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생존기 (24)
내가 비싼 돈 주고 김치냉장고를 샀는데, 갑자기 세상이 쫄딱 망해 버려서 보관할 김치도 없고 김치냉장고를 유지할 전력도 없네? 이 경우 고객은 누구에게 화풀이를 해야 하는가?
답은 김치냉장고를 만든 회사도, 김치냉장고를 유통한 업체도 아니다. 김치냉장고를 구매했던 상가에 직접 가서 따지는 거다.
물론 그 상가 역시 김치냉장고든 참치냉장고든 매우 높은 확률로 죽어 나자빠졌겠지만, 어디 하늘 같은 고객님의 불만이란 게 쉽게 가라앉는 법이던가?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는 잠시 제쳐 두고, 일단 가서 따지고 싶은 게 고객의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모던풍으로 깔끔하게 지은 네모난 장례식장 건물과 그 앞에 구름 떼처럼 몰려든 좀비들을 바라보며 딱 그 꼴이라고 생각했다.
그 뭐시냐, 화장(火葬)각이네 화장각!
“하기야 저만한 숫자면 콘크리트를 부어 만들어도 관짝이 부족하겠네.”
하물며 요즘 같은 시대의 전문 장례업체가 사용하는 관은 고급 목재 사용은 물론이고 오더메이드 옵션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 특히나 저렇게 건물이 크고 세련된 장례업체일수록 비싼 감이 없잖을 것이다.
내가 시체랑 나란히 누워 본 적은 있지만 아직 나홀로 관짝 라이프를 즐겨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네. 그러기엔 아직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보수적이니까.
스쿠터에 반쯤 몸을 기댄 채 나는 저 성난 고객들의 민심이 언제쯤, 어떤 계기로 가라앉게 될지 궁금해졌다.
참다못해 프로 장의사가 불호령을 때리고 일렬로 나란히 서서 번호표부터 뽑으라고 하면 좀 잠잠해질까? 꽤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겠지.
옛말에도 가는 데 순서 없다고들 하는데, 이미 반쯤 뒤져 버린 좀비들이 이제 와서 입관부터 발인까지 순서표 뽑고 얌전히 기다릴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지. 나 같아도 책임자부터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거다.
“캬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 이으아아아아!!”
바로 저렇게 말이다.
“저렇게 하루 종일 좀비 떼가 모여서 지랄발광을 해대면 결국 건물이 못 버티고 내부에서 생존자들이 몰살당하거나, 아니면 더 많은 좀비가 몰려와서 생존자들이 몰살당하거나 둘 중 하나겠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내가 이 근방을 지나칠 때까지만 해도 저런 좀비들은 없었다는 거다.
저 건물은 2층부터 통짜 유리 비중이 좀 커지긴 하지만, 1층은 현관과 몇 개 없는 창문만 잘 막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구조였다.
그래서 저곳에 숨어들어간 생존자들이 특별히 어그로를 끌지 않았다면 굳이 좀비들이 몰릴 이유가 없다. 아닌 말로 좀비들이 공략하기에 매우 비생산적인 장소였으니까.
그러다 나는 3층 창문에서 힐끔 모습을 드러낸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도로 한복판에서 태연하게 스쿠터를 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크게 놀란 듯하더니, 곧 양손을 크게 흔들며 어떤 신호를 보내 왔다.
여긴 위험하니까 오지 마라? 아니면 너 좀 반갑다?
“반갑긴 엄청 반갑겠지.”
좀비 떼 사이에서 멀쩡한 인간 한 명을 발견했는데 그게 반갑지 않으면 그건 그냥 미치광이 네크로필리아 혹은 인간불신자가 아닌가?
하는 수 없이 나는 품속의 권총을 뽑아 하늘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겨 제 1회 이승권배 스쿠터 레이싱의 출발 신호를 터뜨렸다.
타앙!
건물 앞에 모여 있던 좀비 떼의 고개가 일제히 90도만큼 꺾이면서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 인싸가 된 느낌이니까 한 번쯤 따라해 보길 추천한다.
부아아아아앙!
연료통이 빵빵해진 나의 애마 이승권 Mk.2는 스로틀을 감자마자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좋은 기름을 넣어서 그런지 엔진 소리도 죽여주는 것 같다.
내가 굉음을 내며 치고 나가기가 무섭게 좀비들 역시 엎치락뒤치락하며 나를 쫓느라 몸을 열심히 내던졌다.
주차장에 차량이 워낙 많았던 탓에 나를 쫓아오는 게 힘들 줄 알았더니만, 반쯤 예상했던 대로 몸을 아끼지 않는 투철한 희생 정신으로 차량조차 뒤엎어 버리고 쫓아오는 기염을 토해 냈다.
