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생존기 (42)
전쟁을 겪으면서 한 가지 배운 사실이 있다면, 자기 목숨을 챙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단한 성능을 가진 장비나 뛰어난 체력 같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정보다. 정보가 핵심이다.
적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제아무리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든, 훌륭한 장비를 지급받았든 아차 하는 순간에 비명횡사할 수 있다.
빨갱이들이 어느 마을에 숨어들어갔는지, 어느 마을에 무슨 수작질을 부려 놨는지 사전에 알아내지 못한다면 전부 군인들이 몸으로 때워야 한다.
위성이나 드론을 이용한 정찰도 한계가 있을뿐더러, 적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들의 머리 위가 훤히 뚫렸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애초에 누가 멍청하게 지뢰를 땅 위에 그냥 놔두겠는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흙이나 나뭇잎 밑에 파묻어 두지.
정보라는 것은 자신들이 걷고 있는 땅에 지뢰가 있는지 없는지, 허름한 민가에 총과 폭탄으로 무장한 빨갱이가 숨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게 해 주는 귀중한 생명줄이다.
즉, 사전에 정보를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적지에 진입한다는 것은 적에게 내 엉덩이에 납탄을 꽂아 달라는 의미이고, 빨갱이에게 죽은 병신이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는 영광이었다.
격동의 시기를 겪은 대한민국 군필자라면 정보의 중요성을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건만, 상대는 내 상상 이상으로 수준이 낮았다.
먼저 홈마트에 쌓여 있는 물자 때문에 눈이 돌아가 버렸고, 조직원들 간의 지휘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으며, 마지막으로 내가 노골적인 도발을 했던 탓에 이성을 잃어버렸다.
여러 요소가 연쇄적으로 작용한 덕분에 일차원적인 생각만 하게 된 것은 실로 유감이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적지에 들어왔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게 이 사회의 규칙이다.
다들 그렇게 손에 피를 묻히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끄윽?!”
암행 스킬을 써서 조용히 움직여, 가장 뒤에 있던 놈을 배후에서 덮쳤다.
놈을 덮치자마자 입부터 틀어막고 무릎으로 등뼈를 짓눌러서 강제로 지면에 눕혔다.
내가 뭐 대단한 경험이 있어서 이렇게 하는 건 아니고, 이게 다 윗선에 들키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전쟁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터득한 꼼수였다.
현장에서 처리하지 못한 악질 빨갱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물렁한 법치주의 아래에서 인권을 존중받으며 편하게 재판받으려던 놈을 쥐도새도 모르게 처리할 때 썼던 방법이다.
불법 아니냐고? 당연히 불법이다.
하지만 그놈들 손에 자폭 테러리스트가 되어야 했던 죄 없는 민간인이나, 그들에게 희생된 전우 때문에, 당시 최전방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우리 부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이기를 유지하는 것보다,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때였다.
으드득!
양아치 한 놈을 바닥에 짓뭉갠 채 그대로 목뼈를 분질렀다.
인간은 바닥에 엎드리게 되면 고개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아간 상태로 옆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때 목뼈를 콱 짓눌러 주면 쉽게 부러진다.
물론 단숨에 목뼈를 부러뜨린다고 영화처럼 무조건 즉사하는 건 아니다. 목 아래로 신경이 끊어진다고 해도 뇌가 멀쩡하다면 어쨌든 살아 있는 것이니까.
그다음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는 놈의 입과 코를 꽉 막아서 숨을 쉬지 못 하게 하면 깔끔하게 질식사 시킬 수 있다.
발버둥치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피를 흘리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운 나쁘게’ 목이 부러져서 죽은 빨갱이 포로 한 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내 밑에 깔린 놈도 그렇게 운 나쁜 최후를 맞이했다.
‘그건 그렇고 정말 한 놈도 총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는군.’
