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9)

10

검은 개미는 귀찮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무슨 반응을 하든 더는 중요치 않았다. 자신이 이곳에서 미쳐 버린다고 해도 저 괴물은 눈도 깜짝하지 않을 테니까.

“알 중에 하나를 공주로 삼으면 되잖아.”

“그럴 순, 없다.”

“왜? 난 이미 알집을 네 개나 만들어 주었어. 수백의 수개미들이 있다고. 그런데 언제까지 내가 ‘여왕’이어야 해?”

“…….”

“약속을 지켜, 검은 개미.”

개인적인 복수심을, 사심을 여기에 끼워 넣지 마. 그런 뜻으로 노려보자 검은 개미는 뾰족한 손톱으로 턱을 긁적였다.

“딱히, 널, 괴롭히려는, 건, 아니야.”

“믿을 말을 하지 그래?”

“네가 산란한, 알은, 공주가, 될 수 없다. 새로운, 공주. 타 군락의, 개미가 필요해. 일족이 아닌 자의 피가. 그렇지 않으면, 일족은 약해진다.”

‘부모와 자식 간의 성교가 금지되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

인간 사회의 금기 중 하나인 근친혼. 그건 번식에 보다 본능적이고 민감한 충인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금기시되는 사항이었다.

요한나가 처음으로 공주의 혼롓날에 참여했을 때, 석굴 개미의 공격으로 괴멸 직전에 몰린 토굴 개미는 더는 위험을 무릅쓰고 혼롓날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족의 수개미들과 교미했던 거다.

아직 석굴 개미라는 위협이 존재하는 이상 혼례를 치르는 건 위험 부담이 존재한다. 즉, 알을 아무리 많이 낳는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거다. 새로운 공주를 세우는 건에 대해선.

“그럼 어떡해야 하는 건데?”

한풀 꺾인 요한나의 마른 얼굴을 내려다보며 검은 개미가 대꾸했다.

“석굴, 개미의 여왕이, 필요하다.”

“석굴 개미의 여왕?”

“그래. 그쪽에서, 우리의, 여왕을 죽였으니, 우리도, 보복을.”

여왕이라지만 요한나는 일족의 정보에 대해서는 어두웠다. 흰개미와 검은 개미는 그녀에게 일족의 일을 의논하지 않는다.

‘이놈들은 먼저 석굴 개미를 칠 생각이야.’

“조금, 더, 기다려.”

대책 없는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이라니. 조금이 대체 어느 정도인데.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알 수도 없다고.’

“그럼 대략적인 계획이라도 알려…….”

“잠깐.”

검은 개미가 홱 고개를 돌렸다.

“뭐야, 왜 그래?”

검은 개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둠에 묻힌 길고 긴 통로를 노려보기만 했다. 새카만 눈이 암흑으로 짙어지는 순간, 그가 토굴 방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요한나는 순식간에 사라진 그의 뒷모습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도 검은 개미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깨달았다.

“이건, 전투 페로몬?”

팔을 내려다보았다. 솜털이 꼿꼿하게 곤두서 있었다. 팔다리도 찌릿찌릿하다. 어딘가에서 수개미들이 전투 페로몬을 내뿜고 있었다. 흰개미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흰개미는 무심한 얼굴로 짤막하게 대꾸했다.

“침입자가 들어왔군.”

“침입자라고?”

그의 말을 되뇐 그녀의 머릿속에 일순 빛이 반짝였다. 입구를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움직이던 걸음이 마구 빨라졌다.

검은 개미가 움직일 때는 미동도 하지 않았던 흰개미는 요한나가 사라지자 즉시 그 뒤를 따랐다.

“헉, 헉…….”

요한나의 입술 새로 가쁜 숨이 흘러나왔다.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는 전투 페로몬을 홀린 듯이 따라간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미쳐 버릴 정도로 지루한 토굴의 일상에 생긴 변화다.

일꾼개미들이 말했던 타 군락의 적들이 쳐들어온 걸까?

뒤따라오는 흰개미를 흘끗했다.

‘석굴 개미는 강하다고 했어. 만약 토굴 개미들이 열세에 몰리게 된다면 흰개미도 도우러 가겠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을 신경 쓰는 눈은 별로 없을 거다.

