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34화 (35/227)

34화 생존기 (34)

생존 6일 차.

일주일로 딱 맞아떨어졌으면 좀 더 깔끔했으련만, 어쨌든 나는 6일 차 아침에 홈마트 가구 매장에서 눈을 떴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자랑하는 에이스 침대 위에서.

“평소 같았으면 새벽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고, 반쯤 잠에서 덜 깬 상태로 하루를 시작했을 텐데. 역시 스트레스가 확 감소해서 그런가?”

나 자신이 느끼기에도 스트레스가 확 감소할 만한 일이 바로 어제 벌어졌다.

홈마트를 무력 점거하고 있던 좀비들을 거점 전쟁으로 싹 쓸어 버리고, 한술 더 떠 홈마트 주변 거리를 잠식한 좀비들도 말끔하게 청소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막대한 경험치와 DNA 샘플은 막혀 있던 속을 뻥 뚫어 버렸고, 거점 개조 과정에서 완전히 복구된 각종 물자들이 내 행복회로를 미친 듯이 돌려 댔다.

어제의 이승권은 해피해피 수치가 20%였다면 오늘의 이승권은 해피해피 수치 200%를 아득히 초과하고 있는 셈이다.

“따뜻한 물 너무 좋고~”

홈마트에 설치되어 있는 아이돌봄센터에는 비상사태(?) 발생 시 아이를 씻기기 위한 작은 욕실과 탈의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시스템의 은혜로 가득한 온수를 뒤집어쓴 채 노인처럼 어으으으으으으, 같은 소리로 울부짖었다. 노인들이 괜히 지옥열탕에 들어오면 시원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세면대 앞에서 비치된 공용 헤어드라이기와 빗, 왁스, 그리고 면도기로 수더분한 외모를 좀 다듬었다. 나란 남자는 태생이 인싸였기 때문에 아포칼립스 한복판에서도 ‘멋’을 외칠 수 있었다.

더러운 좀비의 피와 내장을 뒤집어쓰고 화약과 피비린내가 찌든 몰골로 돌아다니다 오해라도 받으면 큰일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홈마트가 완전히 내 거점으로 바뀌면서 복구된 물자는 내가 십수 년은 혼자 써도 충분할 만큼 차고 넘쳤다.

혹시 몰라 유통기한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몇몇 음식을 개봉해서 상온 상태로 보관해 두었는데, 하룻밤이 지나고 확인해 봐도 상한 흔적은 없었다.

개봉 후 날것 상태로 상온 보관하면 가장 빠르게 변질되는 과일과 그리고 유제품(우유, 요구르트)으로 실험해 봤으니 내 추측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곳에서 복구된 모든 물자는 인간이 완전히 사용하기 전까진 절대 상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는 추측이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 한입 베어먹은 사과를 아무렇게나 방치해 둔다고 해도 완전히 먹히거나 쓰레기로 분류하지 않는 한, 그 ‘용도 가치’가 남아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곳의 모든 물자를 소모한다고 해도 전력과 수도, 가스가 공급되는 한 다른 곳에서 들여온 물자를 계속 보관할 수 있어. 일종의 거대한 물자 보관 창고가 되는 거지.’

거울 앞에서 가글까지 끝낸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말끔하게 닦았다.

다른 장소에서 들여온 물자도 반영구적인 보관이 될 가능성은 매우 적겠지만, 홈마트의 어마어마한 냉동고와 창고를 잘만 이용한다면 물자 적재는 껌이었다.

우선 복구된 물자부터 소비하고, 그다음 다른 곳에서 들여온 물자들로 빈자리를 채워 나간다면 소비와 저장을 계속 반복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외부에서 확보할 수 있는 순수 물자의 양이 줄어들면 자체적으로 농업이나 어업을 통해 식자재를 확보할 수 있고, 아니면 이번처럼 큼지막한 마트나 백화점을 거점화하면 된다.

물자가 부족하다면 그만큼 복구하고, 차츰차츰 인간의 터전을 복구하고, 최종적으로는 좀비 아포칼립스를 극복한 새 시대의 인류가 되는 거다.

어제의 내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꿈꿀 수 있다.