눈치 빠른 놈들이라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할 줄 알았는데, 놈들은 그저 총성이 들리는 곳으로, 발길이 닿는 곳으로 멍청한 좀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서 변주를 주기 위해, 나는 가동이 중지된 에스컬레이터로 살금살금 걸어올라가고 있는 놈들을 조준했다.
타타타!
3점사로 나간 소총탄이 정확히 에스컬레이터로 걸어올라가던 두 양아치의 등짝과 뒤통수를 꿰뚫었다.
등 뒤, 그것도 아래쪽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자 적들도 당황하긴 했는지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주 돌대가리는 아니라는 걸까. 대뜸 소리쳐서 ‘어떤 놈이야?’ 같은 멍청한 소리는 내뱉지 않았다.
지금껏 위에서 공격받다가 갑자기 아래에서 공격을 받았으니 불안감을 느낄 만도 하지. 지금쯤 자신들이 아래쪽에서 뭘 놓쳤는지 열심히 고민 중일 것이다.
아군의 오인 사격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왜냐하면 저들 중에 총을 들고 있는 자들이 가장 앞서 나가고 있었으니까.
상대적으로 선두와 조금 뒤떨어져서 움직이는 자들은 무장이 모두 빈약했다. 내가 총을 들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시할 수는 없겠지.’
뒤쪽에서 들릴 리가 없는 총성이 들렸으니 몇몇 정찰조가 되돌아 내려오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놈들이 무방비한 상태로 다시 내려오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동포탑의 요격 기능을 ON으로 바꿔서 놈들을 처리했다.
너희가 지금 아래쪽을 신경 쓸 때냐? 내가 위에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이런 뉘앙스가 담긴 총알 세례를 선물해 주자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놈들의 똥줄이 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위? 아래? 위위 아래?
전장에서 죽는 사람들은 대부분 못 싸웠기 때문에 죽는 게 아니다. 몰랐기 때문에 죽는 거다.
적이 하필 거기서 튀어나올 줄 몰랐으니까, 하필 거기에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을 줄 몰랐으니까, 민간인의 몸에 폭탄조끼가 입혀져 있을 줄 몰랐으니까.
다들 그렇게 정보와 직감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죽는다.
‘1층의 음식만 빠르게 챙겨서 냅다 도망쳤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그 정도라면 나도 한 번쯤은 눈감아 줄 의향이 있었다. 세상이 이 꼴로 변했으니 굶주림 때문에 눈 돌아가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놈들은 이성보다 욕심이 앞섰고, 결국 화를 자초했다. 제 발로 장작을 짊어지고 불길에 뛰어들었는데 누굴 탓한단 말인가.
탕!
혼란을 부추기기 위해 이번에는 허공에 총질을 한 번 해 주고, 다시 포탑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얼간이 한 명이 엄폐를 포기하고 달려 나왔다. 어둠 속에서 놈의 움직임을 포착한 자동포탑이 예외 없이 탄환을 퍼부어 주었다.
퍼버버버벅!
놈은 10m도 채 이동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피와 살점을 흩뿌리며 걸레짝으로 전락했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했다는 것을 차라리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저 정도 위력의 포화에 노출됐다는 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었다는 뜻이니까.
몸에 구멍이 뚫리거나 탄환, 파편이 박힌 채로 정신만 멀쩡하면 정말 죽고 싶어진다. 내가 직접 당해 본 건 아니고, 같은 부대원이 실려 가기 전에 그렇게 말해 줬다.
총에 맞으면 1초라도 빨리 기절하든가, 아니면 자기 손으로 직접 대가리에 총을 쏴서라도 모든 걸 잊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특히 의무병이 지혈제와 지혈 붕대를 환부에 쑤셔박을 때는 이곳이 생지옥이구나 싶었단다.
“성철아!!”
생지옥을 겪지 않고 단칼에 저승으로 보내 준 걸 고마워하기는커녕, 놈의 동료로 추정되는 또 다른 양아치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꼴에 죽기는 싫었는지 다 팽개치고 뛰쳐나오지는 않았다. 마음속으론 슬퍼하면서도 머릿속으론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잘난 머리통으로 이 거점을 처음부터 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업이 깊다 깊어.
