기엔 고작 목 아래에 동전만 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속은 기관지와 혈관이 한꺼번에 썰려 나가며 빠른 호흡 곤란을 유발한다. 본능적으로 목을 움켜잡고 출혈을 늦추는 응급처치를 해도 확실하게 쇼크사하는 공격이었다.
“태성아! 이런 씨발……!”
제 목을 움켜쥐며 천천히 쓰러지는 놈의 복부를 발로 차서 떠넘기고, 놈의 손에서 흘러내린 횃불을 집어 들어 크게 휘둘렀다.
운 나쁘게 뒤따라 걷느라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던 녀석은 그대로 횃불에 안면을 얻어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아아악! 내 눈! 씨바아아아알… 컥!”
“아가리.”
뜨거운 불길에 안면 전체가 지져진 놈은 얼굴을 잡고 바닥을 뒹굴었으나,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가슴을 짓밟고 끝이 뭉툭하고 두꺼운 횃불로 재차 머리통을 내려쳤다.
나는 목덜미를 붙잡은 채 꺽꺽대며 거의 다 죽어 가는 놈과 불운하게도 그 뒤를 따라오던 멍청이를 사이좋게 창밖으로 던졌다. 그리고 박살 난 놈들의 시체 위에 횃불용 예비 기름과 불쏘시개를 적당히 흩뿌렸다.
겨울이 가까워질수록 밤이 찾아오는 시간도 빨라진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어둠이 드리워지면 환한 불빛이 좀비들의 이목을 끌겠지.
야음을 틈타 민간인들을 고기방패로 내세우고 자신들만 몰래 빠져나가려던 대학생들의 계획은 이 시점에서 이미 실패한 셈이다.
나는 저 아래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리에 몸을 뺐다. 마음만 먹으면 총질 몇 번 하는 것만으로도 놈들을 쉽게 학살할 수 있으나, 이런 놈들에겐 총알조차 아까웠다.
차라리 거리 한복판을 어기적어기적 걸어다니는 무해한 좀비 한 마리를 재미 삼아 처리하는 데 총알을 낭비했으면 낭비했지.
방향을 돌려 다른 층계로 내려온 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하나둘씩 움직이는 대학생들을 조용히 지나쳤다. 건물 바깥에서 불타고 있는 시체에 이목이 쏠린 그들은 나를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역시나 바리게이트 쪽으로 사람이 몰렸군.’
바깥에서 무슨 일이 터졌다 > 뭐가 됐든 좀비들의 이목을 끌 테니 위험하다 > 입구부터 지켜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것이겠지.
그런 와중에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들은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갇혀 있던 곳에서 하나둘씩 일어나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정작 민간인들을 통제하는 건 조잡한 무기를 꼬나쥐고 있는 건장한 대학생 두 명뿐이었다.
점점 더 어둠이 짙어지고 있다. 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푸르스름한 하늘이 세상을 뒤덮기 시작했다.
노을은 이미 져 버린 지 오래였고, 마침내 어둠 속에서 자신들의 시간을 되찾은 좀비들이 소음과 빛을 쫓아 움직였다.
인제대 부지 내에 좀비가 단 한 마리도 없었다면 모를까, 이미 기숙사까지 집어삼켰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좀비들이 인제대 내부를 침식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놈들이 본관까지 도달하는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때,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가 불빛 너머로 움직이고 있는 좀비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노, 놈들이다! 놈들이 오고 있어!”
“여긴 안전한 거 아니었어?!”
“씨발 다 닥쳐! 조용히 안 해?!”
“저 새끼들도 우리처럼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고! 아가리 다물어!!”
패닉에 빠진 민간인들과 흥분한 대학생들의 혼란이 겹치면서 소음은 한층 더 증폭되었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이들끼리 엄격한 내부 규율과 통제로 소음이나 광원이 새어 나가는 걸 관리해 왔겠지만, 이제 그런 건 없다.
결국 민간인 통제를 포기한 대학생들이 먼저 자리를 이탈해 어디론가 뛰쳐나갔고, 1층으로 내려온 대학생들은 급하게 자재를 옮겨 바리게이트와 창문 방어를 보강했다.
본래 저들의 계획대로라면 지금 바리게이트를 보강하며 1층에서 좀비들의 어그로를 끌어야 하는 건 민간인들의 몫이었으나, 웃대가리들의 명령이 아직 내려오지 않은 상황에서 일이 터졌다.