‘검은 개미와 흰개미가 아니라면 여길 벗어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

아직 토굴의 입구가 어딘지 정확히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짐작이 가는 곳은 있다. 몸을 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곳으로 간다면.

‘여길 나갈 수 있는 건가.’

심장이 너무 뛰어서 숨 쉬기가 힘들다.

다행히도 전투 페로몬의 진원지는 가까이에 있었다. 소란이 인 곳은 통로 중간에 있는 광장이었다.

검은 개미가 광장의 입구 쪽에 우뚝 서 있었다. 요한나는 그의 뒷모습에 잠깐 시선을 주었다가 광장을 응시했다. 알을 품에 안은 일꾼개미들이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침입자가 습격하면 일꾼개미들은 가장 먼저 알과 유충을 보호한다.

‘침입자가 있기는 있나 본데.’

주변을 두리번거린 요한나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보이는 건 토굴 개미뿐이었다. 석굴 개미가 침입한 게 아닌 건가?

“어디에 침입자가 있다는 거야?”

“…….”

“아무도 없잖아.”

“있다.”

흰개미가 손을 뻗었다. 요한나는 하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침입자를 발견했다.

“한 명?”

‘그건’ 우글우글하게 모여든 일꾼개미들 사이에 있었다. 정확하게는 깔려 있다. 길쭉하게 찢어진 눈이 온통 까만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코와 가릉거리는 입술 사이로 검은 개미처럼 날카로운 이형의 이빨이 보였다.

일꾼개미들과 수개미들이 ‘그것’을 깨물고 독한 개미산을 쏘아 댔다. 하지만 아무런 타격도 없는 듯했다. 그저 성가시다는 듯 시야를 방해하는 일꾼개미의 목을 물고 뒤로 던졌다. 가볍게 던졌을 뿐인데 일꾼개미는 비명을 지르면서 허망하게 날아갔다.

‘강해.’

요한나는 긴장했다. 그것, 아니 그녀에게서 위험한 ‘맹수’의 냄새가 났다.

그녀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 건 당연했다. 페로몬이 토굴 개미들의 것과 흡사했다.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에 약간 충격받은 요한나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내가 언제부터 시각보다 후각에 의존하게 됐지?’

한 손으로 머리를 짚은 채 침입자를 노려보았다. 지금은, 지금은 거기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토굴 개미인 건가? 하지만 생김새가 다른데.”

“탈의, 여왕이다.”

몇 발자국 앞서 있는 검은 개미의 등을 응시했다.

“탈의 여왕?”

“그녀는, 페로몬을, 복제하여, 군락에, 침입하지.”

“왜 그런 짓을 하는 건데?”

“군락을, 갖기, 위해.”

“…….”

“그녀는 다른, 군락의, 여왕을, 죽이고, 그 페로몬을 흡수, 해.”

그런 게 있다고?

“원래는, 장군, 개미, 선에서, 처리되지만.”

“…….”

“탈의, 여왕이, 강할, 경우, 문제다.”

“기존의 여왕을 공격하기 때문에?”

검은 개미가 고개를 돌렸다. 살짝 드러난 검은 동공이 방금 보았던 그것, 탈의 여왕과 비슷해 보였다. 굳어진 요한나를 향해 검은 개미가 히죽 웃었다.

“그것도, 있지만.”

“…….”

“이탈자가, 생긴다.”

“…….”

“개미는, 강한, 여왕을, 따라.”

그 말에 문제가 무엇인지 금세 깨달았다.

토굴 개미의 페로몬을 뿜는 강한 침입자. 일족 내에서 따르는 자가 생긴다면 일어날 문제점은.

‘분열.’

그러나 남의 일인 것처럼 위기의식이 들지 않는다. 심드렁하게 반박했다.

“아무리 페로몬을 복제한다고 해도, 자기 동료를 죽인 녀석을 따를 리가 없잖아.”

개미들은 충인답게 본능적이나 얍삽하지는 않았다. 배신이란 말과 가장 거리가 먼 충인이 있다면 그게 바로 개미일 거다.

“아니.”

탈의 여왕을 지켜보던 흰개미가 입을 열었다.

“죽이지, 않는다.”

“…….”

“잘 봐.”

