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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병의 아포칼립스-7화 (8/227)

7화 생존기 (7)

이 판국에 경찰서를 터는 건 그건 그냥 영락없는 테러리스트에 폭도 아니냐고? 당연히 맞다. 물론 그래 봤자 지금쯤 시내에서 신나게 상가 약탈하고 기물파손하고 범죄 저지르는 놈들보다 조금 더 선을 넘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최소한 하찮은 범죄나 저지르려고 무장하려는 게 아니니까.

준비를 끝낸 나는 양아치들이 타고 왔던, 산길 아래에 대충 처박혀 있는 스쿠터를 잡아 세웠다. 아까 수관교의 상황을 살피러 내려갔을 때 확인해 둔 거다.

‘키도 그대로 꽂혀 있네. 그 새끼들 진짜 내 집 꿀꺽하고 눌러 살 생각이었구만.’

좀 더 안전하고 쾌적한 장소가 있었을 텐데, 굳이 내 집을 노렸다는 건 내가 혼자 사는 졸부 새끼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별장이 꽤 크고 고급스럽다는 얘기는 덤이고.

부르르릉!

군 부대가 급하게 수관교를 틀어막은 탓에 시내로 이어지는 대동 1, 2, 3 터널은 널널했다. 소수의 차량이 피난을 가기 위해 급하게 사람과 짐을 싣고 시내로 향하는 것을 제외하면, 시내에서 이쪽으로 올라오는 차는 전무했다.

빠르게 터널을 통과한 나는 불암역 앞에 위치한 마을회관 크기의 치안센터를 잠깐 살폈다. 불암역에서 좀 더 아래에 있는. 김해교와 불암역에서 군 부대가 통제 중일 테니 괜한 소란은 피우지 않는 게 좋다.

나는 다시 스로틀을 감아 스쿠터를 몰았다. 저런 밤톨만 한 치안센터 하나 털어먹으려고 난리치느니, 시내에 가서 본격적으로 지구대나 파출소를 터는 게 낫다.

‘김해중부경찰서를 털 수 있으면 훨씬 더 좋고.’

거기엔 이런 사태에 대비해 최신예 무기부터 탄약까지 한가득 쌓여 있을 거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의미는 없다.

나는 지금쯤 갑작스럽게 도래한 국제적 혼란 사태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경찰들을 어떻게 털어먹을지 생각하며 시내를 가로질렀다.

누군가는 내게 묻겠지. 세상 어떤 미친놈이, 세상이 이 지경이 되자마자 경찰을 털 생각부터 하느냐고. 나도 상황이 안 좋다는 건 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수상쩍고 위험한 바이러스의 창궐, 전 세계가 사이좋게 고통을 나누는 아포칼립스의 도래, 앞으로 얼마나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니 당연히 최악 중의 최악이겠지.

하지만 그런 상황이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다.

나는 부모님의 유산과 거액의 사망보험금을 들고 지방으로 도망쳐 내려온 퇴역병이다. 두 번 다시 누군가가 나 자신을 속박하게 두지 않을 생각으로 김해시 변두리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서 매번 배달이나 시켜 먹고, 집에는 각종 식량과 식수를 한가득 쌓아 뒀다. 염병할 정전이나 단수를 걱정해서 태양광 패널에 정수처리기, 비상발전기까지 싹 구비해 놨다.

그럼 이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세상 어떤 미친놈이, 세상이 이 지경이 되자마자 경찰을 털 생각부터 하느냐고? 나다. 내가 그 미친놈이다.

누구도 나를 속박하거나 억압할 수 없다. 내 염병할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벽에 똥칠하다 뒤지기 전까지 나만의 합법적인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내가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희생을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 국가가 내게 적극 협조해 줄 시간이다.

혼란스러운 시내를 가로질러 단숨에 파출소를 찾아 들어간 나는 다짜고짜 권총을 뽑아 들어 천장에 한 발 쏴 갈겼다.

탕!

총성이 울려 퍼지자마자 파출소에 남아 있던 최소 인원 두 명이 다급히 자세를 낮췄다. 물론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가장 가까운 경찰에게 재빨리 다가가 총구를 들이밀었다.

“거기 짭새, 권총 끈 풀어서 바닥에 내려놓고 이쪽으로 밀어. 안 그럼 이 새끼 대가리 날아간다. 미리 말하는데 공포탄은 이미 빼 놨다.”

“박 경사님……!”

“그냥 쏠까? 한 명씩 대가리 날려 버리는 게 더 빠르고 쉬운 방법이긴 해.”

