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생존기 (5)
자취하는 남자는 반드시 두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첫째, 만사 다 제쳐 놓고 홀애비 냄새가 진동하는 돼지우리에서 살기.
둘째, 최소한 사람답게 살자는 마음가짐으로 넓은 집을 혼자 청소하면서 살기.
“진짜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새끼들은 뭘 어떻게 해도 도움이 안 되는구나.”
피와 살점으로 더러워진 집과 1층 테라스, 그리고 마당부터 바깥까지 쭉 이어져 있는 핏물을 청소하기 위해 새벽 내내 몸을 움직였다.
만사가 다 귀찮아져서 때려죽어도 오밤중에 청소를 하긴 싫었지만, 내가 청소를 미루면 미룰수록 고약한 피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할 거라는 생각에 결국 청소도구를 들어야 했다.
썩어 들어가는 피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어지간해선 맡아 보기 힘들 거다.
하지만 일단 맡아 보면 그게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냄새라는 걸 알게 된다. 머리로 이해가 안 된다고 한들 몸이 알아서 이해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쌀쌀한 날씨라면 그나마 좀 낫겠지. 그러나 습도가 높고 푹푹 찌는 날이라면? 그땐 진짜 환장하는 거다.
그날은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인중에 치약을 발라도 냄새가 나며, 최종적으로는 꿈속에서도 그 냄새를 맡고 몸부림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친히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끼고 물걸레와 소독된 티슈를 들고 한바탕 난리를 쳤다.
우선 응고된 핏물을 쉽게 지울 수 있도록 펄펄 끓는 물을 끼얹고, 물걸레로 슥슥 밀어 준다. 핏물이 떠내려가면 그냥 흙바닥에 스며들게 내버려 둔다. 나중에 흙으로 덮으면 그만이니까.
남아 있는 오물이나 얼룩은 소독된 티슈로 정성껏 닦아 내고, 마지막에 락스 풀어서 희석시킨 물을 곳곳에 뿌려 둔다. 그렇게 잠시 바깥 공기에 노출시켜 뒀다가 다시 물걸레로 빡세게 문지르면 끝.
이제 우리 집에 또 다른 배달 기사가 와도 기겁하는 일은 없을 거다.
“아이고 삭신이야…… 진지 공사를 할 때도 이렇게 빡세진 않았는데.”
허리를 두들기면서 거실로 돌아오니 어젯밤의 소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잦아들고, 저 멀리 아침 해가 방긋 미소 지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정확히 아침 7시였다. 슬슬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지 해 뜨는 시간이 조금 늦다.
“벌써 잠들었어야 할 시간인데 아직도 깨어 있는 내가 레전드다.”
지금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서버를 죄다 내렸겠지. 그러니 이럴 때만 쓸데없이 국민의 알 권리를 잘 지켜 주는 뉴스를 봐야 한다.
뉴스를 본다고 해서 딱히 호들갑을 떨지는 않겠지만,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는 꼭 확인해 둬야 하니까. 그래야 내 수신료가 덜 아깝지.
-……7시 뉴스 속보입니다.
정확히는 7시를 넘긴 7시 뉴스 속보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TV 화면에 송출되고 있는 뉴스 데스크가 상당히 난잡해 보였기 때문이다.
양손으로 대본이 찌그러져라 꽉 쥐고 있는 앵커 누님은 어딘가 굉장히 불안해 보이는 얼굴로 덜덜 떨고 있었다. 앵커가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스킬인 시선 처리와 포커페이스 유지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
-혀, 현재…… 국민 여러분께서 상당히 혼란스러운 밤을 보내셨으리라 예상됩니다. 본 방송국 또한 간밤의 소동을 겪는 과정에서 폭도 무리에게 습격을 받았…… 크흡!
뉴스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앵커가 숨죽여 울지만 누구 하나 컷을 하거나 앵커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에 뉴스를 내보내기 위해 노력한 자신들을 위로해 달라는 것처럼 숙연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도 무리는 굉장히 호전적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되도록 집 밖을 나오지 마시고 안전한 장소에서 정부가 발표할 행동 강령과 재난 사태 안전 지침을 꼭 준수해 주시길 바랍니다. 흐윽!
앵커 누님이 결국 감정의 격류를 참지 못하고 입가를 가리며 오열하자 방송국 관계자가 대신 대본을 들고 읽어 나갔다.
-김소라 앵커를 대신해 뒷내용을 전달하겠습니다. 현재 이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발발하고 있는 초대형 재난 사태로 추정됩니다. 여러 국가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대한민국 또한 군과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선 상태입니다. 또한 간밤에 미국 정부에서 발표한 CDC(질병통제예방센터)의 검증 절차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바이러스의 변종이 감염자들의 이상 징후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에 국민 여러분께서는 더욱 철저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해 주시고, 최대한 외출을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긴급 속보를 전달한 KBB 방송국은 뉴스 생중계를 중지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것은 이미 방영된 적이 있는 KBB의 모 프로그램 재방송 편성이었다.
집에 박혀 있을 인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 내라는 의미로 재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한 것인지, 아니면 당장 방송국이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건 또 국가 규모의 뭔가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 가장 불행한 것은 언제나 건장한 20대 청년들이다. 군필이든 미필이든 예외 없이.
현역이라면 이미 높으신 분들의 손짓에 따라 바삐 움직이고 있을 거고, 나같은 퇴역병이라고 해도 지금쯤 마음 졸이고 있을 거다. 강제 징집이라는 아주 개같은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국방의 의무인 만큼 강제 징집을 싫어할지언정 부정하지는 않는다. 법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문제는 강제 징집된 사람들을 조금도 배려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인 대우도 개차반이면서 고기방패 취급까지 하는데 대체 누가 이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싶어 하겠나?