모든 것이 부질없고 처참하기만 했던 군인 시절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라면 미남 배우도 좀비 아포칼립스의 직격탄을 맞아 품귀 현상을 보일 테니, 연예계에서 나 정도면 A급 배우로 채용해 주지 않을까 하고 실없는 생각을 했다.

어제도 할 일이 많았지만, 오늘은 더 할 일이 많아진 나는 일단 1층으로 내려왔다.

귀신도 배가 고파서 제사상의 향 냄새를 얻어먹는 시국에, 살아 있는 인간이 상큼한 아침의 피비린내와 화약내로 만족할 리가 없다.

중간에 들른 빵집에서 먹음직스럽고, 따끈따끈한 온기가 그대로 유지된 피자빵과 우유 하나를 집어 들고 메인 홀로 나왔다.

하루 이상 팔리지 않은 빵은 특유의 퍽퍽함과 쉰내가 진동하기 마련인데, 내가 막 집어온 빵은 쫄깃한 식감과 향긋한 냄새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여기에 학생 시절부터 군인 시절까지 단 한 번도 나와 떨어지지 않았던 서울 우유를 곁들이면 쾌락에 미쳐 버릴 것 같다.

까놓고 말해서 이 모든 행복을 나 혼자 독식하고 싶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세상은 더 이상 인간 한 명이 꿋꿋하게 집구석에 처박혀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게 되었다.

염병할 TV와 인터넷은 먹통이고, 심심함을 달랠 수 없으니 싫어도 다른 인간과 함께해야 한다. 그렇게 공동체를 설립하고 나면 좀비도 때려잡고 무너진 인간 사회도 재건해야 한다.

몹시 귀찮은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하필 넷플러스에 가장 목마른 인간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행복을 누군가와 나누고, 이 즐거움을 누군가와 함께 느끼고, 이 편안함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해야 한다.

하는 것도 없으면서 매일 쌀 꿔달라고 찾아오는 흥부를 놀부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요컨대 퇴역병이라는 직업은 힘들게 죽 쒀서 남한테 나눠줘야 하는, 그게 싫으면 평생 자신만의 골방에 틀어박혀야 하는 매우 극단적인 직업인 것이다.

혼자서 방송국을 거점화하면 만사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자신의 홈그라운드가 아닌 곳에서 활동하려면 믿음직한 동료가 필요한데, 그 동료를 어떻게 구하겠나?

“세상은 결국 요거지 요거.”

혼잣말에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검지와 엄지를 둥글게 말았다.

의식주! 의식주가 보장되지 않으면 인간은 절대 이유 없이 남을 돕지 않는다. 동료를 위해 목숨을 걸어 주는 일은 더더욱 없고.

그러니까 나는 자신의 안락한 노후를 복구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노후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신세가 된 거다. 인생 참 맵다.

우유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 안으로 털어 넣은 뒤, 쓸모없는 우유갑을 공공 쓰레기통에 휙 던져 넣었다. 3점슛이 적중한 쓰레기통 너머에는 어제 내가 배치해 둔 포탑과 터렛이 입구를 겨눈 채 늘어서 있었다.

지하 주차장은 확실하게 입구를 봉하고 부비트랩까지 설치해 두었고, 결국 사람이나 좀비가 침투하려면 이 커다란 현관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어지간하면 검증되지 않은 손님을 내부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특히 이렇게 규모가 큰 거점일수록 개개인보단 집단 단위로 받는 게 더 나아.’

참 우습게도 별 볼 일 없고 작은 거점이라면 소규모 일행이나 개인을 일원으로 받아들여도 되지만, 이렇게나 큰 거점이라면 집단을 받아들여야 더 통제하기 쉽다.

특히 규모가 큰 집단일수록 이 안전한 거점에서 추방되는 일이 없도록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주의할 것 아니겠나?

심지어 거점 관리자인 나의 추방 방식은 피의 대화뿐이었다. 그저 추방자가 ‘적성체’로 규정되는 순간 거점 방위 무기가 알아서 추방자를 요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거점 내부에 한해선 내가 곧 법이고 진리이며 하나뿐인 군주다. 이제 신분의 차이가 좀 느껴지십니까, 우매한 평민들?

‘마음 같아선 세금이라도 걷고 싶지만, 그것도 우선 사람을 받아들여야 가능한 일이겠지.’