‘이제 와서 패닉에 빠진 민간인들에게 바리게이트를 막으며 좀비들의 어그로를 끌게 해 봤자 계획한 만큼 시간을 벌어 줄 수 없을 테고, 그렇다고 지금 당장 탈출하자니 빠져나갈 방법이 없지.’
한마디로 놈들은 지금 외통수다.
이 틈에 민간인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숨어들어간 나는 남들에 비해 비교적 덜 당황했으며, 말이 통할 것 같은 사람을 찾아나섰다.
시선을 이리저리 훑은 결과 몇몇 후보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들은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씩 다독이거나 다그치며 창가에서 먼 안쪽으로 돌려보내는 데 필사적이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 싶을 때, 나는 총을 꺼내 그들에게 들이밀며 조용히 안쪽으로 돌아오게끔 손짓했다.
갑작스럽게 총을 든 괴한이 조용히 자신들을 부르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할 법도 하련만, 그들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당신은…… 여기서 처음 보는 사람인데. 대체 누굽니까?”
“자세히 알 필요는 없고, 지금 바깥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저놈들이랑 같은 편이 아닌 건 장담할 수 있습니다. 바깥 상황은 창문 너머로 봐서 알겠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놈들이 여기에 들이닥칠 겁니다. 당신들을 억류하고 있던 대학생들은 필사적으로 여길 방어하느니 먼저 도망칠 겁니다. 최정수가 그런 계획을 짜고 있다는 걸 내가 방금 듣고 온 참이니까.”
“최정수…… 그 개새끼가!”
“아는 사입니까?”
“알다마다! 내가 그놈 가르치던 경영학과 교수인데!!”
꽤나 차분해 보이던 장년의 남성은 아무래도 대학생들의 영원한 적인 교수라서 이곳에 갇혀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나 같아도 이런 사태가 터졌다면 교수나 직속 상관의 뒤통수를 까버렸을 거다.
“내가 여기 재학생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최정수가 어떤 놈인지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우린 놈들이 세운 계획을 역이용할 겁니다. 놈들이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난동을 피워서 좀비들을 이곳에 끌어들이고, 그사이 우리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거죠.”
“하지만 어떻게 한단 말인가? 바깥에는 저 젊은 놈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몽둥이나 날붙이를 들고 있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바깥에서 평범하게 지내던 사회인들이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연령층이 다양해서 대학생들에 비해 힘이 달렸고, 투쟁심이 넘치지도 않으며, 애초에 변변찮은 무기도 없었다.
그나마 대학생들과 머릿수가 살짝 비슷하다는 점만 빼면, 단체로 들고 일어난 대학생들에게 절대 이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저들에겐 최정수를 비롯한 능력자가 몇 명이나 있었으니 말 다했지.
“그 점은 제가 해결할 테니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내가 총을 들어 보이자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주변 번화가에는 좀비들로 넘쳐났기 때문에 바깥에서 총을 구할 수 없었던 저들과 달리, 나는 총이 있었기 때문이다.
‘총은 권력자의 지위를 위협할 수도 있으니 굳이 무리해서 확보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능력자도 특수한 스킬이나 직업적 특성, 혹은 적절한 보호구가 없다면 총알 한 방에 요단강 건너는 건 똑같았다.
“좋아, 딱 보니 자네는 총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 같으니 그 부분은 믿어도 되겠지. 겁에 질린 사람들은 우리가 잘 다독여서 이끌어 봄세.”
자신을 강대현이라고 소개한 50대로 추정되는 교수는, 뒤쪽에서 여전히 겁에 질려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강의로 다져진 능숙한 말빨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교수라는 권위, 남들과 달리 이런 상황에서도 유지하는 침착한 언행, 그리고 누구에게나 잘 먹히는 언변으로 어찌어찌 민간인들의 주저앉은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사이 나는 아까 사람들을 상대로 잘 타이르거나, 역으로 윽박지르던 아저씨들을 모아 의자를 하나씩 집어 들게 했다. 이동 중에 대학생들이 갑자기 달려들면 의자를 이용해 적당히 밀쳐내거나 막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저들은 이제 선택해야 할 것이다.
총을 들고서 민간인들을 이끄는 나를 막을 것인지, 아니면 바리게이트에 몰려들어 어떻게든 내부로 침투하려는 좀비들부터 막을 것인지를.
“갑시다!”
나는 소총을 어깨에 견착한 채 가장 먼저 복도로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