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3화 (4/227)

3화 생존기 (3)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을 가장 쉽고 빠르게 망가뜨릴 수 있는 방법은 소통을 부재시키는 것이다. 소통할 수 없는 인간, 상호작용할 수 없는 인간은 순식간에 피폐해진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사상, 자신의 가치관을 타인과 공유하고 취미를 함께 즐길 수 없으며, 자신과 같은 삶을 떠들어 댈 병신들이 없다면 인간은 급격하게 우울해진다.

무인도에 홀로 표류한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이 어째서 배구공에게 윌슨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며 일방적인 소통을 시도하려 했을까?

꽤 다양한 측면의 의견들이 있겠지만 나는 주인공이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였다고 보는 쪽이다.

전화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TV도 없는 고독한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졌으니 사회적 동물에서 비사회적 동물로 전락한 꼴이다. 당연히 배구공에게 윌슨이라는 이름과 인격을 부여하고도 남지.

그렇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테니까.

“데샤아아아아아앗! K-인터넷 초강국 대한민국에서 서버 셧다운은 있을 수 없는 일인 데치!!”

나 또한 미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커뮤니티에 자주 돌아다니는 괴상한 밈(Meme) 캐릭터처럼 온몸을 비틀며 절규했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다 나온다.

사실 백번 양보해서 서버 셧다운 까지는 봐줄 수 있었다. 어차피 내가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제2차 남북전쟁이 이어진 5년 내내 차곡차곡 쌓인 최신(?) 드라마를 보는 게 전부였으니까.

아직 보지 못한 옛날 드라마와 영화, 미래에도 끝없이 나올 콘텐츠까지 합치면 내 일평생을 넷플러스에 바쳐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니 고작 커뮤니티 사이트 좀 못 들어간다고 죽을 일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해외에 서버를 둔 넷플러스까지 서버 셧다운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나는 아직도 산처럼 쌓아 둔 드라마를 볼 수 없었다.

“선 넘네.”

나는 그렇게 어느 채널을 틀어 봐도 뉴스로 긴박한 소식만 알리는 TV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뉴스 앵커가 아무리 심각한 어조와 표정으로 쏼라쏼라 떠들어 댄다고 한들 별 감흥이 없었다.

당장 무전기 너머에서 총성과 비명, 숨넘어갈 것 같은 아군의 다급함이 담긴 무전 내용을 받아 본 적 있는가?

북한군이 주요 길목에 심어 둔 구식 지뢰나 IED(급조폭발물)에 부상을 입고 비명을 지르는 아군, 민간인인 줄 알았더니 갑자기 총이나 폭탄을 꺼내 들고 아군 부대에 테러를 감행하는 진성 빨갱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땅굴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기습을 가하는 북한군.

그들 사이에 있다 보면 사소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된다.

어쨌든 나는 드라마를 그때그때 골라 보는 타입이라 따로 저장해 둔 것도 없었다. 즉, 오늘부터 나는 반강제적인 원시인이라는 얘기다.

“넷플러스시여 영원한 드라마로 나를 보호하소서……!”

포기해라,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넷플러스 서버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이제 인정할 때가 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떤 거대한 사건이 터졌고, 그로 인해 퇴역병의 안락한 노후 생활이 방해받고 있음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굉장히 억울하고 엿같은 기분이다.

이제 좀 각잡고 쉬려고 했더니만 갑자기 일상의 낙을 빼앗겼다. 이건 선을 씨게 넘은 게 맞다.

“엿같은 일을 당한 액션 영화 주인공들은 보통 옷장이나 지하실에 들어가서 벽을 깨부수고 총을 꺼내던데.”

안타깝게도 우리 집엔 그런 거 없다. 마음만 먹으면 북한에서 흘러나온 불법 무기를 암시장에서 구매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직도 북한 어딘가의 격리 지구에 격리되어 있을 북한인들에게 진정한 평화를 증명하기 위해서? 한국인들에게 우린 살인기계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정답은 ‘귀찮아서’였다.

더 정확히는 괜히 미래의 테러리스트 유망주로 낙인 찍혀서 불심 검문 당하거나 감시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최전방에서 굴러먹던 군인 출신이라면 더더욱.

