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생존기 (8)
미안하지만 제발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고작 데이터 쪼가리를 하나 뽑기 위해 스마트폰 게임에 수백만 원씩 지른다는 얘기도, 트럭에 치여 죽으면 온갖 치트키를 가지고 이세계에서 전생할 수 있다는 얘기도, 전장에서 한창 구르고 있던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무려 5년간 알리지 않았다는 얘기도, 내가 했던 그 모든 희생과 개짓거리가 국가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라는 얘기도.
트라우마센터 상담사의 턱주가리를 날려 버린 건 그놈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공감한다느니 이해한다느니 같은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해 버린 탓에 매우 심층적인 심리 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그 염병할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수도 있지. 그래서 대가리가 미쳐 돌아가고 있거나, 아니면 죽음 직전에 그럴듯한 주마등이라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퇴역병은 자신만의 거점을 확보하고 사수하는 데 특화된 생존자 직업입니다.]
[모든 군용 무기에 대한 숙련도가 50%씩 상승합니다.]
[직업 숙련 레벨에 따라 특정 건물이나 영토를 자신의 거점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스킬 등급 및 숙련 레벨에 따른 제한 존재)]
[지정된 거점은 퇴역병의 통제하에 놓입니다. 거점 지정 취소, 거점 파괴, 혹은 퇴역병 사망 시 거점의 통제 상태가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현재 당신의 직업 숙련 레벨은 1 입니다.]
[직업 숙련 레벨 증가에 따라 랜덤한 확률로 추가 효과 또는 스킬 획득이 가능합니다.]
‘내가 미친 게 아니라면 현실이 미친 건가? 현실도 미치지 않았다면 대체 누가 미친 거지?’
그런 생각을 품으면서 3개의 터널을 지나 단숨에 별장으로 복귀했다. 마을 사람들 대다수는 군의 보호를 받기 위해 피난을 갔는지 이전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저 멀리 보이는 수관교는 추가된 군 병력이 다리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저들은 아직 김해 시내가 뚫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기야 나도 아침까지 부산이 뚫렸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저들이라고 오죽할까.
시내는 이미 폭도와 피난민, 그리고 감염자들이 한데 뒤섞여 거대한 생과 사의 용광로로 전락한 지 오래다.
군과 경찰은 소규모 병력만으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우물쭈물거리다 결국 맥없이 무너지겠지. 지하철에서 감염자가 쏟아져 나올 때의 광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구체적으로는 지금도 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이 이상한 메시지들보다 훨씬 더 생생하다.
“군 동기 새끼가 상태창이니 스탠드 파워니 이 지랄 할 때마다 오타쿠라고 놀렸는데…….”
그놈은 땅굴에서 포로로 잡힌 북한군들에게 야투경을 보여 주며 ‘아아, 모르는가? 이것은 [야투경]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지껄이던 놈이었다.
전쟁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꼭 밀리언라이브 애니를 보겠다며 자기만 아는 얘기를 매일같이 늘어놓던 특이한 놈. 나중에는 우리도 될 대로 돼라 식으로 그놈의 기행에 같이 어울렸다.
만약 지금 그놈이 여기 있었다면 내 눈깔에 이상한 거 떴는데 이게 뭐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그럼 그놈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렇게 대답했겠지.
“아아, 그것은 [상태창]이라고 하는 것이다. 선택받은 자들만 가질 수 있는 위대한 힘이지.”
그리고 위대한 힘에는 높은 책임이 따른다며 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다 내게 한 대 얻어맞았을 것이다.
“진짜 지랄났네.”
별장 뒷마당에 스쿠터를 대충 처박아 둔 나는 집으로 들어와 샤워부터 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돼도 아직 주요 인프라가 망가진 건 아니었기 때문에 전기, 가스, 수도는 정상이었다.
이 또한 머지않아 관리자들이 대피하거나, 주요 시설이 하나둘씩 망가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뚝 끊어지겠지만.
나는 샤워를 끝낸 뒤에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반투명한 메시지를 노려보았다.
시험 삼아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상태창 오프, 상태창 꺼, 사라져라 얍 같은 미련한 주문을 외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반응이 있었다.
[아직 퇴역병 직업 튜토리얼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튜토리얼 : 퇴역병 고유 스킬인 ‘거점 지정’을 1회 시전하기.]
‘지금이라도 약 먹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안방 서랍장을 잘 뒤져 보면 깜빡하고 버리지 않았던 항우울제 약봉지가 몇 개 남아 있을 것이다.
환청, 환각, 종국에는 정신분열로 인해 전혀 다른 사고관을 가지게 되는 정신질환자가 되느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약을 먹는 게 나을 것 같다.