요한나는 그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탈의 여왕이 또 여러 명의 일꾼개미를 공격하여 날려 버리고 있었다.

‘뭘 잘 보라는 거야?’

하나 흰개미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고 탈의 여왕을 유심히 관찰했다. 목덜미를 물어뜯자 체액이 튄다. 하지만 뒤로 나뒹군 개미 중에 움직이지 못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비틀거리기는 하나 생명의 위험은 없어 보였다.

요한나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목만 물고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 뿐이야. 어째서?’

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자기 군대가 될 거라서?”

“그래. 저 탈의, 여왕은, 만만치, 않아. 노련하군.”

검은 개미의 목소리에 짙게 배어든 흥미. 요한나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무언가를 찾는 듯 까만 동공을 쉴 새 없이 움직이던 탈의 여왕이 그들이 있는 쪽에서 고갯짓을 멈추었다. 쉼 없이 경련하던 눈알이 진정되고, 초점이 또렷해졌다.

“온다.”

검은 개미의 태평한 말이 경각심을 일깨웠다. 동시에 깨달았다. 검은 개미는 지금 침입자와 자신을 저울질하고 있다.

‘어차피 날 대신할 여왕이 필요하다 이거지.’

탈의 여왕이 그녀를 죽이고 페로몬을 흡수하여 새로운 여왕이 된다고 해도, 일족은 손해 볼 게 없었다.

‘나는 이들이 소중하게 지켜야 할 진정한 여왕이 아니야.’

목표물을 포착한 탈의 여왕이 저를 억누르는 일꾼개미들을 무서운 속도로 쫓아냈다.

끼엑, 끼엑!

전투 능력을 상실한 일꾼개미들이 탈의 여왕 뒤로 산더미같이 늘어난다.

요한나는 주먹을 쥐고 한 발을 뒤로 물렸다. 탈의 여왕이 덮쳐 오더라도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는 자세였다. 그 상태로 양옆을 힐끗했다.

검은 개미는 물론이거니와 흰개미도 미동이 없었다. 가설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피가 식는다.

‘칫, 여기서 버려질 줄 알고?’

“크아아아아!”

탈의 여왕이 달려들었다. 등 뒤에 두 마리의 일꾼개미들이 달라붙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온다. 충인 둘을 매달았는데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정면으로 맞서면 위험해.’

솔직히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요한나는 재빨리 판단을 수정하여 발밑에 떨어진 돌멩이를 집어 지체하지 않고 던졌다. 돌멩이를 집고 던지기까지 걸린 속도는 찰나.

“키약!”

흉기가 된 돌멩이가 여왕의 눈 사이 넓은 미간을 정확히 강타했다. 괴로워하는 탈의 여왕을 보는 요한나의 눈이 반짝였다.

기회다.

충격에서 벗어난 탈의 여왕이 달려들기 전에 먼저 달려들었다.

퍽!

목을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명치를 쳤다. 인간으로 치면 사혈인 부분이었지만 충인에게는 다소의 충격이 있을 뿐이다. 심장을 터뜨리거나 목을 뽑는 게 가장 이상적인 처리 방식이지만, 무기가 없는 지금 그들의 단단한 피부를 손으로 뚫을 수는 없었다.

‘힘을 주어 목을 비트는 게 이 상황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

바로 두 손으로 목을 붙잡고 돌리려는데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크…… 크르, 크…… 윽.”

요한나의 힘에 저항하는 탈의 여왕이 그녀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까득까득. 이빨을 가는 소리가 선명했다.

이를 악물고 손에 힘을 주었다. 악력은 자신 있었으나 목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간과 명치를 얻어맞아 충격이 클 텐데도 이 정도의 저항이라니, 과연 단신으로 군락을 침입할 만했다.

하지만 그래도.

‘흰개미보단, 약해!’

요한나의 눈에 불길이 솟았다. 여왕이 되고 한층 매끄러워진 팔뚝에 근육이 불거졌다.

끼긱.

목에 달라붙은 갑각 표피가 벌어지는 소리가 났다. 탈의 여왕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질렀다.