거슬리는 자에 한해서 무자비한 폭정과 탄압이 약속된 환상의 나라 홈마트의 주민이 될 자 어디 없는가, 하고 닫아 두었던 방화문을 원격 개방한 순간.

나는 홈마트 현관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던 몇몇 인간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 어어어?!”

“사람이 있었다고?!”

“아니, 그보다 내부가 왜 저렇게 깨끗해? 좀비는 다 어디 간 거야!”

방화 셔터에 의해 굳게 닫혀 있던 홈마트의 입구가 개방되자 배낭과 조잡한 무기를 갖춘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마치 예수님이 물 위에서 현란한 스텝을 밟는 것을 목격한 베드로처럼.

아아, 모르는가? 이것은 [홈마트]라는 것이다. 너희 길거리 생존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건물이겠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나는 동네 자영업자처럼 자연스럽게 현관에 기대어 섰다.

“오늘부터 여기서 장사하게 된 사람입니다. 필요한 물건 있으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서 사가시고, 몸을 의탁하고 싶으면 제게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거점 일원의 자질을 증명하시면 됩니다. 다른 질문 있으신 분?”

순간 기자회견에서 유명 배우가 폭탄 발언을 터뜨린 것처럼 분위기가 싸해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가장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쇠파이프를 쥔 손에 힘을 넣었다. 제 딴에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겠지만 상대가 안 좋았다.

자폭 테러로 위장한 북한군이나 북한 민간인들을 상대로 치안 유지 및 복구 작업을 5년이나 했던 내 눈에는 손바닥처럼 훤히 들여다보였으니까.

내가 자연스럽게 현관에 몸을 기대서 무방비한 모습을 연출한 것은 이들 중 총화기를 소지한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짓 한 번에 상대가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또 무엇을 품에 감추고 있는지 체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행여나 배낭 속에서 총화기를 꺼내 드는 놈이 있다고 해도 내가 훨씬 더 빠르게 권총을 뽑아 들 자신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일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아니꼬운 말투로 주변 동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거 젊은 친구가 지금 시국이 어느 때인데 이상한 농담이나 하고 있는 건가?! 자네 눈엔 지금 주변이 안 보이는가? 좀비들에게 습격받아 소중한 사람을 잃고, 제 집에서도 도망쳐 나와 불쌍하게 거리를 전전하고 있는 우리 모습은 안 보이느냔 말이야!!”

“그, 그래! 거 안전한 장소를 먼저 확보했다고 사람이 그렇게 나오면 쓰나! 안전한 장소와 풍족한 물자가 있으면 이웃사촌에게 나눠주는 법도 알아야지!”

“세상이 이 지경이 됐는데 대가를 지불하라느니,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사람을 받아 준다느니!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는 거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연상이라 그런지-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비교적 젊어 보이는 나를 상대로 말을 험하게 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목소리 큰 놈 승리설’이 또 한 번 증명되었다.

어딜 가나, 어떤 상황이든 꼭 이런 부류가 있다. 일단 성량부터 키우고 막무가내로 외치면 자신의 말 같지도 않는 논리가 먹혀들 것이라고 착각하는 부류가.

대부분은 편의점이나 마트, 혹은 도로 위에서만 한정적으로 등장하는 히든몹 같은 개념이라 한국에선 널리 알려진 기괴한 현상이지만, 이승권 1세가 통치하는 환상의 홈마트에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보세요 아저씨. 꽥꽥 소리부터 지르기 전에 이성적으로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있던 좀비 떼를 누가 처리했을 것 같아요? 이 홈마트와 주변 거리를 안전지대로 만든 게 누구겠어요?”

“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 주변이 이렇게 된 건 홈마트 안에서 걸어 나온 내 덕분이란 걸 추측할 수 있을 텐데, 저 눈치 없는 아재는 그냥 밀어붙이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어린 놈에게서 이겨 먹겠다는 중년 특유의 지랄 맞은 특성이 발동된 것이다.

“저희 부모님은 이런 걸 가르치기 전에 세상을 뜨셨어요.”

“크흠! 이 시국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건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럴수록 다 같이 힘을 모아서…….”

