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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병의 아포칼립스-18화 (19/227)

18화 생존기 (18)

스쿠터의 시끄러운 배기음이나 경적음이 끊어진 학교 대문 앞에서 얼쩡대던 놈들은 갑작스러운 총성에 로봇처럼 고개를 돌렸다.

가볍게 백 마리는 훌쩍 넘는 좀비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직선 거리로만 따지면 대충 150m는 떨어져 있는데, 그곳에서 정확히 나를 포착한 것이다.

‘소음의 진원지를 정확히 분간해 낸다.’

무심하게 방아쇠를 당기면서도 놈들에 대한 분석을 멈추지 않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가 아니라 그냥 개인적인 습관이었다.

북한 전역에 넓게 퍼져 있는 개미굴에서 북한군을 소탕하는 건 전적으로 한국군의 몫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놈들에 대한 전투 방식이나 생태를 기억해 두는 습관이 생겼다.

예를 들어, 먼저 항복하겠답시고 뛰쳐나오는 놈들치고 양손이 보이도록 양팔을 들고 있지 않으면 십중팔구 자폭 테러라고 기억해 두는 것처럼.

탕! 탕! 탕!

옥상 난간이 훌륭한 거치대 역할을 해 줬기 때문에 비교적 편하게 반동을 잡으면서 한 놈씩 두개골을 따줬다.

마침내 나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좀비들이 철제 펜스를 타넘고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뛰어오는 순간, 그때부터는 반쯤 두더지잡기 게임을 하는 감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놈들은 굳이 총구를 과하게 움직여 잡지 않는다. 어차피 본관 앞에 도달해도 놈들은 몸을 던져 문이나 유리창을 깨부수느라 잠시 막힐 테니까.

놈들이 본관 입구나 창문을 부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나는 비교적 느긋하게 한 놈씩 탄환을 선물해 주었다. 중장거리 사격은 원래 마음을 조급하게 먹으면 안 된다.

첫째도 기분 조절, 둘째는 호흡 조절이다.

갑자기 저 혼자 악에 받쳐서 자리를 이탈해 멋대로 튀어나가도 곤란하고, 반대로 무턱대고 방아쇠를 당겨서 아까운 탄약만 허공에 흩뿌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길쭉한 일직선 통로가 많은 북한 땅굴에서 중장거리 교전을 벌일 때 특히 그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철컥, 착!

30발들이 탄창을 내던지고 새로운 탄창을 집어들어 바로 재장전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1초 남짓이었다.

탕! 탕! 탕! 탕! 탕!

슬슬 본관 건물 앞에 모여드는 놈들이 많았기 때문에 방아쇠 당기는 속도를 조금 더 높였다.

이게 본래 내 사격 기술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상태창을 각성해서 사격(A) 스킬을 얻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쏘는 족족 좀비들의 머리통이 시원스럽게 터져 나갔다.

그렇게 또 한 번 빈 탄창을 내던지고 새로운 탄창을 갈아 끼울 즈음, 마침내 본관 입구와 창문을 깨부수는 데 성공한 좀비들이 내부로 침입하는 게 보였다.

아직 침입하지 못한 놈들의 정수리를 조준하고 마저 방아쇠를 당기자, 아슬아슬하게 30발들이 탄창 3개 분량만큼 좀비를 처리할 수 있었다.

90마리의 좀비를 잡고도 여전히 좀비의 수는 많았다.

“상태창!”

[생존자 : 이승권]

[직업 : 퇴역병]

[직업 숙련 레벨 : 4]

[칭호 : 없음]

[생존기간 : 3일 차]

[숙련 포인트 : 2]

“아직이야.”

쯧, 하고 혀를 찬 나는 옥상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그러자 저 아래에서부터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놈들의 소음이 들려왔다.

아무 교실이나 들어간 나는 적당히 책상과 의자를 몇개 집어 들고 중앙 계단에 처박듯이 내던졌다. 그렇게 가까운 교실을 오가면서 의자와 책상을 마구 집어던진 결과, 중앙 계단이 꽉 막혀 버렸다.

“캬하아아아!”

덜컹덜컹!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최상층 바로 아래에 도달한 좀비들이 마구 뒤엉킨 책상과 의자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써댔다.

하지만 금속 다리가 얽히고설킨 책상과 의자들은 힘을 주면 줄수록 더욱 심하게 얽혔기 때문에,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그물이나 다름없었다.

