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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병의 아포칼립스-4화 (5/227)

4화 생존기 (4)

손목을 뒤로 돌려서 수갑을 채우면 저항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를 억압할 수 있겠지만, 수갑을 앞으로 채우면 이런 일이 터지는 거다. 그래서 경찰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범죄자의 수갑을 앞으로 채우지 않는다.

앞으로 채우기가 허용되는 건 법원이나 교도소로 끌려가는 범죄자에 한해서다.

“어억?! 흑?!”

갑작스러운 일격에 몽둥이를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진 준성은 비틀거리다 엎어졌다. 뇌진탕으로 몸을 가누기도 힘든 것이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곧장 달려들어 수갑의 쇠사슬로 놈의 목을 짓눌러 압박했다. 노끈보다 튼튼하고 압박 효과도 탁월한 쇠사슬은 효율적으로 놈의 비명을 억눌렀다.

“켁! 쿨럭! 으그으으윽?!”

“그러게 멀쩡한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집주인을 죽이려고 했냐? 그냥 조용히 돈이나 물건만 털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끄흑! 억! 그르르륵…….”

학창시절 된통 당해 본 적이 없거나, 반대로 학창시절부터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크게 엇나간 탓에 사회의 무서움을 모르고 나대는 놈들이 꼭 있다.

이런 놈들은 당장 인간의 도덕성이나 윤리, 준법의식 같은 것은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눈앞의 쾌락을 좇고, 법의 심판을 받는다고 해도 어차피 조진 인생 더 잃을 게 있겠냐는 태도로 나올 뿐이다.

암담한 인생을 혼자서만 느긋하게 즐기면 될 것을, 꼭 타인에게도 그 암담함을 전염시키려는 바이러스 같은 놈들이다.

“그르르르륵…….”

이승권 별장의 첫 번째 이용객으로 잠든 준성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놈이 흘린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손에 착착 감기는 것이 꽤 질 좋은 몽둥이였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예절주입봉이다.

예절주입봉을 살피다가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 가는 놈을 내려다보았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염병할 젓가락질도 처음에는 어렵지만 계속하다 보면 작은 좁쌀도 여유롭게 집어서 옮길 수 있다.

나는 살아오면서 비교적 ‘어려운 처음’ 같은 걸 느낀 적이 잘 없었다. 운동도 그럭저럭, 공부도 그럭저럭, 예의범절도 그럭저럭.

어디에서나 딱 평균은 하는 놈이라 정석대로 사는 건 쉬웠다. 정석대로 살다 보니 큰 성공도, 큰 실패를 할 일도 없었고.

그런 내가 처음으로 어렵다고 느낀 것이 있었다.

그건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평생 사람을 향해 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었다. 물론 같은 사람을 상대로.

처음이 어렵다. 그러나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숙달도 된다.

세간에서 그런 말이 왜 나도는지 나는 첫 방아쇠를 당긴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북한군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날려 버렸을 때, 민가를 점거하고 안에서 총을 쏘며 농성하던 놈들을 수류탄 하나로 폭사시켰을 때, 어두컴컴하고 먼지 풀풀 날리는 지하 땅굴에 숨어 있는 놈들을 몰살하기 위해 최루탄을 까 넣고 튀어나오던 놈들을 몰살시켰을 때.

하나같이 굉장히 어려운 처음들이었지만, 결국은 익숙해졌다. 익숙해져야만 했다.

“세상 참 말세라니까.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이런 짓이나 하고 다니고.”

제2차 남북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깊게 고민해 봐야 별거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게거품을 물고 축 늘어진 준성의 시체를 이불보로 둘둘 감아 창밖으로 내던졌다.

1층 목재 테라스에 뭔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아무리 방음이 잘된 별장이라고 해도 아래층에 있는 놈들이 눈치챌 수밖에 없을 거다.

이대로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가지 않고 창문틀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이불보에 둘둘 말린 준성의 시체 언저리를 대충 내려다보며 몽둥이를 들었다.

역시 녀석들도 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는지 1층 테라스와 거실이 이어지는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뭐야 씨발?!”

