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생존기 (30)
사람이 필요하다.
내 인생에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주변에 어슬렁거리다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
하지만 망하기 이전의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는데, 하물며 절찬리에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사람을 또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싶다.
나는 필드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요양이나 해 두라며 집에 두고 온 채성아를 떠올렸다.
그녀는 말하자면 보조직이다. 아마 빡세게 굴리고 가르쳐도 전투에 큰 도움은 안 될 것이다. 일단 직업부터 전투와는 조금도 관련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전투에 쓸 만한 군인이나 경찰과 손을 잡자니 영 꺼림칙하다. 나도 군인이었지만, 더 이상 군인을 믿을 수 없는 몸이 돼 버렸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실은 전투요원으로 쓸 만한 군인을 원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설령 나를 촉수로 고문한다고 해도 그런 말을 내뱉지는 않을 거다. 그렇고 말고.
연료를 빵빵하게 채운 이승권 Mk 3를 타고 다시 한번 김해 시내에 진입한 나는 좀비 아포칼립스 5일째에 접어든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누군가의 피나 내장이 진득하게 눌러 붙어 보기만 해도 불쾌한 차량이나 건물 외벽, 아직도 썩은 내를 풀풀 풍기고 있는 지하철역 입구, 그리고 어제보다 확연히 많이 보이는 떠돌이 좀비들.
설마 좁아터진 한반도에서 사람보다 사람 아닌 것을 더 많이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크흐으으으으……!”
바이크가 내는 특유의 소음 때문에 좀비들이 금세 이쪽을 눈치채고 하나둘씩 고개를 돌렸다. 놈들은 언뜻 개체 단위로 움직이는 것 같아도, 사실은 떼 지어 움직이는 군집 의식 같은 반응도 보였다.
예를 들어, 100마리의 좀비 중 1마리가 나를 포착해서 반응하기 시작하면, 근처에 있던 99마리도 무작정 1마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나를 추적한다는 것이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지뢰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분명 내가 김해 시내를 빠져나온 뒤에 누군가가 다시 좀비를 끌어서 시내 중심지에 풀어 뒀거나, 아니면 어느 멍청한 생존자가 이 근방을 뒤지다 좀비들과 크게 맞붙은 게 분명했다.
전자라면 분명 그 자전거 동호회 놈들일 테고, 후자라면 그 생존자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좀비들이 저렇게 많이 몰려 있으니까.
부아아아앙!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좀비들과 짝짜쿵을 할 여유 따윈 없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탄약도 소모가 극심했기 때문에 탐스러운 DNA 샘플이 지천에 널려 있어도 참아야 했다.
내가 즉시 바이크 머리를 돌려 샛길로 빠져나가자 좀비들도 사납게 울부짖으며 나를 추적했다. 저래도 결국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다시 떠돌이 좀비 신세로 돌아가겠지만, 놈들을 떨쳐 내는 과정이 언제나 귀찮았다.
떨쳐 내는 도중에 다른 좀비와 조우해선 안 되고, 속도가 너무 느려도 안 되며, 좀비들을 따돌리는 구간을 정확히 체크해야 한다.
특히 마지막이 정말 중요했는데, 좀비들을 따돌린 구간을 기억에 잊고 다시 그 구간에 진입하면 자신이 파둔 함정에 걸리는 꼴이라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길을 적당히 꼬아서 빠르게 좀비들의 시선으로부터 모습을 감춘 나는 이미 털려 있는 파출소나 지구대를 지나쳐 곧장 북상했다.
도중에 활천초에 한 번 들러서 박성호 일행과 가볍게 안부나 나눌까 하다가, 그건 돌아오는 길에 하기로 했다.
빠르게 주변 풍경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비교적 피해가 적어 보이는-덜 파괴된- 편의점이나 주유소 등을 기억에 담았다. 지금 당장은 물자가 풍족하지만 언제 또 물자가 부족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혹은 내 거점에 받아들이게 될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먹여 살리느라 더 많은 물자가 필요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한참을 북상하다 보니 어느덧 한일여자고등학교 앞에 당도하게 되었다.