저것만큼은 아무리 많은 좀비가 밀려온다고 한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중앙 계단이 성인 남성 대여섯 명이 모이면 미어터지는 공간이기도 했고.

서쪽 계단과 동쪽 계단에선 아직 놈들이 올라올 기색이 없었기에, 급한 대로 중앙 계단에 몰려든 놈들의 머리통부터 수확했다. 조정간은 단발에서 다시 3점사로 바꿨다.

타타타! 타타타!

책상과 의자가 얽힌 틈 사이로 정확히 파고든 5.56mm 고속철갑탄이 앞뒤 안가리고 몰려든 좀비들의 머리통을 순두부처럼 꿰뚫었다.

초근거리에서 발포한 탄환인 만큼 관통력은 말할 것도 없었는데, 한 번의 점사로 최소 둘 이상의 좀비가 죽는 것은 기본이었다.

또 한 번 탄창을 교체하면서 나는 다급한 시선으로 상태창을 재차 살폈다.

[생존자 : 이승권]

[직업 : 퇴역병]

[직업 숙련 레벨 : 4]

[칭호 : 없음]

[생존기간 : 3일 차]

[숙련 포인트 : 2]

아직이었다.

“쓰읍……!”

“이이이이이이이이이!!”

“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다시 한번 탄환을 퍼부으려던 순간, 마침내 서쪽과 동쪽 복도 끝에서 거의 동시에 좀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염병!”

타타타!

매끄러운 복도 위를 달리는 속도가 유독 빠른 놈부터 탄환으로 뇌를 헤접이주고, 이제는 거의 본능과 감각에만 몸을 맡긴 채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탄약 카운팅을 하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틱틱틱.

“아오!!”

금세 30발 탄창을 다 쓴 나는 다시 옥상으로 뛰어올라갔다.

가지고 온 소총 탄약은 이제 다 떨어졌다. 남은 건 .38 구경 리볼버 탄약 8발뿐이었다.

탕!

옥상 문을 닫기 전, 계단을 뛰어올라오던 놈의 미간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뚫어 주었다.

그와 동시에 시야 한편에서 아른거리고 있던 상태창 내용이 바뀌는 것을 확인했다.

[생존자 : 이승권]

[직업 : 퇴역병]

[직업 숙련 레벨 : 5]

[칭호 : 없음]

[생존기간 : 3일 차]

[숙련 포인트 : 3]

[랜덤한 확률로 추가 효과를 획득하였습니다.]

“됐다!”

마침내!

나는 옥상 문을 등진 채 필사적으로 문이 열리지 않도록 막으면서 스킬창을 조작했다.

“거점 지정(E+)에 숙련 포인트 3 투자!”

E급 스킬은 + 보정 수치 하나당 숙련 포인트를 1만큼 요구한다. + 보정 수치는 스킬당 3개가 최대치이기 때문에, 3개가 꽉찬 상태에서 한 번 더 투자하면 등급업을 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대로 거점지정(E+++) 스킬은 거점지정(D-) 스킬로 변화했다.

[거점 지정(E+++) > (D-) : 자신의 소유로 인정되는 거점, 혹은 소유주가 사망하거나 통제를 상실한 거점을 지정하여 자신만의 영역으로 삼을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 거점의 범위, 개수를 확장할 수 있다.]

[현재 지정 가능한 거점 개수 : 1개 > 3개]

[확보 가능한 거점의 규모와 범위 제한이 일부 해제되었습니다.]

[지정된 거점의 범위는 거점 외벽(울타리)까지 적용.]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과 적성체의 거점 접근 및 무단 침입에 대한 자동 알람과 요격 ON/OFF 기능 추가.]

[2개 이상의 거점을 확보할 경우 자동적으로 ‘거점창’ 기능 추가.]

“지금 그딴 내용은 하나도 안 중요해 씨발! 김해활천초등학교를 거점으로 지정한다!!”

거점 지정(E+)에서 12.7mm 자동 감시형 기관총 하나를 덜컥 받았었다. 그것만으로도 몰려드는 좀비 떼 정도는 다 아작낼 수 있겠지만, 나는 D-급이 된 거점 지정 스킬을 믿고 있다. 믿고 싶다.

곧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어마어마한 지진과 함께 건물 전체가 드드드드드드 흔들렸다.

