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생존기 (6)
내가 사는 곳은 자연뷰 하나만 보고 지은 김해시 구석의 호화 별장이라 주변에 별 대단한 게 없다.
더럽게 큰 강, 야트막한 산, 그리고 고속도로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군소 마을 몇 개가 전부. 시내까지 가려면 차타고 최소 5~10분은 달려야 한다. 재미있는 건 이 조건도 꽤 많이 나아진 상태라는 거다.
지난 전쟁 때문에 수도권은 언제나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염두에 둔 정부와 기업들이 최근 남부 지방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덕분에 자연뷰 빼곤 건질 게 없는 이곳에도 조금씩 뭔가가 들어서고 있던 참이다.
더 이상 한국을 ‘서울 몰빵 국가’로 만들지 않기 위해 비교적 개발이 쉬운 중소 도시부터 개발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면 낙수효과로 자연스럽게 인구가 유입되면서 개발이 더욱 빨라질 테니까.
그래도 자연뷰를 철저하게 챙긴 내 별장 근처에서 뭔가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냥 길 정비가 잘되어 있고,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상점이 좀 있으며, 언제든지 부산이나 양산으로 이동할 수 있는 대교가 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게 전부다.
내 집을 기습 점거한 그 양아치들도 김해 시내에서 싸구려 스쿠터를 타고 왔을 정도다, 생각해 보니 배달 기사들이 내 욕을 할 만했다.
어쨌든, 예전에 비해 사람이 좀 더 북적거리는 시외라고 해도 여전히 한적한 별장 근처에서 총성이 들릴 가능성은 적다. 특히나 노동자들이 출근하기 시작하는 아침 댓바람부터.
그런데도 총성이 터져 나왔다는 건, 어떤 놈팽이들이 아주 작정하고 내 꿀잠을 방해하겠다는 저열한 의도를 품은 게 분명하다.
“대교가 막혔네.”
멀리서 지켜본 수관교는 어쩐 일인지 차량들이 쭉 늘어서서 꽉 막힌 상태였다. 김해에서 부산이나 양산으로 나가는 차량 행렬이 아니라, 모두 그쪽에서 들어오는 차량 행렬이었다.
아무리 김해가 출퇴근만 하는 베드타운이라지만 평소에는 저렇게까지 교통 체증이 심하지 않다. 저건 마치 명절 귀향길을 보는 듯했다.
타타탕!
또 한 번 들려오는 총소리. 산의 초입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을은 진즉에 마을 어르신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연로하신 분들은 또 전쟁이라도 터진 게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고 계셨다. 비교적 젊은 층은 자기들도 얼른 피신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좀 더 적극적으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최신예 스마트폰의 쩌는 렌즈 확대 기능을 이용해 망원경처럼 수관교라는 이름의 대교 위를 확인했다. 수관교 끝자락에는 지프와 장갑차를 가로로 세워둔 소규모 군 부대가 차량의 진입을 원천 봉쇄 중인 상황이었다.
차량에서 우르르 몰려나온 민간인들은 군 부대에 들러붙어 어서 통과시켜 달라는 듯 악을 쓰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흉흉한 표정들이었으니 뻔했다.
‘이상 사태가 발발한 건 서울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부산은 비교적 안전할 텐데 왜 부산 시민이 김해로 들어오려는 거지?’
아마도 내가 새벽 내내 집을 청소하고 있을 때 서둘러 출동한 군 부대가 수관교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다는 건 새벽에서 아침이라는 극히 짧은 시간에 부산에서 무슨 일이 터졌다는 얘기가 된다.
‘서울에서 터진 변종 바이러스가 부산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
서울과 부산을 직통으로 이어 주는 KTX가 있다. 꼭 KTX가 아니라고 경부선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온 서울발 피난민들이 엄청날 것이다.
서울에서 타 지역으로 피난하기 시작한 사람들 중 운 나쁘게 감염자가 있었을 것이고, 하필 감염자가 본격적으로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가능성도…….
