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생존기 (49)
나는 전쟁을 겪고 나서 얻은 교훈이 몇 개 있는데, 이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들뿐이라 EBS 특강으로 널리널리 퍼뜨리고 싶을 정도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역시 ‘사람은 쉽게 믿지 말자’였다.
이 세상에선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고, 짐승보다 더 짐승 같은 것이 머리 검은 짐승이다.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도 기껏해야 반오십을 넘겼을 뿐이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악의’에 대한 포텐셜은 그 어떤 존재보다도 남다르다는 것을 안다.
‘어떻게 저런 짓을?’ 같은 생각을 들게 만드는 건 매우 높은 확률로 같은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게 기대하면 할 수록 더 큰 실망만 얻게 된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때마다 차라리 내가 본능대로만 살아가는 짐승이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나만 유일한 사람이고 저들이 짐승이었으면 하고 바랐을지도 모르지.
나는 건물 외벽에 매달린 채 최정수라는 놈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의 늪에 빠졌다. 내가 저런 광경을 또 어디서 봤더라?
‘아, 북한 땅굴 소탕 작전에서 봤었지.’
당시 북한 땅굴 규모는 전국적으로 개미굴처럼 퍼져 있었기 때문에 발견하는 것도, 처리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땅굴을 일일이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전등 불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좁고 답답한 지하 갱도에서 민간인인지 적군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였다.
미군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던 국군은 UN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국제법을 철저하게 준수했었다.
그래서 급작스러운 테러나 포로들의 집단 봉기에 아군이 피해를 입더라도, 우리는 국제법을 지켜 가며 대응해야 했다.
그러니 추레한 행색의 북한 주민만 봐도 우리가 척수반사급 경기를 일으키는 것도 당연했다. 저들이 진짜 적군인지 민간인지는 둘째 치고, 그들은 언제나 총탄이 빗발치는 곳 한복판에 있었으니까.
북한 놈들은 우리가 화력은 강할지언정 국제법이라는 목줄에 메여 있음을 빠르게 눈치채고, 전투력이 없다시피 한 민간인들을 곧잘 고기방패로 내세워 싸우곤 했다. 어린애나 늙은이, 여자들을 세워 두고 그들의 뒤에서 총을 쏴갈겼다는 거다.
어차피 북한 멸망은 확정이었고 이미 다 끝난 싸움이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했던 거냐고 한 포로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이 뭔 줄 아는가?
-아메리끼 간나 새끼들은 베트남, 아프간에서 격렬하게 저항받다가 전쟁이 장기화되면 결국 꼬리 말고 도망쳤지 기래? 그래서 우리도 그랬지비.
재미있게도 놈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승리와 생존 가능성을 엿봤던 거다.
국제법에 민감한 서방 군대를 상대로 민간인을 고기방패를 내세워 전국적으로 게릴라전과 테러, 소모전을 벌이면 언젠가는 적들이 물러나고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고.
실제로 베트남에선 국내 반전주의자들 때문에, 아프간에선 미국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소모한 군수물자와 군인, 그리고 국가 예산 때문에, 세계 최강 미군이 무려 2번이나 먼저 철수한 역사가 있었다.
북한은 그토록 자랑하던 핵 미사일과 령도자가 전쟁 개시와 동시에 제거되었음에도, 일말의 가능성에 전 국토와 국민들을 걸고 5년간 발악해 댄 것이다.
내가 거기서 확인한 것은 결국 골통이 깨져 죽은 북한군의 산더미 같은 시체와 종전 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인간의 광기뿐이었다.
그런데 그 광경을 설마 한국 땅에서도 보게 될 줄이야.
‘지금 침투해서 다 죽여 버릴까?’
저런 것들이야말로 내 인간 불신의 살아 있는 원흉들이다.
‘그런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누구라도 우리처럼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처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함부로 비난하지 마라’ 같은 변명을 내뱉으며,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저런 것들은 생존과 사회 재건에 특화된 능력을 가졌다고 한들 정상적인 사회에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남을 등쳐먹거나, 지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죄 없는 누군가를 고기방패로 내세울 생각만 하겠지.