문을 필사적으로 틀어막고 있던 나는 자세가 고정되어 있었던 덕분에 넘어지지 않았지만, 반대편의 좀비들은 계단으로 굴러떨어진 듯, 잠시 옥상 문을 강타하는 충격이 사라졌다.

여차하면 다른 건물 옥상으로 뛰어서 도망칠 생각으로 눈을 뜬 순간, 확 바뀐 김해활천초등학교의 옥상에는 어느새 20mm 게틀링 포구가 달려 있는 2개의 자동포탑이 자리잡고 있었다.

내 집 앞에 설치되어 있던 기관총 따위보다 크기가 최소 2배 이상은 더 거대했으며, 하늘에서 뭐가 날아오든 갈기갈기 찢을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생김새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M61 발칸포였다. 좀 더 스마트하게,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바뀌어 있을 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굴려 옥상 문에서 멀찍이 떨어졌고, 다시 옥상문을 박차고 나온 좀비들은 이미 포구를 돌린 상태인 자동포탑의 조준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에 옥상을 강타한 것은 전기톱으로 무자비하게 상대를 갈아 버리는 듯한 총성의 폭풍이었다.

옥상 구석에 엎드려 귀를 막고 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총연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옥상 문 쪽을 바라보니 형체조차 남지 않은 살점이나 뼛조각이 주변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그마저도 옥상에 들이닥쳤던 좀비들의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기에, 대부분 20mm 기관포에 갈려나갔음을 깨달았다. 뒤늦게 계단을 돌파한 놈들도 옥상에 재차 침입하려 했지만 모두 요격당했다.

“미친……!”

솔직히 이 학교를 즉석에서 거점으로 지정하여 자동포탑의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한 건 반쯤 도박이었다.

내가 놈들에게 당하기 전에 숙련 레벨을 무사히 5까지 올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설령 그게 가능했다고 한들 자동 포탑이 반드시 옥상에 배치될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넓은 운동장 한복판이나 교실 창문에 배치됐었다면 옥상에 있던 나만 엿먹었을 것이다. 그것도 내 거점에서!

“어후 씨발…… 진이 다 빠지네 진짜.”

난간에 털썩 기대어 앉은 나는 숨을 몰아쉬며 인벤토리를 살폈다.

지갑에는 무려 225 DNA 샘플이나 쌓여 있었다.

대략 150 정도는 내가 직접 모은 것이고, 나머지는 자동포탑이 놈들을 쓸어버리면서 거점의 주인인 내게 돌아온 몫 같았다.

나는 열기로 달아오른 자동포탑이 다시 포구를 돌려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대기만성에 성공한 자식을 바라보는 듯한 부모의 기분을 느꼈다.

내가 만약 여자친구를 사귀는 데 성공하면 어둠의 이승권이 나를 이런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그러다 문득, 자동포탑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사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신예 전차나 장갑차는 무인포탑을 얹어서 승무원의 부담을 줄이는 추세라고들 하지만, 저렇게 스스로 적을 정확히 포착해서 필요한 만큼의 화력만 쏟아붓는 편리한 자동포탑은 명백하게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특별히 적을 지정해 준 것도 아니고, 그러다고 자동포탑이 적을 식별하는 별도의 장치(디바이스)를 가진 것 같지도 않았으니 내 의심은 타당했다.

저건 그냥 20mm 발칸포와 거대한 드럼 탄통이 달려있는 괴물일 뿐이었다.

“잠깐. 탄?”

최후의 보루(A+) 스킬은 내가 지정한 거점의 내구도가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모든 인프라라인이 무제한 지속된다.

전기, 가스, 수도. 그런데 거기에 20mm 발칸포의 탄약은 해당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차가운 가을 바람에 열기를 식히고 있는 자동포탑을 직접 건드렸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새로운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20mm 자동포탑 Lv.2]

[현재 잔여 탄약 : 95%(952/1,000)]

[탄약 1% 재생성에 소모되는 시간 : 10분]

[적용되는 스킬 : 거점 지정(D-), 거점 경계 강화(E), 거점 방어 강화(E), 최후의 보루(A+)]

[현재 전력이 정상적으로 공급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의 :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 탄약이 재생산되지 않습니다.]

[주의 : 자동포탑의 내구도가 50% 이하로 떨어질 경우 ‘페일 세이프(Fail Safe)’ 기능이 작동하여 자동포탑이 정지됩니다.]

[주의 : 거점 범위 바깥의 존재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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