요한나는 단단한 개미의 피부를 파고들듯 손가락을 세웠다. 탈의 여왕이 입을 벌리자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어차피 닿지도 않을 거, 무의미한 저항일 뿐. 그렇게 생각했던 요한나는 벌어진 입 사이로 튀어나오는 액체에 깜짝 놀랐다. 액체가 튄 손목이 타는 것처럼 아팠다.

“흐윽…….”

‘개미산!’

강력한 턱과 함께 가장 강한 개미의 무기. 개미 충인을 상대한 경험이 적은 요한나에겐 낯선 무기였다.

얕보기에는 피해를 무시할 수 없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살갗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힘이 빠진 찰나를 탈의 여왕은 놓치지 않았다.

탈의 여왕이 요한나보다 반 배는 큰 손을 들어 턱을 움켜쥐었다.

“여왕, 위험, 위험!”

수세에 몰린 요한나를 확인한 일꾼개미들이 탈의 여왕에게 달라붙어 팔다리를 물어뜯었지만, 탈의 여왕은 그들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고 요한나의 턱을 비틀어 버리는 데만 집중했다.

그녀는 알고 있는 거다. 토굴 개미의 여왕만 죽인다면 상황은 종료된다는 걸.

‘아파.’

요한나는 입을 다물려고 했으나 탈의 여왕이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입이 벌어진다면 그대로 턱을 뜯길 것이다.

순식간에 상황이 불리해졌다. 우선 손부터 떼어 놓고자 손목을 움켜쥐었다. 요한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슨, 힘이……!’

탈의 여왕은 몇 마리나 되는 일꾼개미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점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진다. 개미산을 정통으로 맞은 손목이 욱신거리고 피부는 화끈거렸다. 탈의 여왕이 틀어쥔 턱은 얼얼해서 감각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얼굴이 뜯길 거야.’

목이 몸통에서 분리되는 모습이 뇌리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익!”

두 손을 모두 사용해서 탈의 여왕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일순 턱을 붙잡은 손에서 힘이 빠졌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머리채가 잡혔다. 손목을 떼어 놓는 데만도 벅찬 상황에 설상가상이다. 머리가 뜯어질 것 같은 고통에 속으로 욕설을 짓씹었다.

탈의 여왕은 천천히, 그러나 악착같이 요한나의 입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검지와 중지가 입 안으로 들어가고 엄지가 턱관절을 눌렀다. 턱을 잡아 뜯기에 딱 좋은 위치.

위험,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엄청난 통증이 밀어닥쳤다.

죽는다!

머릿속이 까맣게 변하는 찰나.

“꺄아아아아아악!”

머리를 잡아 뜯던 힘이 약해졌다. 재빨리 탈의 여왕의 손에서 빠져나온 요한나는 두 손으로 턱을 움켜쥐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안면을 굳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몸 상태를 살피는 대신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한 손으로 탈의 여왕의 목을 틀어쥔 흰개미가 보였다. 목을 움직일 수 없게끔 완벽히 붙잡은 채 들어 올리자 탈의 여왕이 허공에서 다리를 버둥거렸다. 악착같이 달려들던 악귀의 모습은 어디 가고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가련했다.

“키, 키야아아악!”

요한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많은 일꾼개미가 달라붙어도 어찌하지 못했던 탈의 여왕이 흰개미의 손에서는 마치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처럼 사정없이 흔들린다. 약이 오른 탈의 여왕이 손톱을 세워 흰개미의 손목을 긁었다.

치잉!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흰개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손목도 상처 없이 매끄러웠다. 당황한 탈의 여왕이 다시 한번 팔을 휘두르자 흰개미가 그녀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잡아 뽑았다.

“끼…….”

비릿한 체액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끼에에에에에엑!”

탈의 여왕이 입을 크게 벌리고 고통스럽게 울었다.

“끼에에에에!”

처절한 비명이 들리지도 않는 듯 흰개미가 다른 쪽 팔을 잡아 뜯었다. 무심한 얼굴은 마치 사냥이라도 하는 듯했다.

“끼야아아아악!”

“시끄, 러워.”

흰개미가 탈의 여왕의 어깨를 붙잡았다. 입에 거품을 문 탈의 여왕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가 떠올랐다. 토굴 개미들에게 맞섰을 때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나약한 눈빛에 요한나의 어깨가 굳어졌다.

“살, 살려 줘…….”

“어째서?”