“5년 전에 북한군 폭격으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좀비 아포칼립스가 터지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진상짓 하는 사람을 무조건 공경하고 있는 거 없는 거 다 퍼드려야 한다는 가르침은 못 배웠어요.”

“이익……!”

“이해하셨으면 이제 다들 좀 냉정해집시다.”

짝!

내가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키자 선동에 편승하려 했던 몇몇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살펴봐도 나를 트집 잡을 건덕지가 없다는 건 저들도 알고 있다.

다만 깨끗하고 안전해 보이는, 그리고 좀비들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을 풍부한 물자들이 탐이 나서 호시탐탐 건물 내부를 살피는 눈치였다.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혹은 그럴 타이밍만 잘 터진다면 언제든지 젊은 놈 뚝배기 하나쯤 가볍게 터뜨리고 약탈하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사람의 진득한 악의와 이유 없는 살의를 온몸으로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난 느껴 봤다. 그리고 지금도 느끼고 있다.

“구라 한 점 없이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제 이곳을 점거하고 있던 좀비 무리를 치워 낸 건 제가 맞습니다. 홈마트도 보란 듯이 되찾았죠. 제겐 민중의 지팡이를 상징하는 이 권총과…… 좀비들의 이목을 확실히 끌 수 있는 바이크가 있었거든요.”

이 타이밍에 내가 먼저 권총을 꺼내 보이자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잡고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포기했다. 그런데도 몇 명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눈치였다.

경찰용 리볼버에 들어가는 탄환은 다섯 발이고, 그 다섯 발 중에 자신이 맞지 않으면 얼마든지 날 처리하고 물자를 약탈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바이크를 타고 좀비들을 몽땅 유인해서 다른 곳에 처박아 두고, 이곳의 안전을 확보했다고?”

“그거 아니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요? 좀비 무리가 사라진 지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들 우르르 몰려오셨으니까.”

내 추측이 맞다면 이들은 홈마트 주변을 정기적으로 관측하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 터.

하룻밤 사이에 웬 소란이 벌어졌나 싶더니만, 해가 뜬 뒤에 찾아와 보니 좀비들이 싹 사라져 있어서 좋아라 했겠지. 그러다 출입구가 완전히 봉쇄되어 있는 홈마트를 두고 의문을 느끼던 찰나에 내가 안에서 나온 것이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제힘으로 이곳의 안전을 확보했는데, 제가 이 거점과 물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게 그렇게나 이상한 일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큰 마트의 물자를 모조리 독식하겠다고?! 그건 너무한 거 아닌가!!”

“그래서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물건이 필요하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서 사가라고 했죠. 이곳에서 머무르고 싶다면 그럴 가치를 증명하라고도 했고요. 제 나름대로 상생을 추구했던 건데 영 못마땅하신가 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곳은 이전부터 우리가 점찍어 두고 있었던 곳이야! 다른 집단도 그렇고! 그런데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도 모를 놈이 냅다 가로챘는데 그냥 두고만 보라고?!”

또 깜빡이 없이 치고 들어오는 무지성 궤변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두고 보지 않으시면 어쩌실 건데요?”

“그, 그건…… 너 혼자 우리 전부를 상대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잠긴 문이야 박살 내면 그만이고, 혼자인 네가 깜빡 잠들기라도 하면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야! 서로 좋게좋게 풀어 나갈 수 있는데 고집을 피우겠다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그래! 이 건방진 새끼야! 오늘만 날이냐? 우린 1년 365일 빠짐없이 여길 감시할 수도 있어! 네가 여길 빠져나오든 틀어박혀 있든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걸?!”

“말귀 알아먹었으면 이제 서로 불편할 일 없게 적당히 나눠 먹자고! 물론 젊은 친구가 고생한 값은 톡톡히 쳐줄 테니까. 어때? 이 정도면 우리 같은 집단과 신뢰 관계도 쌓고, 적당히 챙겨 먹고, 윈윈 아니야?”

다시 기세가 등등해진 양아치들이 성난 원숭이들처럼 아우성을 치자 나는 조용히 양손을 들었다.

그것이 항복 의사라고 생각했는지 양아치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내가 들어 올린 양손이 중지를 곧게 세우기 전까지는.

“좆까고 엿이나 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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