물론, 밑져야 본전이지 같은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딱 한 번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시키는 대로 해 보자. 특별히 바뀌는 게 없으면 내가 미친 게 맞으니까 유통기한이 지난 약이라도 대충 씹어 삼키면 될 것이다.
“……거점 지정.”
[퇴역병의 소유인 토지와 건물을 확인했습니다.]
[참고 : 아직 소유주가 살아 있는 건물 및 영토는 거점으로 지정할 수 없습니다.]
[튜토리얼에 따른 거점 지정 완료 시 최초 1회에 한하여 무료로 지정 취소 및 재지정이 가능합니다.]
[해당 토지와 건물을 거점으로 지정하시겠습니까?]
[Y/N]
“어차피 내 건물에 내 땅이잖아. 당연히 예스지.”
[거점 지정이 완료되었습니다.]
거점 지정이 완료되었다는 짤막한 메시지가 잠시 유지되더니, 이내 말끔하게 사라졌다.
역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가 싶어 안방의 서랍을 뒤지려던 찰나.
“데갸아아아악?!”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만큼 별장 전체가 드드드드드드! 진동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전례 없는 대지진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나 싶었으나, 인터넷엔 온통 종말 얘기뿐이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대지진도 종말 요소 중 하나 아닌가?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진동이 멈췄기에 서둘러 밖을 내다보자, 정확히 내가 구입한 토지 면적만큼 별장을 둘러싸는 울타리가 생겼다. 그것도 모자라 커다란 거실 창문 위에는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철제 셔터가 달려 있었다.
혹시 다른 창문에도 생겼나 싶어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확인해 보니 정말로 창문마다 셔터가 생긴 상태였다.
“……셔터가 내려오면 현실이고, 안 내려오면 환각이다.”
설령 셔터가 내려온다고 해도 내가 통과할 수 있다면 환각이다.
최종 확인을 위해 셔터 손잡이를 잡아 내린 순간, 너무나도 쉽게 내려온 셔터가 창문을 물 샐 틈 하나 없이 막아 버렸다. 셔터는 안에서 내리면 바깥에서 열 수 없는 구조였다. 그 증거로 잠금 장치가 안쪽에 있었다.
내 상상속 셔터가 아니길 바라면서 있는 힘껏 몸통박치기를 해 봤지만 터엉! 하고 튕겨 나왔다. 이제 이건 진짜배기 셔터입니다. 리얼팩트.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으니, 이제 나는 이 빌어먹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에 좀비 같은 것들이 돌아다니고, 선택받은 용사처럼 갑자기 눈앞에 이상한 메시지가 아른거리고, 그 메시지가 시킨 대로 했더니 집과 토지가 통째로 개조당하는 현실을.
너무 리얼한 비현실에 이쯤 되면 누군가 작정하고 내 인생을 개조한 다음 트루먼 쇼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트루먼 쇼는 염병…… 어딜 어떻게 봐도 오렌지 과즙 100% 같은 리얼 실화 참트루잖아.”
창문을 열고 닫고, 셔터를 올리고 내리고, 그 짓거리를 몇 번이나 반복하던 나는 그냥 다 집어치우기로 했다.
적어도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건 증명됐으니, 이제 세상이 미쳤다는 가설을 내세워도 된다는 얘기 아닌가.
나는 탄약과 무기가 들어 있는 배낭을 가져와 용도에 따라 분류하기 시작했다.
연식이 좀 오래되긴 했지만 관리만 잘해 주면 여전히 현역처럼 쓸 수 있는 M16 소총과 베넬리 M4 샷건은 안방 옷장에 밀어넣었다.
리볼버 권총은 홀스터에 꽂아서 서랍장에 넣어 두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뽑아 쓸 수 있게끔.
마지막으로 탄약은 따로 보관함에 담아서 각종 공구나 장비를 보관해 둔 지하 창고에 처박아 두기로 했다. 탄약에 습기가 스며들면 곤란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특별히 더 신경 써야 했다.
“생각해 보니 아직까지 한숨도 못 잤네.”
한숨도 못 잔 것치곤 너무나도 쌩쌩하게 돌아다녔지만, 막상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느껴졌다. 문제는 이 피로가 육체적 피로일 뿐, 나를 곱게 재워 주는 피로는 아니라는 점이다.
빠르게 잠 들고 싶다면 근육을 최대한 이완시키고 편한 자세로 누워서 따사로운 햇볕과 간간이 파도치는 해변을 상상하라고 했던가? 유감스럽게도 내 뇌는 전신을 녹초로 만들어도 잠을 거부하는 청개구리였다.