“나, 날 죽일 것까지는 없잖아.”

“그럴 것까진, 없다니.”

흰개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요한나를 다치게, 했잖아.”

여상히 말하고는 한 손으로 어깨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목을 뽑았다.

목을, 뽑았다.

땅에서 무를 뽑는 것처럼 간단하게 뽑힌 머리에서 체액이 폭포수처럼 흘렀다. 요한나의 시선이 떨어지는 체액에 닿았다.

흰개미는 일꾼개미들을 향해 머리를 잃은 몸통을 던졌다.

“멀리 떨어진, 곳에다, 버리고 와.”

요한나는 멍한 얼굴을 들었다.

‘내가 언제 앉았던 거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다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흠, 조금, 아깝나.”

검은 개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한나는 그에게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빳빳해진 목덜미에 소름이 촘촘히 돋아 있었다.

일꾼개미에게 탈의 여왕 시체를 맡긴 흰개미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움찔.

흰개미가 눈썹을 미묘하게 치켜올리고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요한나는 그가 제 손목을 눈앞에까지 가져가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보았다. 손이 저렸다. 그에게 잡힌 부분만 피가 돌지 않는 것처럼.

요한나의 손목을 유심히 살핀 흰개미가 툭 뱉었다.

“빨개.”

그러더니 손목을 핥았다. 달아오른 피부에 닿는 타액은 따가우면서도 시원했다.

* * *

야심만만하게 침입한 탈의 여왕이 그렇게 가고 일주일이 흘렀다. 요한나는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새로운 공주가 필요해. 그 공주가 알을 낳으면, 더는 내가 필요 없을 거야. 군대도 이제 얼추 준비되었을 거고. 검은 개미는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며칠 동안 털끝도 보이지 않잖아. 토굴 밖으로 나간 게 분명한데.’

무슨 일인지 검은 개미가 신경을 긁지 않은 요즈음이다. 잘됐다 싶어 요한나는 틈만 나면 계획을 짜고, 폐기하고, 시뮬레이션했다.

‘석굴 개미에 대한 적개심을 생각해 보면.’

끊임없이.

‘그래. 석굴 개미 군락을 습격하겠구나.’

문득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고개를 들자 일꾼개미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입을 가리고 속닥거리는 그들의 얼굴에서 설명할 수 없는 들뜬 분위기가 전해져 왔다.

“무슨 일이야?”

“헉!”

요한나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자 일꾼개미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인간과 달리 서툴기 짝이 없는 일꾼개미들은 태연한 척을 하지도 못했다.

서로의 눈치만 흘끗흘끗 보는 것을 확인한 요한나가 저보다 키가 작은 일꾼개미의 어깨에 턱, 손을 올렸다.

“뭔데. 5초 안에 말해.”

“그, 그게…….”

그녀의 눈빛에 한기가 돌자 어깨를 내준 일꾼개미는 울상을 지었다.

이윽고 그가 꺼낸 말은 놀랍기 짝이 없었다.

“검은 개미가, 공주를, 잡아, 왔다.”

* * *

검은 개미의 토굴 방까지 한달음에 뛰어간 요한나는 들어가기 전 벽에 손을 올린 채 헐떡였다. 전속력으로 달려왔기 때문에 숨이 부족했다. 그때 머리 위로 목소리가 떨어져 내린다.

“어디 가?”

흰개미였다.

숨을 고르는 그녀와 대비되게 얄밉도록 평온한 얼굴이다.

‘어디 있다 갑자기 나타난 거야?’

요한나는 흰개미의 태평한 얼굴을 잠시 보다가 이럴 때가 아니다 싶어 토굴 방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조급해하는 그녀의 뒤를 흰개미가 어슬렁어슬렁 따라왔다.

검은 개미의 토굴 방은 평소와 달리 소란스러웠다.

“진짜, 진짜다.”

“검은 개미가, 건강한, 공주를, 찾아, 왔어.”

“새로운, 공주.”

당사자인 검은 개미는 장군 개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아담한 체구의 암컷 개미가 그의 손을 잡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천 자락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은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가슴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충인답게 그걸 신경 쓰며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검은 개미가 데리고 온 그녀는 소녀와 처녀의 경계에 서 있었다.

