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0화 (1/227)

프롤로그

한반도에서 난데없이 터진 2차 남북전쟁, 북한은 1년이 되기도 전에 붕괴해 버렸지만 북한 전역에 남아 있는 땅굴과 그곳으로 숨어든 북한군을 모두 때려잡는 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5년이었다.

하필 내가 군 복무 중일 때 전쟁이 터졌는지라 무려 내 20대의 절반이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21세 군인이, 22세가 되면 만기 제대와 동시에 복학할 것이라는 부푼 꿈을 품고 있던 청년이, 무려 5년간 쥐새끼처럼 북한 땅굴을 들쑤시고 다녀야 했다.

이 참담한 현실이 믿겨지는가? 난 안 믿겨진다.

“후우…….”

사실 무엇보다 믿겨지지 않는 현실은 따로 있었다.

수도권의 피해는 북한의 장사정포에 포격을 당한 것치곤 비교적 적었다더니, 어처구니없게도 내 부모님은 ‘비교적 적은 피해’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필 두분께서 함께 외출 중이셨고, 미처 피난하는 게 늦으셨다고 한다.

여기서 더 놀랍고도 웃긴 사실은 내가 5년 동안 열심히 전장에서 뺑이치는 사이, 누구도 내게 이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는 거다. 사실이냐고? 놀랍게도 리얼 실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께선 국가 합동 장례식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셨고, 나는 장장 5년 만에 통일 대한민국 정부의 종전선언과 함께 퇴역하면서 고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부모님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위령비 앞, 합동 분향소에서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국가장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나는 뭘 하고 있었더라? 갑자기 터진 전쟁 때문에 벌벌 떨면서도 전장으로 내몰렸었지 아마? 내가 아니면 누가 우리 가족을 지키겠냐고 생각하면서.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네.”

“손님, 죄송하지만 여긴 공공장소라 필히 마스크를 착용하셔야 합니다.”

나는 옆에서 두눈을 부릅뜨고 주의를 주는 시설 관리인을 돌아보았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의 족쇄를 차고 있다가 오늘 막 풀려나서 이곳을 찾은 참이다.

5년 동안 온갖 못볼 꼴 다 보고 돌아온 내가 그놈의 병신 같은 마스크를 챙길 틈이 어딨겠나? 난 염병할 DMZ를 오늘 넘어왔다고.

“세상 참 웃긴 것 같지 않아요?”

“예?”

“아니, 웃기잖아요. 그놈의 씨부럴 전쟁은 나 같은 사람들이 뺑이 쳐서 완전히 끝내 버렸는데, 이 병신 같은 유행병은 내가 입대하기 전에도 있었는데, 퇴역한 후에도 있네? 그깟 바이러스를 못 잡아서 다들 6년 가까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래서야 목숨 걸고 전쟁을 끝낸 보람도 없네.”

“손님, 새로 개정된 공공방역법 때문에 마스크는 필히 착용해 주셔야 합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그놈의 마스크는 혼자 잘 쓰세요. 나는 마스크고 지랄이고 지금 개빡쳐서 다 죽여 버리고 싶으니까.”

기겁한 시설 관리인을 거칠게 밀쳐낸 나는 미련 없이 합동 분향소를 빠져나왔다.

무려 5년 만에 사회로 복귀한 내게 남은 것은 부모님이 생전에 미리 들어 두셨던 거액의 사망보험금, 그리고 부모님의 명의로 된 유산이 전부였다. 우리 집은 서울에서 사는 만큼 나름 유복한 가정이었다.

그 유복함도, 국가를 위해 아낌없이 팍팍 냈던 세금도 전쟁이나 유행병으로부터 국민들을 지켜 주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이래서 어르신들이 국가를 위해 몸 바칠 필요가 없다고 했던 거구나.’

일개 장병이라고는 하나, 부모의 부고 소식도 알려 주지 않고 5년이나 빡세게 부려먹은 군대와 정부에는 더 이상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제 와서 그게 불법이었다, 부당한 처사였다 하면서 법적 공방을 이어 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만사가 다 귀찮고 허무한 기분이었다.

사회로 복귀하면 다시 예전과 같은 평화롭고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건만, 그놈의 병신 같은 유행병은 변이에 변이를 거듭해서 이젠 인류와 영원히 함께하게 됐다는 모양이다.

나도 지금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으니 잠재적 위험자로 보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누구도 전장에서 구르고 있던 나를 배려해 주지 않았던 것처럼.

배려 받지 못한 내가 타인을 배려해 줘야 할 의무는 없다는 얘기다.

국방의 의무를 다한 시점에서 내 의무는 이미 끝났다.

“인생 혼자 산다는 말이 사실이었네.”

나는 서울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법조인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 명의로 되어 있던 유산을 모두 급처로 현금화하고 도망치듯 남부지방으로 내려갔다. 그 와중에 상속세는 또 만만찮게 뜯겼다.

지방으로 내려가 유유자적 퇴역병의 애프터라이프를 즐기며 벽에 똥칠할 때까지 놀고먹자고 생각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속보입니다.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COREX-19가 매우 급격한 변이를 일으켰으며,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몹시 흉포해졌다는…….

-미국발 소식입니다. 현재 감염자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며 비감염자를 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주 방위군이 대거 동원되었으며…….

-국내에서도 첫 변종 바이러스 감염자가 나타났습니다. 공항을 통해 해외에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감염자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정부가 종전선언 이후 더 이상 선포될 일이 없을 것이라 장담했던 비상계엄령이 다시 한번 선포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야! 문 막아! 스튜디오 안에 못 들어오게…… 아아아아악?!

“……제발 좀 쉬자.”

난 이미 퇴역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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