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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병의 아포칼립스-1화 (2/227)

1화 생존기 (1)

나는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정석대로 사는 재미없는 놈이었다.

깔끔하게 첫 수능으로 목표로 했던 인서울 대학에 붙고, 대학교 1학년 과정을 무사히 끝마치면 곧바로 입대해서 2학년부터 복학하는 스토리를 상상하며 그럴듯한 인생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내 인생 계획이 그럴싸했다는 걸 증명하듯 입대까지 별문제는 없었다. 훈련소 일정도, 자대 배치도, 부대 적응도 모두 완벽했다. 재미가 없을 정도로.

그런 내게 신이 노하기라도 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꼴보기 싫어서 엿이라도 먹여 주고 싶었던 걸까?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결국 미군의 북한 선제타격으로 인해 전면전이 발발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더 이상 정석적이고 계획적이며, 또 재미없지도 않게 되었다.

모든 것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뒤틀려 버렸고, 매일같이 어디선가 펑펑 터지고 누군가 죽어 나가는 나날이 지속된 것이다.

최전방에서 복무하며 눈코 뜰 새 없이 적들과 총탄을 주고받았는지라 퇴역 전까지 부모님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당시 나는 심신이 크게 지친 탓에 집에 편지를 보낼 생각도 못 했다. 보안 때문에 스마트폰도 모두 압류당했으니 현대의 무기로 무장한 원시인이 돼 버렸던 거다.

그렇게 아득바득 대한민국의 노예로 5년이라는 형기를 끝마치고 해방된 나는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경상남도 김해시를 찾았다.

김해는 대한민국 내에서도 손꼽힐 만큼 꽤 특이한 도시였다. 공장에만 출근하는 노동자와 그런 노동자들을 상대로 뭔가를 팔아먹는 상인들뿐인 창원만큼이나.

인구 50만이 넘는 도시이면서도 비교적 지가가 싸고, 지가가 싼 덕분에 공장이 제법 들어왔음에도 주변에 산과 강이 많아 그럭저럭 친환경적인 베드타운.

이 기괴한 남부 지방의 도시에서 나는 야트막한 산의 초입에 위치한 꽤 호화스러운 별장과 주변 땅을 구매했다. 그리고 이대로 베드타운 구석에 처박혀서 자연스럽게 시골 촌놈이 되자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난 지쳐 있었으니까.

군 장병을 위한 복지랍시고 영내에 임시로 개설해 둔 염병할 트라우마센터는 오지고 지리는 시간낭비였고,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먹으라고 준 약도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진짜배기 깡촌보단 적당히 주변에 있을 거 다 있는 곳에서 그저 조용히 살고 싶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극한의 가성비충이었던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그런 내가 오늘도 새벽 늦게 잠들어 오후에 눈뜨자마자 보게 된 것은 난장판이 된 TV였다.

정확히는 TV에서 송출되고 있는 저녁 뉴스의 긴급 속보 내용이 난장판이었다.

약 1년 전에 도망치듯 빠져나온 서울은 갑작스럽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집단 폭동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피칠갑을 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도망치는 사람들을 덮치더니…… 압사시킬 작정으로 너도나도 달려들어서 짓뭉개고 있었다.

고작 사람 한 명에게 수십 명이 달려드는 기괴한 광경이 놀랍게도 생중계로 송출되고 있었다.

나는 또 어느 기업이 임금 체불이라도 했나, 아니면 정부가 이상한 정책이라도 내놨나 싶어 피식 웃고 말았다.

한국은 데모와 시위의 국가라는 호칭답게 국민들이 열받으면 우르르 뛰쳐나오는 성향이 있다. 저렇게 사람들이 피칠갑을 할 정도로 격렬하게 때려 부수는 건 역사를 찾아봐도 전례가 없긴 하지만.

“역시 서울은 문제가 많다니까. 평시에도 지랄, 전시에도 지랄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야.”

전신에 피칠갑을 하고 뛰어다니는 시위꾼들은 공공방역법을 지킬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외출할 땐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법까지 어기고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들 만큼 뭔가 빡치는 일이 있었던 거겠지.

나는 아직도 단단하기 짝이 없는 복근을 벅벅 긁으며 하품을 했다.

서울에서 지랄이 났든 염병이 났든 오늘은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쓸 기분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뭐가 됐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니 기분이 다운되어 있을 땐 만병통치약 치킨을 먹으라는 유서 깊은 전통에 따라 오늘은 치킨을 시킬 거다. 감촉이 예사롭지 않은 소파에 앉아 편하게 누워서 치킨이나 뜯으면 현대판 황제나 다를 바 없다.