요한나는 빠르게 그녀를 살폈다. 자신보다 덩치가 작지만 까맣고 큰 동공에 약간 불그스름한 피부, 낯설지만 풋풋한 페로몬까지, 자신과 달리 완전한 암컷 충인이다.

검은 개미가 군대를 끌고 석굴 개미의 군락을 습격했고, 공주를 납치해 왔다는 일꾼개미의 말은 사실이었다.

요한나는 몸을 떨었다. 뒤늦게 그녀의 존재를 알아챈 개미들이 웅성거렸다. 그녀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화가 난 요한나가 어린 공주를 해칠까 봐 걱정하는 기색이다. 하나 그녀의 몸이 떨리는 건 그런 하찮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드디어…….’

두 눈에 환희의 기색이 떠오른다.

드디어, 끝이 왔어.

그 생각에만 사로잡혀 요한나는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흰개미. 그가 눈가를 부들부들 떨며 감격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 * *

새로운 공주가 토굴에 정착한 지 3일. 암굴에 노성이 터져 나왔다.

“어째서? 어째서 아직 안 된다는 거야?”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요지부동인 흰개미의 무심한 얼굴을 보니 속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요한나는 간절하게 호소했다.

“공주가 생겼잖아. 이제 난 필요 없는 거잖아. 토굴의 입구를 알려 줘. 내가 알아서 나갈게. 너희들이 신경 쓰지 않도록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

“듣고 있어? 야, 흰개미!”

급기야 눈을 감는 흰개미를 보자 살심이 치솟는다. 얼마 남지 않은 인내심을 갈퀴로 긁어모아 목소리를 억눌렀다.

“이유라도 말해.”

1년, 아니면 그 이상 걸릴지 모를 날을 내내 기다렸다. 오늘을 위한 인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흰개미의 이해 못 할 태도도 몇 번이나 참아 냈으나, 고지가 눈앞에 있는 지금은 도통 참을성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간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어.’

당장이라도 주먹을 뻗고 싶은 마음을 꾹꾹 밟으며 말했다.

“어째서냐고.”

벌써 몇 번째 묻는 건가. 하나 흰개미는 이번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요한나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좋아. 그럼 내 발로 알아서 찾아 나갈게. 알려 주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몸을 돌린 요한나는 어느새 입구를 막고 있는 흰개미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둘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흐른다. 한참 동안 말 없는 대치가 이어졌다.

“비켜.”

“싫어.”

“어째서?”

흰개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질문을 이해하고 싶다는 듯이. 그가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여 시선이 붉은빛 입술에 고정되었다. 마침내 흰개미가 입을 열었다.

“이유가, 중요해?”

“하, 너 지금 장난하니?”

그가 서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냥 싫어.”

“그게 뭐야……?”

요한나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한계다. 아슬아슬했던 인내심이 뚝 꺾였다.

“넌 진짜, 이게 장난으로 보여? 너 같은 괴물 새끼와 지금까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아, 그래. 됐어.”

검지를 들어 그의 가슴을 가리켰다.

“넌 이거만 알면 돼. 너희들은 내게 알을 낳아 주면 1년 뒤에 내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나는 약속을 지켰어. 봐. 군대가 만들어졌고, 또 날 대신할 공주도 생겼어. 검은 개미도 날 붙잡지 않는다고 했어.”

“…….”

“그러니까 비켜.”

흰개미는 가만히 서 있었다.

이해는 한 걸까?

‘그렇겠지. 머리는 좋은 놈이니.’

이대로 그를 밀치고 가면 어떨까. 잠시 그를 살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냥 서 있는 것 같아도 빈틈이 없다. 무슨 변덕을 부리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예나 지금이나 힘으로는 흰개미를 억누를 수 없다.

흰개미의 투명하게 붉은 눈은 시종 요한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저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그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괴물의 생각은 이해하기 힘들어서 더 꺼림칙하다.

“비키라고 했잖아.”

“아직.”

“뭐?”

쉰 목소리가 나직하게 흘러나온다.

“아직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

그가 성큼, 한 걸음을 뗐다.

쾅!

요한나는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뜨자 흰개미가 몸을 올라타고 있었다. 옷이 벗겨져 시린 기운이 살갗을 타고 흘러들었다.