한일여자고등학교는 특이하게도 주변에 공장이나 상점가 대신 어마어마한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죽하면 학교와 바로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도 이름이 한일아파트다.
여기를 둘러봐도 아파트, 저기를 둘러봐도 아파트. 조금 더 올라가면 빽빽이 자리 잡고 있는 벌집통 같은 주택들.
내 예상이 맞다면 한일여고 학생들은 통학이 너무 편해서 매일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늦잠을 즐겼을 것 같다. 씻고 옷 갈아입고 집 나서면 5분 거리에 학교가 있는 셈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무심코 긴장했다.
이미 어제 지내동 아파트 단지에서 좀비와 아파트라는 단어가 합쳐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특성상 1층 현관을 제외하면 출구가 전무하기 때문에 일단 좀비가 한번 몰려들면 답이 없다.
1, 2층 주민이라면 그냥 베란다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높은 층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도망치지도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좀비와 싸우거나, 좀비들이 문을 박살 내고 쳐들어올 때까지 몸을 떨면서 숨어 있기만 해야 하는데, 그 결과가 바로 콩나물시루처럼 빡빡하게 들어찬 좀비 아파트였다.
인간 이승권도 전쟁을 겪고 부모님을 잃은 뒤에야 겨우 내 집 마련의 꿈을 성취했건만, 좀비들은 사람 몇 명 씹어먹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파트를 차지한다니.
갑자기 좀비들이 띠꺼워졌다.
온통 아파트와 주택 천지인 이 주변에선 가능한 소음을 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바이크의 속도를 낮추고 조용히 움직였다.
그래도 소음이 새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이 좋은 이동 수단을 버리고 움직이느니 차라리 소음을 조금 내더라도 계속 타는 게 낫다.
한일여고 앞에 엉망진창으로 끼워맞춰진 퍼즐처럼 대충 버려져 있는 차량 사이를 빠져나가던 중, 나는 문득 시선이 느껴져 아파트 단지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의외로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말없이 베란다에서 나를 내다보고 있었다.
베란다에 몸을 내민 사람들은 모두 입도 뻥긋하지 않았지만, 제각기 다른 반응들을 보여 주었다.
누군가는 막대기에 흰 옷을 걸어 붕붕 휘두르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양팔을 크게 벌린 채 열심히 흔들어 댔다.
저들도 구태여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좀비가 무엇에 반응하는지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한테 도움을 청하는 것 같은데, 아쉽지만 지금은 여력이 없어.’
아파트 단지에 대체 얼마나 많은 좀비들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고, 설령 내가 그걸 처리할 수 있다고 해도 당장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일에도 우선순위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총 들고 아파트 단지에 진입해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지게 좀비들을 처리하고, NPC나 다름없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물자를 구해오시오!’ 같은 퀘스트를 받는 게 대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누군가의 감사는 밥을 먹여 주지 않고 목숨을 보장해 주지도 않는 법이다.
마음씨 좋은 사람이라면 보답을 기대하고 희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희생을 하고서도 금세 잊혀질 거라고 한다면 아마 희생하기를 꺼려하지 않을까?
북한 전선으로 내몰렸던 나와 전우들이 그런 취급을 받아 봤으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생각해 보니 좆같은 상관한테 프래깅 좀 했다고 국가유공자 후보에서 제외된 건 아직도 빡치네.
나 역시 한일여고가 훤히 내다보이는 아파트 단지 방향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 뒤, 일단은 그대로 지나쳤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삼안로를 타고 주택가를 빠져나오자 다시 조용한 베드타운 김해의 별 볼 일 없는 번화가가 나왔다.
사실 번화가라고 하기도 민망한 것이, 젊은 층을 위한 시설의 수가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차량 정비 센터, 교회, 병원, 자질구레한 상점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PC방이나 노래방, 카페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웠다.