이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건아이자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적극 동조하는 나 이승권(나이 26세/무직/고졸)의 지엄한 결정이니 번복될 수 없으리라.

“오늘은 어디 치킨 시켜 먹지? 태식이 치킨 시켜서 배달기사한테 ‘나다 손님 새끼야’ 해 달라고 부탁해 볼까?”

아니면 양념치킨계의 전통 강자인 외갓집에서 주문해도 괜찮겠지. 대한민국의 전후 처리 및 사후 복구는 진즉에 끝나서 다시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에 요즘 치킨집들 서비스가 장난 아니다.

예전 같았으면 치킨 하나만 달랑 갖다주고 말았을 양반들이, 지금은 통일 대한민국에서 이름값 좀 높여 보겠다고 고객들을 진짜 상전처럼 받들고 있었다. 무려 1.25리터 콜라와 치즈볼이 무료 서비스라는 게 믿겨지는가?

어느새 배달 어플 VIP 고객이 된 나는 가장 주문이 많은 순으로 치킨 가게들을 정렬했다.

별점 높은 순, 최근 인기순, 광고 추천순 같은 건 맛집 탐색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무조건 주문이 많은 순으로 가게를 찾아야 한다. 개중에서도 이 지역 토박이로 유명한 가게들만 공략하다 보면 어느새 너도나도 맛집 마스터가 되는 거다.

독보적인 레드 디핑 소스를 졸여서 치킨옷에 입히는 닭잘알 고촌 치킨, 양념치킨계의 빛이자 소금이고 선구자인 외갓집 치킨, 그리고 떠오르는 신흥 강자 태식이 치킨.

고뇌하고 또 고뇌한 결과, 나는 가성비나 맛이나 부족함이 없는 태식이 치킨을 시키기로 했다. 실로 2026년 가을에 집구석에 처박혀서 넷플러스 보며 다리부터 뜯을 자격이 있는 치킨이다.

머지않아 종전 이후 첫 기념비적인 대명절 추석이 다가올 예정이지만, 나는 추석부터 크리스마스, 설날까지 모두 넷플러스와 함께할 것이다. 친하지도 않은 친척들과는 이미 서로 간의 연락도 끊어 버렸다.

배달 어플로 깔쌈하게 치킨 주문을 때려박은 다음, 얼음이 나오는 최신형 냉장고에서 갓 짜낸 신선한 냉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여전히 뉴스에선 앵커가 심각한 얼굴로 무어라고 떠들고 있었지만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밤늦게까지 보다만 드라마를 이어 볼 생각뿐이었다.

-지미, 가, 어서.

-사라……!

“쥐에에에에엔장! 믿고 있었다고!”

끝내 외계 괴물로 변해 버린 히로인이 온갖 트롤링 끝에 불사조가 되어 전남친을 차 버리고 새로운 남친을 찾기 위해 우주 저편 공허로 떠나는 역대급 엔딩.

나는 SF 미드 ‘우주전쟁’ 시즌 3을 마감하는 명장면에 눈물 어린 박수를 치며, 리뷰 평점에 별점 5개를 박았다.

세상에 이런 좆같은 것이 존재해선 안 되지만, 일단 존재한다는 걸 알아챈 이상 나만 알고 있을 순 없다. 공평하게 모두 함께 알아야지.

나보다 먼저 시즌3 엔딩을 본 놈들도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하나같이 별점 5개를 박아 둔 상태였다. 아예 대놓고 드라마 리뷰 코너에 ‘강력 추천!’, ‘마침내!’, ‘즐겁다!’ 같은 추천글을 써넣은 놈들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사랑스러운 폐기물 새끼들.

“……잠깐. 뭐가 좀 허전한데?”

언제든지 채널을 돌릴 수 있는 리모컨 OK, 내 목을 촉촉하게 적셔 주는 신선한 물 한 잔 OK, 커뮤니티에 뻘글을 싸지르기 위한 스마트폰 OK, 치킨도…….

“아니 미친! 공룡부터 퇴화를 시켜서 치킨을 만들어 오나?!”

평일 오후 늦은 시간에 주문이 밀릴 만큼 태식이 치킨이 인기가 많구나(X)

태식이 치킨이 날 병신으로 아는구나(O)

주문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2시간이 지난 뒤였다. 햇빛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던 청명한 가을 하늘은 어느덧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어 있었다.