“야, 저거 시체 아니냐?”

“아 진짜 준성이 미친 새끼야! 그냥 내일 산에 데려가서 죽이라니까! 그리고 버릴 거면 좀 멀리 내다버리든가!!”

“준성아, 라면 다 끓였으니까 빨리 내려와!”

하지만 내려가지 않는다. 대답도 하지 않는다. 반응하지도, 숨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1층과 2층 사이에는 비나 눈을 막아 주는 기왓장 같은 칸막이가 있어서 아래에서 나를 바로 올려다볼 수 없다. 2층을 확인하려면 시체 근처까지 나와야 한다.

내가 한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제야 아래에 있던 두 놈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모양이었다.

“야, 씨발 좀 이상한데?”

“준성이가 장난치는 거 아냐?”

“아니, 그 새끼 성격상 그냥 신나게 때려 죽였으면 죽였지 저렇게 조용히 죽일 리가 없잖아. 네가 가서 시체 확인 좀 해 봐.”

“아, 쫄리는데…….”

“닥치고 가서 보라고!”

성호의 닦달을 이기지 못한 민상이 밖으로 나온 순간, 나는 놈의 정수리를 노리고 몸을 날렸다.

콰앙! 퍼억!

목재 테라스에 착지하는 성인 남성, 그의 앞에서 머리통이 깨지는 친구, 흩뿌려지는 피와 뇌수, 이윽고 힘없이 쓰러지는 시체, 고통스러운 비명 한 점 섞이지 않은 깔끔한 죽음.

총알이 다 떨어지자 군용 대검을 들고 뛰쳐나오던 북한군의 머리통을 개머리판으로 갈겼을 때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 어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당황에 젖은 목소리. 나는 피가 잔뜩 튄 얼굴을 스윽 닦아 내며 돌아보았다.

사람 머리통 하나 깨부순 탓에 예절주입봉은 쪼개지듯 부러져 버렸다. 하지만 날카로운 끝이 있어서 찌르는 용도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미국에선 사유지 불법 침입 시 사살해도 합법이거든. 오늘부터 우리 집은 미국법을 적용한다. 불만 없지?”

돈만 털어 가면 되는 집주인을 무려 죽이려 들었으니 나도 미국법 좀 적용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미 그렇게 끝난 얘기 아닌가?

“이, 이이이…… 미친 새끼가!!”

철컥.

놈이 .38 구경 리볼버를 빼들고 나를 겨눴다. 친구가 둘이나 죽은 탓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이를 악문 상태였다. 반쯤 패닉이 왔지만 악과 깡으로 버티는 모습이었다.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다리도 후덜덜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병신.”

총을 겨눴으면 바로 쐈어야지.

내가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자 놈은 당황했는지 뒤로 물러나며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귀를 때리는 시끄러운 총성도, 눈앞에서 피칠갑을 하고 달려드는 나를 막아 줄 탄환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푸욱!

“아아아아아악!!”

부러진 몽둥이 끝을 놈의 복부에 힘껏 쑤셔박고 손목을 돌려서 비틀자 피가 울컥울컥 솟아나왔다. 뚜껑따기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상대방의 몸에 칼침을 쑤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칼날을 빙글 돌려서 치명상을 입히는 기술이다.

“대한민국 경찰이 사용하는 권총은 첫 약실을 비워 두고 두 번째 약실은 공포탄만 채워 넣는 거 모르냐?”

대한민국 경찰이 범죄자를 상대로 권총을 쏴야 하는 매우 긴급한 상황에서 확보해야 하는 최소 안전 거리는 대략 10m다. 실질적으로 실탄을 쏘려면 방아쇠를 세 번이나 당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리나 팔 같은 부위를 노리면서.

하지만 놈과 나 사이의 거리는 2m가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아쇠를 한 번 당기는 시간이면 접근하기 충분했다.

보나마나 총이라곤 FPS 게임이나 서브컬쳐로만 접해 봤겠지. 무식한 새끼.

고통스러워하는 놈에게서 손쉽게 권총을 빼앗은 나는 그대로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어서 밖에 내동댕이 쳤다.

