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생존기 (13)
늦은 오후, 가을이라는 계절 덕분에 사실상 저녁이나 다름없는 이 시간에 내가 할 일이라곤 안전한 집구석에 처박혀서 쉬는 것뿐이었다.
아마도 환상 속 동물의 가죽을 벗겨서 만들었을 이 가죽 소파에 드러누워, 오늘 마을 하나를 털고 확보한 식량 중 하나인 쌀과자를 꺼내 들었다. 짭쪼름하면서 고소한 황금색 마약 가루가 묻어 있는 그 쌀과자가 맞다.
“쉬리. 라디오는?”
-현재 주파수공용무선통신시스템에 연결되어 있는 라디오 채널 중 신호 상태가 양호한 채널을 우선 순위로 연결합니다.
군대와 좀비간의 격렬한 전투 덕분에 일부 인프라가 파괴되긴 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막강한 인프라 라인은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 모양이다.
발전소는 지금도 꾸역꾸역 전기를 생산해 내고 있을 테고, 아직 파괴되지 않은 송전탑을 거쳐 각 지역마다 전력을 공급해 주고 있을 터. 그렇다면 당연히 여러 지역에 건설된 송신탑도 멀쩡할 것이다.
전국적인 좀비 사태에도 불구하고 송신탑이 멀쩡할 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송신탑이 국가보안시설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으니 애초에 사람도 없는 곳이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곳에는 좀비도 없다, 간단한 공식이다.
“아직 서버가 살아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뒤져서 근황을 확인해도 되겠지만, 역시 생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게 최고지.”
때마침 누군가의 라디오 방송이 잡혔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정부가 뭔가를 감추고 있다니까요? 제가 200% 확신합니다!]
시작부터 TV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어느 음모론자의 열변은 나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국가에서 허락한 마약 쌀과자를 오독오독 씹어먹으며 가만히 들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무능합니다! 무능이라는 DNA가 존재한다면 진짜배기 혈통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능하죠! 작금의 사태를 좀 보십시오. 우선 서울이 고작 하루 만에 함락당했다는 점이 어처구니 없지 않습니까? 인구 천만!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방공호와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하철역, 그리고 수도권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수방사까지! 대체 뭘 하면 서울이라는 하나의 작은 국가가 하루 만에 무너진단 말입니까?!]
그건 나도 조금 궁금했다. 서울에서 지지고 볶든 내 알 바는 아니었지만, 라디오 속 음모론자의 말대로 인구 천만을 자랑하는 세계 규모 대도시가 고작 하루 만에 함락당하는 건 너무 이상했다. 핵 미사일을 서울 중앙에 꽂아도 인구 천만이 통째로 증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군대와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서울이 완전히 당한 건 아니라고 하긴 했습니다. 인구 천만이 고스란히 좀비화가 된 건 아니다, 오히려 서울 시민들이 고속도로와 철로를 따라 재빨리 도시를 빠져나간 덕분에 실제 피해 수치는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었다, 대충 이런 식으로 떠들어 대고 있죠. 솔직히 말해서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군이 서울을 하루 만에 포기한 시점에서 신빙성은 꽤 낮다고 봅니다.]
군은 피난민들을 구호하고 새로운 저지선을 구축하기 위해 서울을 깔끔하게 포기했다는 식으로 포장했던 것 같지만, 아마 군의 독단적인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매우 높은 확률로 VIP가 관여되어 있을 테지.
[서울에서 정확히 어떤 이유로 그 미친 변종 바이러스가 퍼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기존의 유행병에 감염되어 있던 대량의 환자들이 갑작스럽게 좀비화 되었을 수도 있고, 해외에서 유입된 변종 바이러스 감염자에 의한 판데믹도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중요한 건 감염 속도나 감염 경로가 아니라, 어째서 대한민국의 최강 육군이 제때 대응을 못 했느냐죠. 북한을 자비 없이 끝장내 버린 대한민국 육군은 서울이 변종 바이러스와 좀비들에게 함락되어 갈 동안 대체 뭘 했던 걸까요?]
“평소처럼 근무하고 있었겠지.”
통일 대한민국의 군 내부 사정은 꽤 복잡했다. 복잡한 얘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만큼.
우선 기존에 대한민국의 최전방을 지키고 있던 군 부대가 모두 북상하여 평양, 그리고 압록강과 두만강 인근에 재배치되었다. 자연히 수십만에 달하는 현역 군인들이 더 넓게, 더 멀리 분산된 것이다.
전쟁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5년 내내 넉넉한 숫자의 현역과 예비역들을 신나게 굴리며 부족한 인력을 충원했지만, 그 짓거리도 종전 선언과 함께 끝난 참이다.