나는 다시 총구를 들어 엄폐물 옆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고함을 지르고 있는 녀석을 향해 겨눴다.
자동포탑의 시점에선 보이지 않지만 내 시점에선 아슬아슬하게 각이 나온다.
내가 어둠을 꿰뚫어 보는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CCTV와 거점창으로 놈의 위치와 나의 위치를 계산한 결과였다. 지형지물의 형태와 거리, 높이를 계산하고 폭격이나 저격 지원을 요청하는 건 일상이었으니까.
타타타!
그래도 원샷원킬을 할 자신은 없어서 3점사로 당겼더니, 의외로 놈의 머리통에 퍼버벅 하고 탄환이 박혔다. 아, 그러고 보니 내 사격술 스킬 등급이 꽤 높았었지.
“으악 씨발! 대체 어디서……!”
잊지 못할 친구 성철이의 이름을 부르며 엄폐를 게을리하던 놈마저 머리통이 터져 나가자, 주변에 있던 다른 놈들이 침묵을 깨고 혼란에 빠졌다.
과거에는 뭉뚱그린 개념으로 셸 쇼크라고 불렀지만, 현대에는 저런 현상을 전투 스트레스 반응(combat stress response)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눈앞의 전우가 죽어 나가거나, 자신이 숨어 있는 곳에 총탄과 폭탄의 파편이 박힌다거나, 적지 한복판에서 고립 상태에 빠진다거나 하면 극도의 스트레스에 빠진 뇌가 일시적으로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다 팽개치고 주저앉아서 덜덜 떨거나, 미친놈처럼 실성하거나,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총기를 마구 난사하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대한민국 남성들 대부분이 군필자라고 해도 CSR은 결코 가볍게 넘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참다못한 몇몇 놈이 엄폐를 포기하고 뛰쳐나오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놈들이 꼬리에 불붙은 쥐새끼처럼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부비트랩을 작동시켰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각 층마다 숨겨 두었던 C4 RC카를 원격 조종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
콰앙! 쾅! 퍼어어엉!!
누가 부비트랩을 건드려서 그대로 폭사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소리 소문없이 다가온 RC카의 자폭에 날아가 버렸다.
총성에 이어 폭음까지 건물 내부를 강타하며 사방천지에 피륙과 파편을 흩뿌렸다. 그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인간의 처절한 비명은 놈들의 멘탈을 쪼개기에 충분했다.
구석에 몰린 느낌.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자신에게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 주변의 모든 벽과 천장이 자신을 짓뭉개며 시시각각 좁혀 오는 느낌.
세상의 모든 악의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 같은 아찔한 감각에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지만, 고막이 찢어져라 울려 퍼지는 폭음과 진동 때문에 쉽사리 정신을 잃을 수도 없다.
살 곳을 찾아야 해. 도망쳐야 해. 그렇게 생각하면서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 필사적으로 안전한 장소를 찾는다.
죽음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인간으로부터 흘러나온 피비린내와 절규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틀어막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한다.
그렇게 행동할수록 생존과 더더욱 멀어진다는 걸 모르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다들 그렇게 한다.
이성적으로 육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 버렸기 때문에.
내가 모든 자동포탑과 부비트랩의 요격 기능을 OFF로 돌리고, 지렁이처럼 바닥을 기고 있는 그들 앞에 서도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면서 그들이 얼마나 잔혹한 짓을 저질렀든, 끔찍한 광경을 보면서 정신을 단련했다고 한들, 내 앞에선 모두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어, 어으으으으……!”
“사사사, 사살, 려……!”
자신의 것이 아닌 피와 내장을 뒤집어쓴 인간이 필사적으로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목숨 구걸을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고작 이런 놈들 때문에 아까운 총알을 낭비해야 하니까.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