내가 전장에서 바친 지난 5년간이 저런 놈들을 지키기 위해 낭비되었다고 생각하니 절로 이가 갈린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이 나라, 이 사회, 이 국민들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보상이고 사과고 대우고 좆도 안 바라니까 그냥 내 발목만 잡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나 힘든 일이었나?’
누군가가 목숨 바쳐 지킨 이 나라를 그렇게나 망치고 싶어서 안달이라는 게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온다.
‘그렇게나 죽는 게 소원이라면 죽여드려야지.’
어차피 더 이상 세금 걷을 정부도 없겠다, 국민 같지도 않은 버러지 숫자 좀 줄인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겠지.
나는 그대로 건물 외벽을 기어올라 옥상으로 진입하였고, 옥상에서 경계를 서야 할 놈들이 휴게실에서 태평하게 담배를 태우며 쉬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나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20대 초중반, 딱 봐도 인제대 재학생이다. 살금살금 걸어 옥상 휴게실 외벽에 바짝 붙으니 환풍구를 타고 놈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병신 새끼들 기숙사에 붙어 있지 말고 본관으로 들어오라고 해도 말 더럽게 안 듣다가 결국 뒤졌다더라.”
“호구 같은 과대 믿고 기숙사로 들어간 놈들이 그럼 그렇지. 근데 좀 아쉽긴 하다. 거기 반반한 년들도 꽤 있었는데.”
“꿈 깨 인마. 거긴 이미 좀비들밖에 없을 거다. 내가 기숙사 뒷문 미리 열어 놔서 좀비 놈들 들어가게 만들었거든. 흐흐.”
“와 씨발, 어떻게 했냐?”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 새끼들이 우리한테 식량 받아 가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 식량 구해 와서 자급자족 한다고 깝칠 때 몰래 가서 열어 놨지.”
“미친 새끼 흐흐흐…….”
“어차피 거긴 오래 못 버틸 곳이었어. 우리가 먹지도 못할 곳인데 미리 싹 쓸어 놔야 나중에 뒤탈 없을 거 아냐? 과대 새끼 우리한테 쌓인 거 많이 보이던데.”
“지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정의로운 줄 아는 새끼였지. 잘 뒤지긴 했어.”
굳이 찬바람 맞으며 옥상에서 경계를 설 바에야 다음 교대자가 오기 전까지 휴게실에서 꿀이나 빨 생각인 듯, 대학생 세 명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댄 상태로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었다.
‘이젠 군인도 아닌데 국민 같지도 않은 국민은 지켜 줄 필요는 없지.’
내 나라, 내 국민, 내 재산을 지키는 데 이 한 몸 바치겠다고 맹세했던가? 5년간 악과 증오밖에 남지 않은 나는 그런 맹세에 고집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놈의 가슴을 냅다 발로 까버렸다.
“꺽?!”
의자가 뒤로 넘어가면서 한 놈이 자빠지기 무섭게 다른 두 놈이 벌떡 일어섰다. 이런 놈들에겐 총알을 쓰는 것도 아까웠기 때문에 나는 말없이 손목을 풀었다.
“너 이 새끼 뭐야?!”
“처음 보는 새낀데 대체 어떻게 들어온…… 끄윽?!”
경찰이 흉기를 든 범죄자를 안전하게 제압하려면 최소한 6.5m의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한다. 놈들과 나의 거리는 2m가 채 되지 않았다.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목젖을 얻어맞은 놈이 목을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은 순간, 나는 놈의 머리통을 발끝으로 찍어내리는 것과 동시에 몸을 회전시켰다.
“이런 씹…… 어어억?!”
어설프게 무기를 꼬나쥐고 덤비려던 놈은 그대로 돌려차기에 옆구리를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격투기 선수도 쉽게 단련하지 못하는 부위가 바로 관자놀이, 턱, 그리고 옆구리다.