“뭐…….”

“…….”

“뭐 하는 거야?”

차가운 손이 봉긋한 가슴을 주물렀다. 소름이 돋았다. 즉각 그의 손목을 쳐 내고 딱딱한 가슴팍을 밀자 흰개미가 귀찮다는 듯이 그녀의 양손을 붙잡아 머리 위로 올렸다.

“뭐 하는 거냐고!”

“시끄러워, 요한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가면 같은 표정. 눈동자와 함께 유일하게 색을 띤 붉은 입술이 눈을 파고들었다.

요한나의 손을 결박한 채 고개를 숙인 흰개미가 입술을 벌려 도톰한 정점을 빨아들였다.

“흰개미!”

“이렇게, 하면, 좋아, 하잖아.”

그가 웅얼대며 혀를 내밀었다. 입술처럼 붉은 혀가 가슴의 살결과 색 옅은 유두를 한꺼번에 훑어 올렸다. 요한나는 화가 나서 붉어진 눈가에 힘을 주고 억누른 목소리로 뇌까렸다.

“그만하고 꺼져.”

“아직, 안 좋은가?”

입을 대지 않은 유두를 손가락으로 둥글리며 흰개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요한나의 겨드랑이에 입술을 묻었다. 체모가 적어 보들보들한 겨드랑이에 닿는 차가운 입술. 요한나의 등줄기가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네가 가장 민감한, 곳이지.”

단조로운 톤에 울컥 분노가 치밀었다.

“어디가 민감하다는 거, 읏!”

쓸데없는 소리는 나누고 싶지 않다는 듯 흰개미가 입을 벌려 겨드랑이를 깨물었다. 이빨이 직접적으로 닿지는 않아도 입술 사이에 뭉개진 부드러운 살이 욱신거렸다.

문득 흰개미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요한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에게서 눅진한 체취가 맡아졌다. 개미 특유의 교미 페로몬이다. 반사적으로 다리가 벌어지려고 든다. 황급히 다리에 힘을 준 요한나의 두 눈에 분노가 스몄다.

“너 미쳤어?”

경악하는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흰개미가 대충 걸치고 있던 흰 모피를 끌어 내린다. 지방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근육질의 딱딱한 육체가 드러났다.

돌연변이인 그는 갑각 표피로 덮인 부위도 적어 언뜻 보아서는 인간과 구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귀신이라면 모를까.

흰개미가 이미 곧추선 성기를 한 손으로 훑었다.

“봐, 요한나. 딱딱, 해졌어.”

“저리 치워!”

온통 하얀 주제에 그곳만큼은 검붉은 색을 띤다. 요한나는 진저리를 쳤다. 징그럽다. 징그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흰개미는 오만상을 찡그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눈이 약간 짙어졌다.

그가 다리를 벌리려 하자 요한나는 안간힘을 쓰며 허벅지를 붙였다.

“다리 벌려.”

“싫…….”

“그래 봤자 소용, 없어.”

평온한 말투와 달리 허벅지를 벌리는 힘은 우악스럽기 짝이 없었다. 형편없이 벌어지는 다리를 본 요한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흰개미는 익숙하게 성기를 그녀의 구멍에 조준하고, 그대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어찌나 느린지, 신경이 양초인 양 타들어 간다. 흰개미는 오연한 시선으로 그녀를 지켜본다. 마치 자신의 성기가 어디까지 들어가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끼라는 듯.

“아……!”

시시각각 벌어지는 질 벽의 감각. 요한나는 입을 벌렸다. 소리가 목 안쪽에서 맴돌았다. 교미가 이제 뭐 별거인가. 얼마나 했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인데, 능숙하게 움직이는 흰개미와 달리 요한나는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기가 버거웠다. 흰개미의 것은 괴물같이 크고 두꺼웠다. 행위 후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것만이 그나마 나아진 점일까.

“그, 만…… 아으.”

숨이 막힌다.

요한나의 턱에 흐르는 침을 핥고, 그녀의 입가에 키스했다.

마침내 흰개미가 뿌리까지 성기를 쑤셔 넣었다. 요한나는 작살에 찔린 물고기처럼 팔다리를 파들거렸다. 그가 허리를 움찔거렸다. 성기를 얕게 빼고, 그대로 다시 끝까지 집어넣는다. 그러기를 반복하자 질에서 흘러나온 애액이 성기를 매끄럽게 감쌌다.