내 치킨이 언제 만들어졌든, 어떤 배달 기사에 의해 배달되고 있든, 이미 차갑게 식어 딱딱하게 굳어 버린 음식물쓰레기로 전락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애꿎은 병사들만 북한 땅굴에 밀어넣는 별 4개따리였다면 벌써 치킨집에 미사일 투하를 진지하게 고려하고도 남았을 상황이다.

때아닌 폭우나 강풍이 불어닥치는 것도 아닌데 내 치킨의 행방은 명탐정도 해결할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 버렸다. 셜록 홈즈의 할애비가 와도 찾기 힘들지 않을까?

‘불쌍한 내 치킨은 지금쯤 배달 기사 놈 배 속에 들어갔겠지. 가게에 전화해서 진상 짓 좀 할까?’

가게 주인이야 사실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마는, 남의 치킨 먹고 튄 놈은 오리무중이니 가게 주인이라도 조져야 기분이 풀리지 않겠는가.

사실 반쯤은 2시간이 넘도록 치킨 냄새도 못 맡아 봤다는 사실이 열받아서 그러는 거다.

-현재 통화량이 폭주하여 정상적인 통화 연결이 어렵습니다.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

환불 요청을 위해 치킨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우습게도 내 전화는 가볍게 씹혔다. 지금이 새해복 많이 받으라거나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안부 전화, 문자가 전국적으로 돌아다닐 만큼 바쁜 날은 아니었다.

‘아, 설마 서울에서 일어난 폭동 때문인가?’

혹은 거기에 편승한 회색분자들의 테러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이 북한을 완전히 집어삼키고 완전하고도 불가역적인 통일 대한민국을 선언한 게 1년 전 일이지만, 여전히 국내에는 회색분자들이 남아 있었다.

돌아가신 수령님의 복수를 하겠다는 빨갱이부터, 통일 한국을 띠꺼워하는 주변 국가의 첩자, 대한민국이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폭삭 망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큰 피해를 입지 않아서 불만이었던 종말론자와 사이비종교 기타 등등.

나는 북한 영토에서 북한군을 죽이고, 민간인을 모아서 격리 구역에 보내고, 땅굴 찾아내면 부대원들과 다 같이 들어가서 소탕하는 일만 했던 사람이라 복잡한 국내 사정은 사실 잘 모른다.

그저 세계에서 치안 1위로 손꼽히던 대한민국에서 불법 무기와 폭발물을 활용한 테러가 이따금 터지고 있다는 사실만 뉴스로 접하고 있다.

혹시 내가 드라마에 푹 빠져 있던 사이에 대규모 폭동 말고 또 다른 일이 터졌나 싶어 다시 뉴스 채널로 돌렸다.

뉴스 채널마다 하나같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앵커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각기 다른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긴급 속보입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상 현상이 발발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교통 사고 폭증과 동시다발적인 폭동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또 한 번 변이를 일으켰다는…….

-갑작스럽게 폭력적 성향을 띠게 된 사람들은 이유 없이 주변 사람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경찰과 군이 긴급 출동하여 통제에 나서고 있지만 속수무책…….

-이 와중에 또 한 번 국내에서 테러가 발발했습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번화가에서 갑작스럽게 퍼진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스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가…….

-속보입니다. 조금 전 청와대에서 종전선언 이후 다시 선포될 일이 없을 것이라 장담했던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 여러분께서는…….

저 멀리서 귀를 찢을 듯이 울려 퍼지고 있는 사이렌, 각종 재난 경고 문자가 메시지함에 가득 쌓여 있는 내 스마트폰.

내 치킨의 행방이 어떻게 됐는지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을 만큼 과한 인구포화도를 자랑하는 대도시 서울에서 그 난리가 터졌으니 지방 분위기도 안 좋아진 거다.

배달 기사도 서울에서 한바탕 난리가 터졌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오늘 배달은 접고 마트나 백화점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다. 원래 국내 정세가 불안하면 국민들의 혼란과 사재기 행렬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법이니까.

어차피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치킨은 이제 됐다. 치킨 한 마리 못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뭘.

상남자는 원래 주방에 서지 않는 법이지만, 라면은 못 참지.

-현재 보건당국에서 들어온 소식통에 의하면 폭력적 성향을 띠는 사람의 체액을 통해 폭력적 성향이 전염될 수도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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