저 좀비 떼를 버텼던 장례식장 현관문은 혹시 비브라늄인가?
대번에 번화가로 빠져나온 나는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차량들을 피해 인도로 열심히 내달렸다.
그러다 문득 이 코스가 어제 김해 시내로 진입했을 때, 그리고 활천초로 도망칠 때와 상당히 유사한 코스라는 것을 눈치챘다. 또한 나 말고도 이 코스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설마 아니겠지.’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또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지만 곧 가볍게 털어 냈다.
지금은 저 좀비 떼를 가능한 많이 꼬리에 붙여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못할 장소에서 한 번에 떨쳐 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놈들을 따돌리기 위한 가장 완벽한 코스는 이곳에서 고작 1분 거리인 지내동의 지내동원아파트 단지였다.
그래. 어제 내가 편의점을 털어먹으면서 겸사겸사 조사를 위해 조심스럽게 북상하고 있던 그 지내동, 그러다 재수없게 자전거 동호회를 만나 좀비 던지기를 당한 그 지내동.
치욕과 수치, 그리고 절정과 분노만이 남아 있는 사연 있는 장소가 나의 좀비 떼 산책 코스로 적합하다니. 셀프 수치 플레이를 즐길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김해대로를 타고 쭉 북상했다.
이대로 북상하면 북성로에 접어들게 되는데, 내 추측이 맞다면 자전거 동호회는 그쪽 코스를 이용해 김해 시내로 내려와 좀비 떼를 풀어놓고 있었다.
소총은 탄약이 없고, 권총도 자결용을 포함하면 탄약이 몇 발 남지 않았다. 이대로 스쿠터가 엎어지거나 다른 좀비 떼에게 포위라도 당하면 나는 얄짤없이 죽은 목숨이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자면 고작 자전거 따위나 타고 다니는 놈들도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 나는 놈들에게 소소하게나마 선물을 안겨 주고 싶었다. 놈들이 주로 이용하는 게 뻔할 코스 중앙에 좀비 떼를 한가득 풀어 두고, 놈들도 나와 같은 심정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스타뷰아파트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꺾어서 빠져나갈 길이 제법 있지만, 일단 스타뷰아파트를 넘어오기만 하면 꺾을 길이 확 사라진다.
뒤에서 쫓아오는 좀비 떼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좀비 떼를 둘 다 상대해야 할 테니, 같은 가격에 x2 이벤트를 즐기게 될 것이다.
‘자전거 동호회 놈들이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꽉 막힌 일직선 통로에서 저놈들을 떼내야 한다.’
순간적으로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기척까지 지운다면 멍청한 좀비들은 잠시 주변에서 짖어 대다가, 곧 수동적 휴면 상태에 빠지게 되겠지. 대충 소극적으로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자신을 자극시킬 새로운 무언가를 기다리게 된다는 얘기다.
좀비들이 장례식장 앞에서 떼 지어 몰려 있던 것도, 그냥 장례식이라는 건물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뿅 하고 사라져야 한다. 물론 좀비들을 자극시킬 만한 무언가를 남겨 두고.
“미안하다 이승권 Mk.2!!”
스쿠터에게도 입이 달려 있었다면 ‘뭔데 씨발아!’ 하고 소리쳤겠지만, 나는 무생물에게도 인격체가 있다는 설은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스쿠터에서 옆으로 뛰어내렸다.
마침 스타뷰아파트 단지 옆에서 옆길로 꺾을 수 있는 마지막 안전지대인 편의점 앞에서 그 짓거리를 해 버렸다.
그리고 옆으로 몇 번 구른 나는 곧바로 짚라인 스킬을 사용해 약 5m 높이의 담장을 단번에 타고 올라갔다. 단단하게 틀어박힌 그랩훅 덕분에 담장을 타넘자마자 아파트 단지 뒤편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곧 마지막 안전지대에 도착한 좀비들이 건물에 처박힌 채 요란한 소음을 내고 있는 스쿠터 앞에 몰려들었지만, 거기에 이승권 Mk.1의 흔적은 찾을 수 없어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놈들에게 뛰어난 후각이나 인간과 맞먹는 지능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괜한 걱정이었다. 놈들이 유일한 안전지대 한복판에서 어슬렁거리기 시작했으니까.
담장 너머에서 빼꼼 고개만 내밀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뻐근한 몸을 주물렀다.
일단 고구려 수박도에도 기록되어 있는 전통 낙법인 나려타곤을 시전하긴 했는데 별 소용은 없었던 모양이다. 필시 지하에 계신 뉴턴 선생님께서 나를 비웃고 있으리라.
“아이고 시발…… 말년에도 이렇게 험하게 구른 적은 없었는데.”