내가 박 경사라 불린 중년 사내의 뒤통수에 총구를 들이밀며 압박하자 순경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치였다. 이미 기선제압 당한 상태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매일 취객이나 상대하는 파출소의 경사와 순경이 국가 비상사태에 파출소를 지키는 최소 근무 인원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기습을 당했다. 이건 감당 못 하지.

“……시키는 대로 해, 김 순경.”

“하지만!”

“죽일 거면 벌써 우리 둘 다 죽였어.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해.”

“큭……!”

김 순경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권총을 꺼내서 바닥으로 밀어 넘겼다. 나는 박 경사에게 총구를 겨눈 채 천천히 총을 주워 들었다.

“일어나. 수갑 있지? 가서 채워.”

“…….”

박 경사는 내가 시키는 대로 김 순경의 팔을 뒤로 돌려서 수갑을 채웠다. 이제 저 순경은 천운이 따라 줘도 수갑을 찬 상태로 날 이길 수 없다.

마지막으로 박 경사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앗은 나는 재차 그의 등에 총구를 찔러 넣으며 말했다.

“무기고 열쇠.”

“……제정신인가?”

“영영 오지 않을 구급차 기다리기 싫으면 잠자코 무기고 열쇠나 챙겨. 내가 장담하는데 총 맞으면 범죄자한테 칼빵 맞은 것보다 수백 배는 더 아플 거다.”

박 경사는 하는 수 없이 무기고 열쇠를 챙겨서 나를 무기고로 안내했다.

파출소 인원 대부분은 이 비상시국에 민간인을 통제하고, 사고를 막기 위해 온갖 현장에 투입된 상태다.

그나마 규모가 작은 파출소라 이 정도지, 지구대에 쳐들어갔다면 애 좀 먹었을 거다. 또 대한민국 전역이 미쳐 돌아가는 상황이 나를 돕기도 했고.

무기고에 있어야 할 무기들 중 상당수는 이미 출동한 경찰들이 반출해 간 듯, 남은 것이 얼마 없었다. 하지만 탄약은 아직 넉넉하게 남아 있었고, 나는 소총과 샷건을 한 정씩만 챙기면 충분했다.

“소총이랑 샷건 한 정씩 담아 넣고, 나머지는 탄약으로 채워.”

배낭을 벗어서 박 경사 앞으로 던졌다. 그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주먹을 꽉 쥐었지만, 곧 배낭에 무기와 탄약을 넣기 시작했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 친구가 이 비상시국에 꼭 이런 짓을 해야겠나?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경찰을 습격하면서까지.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같잖은 설교는 집어치워.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 질서를 유지해? 그깟 철밥통 공무원의 일상적인 업무가 내 20대의 절반을 날려서 지킨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질서에 비하면 얼마나 대단한데?”

“……2차 남북전쟁 퇴역병이었군.”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난 어제까지만 해도 편하게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었어. 그런데 너희 염병할 짭새들이 상황 통제 하나 제대로 못해서 우리 집에 예비 살인마가 셋이나 찾아왔었다고. 걔들이 경찰한테서 훔친 권총을 들이밀면서 날 죽이고 산에 버려 두겠대.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아?”

“경찰도 소방관처럼 항상 인력과 장비 부족에 시달린다. 어제 무서운 일을 겪어서 정신적 충격이 심하겠지만 경찰이라고 해서 만능이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몸을 지키겠다는 거야. 이제 닥치고 무기나 넣어.”

곧 박 경사가 배낭에 무기와 탄약을 가득 채우자 나는 그의 뒤통수를 힘껏 내려쳤다. 보통 뒷목을 치면 기절한다고들 알고 있겠지만 그건 반쯤 픽션에 가깝다. 그냥 스트레이트로 뒤통수를 까서 가벼운 뇌진탕을 일으키는 게 더 효과적이다.

북한군 머리통을 수없이 개머리판으로 까 본 경험 덕분에 박 경사를 기절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방탄복을 꺼내서 점퍼 안에 챙겨 입은 뒤 무기고를 빠져나왔다.

“네 직장 선배는 무기고에 재워 놨다. 거기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깨어났을 때 네 수갑 풀어 줄 거다.”

“미친 새끼가……! 뒷감당할 자신 있어?!”

“뒷감당이고 지랄이고 솔직히 국가가 날 위해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 이 정돈 받아도 되잖아? 꼬우면 남의 인생 무이자 사채로 땡겨 쓴 다음 나몰라라 하지 말았어야지.”

나는 여전히 데스크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김 순경에게 한마디 쏘아붙인 뒤 파출소를 벗어났다.