경제적 비용 및 군 인권 문제로 순식간에 군 감축이 이루어졌다. 만기 전역을 훌쩍 넘었음에도 전시 체제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두 복귀하고, 새롭게 입대하게 되는 꼬꼬마들과 아직 복무일이 남아 있는 현역 장병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 그리고 서해와 서울, 평양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가상적국이 북한에서 중국과 러시아로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군 부대까지 탈탈 털어서 재편했다고 들었다.
그럼 이제 다시 질문해 보자. 서울을 지키고 있던 수방사는 대체 어디서 뭘 했냐고? 뭘 하긴. 조금 전에 말했지 않은가. 평소처럼 근무하고 있었을 거라고.
전쟁이 종식된 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고작 ‘시내 폭동’에 군대를 동원할 일이 어디 있겠나? 자기 근무지에서 꿀 빨게 내버려 두고 경찰만 열심히 부려먹었겠지.
그러니까 사태 당일에 서울 곳곳에서 갑작스러운 원인 불명의 폭동이 터지고, 서울이 시끌시끌해졌다고 한들 군대가 전투 준비를 하진 않았을 거란 얘기다.
적국이 침공한 것도 아니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민들이 그냥 도심에서 날뛰고 있다는 보고만 받은 웃대가리들은 어떻게든 경찰력만으로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투입된 경찰들이 어찌어찌 잘 막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변종 바이러스가 확 퍼지고, 좀비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자 서울이 펑 하고 터져 버린 거다.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웃대가리들은 수방사를 동원하려 했겠지만, 그 시점에서 백만 단위로 서울을 비집고 나온 좀비들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을 거다.
수방사는 구할 수 있는 VIP와 민간인들만 급하게 수습해서 충청도나 강원도로 철수하고 무한 방어전에 돌입. 하이패스를 발급받은 좀비들은 딱지 끊길 염려도 없이 한반도의 혈관이나 다름없는 도로를 통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 결과가 수도권을 비롯한 경기도의 완벽한 몰락이다.
[다들 그 소식은 들었을 겁니다. 일본에서 출발한 크루즈선이 감염자들을 가득 채우고 부산항에 돌진했다는 소식 말입니다. 그게 불과 하루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사실상 감염자들이 득시글대는 지옥의 열도로 변했다는 건데, 정부가 정말로 변종 바이러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겠습니까? 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를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서로 간의 정보는 철저하게 파악해 두는 이상한 나라들입니다. 일본의 괴멸적인 피해를 한국 정부가 몰랐을 리가 없죠.]
그건 또 은근히 말이 된다.
일본에서 출발한 크루즈선은 처음부터 한국으로 피신하려다 감염자들에게 점령당해 부산항에 꼴아박은 케이스니까. 즉 한국보다 일본이 먼저 변종 바이러스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해도 아주 이상한 주장은 아니다.
[몰랐을 리가 없죠. 그들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유행병 방역이 꽤 잘된 나라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공항과 항구만 폐쇄하면 ‘아마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오히려 통일 대한민국은 안전하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동아시아의 왕좌를 노리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실제로 저는 사태 당일부터 모든 항공편과 배편 좌석 예약 및 운행이 취소되고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입국 제한 절차가 갑작스럽게 진행되었다는 목격담 제보를 많이 받았습니다. 한반도에서 제 2차 남북전쟁이 터진 바로 그날처럼 말입니다.]
나는 1년 내내 적당한 맨몸 운동과 넷플러스 감상, 그리고 먹고 자고 싸는 것밖에 안 해서 그런 건 몰랐다.
할 일도 없는 백수놈이 귀찮은 맨몸 운동을 했던 굳이 이유는 그냥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운동을 병행하면서 몸에 나쁜 인스턴트 음식을 꾸준히 먹으면 결과적으로 플러스 마이너스니까 건강에 크게 지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런 특색 없는 삶을 50년 이상 영위하면서 평생 넷플러스에 파묻혀 살고 싶었을 뿐이다. 딱히 이런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상해서 몸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해 왔다는 건 아니다.
[여러분은 이제 멍청하고 무능한 정부,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 넓게 분포된 나약한 군대만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정확히는 죽을힘을 다해 생존해야 하죠. 군대도 쉬이 감당할 수 없는 좀비들 사이에서 식료품과 생필품을 찾고, 안전지대를 찾아서 끊임없이 떠돌거나 평생 숨어 지내야 합니다. 이 방송은 매일 오후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합니다. 여러분 모두 내일도 살아서 제 방송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근거도, 대책도 없이 그냥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속사포처럼 떠들어 댈 뿐인 음모론자의 라디오 방송은 거기서 끝났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저녁 8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일하느라 방송을 늦게 들은 탓에 알짜배기 분량을 많이 놓친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저렇게 말빨 좋은 친구라면 특별히 1일 치 밥과 식수만 주면서 하루 종일 앵무새처럼 떠들게 하고 싶다. 말빨과 소재가 다 떨어지면 고물 가전제품처럼 쿨하게 내다 버리고.
