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생존기 (33)
매우 중요한 거점을 손에 넣었다.
거점 지정 스킬 덕분에 현대화 개수를 거친 건물은 내외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다. 퇴역병의 스킬 효과답게 거주와 방어에 특화된 것이다.
거점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그 난리를 피웠는데 바깥의 좀비들이 달려들지 않은 걸 보면, 거점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은 외부 환경과 격리되는 구조인 듯했다.
덕분에 말끔하게 새단장을 한 홈마트 안에서 느긋하게 최신식 건물의 때깔을 감상한 것만으로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
전략적 가치가 뛰어난 거점을 손에 넣은 건 손에 넣은 거고, 이제 주변 도로와 건물을 잠식하고 있는 좀비 무리를 처리해야 한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좀비들이 개미 떼처럼 들끓고 있다면 제아무리 편하고 안전한 장소라고 해도 뒤가 찝찝한 법이다.
시간도 제법 흘렀겠다, 배도 채웠겠다, 거점에 원격 배치해 두었던 방위 무기들을 홈마트 현관 앞에 재배치했다.
소모된 포탑 탄약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소모했던 폭탄 RC카나 부비트랩도 언제든지 재배치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다만 방위 무기 특성상 거점 외부의 적은 요격할 수 없는 구조라 반드시 적들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페널티가 있었다.
어차피 동네방네 소음이 울려 퍼지면 손님들이 알아서 입장하시겠지만, 기본적으로 선공권이 전무하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것까지 바라면 진짜 양심이 없는 건데, 그래도 가지면 더 갖고 싶은 게 인간이란 동물이니까.’
처음엔 E급 스킬이 왜 이렇게 퍼주는 거냐고 욕을 하다가, 그게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단점만 콕콕 집어서 불평하고 있는 꼴이라니.
결국, 홈마트 신장개업 손님맞이는 점장인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푹 쉬면서도, 굳게 닫혀 있던 현관 방화문의 개방 버튼을 눌렀다.
통짜 금속으로 만들어진 방화문이 기름을 잔뜩 먹인 것처럼 부드럽게 올라가고,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외부의 찬 공기가 썩은 내와 함께 훅 밀려들어왔다.
공기청정기가 가동되고 있지 않았다면 홈마트 내부에 썩은 내가 며칠은 빠지지 않을 만큼 지독했다. 구체적으로는 조금 전에 끼니를 때울 겸 먹었던 것들이 올라올 것 같았다.
‘이래서 작전 투입 전에 뭘 먹으면 안 된다니까.’
그런데 현장 지휘관들은 어찌나 병사들을 막 대하던지. 밥 먹다가도, 자다가도 대뜸 불려 나가서 북한군 조지라고 명령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티다가 전장에 투입된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런 녀석들은 급격한 긴장 상태에서 소모되는 칼로리를 계산하지 못해 중간중간 픽픽 쓰러졌다.
제 나름대로 구토하는 걸 막아 보겠다고 그런 것 같은데, 오히려 우린 전장에서 토하더라도 밥 한술 더 뜨고 투입되자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왜 그런 말 있지 않은가?
먹고 뒤진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어째, 다들 피골이 그렇게 상접하셨어. 요 근래 인육맛을 통 못 보셨나?”
철컥.
좀비들이 떼 지어 기우뚱기우뚱 몸을 흔들며 돌아다니고 있는 거리 한복판에서 나는 담담하게 권총을 치켜들었다.
어그로를 끄는 데 이것만큼 더 좋은 게 어디 있을까. 권총을 한 발 쏘는 건 역사적으로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력 인사를 암살하는 것으로 세계 대전을 유발하거나, 올림픽에 출전한 육상 선수들이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팽팽하게 조이고 있던 근육을 단번에 풀어 버리게 하거나.
혹은 이렇다 할 만한 자극이 없어서 멍청하게 거리를 서성이고 있는 게 전부인 좀비들의 식욕을 자극하거나.
탕!