‘아니, 그건 이상해.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김해가 부산보다 훨씬 더 위험해. 애초에 바이러스 문제라는 걸 알았다면 정부의 지시를 받은 군이 대구 쪽에서 먼저 교통편을 모조리 통제했을 거야. 그럼 왜 다들 부산으로 피신하는 게 아니라 김해로 몰려오는 거지?’
나는 인터넷으로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부산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다. 심플한 키워드였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몇 시간도 안 된 따끈따끈한 부산발 뉴스나 소식통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왔다.
-꼭두새벽부터 날벼락! 부산항에 충돌한 일본 국적 크루즈선에서 쏟아져 나온 대량의 감염자!
-군 초동 대응 실패! 부산항 포기 결정! 김해국제공항까지 방위선 유지하기 위해 사상구에서 2차 저지선 구축에 총력.
-군의 낙동강하구둑 폐쇄 결정 ‘부산 동, 중, 서구 피난민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삽시간에 저지선 뚫린 남구와 연제구, 불타오르는 부산은 종말의 전조인가?!
-[충격속보]김해와 양산, 울산으로 이동하는 부산 시민들의 피난 행렬.
‘이렇게 된 일이었군.’
전쟁통에도 혼란스러웠던 서울과 달리 안전하기만 했던 부산은 지금 서울 못지않은 혼돈을 맞이하고 있었다.
덕분에 김해와 양산, 그리고 울산에 주둔 중인 군 부대가 총력을 다해 피난민의 유입을 틀어막고 있는 상황. 수관교에 도착한 군 병력이 지금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곧 작정하고 몰려올 거다.
‘그럼 내가 강제 징집 당할 가능성도 높다는 건데…… 난감하네.’
국방의 의무고 지랄이고 강제 징집 당하기 싫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냥 군대라는 조직에 두 번 다시 소속되고 싶지 않다. 정부가 나를 의무라는 명분으로 속박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하지만 사태가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현역 장병들만으로 대처하는 것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예비역부터 민방위까지 총동원되겠지.
설령 5년이라는 전쟁을 겪고 무사히 사지멀쩡하게 퇴역한 군인이라고 해도 예외는 두지 않을 것 같다. 다른 국가는 몰라도 대한민국 군대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나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 섞여서 저 멀리 있는 수관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로 통제 및 저지선 구축을 위해서라면 저것보다 더 많은 군 병력이 이 마을에 들이닥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호구 조사를 하며 강제 징집 대상인 젊은 청년을 찾겠지. 군대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다.
그러니 지금 선택해야 한다.
이 모든 사태가 끝날 때까지 집 문을 걸어잠그고, 모든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전기를 일체 사용하지 않으면서 죽은 듯이 지내기.
아니면 필요한 물품만 챙겨서 얼른 이곳을 떠나기.
어느 쪽이든 리스크가 너무 컸다.
‘무작정 집에서 숨어 지낸다고 해서 사태가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고, 부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군대가 저지선을 포기하면 내 집 주변은 한순간에 전장이 되는 거다.’
사람을 덮치는 감염자 or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군인. 어느 쪽이든 날 노릴 수 있는 최악의 거점이다.
그럼 남은 건? 즉시 필요한 것을 챙겨서 떠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따르는데, 타 지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군인에게 걸려 강제 징집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운 좋게 걸리지 않는다고 해도 국내에서 안전지대를 찾기란 요원하다.
어떻게 그걸 아냐고?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판데믹에 부산이 마비되기까지 반나절도 안 걸렸다. 그럼 인구 천만이 넘게 모여 있던 서울은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사람이 많은 만큼 감염도 많이 됐을 거고, 넘쳐나는 감염자는 당연히 주변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을 거다. 굳이 ‘서울’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에 검색해 보지 않아도 안다.
지금쯤 수방사는 서울 방위를 포기하고 경기도 외곽까지 다급하게 철수(전략적 후퇴)했을 것이다. 내 목을 걸고 내기해도 좋다. 전장에서 5년 동안 윗대가리들의 부조리한 명령을 받아 본 내가 장담한다.
“씨발.”