쉬리에게 해당 채널을 저장시키고 다음 무작위 채널로 넘겼다. 내가 원하는 유형의 라디오 방송을 찾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전쟁 전에도 스마트폰을 이용한 1인 라디오 방송 같은 게 있긴 했지만, 그때는 국민 대다수가 인터넷 방송을 선호하던 시절이라 1인 라디오 방송이 크게 각광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통일 대한민국이 2020년 이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본격적인 현대 전쟁을 맞이했기 때문에, 차세대 스마트폰에 익숙해져 있던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에 내장된 라디오 통신 기능이나 라디오 어플을 이용해야만 했다.
통화량 폭증, 인터넷 트래픽 과부하로 인한 특정 커뮤니티, 포털 사이트의 서버 셧다운 때문에 스마트폰이 졸지에 벽돌로 전락해 버렸다. 그걸 대체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개인 라디오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이 기이한 문화의 시초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시국에도 누군가는 1인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여기 울산입니다. 해군이 함포 사격으로 좀비들을 처리해 주고 있긴 한데 좀 위험한 것 같아요. 그리고 동해에서 들어온 일본 어선이나 크루즈선이 자꾸 상륙하려고 해서 해군과 해경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어요.]
[생존 신고합니다. 여기 김해 시내인데 어제부터 오늘까지 진짜 장난 아니었습니다. 군대랑 경찰이 바로 대응하긴 했는데 다 뚫렸어요…….]
[일단 다리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섬은 무조건 안전하다고 봅니다. 설령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막아 버리거나 끊어 버리면 되니까요. 남해안에는 그런 섬들이 많아요.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남부지방 생존자들은 남해안의 섬으로 피신하세요. 자급자족이 가능한 환경만 갖춘다면 사태가 끝날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군인 아저씨한테 들은 건데 안산과 성남이 뚫렸다고 하네요. 수방사는 화성, 수원, 용인시에서 2차 저지선 구축한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제주도 같은 규모가 크고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섬이 가장 안전하다고 할 수 있죠. 항공편이나 배편만 구하면 어떻게든 갈 수 있을 텐데…….]
[중국 어선 상륙만큼은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 지금도 외부 유입 감염자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에요!]
[술 한잔 마셨습니다. 지금 편의점 창고에 갇혀 있습니다. 하…… 진짜 죽고싶다.]
[이 바이러스 따지고 보면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거 아닌가요? 그럼 전적으로 중국에 책임이 있는 거죠!]
[전 세계적으로 거의 비슷한 시점에,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변종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판타지 같은 일이죠.]
[아니 씨발 진짜 상태창이 보인다니까요? 저도 이 상황에 제가 미친 건지 아닌지 확신을 못 하겠는데 진짜 상태창이 보여요! 저한테 생존할 자격이 있다면서 ‘노숙자’라는 직업까지 줬다니까요? 설명을 하면 대충 썩거나 오염된 음식을 주워먹어도 배탈 안 나고, 길바닥에서 자도 안 얼어죽는다는데요?]
김해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생존자들이 다양한 상황 속에서, 저들만의 사연을 가지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나는 쉬리에게 ‘넘겨, 다음, 노잼, 찐막’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그럴싸한 라디오 방송을 찾기 위해 빡집중을 했다.
화장실에서 큰일 보다가 그대로 갇혔다거나, 피란 도중에 헤어진 사람을 찾고 있다느니, 이제 곧 죽을 것 같으니 위로 좀 해달라느니 등등. 온갖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흥미 없었다.
내가 드라마나 영화 중에서 절대로 보지 않는 장르가 딱 2개 존재하는데, 하나는 로맨스고 다른 하나는 신파극이다.
전자는 내가 모르는 세계라서 공감이 안 되기 때문에, 후자는 어지간한 신파극보다 더한 경험을 내가 직접 겪어 봤기 때문에.
내가 유일하게 공감해 주고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탈모 환자들뿐이다.
탈모는 전지전능한 신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운명적인 저주 같은 거니까.
그렇게 한참을 채널 스킵만 반복하고 있던 그때, 나는 어느 순간 쉬리의 자동 스킵을 정지시켰다.
[여긴 김해국제공항입니다. 현재 수용할 수 있는 모든 민간인을 수용하고 있으며, 해군과 해경이 피난민 운송 및 호위 작업을 돕고 있습니다. 이 방송을 들으시는 김해 인근 생존자 여러분께서는 24시간 내에 오셔야 합니다. 24시간 이후, 혹은 상황에 따라 그보다도 더 빨리 연결된 다리를 폭파하고 안전을 도모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