최초의 총성이 울려 퍼졌을 때, 장례식장 앞을 에워싸고 있던 좀비 무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좀비들이 내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월드스타나 받아 볼 수 있을 법한 인기에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유유히 홈마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것을 기점으로 좀비들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던 근육을 억지로 풀어헤치며, 뼈와 살점이 짓이겨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서 우르르 달려드는 흉흉한 기세가 느껴졌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저릿저릿한 살의에 무심코 뒤를 돌아봤더라면 나 역시 어느 멍청한 생존자들처럼 중요한 순간에 덜컥 굳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다 처음에는 목이 물어뜯기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다가 전신의 살점을 차례차례 기부하는 신세가 되었겠지.
‘하지만 사나이 이승권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뒤를 돌아보는 건 멋이 없으니까!
이미 하나의 예술이라고 표현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아름답게 배치된 12.7mm 포탑과 9mm 머신피스톨 터렛, 그리고 입구 주변에 촘촘하게 깔아둔 부비트랩까지.
오늘 좀비들에게 있어서 홈마트는 신장개업한 맛집이 아니라 영원히 입구를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이 될 것이다.
내가 포탑을 지나쳐서 들어간 순간, 타이밍 좋게 발포가 시작되었다.
거점 전쟁에서 우르르 몰려 있던 좀비들을 피떡으로 갈아 버렸던 그 성능이 어딜 가지 않았는지, 물밀 듯이 몰려드는 좀비들도 착실하게 갈아 버리기 시작했다.
드다다다다다다다! 타타타타타타타!!
제아무리 쓰나미 같은 물량으로 몰려든다고 한들 무수히 쏟아지는 총탄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물론 탄약이 무한한 건 아니기 때문에 물량으로 밀고 또 밀다 보면 이곳도 언젠가는 함락당하겠지.
하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음, 흠흠.”
탄약이 재생산되었다고는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탄약을 쏟아붓던 포탑들이 하나둘씩 침묵하고, 머신피스톨 터렛 역시 탄약이 떨어져 고개를 푹푹 떨궜다.
저지력이 약해지자 틈새를 파고든 좀비들이 시체의 산과 함께 현관을 기어코 뚫어 냈다. 그렇게 몰려들어온 놈들은 부비트랩의 감지 범위에 걸려 그대로 폭사했지만.
콰앙! 콰아아아앙!
적성체가 범위 내에 들어오면 즉시 하늘로 튀어오르는 이 앙증맞은 폭탄은 사방팔방으로 아름다운 폭압과 파편을 흩뿌렸다.
폭압과 파편에 가루처럼 분쇄된 좀비들의 틈새시장을 노리고 후발주자들이 호기롭게 달려들었으나, 그놈들의 최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터지고, 터지고, 또 터지고. 마지막 부비트랩이 터졌을 때 내가 있는 곳까지 도달한 좀비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정확히는 그럴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부비트랩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좀비들이 섣불리 입구에 진입하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로는 살점과 파편이 너무 많이 쌓여 있고, 두 번째로는 내가 RC카를 보냈기 때문이다.
폭탄을 싣고 열심히 잔해더미를 기어오른 RC카는 기어이 틈새로 기어들어가 저 너머의 좀비들과 기적적으로 상봉했고, 장렬하게 폭발했다.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 해당 거점에 침입을 시도하는 적성체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 먼 곳에서 소음을 듣고 달려오는 놈들이 있다고 해도 다시 문을 닫고 숨죽이고 있으면 금세 떠날 것이다.
‘최대한 빨리 레벨업하고, 겸사겸사 DNA 샘플도 왕창 모으겠다고 했지만 설마 이렇게나 일이 잘 풀릴 줄이야.’
인벤토리를 열어 DNA 샘플을 확인해 보니 거의 8천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거점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레벨이 얼마나 올랐는지 궁금했는데, 지금 확인해 보면 될 것 같다.
“상태창.”
상태창을 각성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권태기가 찾아온 건지, 다소 쳐진 목소리로 상태창을 말하자 시야 앞에 반투명한 푸른 창이 나타났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그래도 꽤 충격적인 내용이 뇌리에 다이렉트로 박혔다.