오히려 제2차 남북전쟁 기간 동안 쿠데타가 발발하지 않은 게 기적이다.
“쓰읍…… 딱 봐도 군 부대에서 차출한 강제 징집 병력이 돌아다닐것 같은데.”
나는 당연히 싫지만, 법적으로는 강제 징집에 거부할 수 없다. 애초에 거부하면 불법이기도 하고.
먼 옛날에는 강제 징집을 피하기 해외로 도주했다고도 하지만, 요즘 같은 때에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들은 없을 거다. 과거에 비해 전산 처리가 확실하니까.
애초에 이런 시국이라면 공항과 항구가 가장 먼저 폐쇄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강제 징집되지 말아야 한다. 군대가 날 찾지 못하면 딱히 강제 징집을 거부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쩌다 우연찮게’ 징집되지 못한 거지. 그러니까 당분간은 숨죽여 지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 오늘부터 난 없는 사람이다. 치킨이나 짜장면도 당분간은 참자.’
어차피 집에 쌓아 둔 인스턴트 식품은 많다. 별장이 워낙 커서 그런지 지하에 창고도 있어서 대량의 보존식량을 보관해 두고 있다.
지난 5년간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나는 안전하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집을 원했다. 이 집이 그 결실이고.
먹거리나 마실 것이 부족하지 않고, 평생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아지트.
퇴역하자마자 그런 환경을 기대하고 지방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준비는 철저하게 했다.
지하에 핵전쟁 대비 방공호만 만들지 않았다 싶을 뿐이지, 여긴 이미 5년간 진득하게 전쟁을 겪은 26세 퇴역병이 작정하고 준비한 아지트였다.
주택용 비상발전기, 주택용 정수처리장치, 주택용 태양광 패널, 또 뭐가 있더라…….
“아, 개집도 있지.”
언젠가 개 한 마리 기르게 되면 쓰려고 완제품으로 하나 사 둔 게 있다. 사람에 비하면 동물은 비교적 정직한 편이니까.
어쨌든 오늘은 지쳤다.
정확히는 어제부터 지친 상태였지만 오늘은 더 열정적으로, 격렬하게, 미친 듯이 지쳤다.
“쉬리!”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넷플러스가 연결되면 드라마랑 영화 될 수 있는 대로 내장 하드에 저장해 놔.”
-확인했습니다.
TV 옆에 놓여 있는 쉬리에게 대리 저장을 맡긴 나는 예사롭지 않은 감촉의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안방까지 가는 것도 귀찮다. 이대로 자고 일어나면 점심 먹기 딱 좋은 시간에 일어나겠지. 대충 오후 4시를 예상한다.
“후암…… 평소엔 자려고 누워도 도통 잠이 안 오더니만, 오늘은 잠이 솔솔 오네.”
거실 창문에 쳐 둔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을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쌀쌀한 가을이지만 햇볕은 아직 따스했다.
푹신하고 냄새도 익숙한 침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근심 걱정 따위 다 잊고 꿀잠 잘 수 있는 A급 잠자리다.
지금 바로 잠들어서 꿈을 꾸면 피와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황야가 아니라, 싱그러운 풀 냄새로 가득한 평원이 나오지 않을까? 충분히 걸어 볼 만한 평원각이다.
간간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새가 지저귀는 평화로운 평원에 드러누워 있으면 분명 행복하겠지. 거기에 딱 지금 같은 따스한 햇볕도 쬐는 거다.
당연히 총성이나 비명은 일체 존재하지 않는 그저 평화로운…….
탕! 탕!
타다다! 타다다다다!
총성이나 비명은 일체 존재하지 않는…….
드르르르륵!
“…….”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말을 하다 마는 거고.
철컥.
“내 올해 운세가 좀 안 좋은가? 아니면 꿀잠이 존재하지 않는 관상인가?”
성호인지 뭔지 하는 놈에게서 빼앗은 .38 구경 리볼버에서 공포탄을 빼낸 다음 실탄으로만 세 발을 한 칸씩 옮겨 채웠다. 이제 방아쇠를 당기면 바로 실탄이 나간다.
권총의 낯선 그립감에 속으로 욕지기를 하면서도 어디 모난 곳은 없는지 철저히 살폈다. 고작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권총이 상했을 리는 없지만 혹시 모르니까.
“잠 좀 자자고 씨발. 나 쉬고 싶다고.”
사실 눈을 감고 대충 몇 시간쯤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잠들어 있곤 한다.
며칠이고 잠을 못 잘 만큼 심각한 불면증은 아니라서 트라우마센터의 상담사에게 말했더니 그건 전쟁 후에 겪는 일시적인 증상일 뿐이라고 말하더라.
결과적으로 그건 택도 없는 개소리였다.
내 몸은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잠드는 법을 잊어버린 거다. 지난 5년의 ‘습관’ 때문에.
“내 단잠을 방해하는 분충은 용서치 않아요.”
대충 옷가지를 챙겨 입은 나는 후드티 앞주머니에 권총을 숨긴 채 집을 나섰다. 딱 봐도 좋은 일이 벌어졌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저 지랄이 계속 이어지면 내가 잠을 못 잔다는 게 중요하지.
층간 소음으로 살인도 일어나는 시대에, 저런 고성방가는 적법하고 정통한 별장의 후계자 이승권(무직)이 주의를 줄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