나는 평범한 최전방 부대의 소총병이었고, 특전사니 뭐니 하는 것도 아니지만, 5년이나 위험 지역을 돌아다녀 보면 얼추 감이라는 게 잡힌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선 그 감을 죽이기로 한 것이다.

차치하고, 이승권 선수 이대로 가면…….

쾅쾅쾅!

“라이더.”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소리에 나는 현관문으로 조용히 다가가 외시경을 들여다보았다. 문 바깥에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놈들이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권총과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아저씨 집에 있는 거 다 알아! 뒤지기 싫으면 빨리 문 열어!!”

“야, 그냥 박살 내고 들어가자니까?”

“무식한 새끼, 그럼 우리가 망가진 문 써야 하잖아. 망가진 문은 네가 고칠래?”

“그럼 창문은?”

“깨지면 바람 새잖아 병신아.”

바깥에서 신나게 떠들어 대고 있는 놈들은 3명이었다. 딱 봐도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새내기 20대 꼬꼬마들처럼 보인다.

나는 편한 반팔티에 반바지 차림이라 도저히 손님을 맞이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손님들께서 정중하게 돌아가 주신다면 모를까, 오늘 이승권 별장에 방문한 손놈 새끼들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죽일까 마스터?’

안 돼, 참아 내 안의 그레이트 섹시 이승권. 딱 봐도 철없어 보이는 놈들이잖아.

어차피 돌아가라고 윽박질러 봤자 돌아갈 것 같지도 않고, 여차하면 남의 집 현관을 개박살 낼 기세라서 그냥 도어 체인을 풀고 문을 열어 주었다.

내가 순순히 문을 열어 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앞에 서 있던 놈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내게 총구를 겨눴다. 가장 앞에 있는 놈은 경찰이 사용하는 .38구경 리볼버를 내 가슴팍에 들이밀고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역시 돈 많은 아저씨라 그런가 눈치가 아주 빠르셔. 응?”

“나 돈 별로 없는데.”

“돈이 별로 없기는 씨발. 여기 건물이랑 주변 땅 사고 맨날 배달 시켜 먹는 갑부 새끼 하나 있다는 소문을 우리가 다 들었는데.”

맨날 배달 시켜 먹으면 갑부인가? 그건 몰랐다.

그보다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들었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일주일에 내 얼굴을 보고 가는 배달 기사만 해도 열 명이 넘으니 당연히 소문이 퍼졌겠지. 어떤 빌어먹을 배달 기사 놈이 신성한 고객의 개인정보를 팔아 넘겼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지 말고 들어가. 허튼 짓하면 뒤지는 거야 아저씨. 알아서 처신 잘 하라고.”

“집들이 인원은 세 명이 끝이지?”

“집들이래 미친 새끼 크크큭……!”

“성호야, 이 아저씨 좀 치는데?”

“조용히 해 새끼들아.”

내게 권총을 들이밀고 있는 놈이 성호라는 건 알았다.

세 명과 함께 집으로 들어온 나는 다시 편안한 소파에 앉았다. 이 소파는 언제 앉아도 감촉이 예사롭지 않다니까. 역시 부자가 사 둔 고급 소파라 그런가? 100% 동물 가죽이겠지?

내가 소파에 편히 앉자 녀석들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정신 나갔어?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

“돈 필요한 거 아냐? 대충 돈 될 만한 거 들고 가. 배고프면 냉장고에서 아무 거나 꺼내 먹어.”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지?”

“그냥 허세 부리는 거 아냐? 빨리 죽이고 시체만 갖다 버리자.”

“이 아저씨 재밌는데 그냥 냅두면 안 되냐?

“아, 병신 새끼들 진짜. 그리고 여기서 죽이면 피 다 튈 텐데 준성이 네가 치울래? 귀찮으니까 그냥 수갑 채워서 대충 빈방 안에 가둬 놔. 일단 좀 쉬고 내일 날 밝으면 산에 데려가서 죽이면 돼.”

나를 죽이자고 주장한 놈이 준성이라는 것도, 놈이 들고 있는 권총이 .38구경 리볼버인 것도 알았다.

“그렇다네 아재. 팔자 좋게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 손 내밀고.”

내가 얌전히 손을 앞으로 내밀자, 성호에게서 수갑을 받아 든 준성이 내 손에 수갑을 채웠다. 경찰이 사용하는 진짜 수갑이다.