코어 근육이라도 좀 키워 놨다면 모를까, 운동이라곤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놈이 회전력이 실린 돌려차기를 옆구리에 맞고 멀쩡할 리가 없다.
쿠당탕!
휴게실 벽과 부딪치며 요란스럽게 바닥을 뒹군 놈은 끄윽끄윽 하고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면서도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대체 누군지, 왜 이러는 건지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시선이었다.
거기에 대답해 줄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머리통을 찍어내린 놈의 뒷목을 붙잡아 억지로 일으켜세운 뒤, 처음에 발로 까서 뒤로 넘어진 놈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잡고 일어서려던 놈은 얼추 70kg쯤 되는 인간폭탄에 얻어맞아 다시 넘어졌다.
“씨이이발…… 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알아야 하나?”
“……뭐?”
“내가 너희 같은 버러지들 이름, 소속 세력, 세력 내부의 지위 같은 인생에 하등 도움 안 되는 정보를 굳이 알아야 하느냐고.”
싸구려 드럼통에 책이나 목재 같은 장작을 쌓아서 만든 급조된 캠프파이어를 발로 차서 뒤엎자 희뿌연 재가 확 퍼졌다. 하필 그 재를 정면으로 얻어맞은 놈은 순간적으로 자신을 덮친 열기에 정신을 못 차렸다.
“으아아아악! 씨발! 내 눈! 이 개새끼…… 죽여 버린다!!”
놈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손에 쥔 쇠파이프를 들고 미친 듯이 휘둘러 댔다. 이 좁은 휴게실 내부라면 한 대쯤은 맞겠지 하는 심리였을 것이다. 한심하다 못해 혐오스럽다.
놈이 쇠파이프를 크게 휘두른 순간, 발끝을 앞으로 내지르듯이 놈의 무릎을 걷어찼다. 졸지에 힘이 탁 풀려 다시 한번 무릎을 꿇게 된 놈은 턱주가리를 걷어차기 딱 좋은 자세를 취했다.
이렇게 거저 주는 사커킥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그대로 턱주가리를 걷어차 주었다.
빠악!
피가래와 강냉이 몇 개가 후두둑 털리자 놈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대로 목뼈가 돌아가며 뒤졌거나 기절했겠지.
구석 한쪽에서 신음하고 있는 두 놈도 차례대로 모가지를 짓밟아 목뼈를 으깨 주고 옥상 휴게실을 나섰다.
그 최정수라는 놈의 계획이 자신을 비롯한 측근 수십 명과 함께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좀비 떼를 끌어들여 민간인 피난자들을 고기방패로 세운다는 것이었던가?
알량한 계획을 세우는 놈들을 가장 빡치게 하는 방법은 계획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세운 계획을 그대로 역이용해서 엿먹이는 것이야말로 진짜 빡치는 법이다.
“고기방패는 민간인이 아니라 너희 몫이다.”
원래 능력 있고 젊은 놈들이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법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게 이제 너희 차례가 됐을 뿐이다.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고, 옥상 문을 열고 내려갔다.
놈들 말마따나 인제대 재학생들의 귀중한 물자나 축내고 있는 민간인들은 관리하기 까다로울 테니 아예 한 장소에 처박아 뒀을 터.
본관 건물 내부에 그런 넓은 장소라고 해봐야 그리 많지 않겠지만, 제대로 된 목적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내부를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래서 때마침 화장실로 들어가는 놈의 뒤를 따라 들어가 차가운 세면대에 머리통을 처박으며 민간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답을 알려 주는 마법의 물이 세면대에 가득 차기도 전에 놈은 코피를 줄줄 흘리며 아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민간인들은 1층에서 즉각 바리게이트 보수나 방어에 동원될 수 있도록 모두 1층 식당에서 수용 중이라고 한다.
“그래, 고맙다.”
“으읍! 으으으윽?!”
우드득.
이 학교 재학생들, 그중에서도 본관에 모여 있는 놈들은 최정수와 한패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