어떤 선택을 골라도 끝이 좋을 것 같지 않다. 과정이 좆같은 건 무조건 확정이고.
‘그나마 안전한 건 제주도 같은 섬이겠군.’
제주도 규모의 섬이라면 자급자족도 할 수 있고, 외부 유입만 막으면 거기 있는 사람들끼리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아마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도 청와대 지하 벙커 아니면 제주도로 피신했으리라.
제주도와는 반대로 부산 바로 옆에 위치한 쓰시마 섬(대마도)는 매우 높은 확률로 감염자로 가득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발 크루즈선이 굳이 부산으로 올 이유가 없으니까.
어쩌면 쓰시마 섬에 정박되어 있던 크루즈선이 사태가 터지자마자 급하게 사람들을 챙겨 부산으로 도망쳐 왔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다 선박이 통째로 감염되어 부산에서 그 난리가 났던 것이고.
‘어떻게 생각해 봐도 최악의 경우밖에 안 떠오르네.’
이런 상황에서 가늠할 수 없는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건 사실 의미없는 행동이다. 정말로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변이는 대체 언제, 어쩌다, 무엇에 의해서 일어났는데? 변종 바이러스가 최초로 퍼진 장소는? 확산 속도는? 그런 조건들까지 다 고려하면 밑도 끝도 없다.
그러니 나는 다시 두 가지 선택지로 돌아와야 한다.
1.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실천을 위해 집에 남기.
2.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완벽한 안전지대를 찾아 기약없는 모험을 떠나기(탱커, 힐러 급구).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꼬부랑 할머니가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총각, 쩌어어기 별장에 사는 총각 맞나? 아이가(아니냐)?”
“예, 맞습니다 어르신.”
“혹시 뭐 좀 아는 거 있나? 상황이 많이 안 좋나?”
“혹시 집에 가족분들이 있으세요?”
“추석 같이 지내려고 집에 자식 내외랑 강생이들(아이들) 있제.”
“그럼 가족분들과 함께 필요한 짐 챙겨서 얼른 군 부대가 지키고 있는 대피소로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선 항상 군인들이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역시 젊은 총각이라 그런가 달라도 뭐가 다르고마. 고마우이.”
꼬부랑 할머니는 그렇게 지팡이를 짚고 잰걸음으로 돌아가셨다. 내 말을 믿고 추석을 지내기 위해 내려온 자식내외와 함께 군 부대의 보호를 받으러 가시든가, 아니면 극성맞은 자식 내외의 고집에 못 이겨 다른 지역으로 피난하실 거다.
나처럼 혼자라면 모를까 딸린 식구가 많을수록 이런 상황에선 절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못한다.
‘교통 체증+군인들’의 도로 통제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죄다 거리로 뛰쳐나오는 지금이라면 얌전히 군 부대의 보호를 받는 게 맞다.
‘하지만 난 절대 보호 못 받겠지. 공짜 고기방패에 노동력으로 쓰이는 건 5년이면 충분해.’
또 한 번 군에 징집되는 순간 진정한 의미로 내 인생은 끝나는 거다.
‘그럴 바에 차라리 테러리스트를 하고 말지.’
상황을 살핀 나는 후드를 푹 눌러쓰고 집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인 외출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배낭에 생수와 간편식 몇 개를 채워 넣었다.
이제 와서 피난이라도 갈 생각이냐고? 아쉽게도 피난을 갈 생각은 없다. 나는 지금 막 자신의 집을 지키기로 결정한 퇴역병이기 때문이다.
‘길을 타고 일직선으로 쭉 내려가다보면 시내로 진입할 수 있다. 김해중부경찰서 시내에는 소속 파출소와 지구대가 꽤 있어.’
그게 무슨 의미냐고? 경찰을 털겠다는 의미다. 군대를 털자니 숫적으로나 화력적으로나 내가 너무 후달리는 상황이니, 경찰부터 털어서 무장부터 해야 한다.
어차피 식량이나 식수는 집에 잔뜩 쟁여 놨으니 딱히 걱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무장이다. 무장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의 신변도, 자유도, 무엇 하나 지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