볼썽사납게 땅바닥에 구르는 건 북한군이었지 내가 아니었거든.
그나마 쌀쌀한 가을이라 옷을 조금 두텁게 입고 나온 데다 팔이나 다리에 골판지를 덧대어 놨기에 망정이지,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이었다면 살갗이 다 갈렸을 거다.
여름의 이승권은 집에서 팬티 한 장만 입고 사는 검은 머리 짐승이니까.
쑤시는 삭신을 가볍게 문지르면서 일어난 나는 아파트 단지 역시 좀비 사태에서 무사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주차장이나 놀이터는 누군가의 피로 칠갑이 되어 있는 건 기본이고, 기물 파손은 애들 소꿉장난처럼 보였다.
통짜 유리로 된 현관은 박살 난 유리조각만이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증명해 주었고, 고층에서 떨어진 사람의 시체가 허망하게 머리부터 박살 나 있었다.
좀비였는지, 아니면 좀비가 되기 전의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죽어 버린 인간의 시체는 좀비도 건드리지 않는 듯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려, 목이 아플 만큼 높이 솟아오른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아파트 하나당 최소 수백 명은 살고 있다. 정말 많으면 천 명 단위까지 사는 것으로 안다.
그런 아파트 단지에 인간의 살과 피를 탐하는 괴물들이 뛰어들었고, 심지어 그 괴물들은 머리를 파괴하지 않으면 죽지도 않고, 하물며 자기 몸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막무가내식 괴물이다.
기껏해야 집에 있는 무기라곤 식칼이나 야구방망이가 전부였을 일반인들이 좀비 떼에게 대항하는 건 마땅치 않았을 것이고, 좀비들은 사방팔방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으니 아무 집 문이나 박살 내고 들어갔겠지.
사실 인간 몇 명이 제 몸을 신경 쓰지 않고 아파트 문짝에 달려들면 부수고 들어가는 게 그리 어렵지도 않다. 그게 좀비로 바뀌었다고 가정해 보면 더욱 그럴싸하다.
나는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아파트 단지에서 멀어지기 위해 조용히 바깥으로 걸어나왔다. 내가 좀비를 풀어 둔 방향과는 다른 길이었다.
저렇게 사람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고, 사람이 쓸데없이 많이 모이기만 하는 장소는 일찌감치 조사 리스트에서 제외시키기로 했다.
저 벌집통 같은 곳에 굳이 기어들어가서 물자나 생존자를 찾느니, 차라리 농가를 뒤지는 게 더 건설적일 것 같았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아파트도 거점으로 지정한 다음 터렛과 부비트랩을 원격 배치해서 내부에 있을 좀비들을 손쉽게 소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거점 지정 후 72시간 동안 취소 및 재지정이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거점 지정과 동시에 내부의 적을 소탕하면서 주변의 다른 좀비 떼를 자극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오히려 활천초가 운이 좋았을 뿐, 이런 곳은 숨소리도 내지 않는 게 맞다.
군대가 이곳을 폭격으로 싹 쓸어버리지 않는 한, 개개인의 힘만으로 이런 인구 밀집 거주 구역을 되찾는 것은 굉장히 힘들 것이다.
이대로 조용히 돌아가서 재정비를 하고 다시 돌아와서 자전거 동호회와 다른 생존자 그룹에 대한 흔적을 찾아보자.
겸사겸사 돌아가는 길에 이승권 Mk.2의 의지를 이어받을 이승권 Mk.3도 찾아봐야겠다.
그럴 생각으로 발걸음을 막 옮긴 찰나, 아파트 단지에서 빠져나가는 길에 문득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파트 뒤쪽이 그 모양 그 꼴이었는데, 과연 아파트 앞쪽은 어떨까 하는 마음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돌아본 아파트 정면의 풍경은…… 꽤 처참했다.
창문이란 창문은 다 깨져 있고, 피가 묻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아파트 단지 앞 주차장에는 좀비도, 멀쩡한 시체도 되지 못한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문제는 꼭 이런 상황에서 안 좋은 예감만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그으으으으…….”
“아아아…… 아아아아아!”
여기도 좀비. 저기도 좀비.
아파트 단지의 베란다에 자리 잡은 좀비들의 수는 내가 장례식장 앞에서 끌고온 놈들보다 훨씬 더 많았다. 마치 벌집통에 처박힌 말벌들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놈들 또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려는 나를 보고 엔진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거기까지였다면. 딱 거기까지였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캬아아아아아!”
좀비들이 제 몸 아끼지 않고 나를 향해 용감무쌍하게 몸을 내던지지만 않았더라면.
“으아아아악 씨발! 플라잉 좀비다!!”
우박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좀비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