이게 명백한 범죄라는 건 알고 있지만, 바로 어제 국가와 치안 조직이 통제를 상실한 시점에서 더는 법 따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총과 몽둥이를 들고 들이닥친 예비 살인마 셋에게서 스스로 몸을 지켜야 했던 것처럼, 이 혼란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신변과 자유를 지킬 것이다.

내가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저지른 건 처음부터 싹수가 노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전쟁의 후유증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정확히는 예비 살인마 셋을 때려 죽이고 파출소에서 총을 쏜 순간부터.

파출소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 멀리서부터 본격적으로 들려오는 총성과 요란한 사이렌 소리는 시민들을 한층 더 패닉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피난을 가기 위해 짐 싸들고 나온 사람들도 겁에 질려 다시 집으로 돌아가거나,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대피소를 찾아 열심히 뛰었다.

군인들은 대부분 외부의 감염자 유입을 막기 위해 주요 길목에 전방 배치되었을 거다. 예비역들 역시 한참 전에 소집되었겠지.

하지만 변종 바이러스의 감염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퍼져 나갔다는 전제하에 그것도 다 부질없어질 예정이다.

뚫려서 다 함께 죽거나, 아슬아슬하게 막아 내더라도 굉장히 암울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겠지. 난 정중하게 사양하겠다.

“꺄아아아아악!”

다시 스쿠터에 올라 돌아가려던 찰나, 지하철역 계단에서 사색이 되어 뛰어올라온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는지 주변에 알리겠다는 투철한 신고 의식 따윈 없었고, 나는 스쿠터에 시동을 걸어 둔 채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드드드드드드!

혼란의 길거리 속에서도 나는 뭔가 울컥울컥 터져 나올 듯 말 듯한 진동음을 느꼈다.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지상으로 솟구쳐 분수가 되는 물줄기처럼.

솔직히 아니었으면 했지만, 내 예상은 결국 맞고 말았다. 길바닥에 돗자리 깔았으면 꽤 잘나갔을 것 같다.

“캬아아아아아!”

“그아아아아! 아그으으으으!”

“키힉! 키흐에에에에에!!”

마침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지상으로 솟구쳐 나온 거대한 살덩어리는 군인들이 사력을 다해 막고 있던 ‘그것’들이었다.

영화랑 드라마 짬밥 좀 있는 놈이면 ‘좀비’라고 부를 만한 놈들, 일반적인 상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뭔가 이상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악! 뭐야 씨…… 크허……!”

“엄마! 엄마아아아아아!”

“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이이이이익?!”

가장 먼저 튀어나온 놈들은 운 나쁘게도 지하철 입구 근처에 있던 사람들부터 덮쳤다.

차량에 탑승한 채 언제 뚫릴지 알 수 없는 교통 체증에 지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빠져나오거나, 반대로 차량 문을 잠갔다.

어느 쪽이 좋은 선택이었는가 묻는다면 나는 둘 다 안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하겠다. 애초에 이 난리통에 차를 끌고 나오면 안 되지.

“아아아아악!!”

“저리 가! 떨어져 씨발……!”

차량에 숨어 있던 사람들도, 허겁지겁 뛰어나온 사람들도 공평하게 놈들의 표적이 되어 물어뜯기거나 할퀴어졌다.

차량의 깨진 유리며 차체에 선혈과 내장이 낭자했고, 안 그래도 패닉에 빠져 있던 시내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에 삼켜졌다.

나는 스쿠터를 타고 이동하기 전, 헐레벌떡 차량 본네트를 타고 넘어오려는 놈의 미간에 대고 정확히 권총을 겨눴다.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해 보이는 놈들이다. 괜히 꼬리를 달긴 싫었다.

사실 반쯤은 정말로 영화처럼 헤드샷 한 방이면 죽겠느냐는 호기심도 일었고.

탕!

깔끔하게 놈의 미간을 뚫고 들어간 탄환이 후방으로 검은색에 가까운 검붉은 피와 뇌수를 흩뿌렸다. 조각조각 떨어져 나온 뇌와 뼛조각은 놈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했음을 알려 주었다.

동시에 스쿠터의 스로틀을 감은 나는 쏜살같이 시내를 벗어났다.

터널까지 봉쇄되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겠다며 집중하고 있던 찰나, 나는 하마터면 스쿠터에서 자빠져 바닥을 뒹굴 뻔했다.

[당신은 생존할 자격이 있습니다.]

[생존자의 인생 경험과 성향을 분석하여 ‘직업’을 선정합니다.]

[……직업 선정 완료.]

[당신의 직업은 ‘퇴역병’입니다.]

“뭔데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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