[생존자 : 이승권]
[직업 : 퇴역병]
[직업 숙련 레벨 : 5 > 12]
[칭호 : (NEW)오버킬, (NEW)피바람]
[생존 기간 : 5일 차]
[숙련 포인트 : 0 > 10(10레벨 돌파+3)]
“오우쉿.”
오늘 때려잡은 좀비는 못 해도 5천 마리쯤 될 것이다. 그러니 단번에 7레벨이나 오르고, 딱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칭호가 생성된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레벨 업 1회당 숙련 포인트 1씩 주는 건 너무 짜다고 생각했는데, 일정 레벨 구간을 돌파할 때마다 추가 숙련 포인트를 지급해 주는 걸 보니 적극적인 좀비 사냥을 장려하는 모양이다.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생존하고 싶다면 좀비들과 계속 싸우고 성장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좀비와 인간이라는 종끼리 서로 치열한 적자생존을 벌이게끔 교묘하게 유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렴 어때. 세상은 이미 망했는데.’
전쟁이 터졌을 때만 해도 핵미사일이 우리 머리 위에서 터지는 건 아닐까, 눈코 뜰 새 없이 날아든 폭격에 얻어맞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곤 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린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핵을 맞는 일도 없었고, 폭격 대신 지하 땅굴로 숨어든 북한군의 총탄이나 부비트랩을 더 걱정해야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죽을 놈은 뭘 해도 죽고, 살 놈은 어떻게든 사는 기형적인 세상. 그 한복판에서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서 있을 뿐이다.
“오늘 잠은 다 잤네.”
왕창 긁어모은 DNA 샘플로 상점창에서 뭘 살지, 숙련 포인트 10은 어떻게 분배할지 밤새 고민하느라 한숨도 못 잘 게 분명했다.
이참에 스킬창도 확인해 두자는 생각에 스킬창을 생성했다.
“스킬창.”
[직업 고유 스킬 : 거점 지정(D-), 거점 경계 강화(E), 거점 방어 강화(E), 최후의 보루(A+)]
[개인 고유 스킬 : 사격(A), 체술(B), 야간 경계(B++), 통증억제(D)]
[획득 및 특전 스킬 : 도구 제작(E), 짚라인(D-), 암행(D)]
레벨업을 할 때마다 랜덤한 확률로 랜덤한 스킬을 획득할 수 있다더니, 7분의 1 확률로 새로운 스킬이 하나 생기긴 했다. 짚라인을 얻었을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확률이 낮아졌다.
[암행(D) : 이동 시 발생하는 모든 소음을 20%만큼 감소합니다.]
“나쁘지 않네.”
딱 그 정도의 평가가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조건만 확실하게 갖춰지면 만능이 될 가능성이 있는 도구 제작 스킬이나, 특정 지형에서 빛을 발하는 짚라인과는 다르게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20% 소음 감소 효과가 가지는 이점이 엄청 대단하다 까지는 아니겠으나, 작은 소음에도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좀비들의 특성상 있으면 국밥처럼 속이 든든해지는 스킬인 건 분명했다.
물론 스킬의 성능을 깐깐하게 따져 본다면 단독 행동을 할 때 빛을 발하는 스킬이고, 반대로 누군가와 함께 행동할 때는 쓸모가 없어지는 스킬이기도 했다.
나를 도울 인재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단독으로 움직일 예정인 내게 딱 어울리긴 한다.
“오늘 영업은 여기까지 해야겠네.”
산처럼 쌓여 있던 좀비들의 육편 조각들은 어느덧 시스템에 의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상태창도 생긴 마당에 적의 시체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게 뭐가 이상하겠느냐마는, 만약 저 자리에 적이 아니라 내가 누워 있었다면 나 또한 저렇게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별것 아닌 일로 전장에서 무의미하게 바스러진 옛 전우들처럼.
나는 홈마트의 현관 방화문을 도로 닫았다.
생존 5일 차에서 6일 차로 넘어가기 전날의 밤이 소리 없이 어디론가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