특히 이놈의 교회는 어찌나 많은지. 김해 안에 있는 교회만 합쳐도 가볍게 수십 개는 넘을 것 같았다. 교회 목사들끼리 서로 담합이라도 하는 건지, 구역마다 교회들이 보인다.
마치 프렌차이즈 매장처럼 100m 내에 같은 영업장을 두지 않기로 합의를 본 것 같은 풍경이다. 편의점끼리 찰싹 붙어 있지는 않지만 어딜 가도 존재하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사태 당일에 거리에서 종말을 울부짖던 종교인들이 없었지.’
그 부분은 아직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다.
보통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이라면 진짜 세계적 종말이 닥쳐 왔을 때, 거리에 뛰쳐나와 피켓을 들고 확성기로 목놓아 울부짖으며 ‘예수천국 불신지옥’, ‘회개하고 구원받자’ 같은 말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지하철역에서도 쏟아져 나온 좀비들이 순식간에 사람들을 덮치고 잔인하게 물어뜯는 광경은 아무리 극렬한 사상을 품은 종교인이라고 해도 무서웠던 모양이다.
나는 교회라는 이름만 붙여 둔 으리으리한 건물 꼭대기에 달린 십자가를 힐끔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신이라는 작자가 존재한다면 처음부터 인류가 이런 일을 겪게 하지 말았어야지. 아니면 하다못해 대홍수나 메테오 스트라이크로 좀 깔끔하게 멸망시키든가.
나는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기껏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즐겁게 구경하는 관음증 변태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럴 거면 차라리 창조하지를 말든가.’
어떻게 된 세상이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게 없지?
이젠 정말 국가 재건 후 넷플러스 서버를 복구하는 것뿐이야.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마침내 삼안동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신어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나쳐서, 큰 대로를 따라 하천이 흐르는 방향까지 달렸다.
아까는 주택과 아파트 천지였다면 이번에 내가 마주한 것은 모텔과 여관 같은 숙박지 천지였다.
대체 이 주변에 뭐 그리 먹을 게 있다고 건물을 알박기해 둔 건지 모르겠다. 김해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풍요롭고 활기찬 도시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던 찰나, 나는 저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꽉 잡아 급정차했다.
대로(활천로)에 진입한 지 얼마나 됐다고 숙박지 근처에서부터 좀비들이 꾸역꾸역 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시내에서 마주친 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았다.
좀비들이 얼마나 바글거리는지, 눈으로 세는 것도 피곤할 지경이었다.
‘진짜 좆될 뻔했네.’
아직 이곳은 둘러본 적 없기 때문에 바이크를 조용히 몰아서 망정이지, 만약 그대로 생각 없이 더 들어갔더라면 저 엄청난 좀비들의 어그로를 끌어 월드스타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만끽했을 것이다.
안전한 장소에 바이크를 세워 둔 나는 길가에 버려진 차량들 사이에 몸을 숨겨 가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크흐으으…….”
“히에, 히에에에에!”
“크륵, 케헤엑!”
좀비들끼리 소통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이를 딱딱 부딪치거나 고개를 휙휙 젖히면서 주변을 살피는 좀비들의 기세가 굉장히 사나웠다.
지금이야 버려진 차량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으니 어그로가 끌릴 일은 없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맨몸으로 저곳을 돌파할 자신이 없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홈마트만큼은 꼭 살펴봐야 하는데.’
그리고 가능하면 홈마트를 제3의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주변에 좀비들이 이렇게나 많은 걸 보면 분명 홈마트를 건드린 사람도 없을 거다. 어쩌면 홈마트 안에도 이만한 수의 좀비들이 꽉꽉 차 있을지도 모르지.
중요한 건 거기에 산처럼 물자들이 쌓여 있다는 사실이다.
‘홈마트를 포기할 순 없지!’
나는 높은 모텔 건물 외벽을 향해 팔을 내뻗었다.
내 팔목에는 어느샌가 짚 라인 스킬이 발동되어 후크가 발사되었다.
맨 몸으로 좀비 떼를 돌파할 수 없다면, 그냥 뛰어넘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