이놈들이 수갑과 권총을 어떻게 확보했을까? 이 난리통이라면 아마 얼타는 경찰을 퍽치기로 습격했거나, 아니면 그 전에 누군가에게 당했던 경찰의 몸에서 획득한 것이겠지. 난 개인적으로 전자에 가깝다고 본다.

사람을 죽인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놈들이었으니까.

“내가 오밤중에 너희 같은 새끼들이랑 뒤엉켜서 이 지랄을 해야겠냐? 그것도 땀내 나는 남자 새끼들이랑?”

온통 시커먼 남자들의 땀내와 홀애비 냄새로 찌든 군용막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괘씸한 놈들. 실로 대역죄인이라 할 수 있다.

아직 발포되지 않은 차가운 금속제 총구가 닿자 놈은 기겁하면서 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복부에 박힌 나무조각 때문에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살기 글렀지만, 그래도 죽긴 싫은 모양이다.

“크흡…… 끅! 사, 살려 주세요…….”

“내가 돈 필요하면 돈 될 만한 거 가져가고, 배고프면 음식 꺼내 먹으라고 했잖아. 하지만 너흰 그러지 않았지.”

“사, 살려……!”

“테러하다 생포당한 북한군이랑 마인드가 똑같네.”

“…….”

“난 그런 놈들 살려 준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제네바 협약이고 지랄이고 장교가 보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우린 무조건 사살을 우선시했다. 비단 우리 부대만이 아니라 다른 부대도 그랬다고 들었다.

테러를 당한 게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콰직!

총을 쏘는 대신 놈의 목덜미를 짓밟아 단숨에 경추를 부러뜨렸다. 발뒤꿈치로 정확하게 내려찍으면 맨발로도 경추 정도는 부러뜨릴 수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몸을 씻은 뒤, 지하실에 있는 커다란 비료 포대를 몇 장 가지고 나왔다. 딱히 농사 지을 생각은 없었지만 혹시 감자나 고구마 같은 걸 대량으로 사게 되면 보관용 포대가 필요할 것 같아서 사 둔 것이었다.

다시 테라스로 나와 널브러져 있는 놈들을 나눠 담은 뒤 노끈으로 잘 엮어서 야트막한 뒷산으로 질질 끌어 옮겼다. 목적지는 산을 조금 돌아나가면 고작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커다란 강이었다.

“말세다 말세.”

나라가 어려울 시기에 힘든 일은 나같은 사람들이 전부 대신 해 줬는데, 대체 이놈들은 사회에 뭐가 그리도 불만이어서 이런 부류로 전락한 걸까?

막말로 전쟁이 터진 첫 1년은 대한민국이 내외로 크게 어렵긴 했으니 인정한다. 그리 큰 피해는 아니었지만 서울이 직접적으로 포격을 당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면 안 된다.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해서,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엇나갔다고 해서, 너도나도 다짜고짜 총이나 몽둥이를 들고 남의 집에 쳐들어가는 건 용서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도 최소한 북한군이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에 쳐들어갈 땐 ‘한국군이다! 모든 북한군은 무장을 해제하고 투항하라!’ 라고 외치고 들어갔다고.

어느새 도착한 강변에서 나는 밤의 강물이 고고하게 흐르는 것을 감상했다. 최대한 자연 경관을 헤치지 않게끔 주변 인프라가 조성된 탓에 밤에 봐도 참 아름다운 강이었다.

남해로 흐르는 강물이다 보니 뭔가 버리면 금세 바다로 도착할 것이다. 아니면 그냥 가라앉든가.

뒤처리가 깔끔하지 않은 건 취향이 아니라서, 강변에서 주운 돌을 포대 자루에 가득 채워 칠흑 같은 물속으로 던져 넣었다.

풍덩!

여긴 김해와 부산, 그리고 양산이 커다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베드타운의 구석이다. 이거고 저거고 다 물속에 던져 넣을 수 있다.

함부로 남의 집에 쳐들어와 집주인을 살해하려던 살인미수범 3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오…… 돌아가면 청소도 해야 하네.”

하여간 이놈의 나라는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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