그래, 내 뇌는 존나 놀랍게도 하루 일과를 모두 끝마쳤다고 생각해야만 잠드는 것을 허락해 주는 염병할 단백질 덩어리라는 얘기다.
내가 아무리 피로를 호소한들 잠이 안 온다면, 그것은 내 뇌가 ‘응 아직 오늘 일과 안 끝났어~’ 하고 있다는 얘기다.
무사히 비현실적인 상태창에 적응도 했고, 무기도 챙겨왔고, 집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셔터를 내려놨다. 현관문은 기존의 것보다 한층 더 두꺼운, 마치 은행 금고 문을 연상케 하는 두꺼운 금속 격벽으로 변한 상태였다.
드라마는 넷플러스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못 보는 거니까 패스, 밥은 한숨 자고 먹어도 되니까 패스, 집 청소도 새벽 내내 했으니까 패스.
“아직 보안 문제가 더 남아 있었네.”
마지막으로 머리를 쥐어짜내서 생각한 마지막 일과는 ‘보안’이었다.
나 대신 경계 근무 서줄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혼자인 나는 지금 상황에서 편히 잠들면 안 된다. 신기한 현상 때문에 물리적으로 집이 안전해진 건 맞지만 내 뇌가 아직 그걸 완전히 못 받아들인 거다.
-혼자니까자면안돼혼자니까자면안돼혼자니까자면안돼혼자니까자면안돼
대충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 지금까지는 어떻게 잤냐고? 당연히 최근까지는 집에서 혼자 자도 안전한 상황이었으니까 어떻게든 잘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전쟁을 끝낸 국가치곤 여전히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수준의 치안을 자랑했으니까. 바로 어제까지.
예비 살인마 셋을 죽인 다음 산길을 타고 빙 돌아서 강에 버리고 왔을 때만 해도 더 이상의 위협은 없어서 잠이 잘 올 것 같았는데, 갑자기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나는 귀찮아서 버리지 않고 투명한 봉투에 잔뜩 쌓아 두었던 유리병과 깡통을 긁어모았다. 내가 허구한 날 마시는 신선도 100% 우유와 온갖 캔음료는 용도를 다하고도 이렇게 고마운 존재로 남아 있었다.
생각해 보면 매일마다 우리 집으로 우유 배달 오는 사람은 얼굴만 웃을 뿐,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이런 곳에 살고 있으면 우유도 시켜 먹지 말라는 의미였을까?
아무렴 어떤가 싶어 창고에 한가득 쌓여 있는 노끈과 덕테이프, 그리고 공구상자를 챙겨서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지금껏 착실하게 모아 온 유리병과 깡통을 이용해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집 주변 울타리와 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내고 노끈을 넣어서 연결시켰다. 거기에 덕테이프로 고정한 유리병이나 캔 따위를 다시 짧게 자른 노끈으로 연결해서 매달았다.
그렇게 설령 도둑고양이라도 반드시 한 번은 건드릴 수밖에 없게끔 촘촘한 아날로그 경보 시스템을 만들었다.
물론 어느 괘씸한 놈이 가위나 칼로 노끈을 잘라 버릴 수도 있었기에, 하나가 잘리면 다른 한쪽이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게끔 무게중심과 높낮이까지 조절했다.
어디까지나 임시변통이지만 당장은 괜찮을 것이다, 나중에는 쓸 만한 재료를 구해 와서 아예 울타리를 타 넘지도 못하게끔 부비 트랩을 잔뜩 만들 생각이다.
이참에 삽 하나 구해 와서 울타리 주변에 호를 넓게 파고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을 박아 놓는 것도 괜찮겠다. 아니면 군 부대를 털어서 대인지뢰나 크레모아를 심는 것도 괜찮고.
저 멀리 시내에서 사이렌 소리와 총성, 폭음이 울려 퍼지든, 수교관에 있던 군 부대가 통제를 포기하고 도망치든, 나는 개의치 않고 몇 시간에 걸쳐 별장의 기본적인 보안 문제를 해결했다.
어느덧 시간이 정오를 넘어서 한가한 오후를 가리키고 있을 무렵, 나는 태양을 등진 채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보안 문제를 해결했어요. 도비는 이제 자유예요…….”
상태창과 함께 딸려 오는 사은품 같은 스킬창 스탯창, 업적창, 상점창, 퀘스트창, 미니맵, 인벤토리 같은 걸 실험해 볼 여유는 없었다.
나는 지금 존나 피곤했고, 존나 자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침대에 눕자마자 위대하신 뇌님께선 황송하게도 나의 수면을 허가해 주셨다.
“인생 십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