.38 구경 리볼버도 그렇고 수갑도 그렇고 아무래도 혼란을 틈타 경찰관에게서 빼앗은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놈들이 이런 걸 가지고 다닐 리가 없지.

“하 시발. 저 아저씨는 우리 오기 전에 팔자 좋게 라면도 끓여먹었네. 민상이 넌 라면이나 끓여 와.”

“몇 개?”

“당연히 5개지 씨발! 남자 입이 셋인데!”

집주인인 나 대신 푹신한 소파를 점거한 성호, 놈의 명령대로 민상은 라면을 끓이기 위해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슬쩍 뒤를 돌아보자 내 등에 몽둥이를 겨누고 있던 준성이 몽둥이 끝으로 쿡쿡 찔러 댔다.

“빨리 걸어. 그보다 여기 방 존나 많은데 빈 방 어디야?”

“2층.”

“하여간 부자 새끼들은 낭비 오진다니까.”

내가 지은 건물도 아닌데 뭘.

고급스러운 목재 계단을 통해 올라온 2층은 불이 꺼져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나는 1층과 지하실만 쓰기 때문에 청소를 할 때가 아니면 위층으로는 잘 올라오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이 별장은 무려 3층이나 되는 탓에 김해에서도 꽤 유명했던 모양이다. 부동산 업자도 하필 베드타운 구석에 위치한, 쓸데없이 큰 별장을 사는 사람이 없어서 내심 집주인이 급처하고 싶어 한다는 뉘앙스로 말했었다.

이런 놈들이 꼬일 만했다.

뒤에는 산, 앞에는 커다란 강을 끼고 있으니 어지간한 주택가의 허름한 주택이나 아파트보다 자연뷰가 좋아 보이긴 한다.

“대충 구석에 박아 두면 되겠네. 문 열어.”

2층 복도 구석까지 나를 끌고 온 준성은 빈방의 문을 내게 직접 열게 했다.

전 주인이 이곳에 가족이나 게스트를 머물게 할 목적으로 별장을 지었기 때문에 빈방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있을 건 다 있었다. 침대, 화장대, 서랍장, 창문 같은 것들 말이다.

“빈 방 클라스 보소. 진짜 칼찌 마렵네 부자 새끼.”

“목숨값으로 산 집인데 이 정도는 돼야지.”

“닥치고 앉아. 그리고 이 수갑으로 직접 발목 묶어.”

녀석은 수갑 하나를 더 꺼내서 내게 넘겨주었다. 발목까지 수갑으로 채우면 내 손이 비교적 자유로워도 쉽게 도망치거나 헛짓거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양아치치곤 꽤 괜찮은 발상이다. 경계하는 태도도 나쁘지 않고.

“근데 그거 아냐? 원래 수갑 채울 땐 앞에서 채우는 게 아니라 뒤로 돌려서 채우는 거야.”

“뭐? 억?!”

퍼억!

녀석에게 건네받은 수갑으로 내 발목을 채우는 척 자세를 낮추면서 앞으로 튀어 나갔다. 갑작스러운 몸통 박치기에 당황한 녀석은 몽둥이를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고 벽에 박혔다. 쿵!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방음이 워낙 잘 된 집이라 아래층에선 잘 들리지 않았을 거다. 게다가 희미하게 ‘쿵’ 하는 소리 한 번 들렸다고 해서 자신들의 동료가 당했을 거란 생각은 어지간하면 하지 않겠지.

왜냐하면 나는 수갑을 찬 을이고, 이놈은 몽둥이를 들고 있는 갑의 입장이니까.

나는 놈의 복부를 들이받아 벽으로 밀친 다음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가슴과 배를 연달아 팔꿈치로 찍었다. 이러면 헛바람이 들어가고 호흡 곤란을 느끼는 탓에 아무리 아파도 비명을 내지르지 못한다.

허리를 굽힌 채 기침을 해 대는 놈의 뒷목을 잡고 아래로 끌어내리며 그대로 니킥을 차올렸다. 안면에 정타로 들어간 튼튼한 무릎은 그대로 놈의 코와 앞니를 뭉갰다. 고작 한 방으로 끝내면 비명을 지를 수도 있으니 몇 번 더 니킥을 쑤셔 박았다.

코피가 펑펑 터져 나오며 부러진 이빨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놈들도 처음부터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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