쯔걱쯔걱.

교미 페로몬이 빠르게 풀려난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줄고 대신 간질거리는 감각이 피어올랐다.

“아, 으으, 헉.”

흰개미는 활짝 열린 요한나의 겨드랑이를 혀로 핥고 입술로 빨아들였다. 그녀의 피부는 튼튼하고 두꺼웠지만, 반복적인 흡입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마침내 겨드랑이 안쪽에 낙인 같은 순흔이 새겨졌다.

“내보내지, 않을 거야.”

부릅뜬 눈에 투명한 눈물이 방울져 흘렀다.

하아, 하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허리를 흔들흔들 움직이며 흰개미가 물었다.

“요한나, 좋아?”

그녀의 눈에 날이 섰다.

“……좋, 겠어?”

“…….”

“이 미친 괴물 새끼야.”

치뜬 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흰개미는 대뜸 손바닥 밑부분으로 클리토리스를 문질렀다. 무식하게 짓뭉개는 게 아니라 강약을 조절하며 자극하는 손놀림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색기를 띠었다.

“요한나, 좋아?”

“하나도, 윽, 안 좋아.”

눈빛에 칼을 담을 수 있다면 그는 진즉 난도질을 당했을 터였다.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는 그녀의 시선에 흰개미는 허리를 뒤로 뺐다가 강하게 쳐올렸다.

푹!

인간보다 두껍고 단단한 성기가 질 벽을 세게 때린다. 억, 입을 벌린 채 파르르 경련하는 요한나를 보며 흰개미도 허리를 떨었다. 울컥거리며 끈끈한 사정액이 그녀의 질을 빠듯하게 채웠다. 요한나의 젖은 눈매가 한층 흐무러졌다.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비켜…….”

“…….”

“흰개미?”

말없이 한쪽 허벅지를 들어 올리자 그녀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아, 안 돼.”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 아으…….”

“계속, 서, 있잖아. 자지.”

쑤걱쑤걱. 쯔억……. 흰개미가 성기를 반쯤 빼내었다. 안쪽에서 흐르는 액체가 느껴졌다. 애액보다 농밀하고 끈적거리는 흰개미의 사정액이었다. 요한나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흰개미는 다리를 그녀의 배에 닿도록 밀어붙이고 허리 짓을 했다. 말처럼 탄탄한 그녀의 근육질 종아리를 입으로 가져가 잘근잘근 깨물었다. 간혹 이빨로 깨물 때면 요한나가 팔을 바르작거렸다. 흰개미가 붙들고 있어 저항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흐읏…….”

흰개미가 허리를 부르르 떨었다. 한 차례 더 사정하고도 그녀에게서 성기를 빼내지 않았다.

잠깐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빠졌을 때, 틈을 놓치지 않고 도망가려는 요한나의 머리채를 붙들고 이번에는 그녀를 엎드리게 했다.

“잠깐, 아!”

엉덩이만 올린 채 빠끔 벌어진 구멍에 미끄러지듯 삽입했다. 질금질금 흐르는 정액처럼 사그라졌던 쾌감이 다시금 하체를 쿡쿡 찔러 댔다. 목을 젖힌 요한나가 답답한 신음을 흘렸다.

“으, 아으…….”

흰개미가 그녀의 드러난 목덜미를 입술로 잘근잘근 물었다. 기어서라도 벗어나겠다는 듯 요한나가 팔로 엉금엉금 움직였지만 얼마 가지도 못하고 엉덩이가 잡혀 끌려갔다.

흰개미는 그녀의 탄탄한 엉덩이를 양손으로 붙잡고 세게 박았다. 안쪽이 찡, 하고 울리는 감각에 요한나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갈 수 없어.”

이놈이 저주도 할 줄 알던가?

굳은 그녀의 등을 감싸듯이 몸을 붙이고 흰개미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갈라진 부분 위에 달린 도톰한 클리토리스를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매만졌다.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단단한 개미의 머리통을 부술 수 있는 손이 깃털처럼 나긋하게 움직이며 그녀의 성기를 자극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들바들 떨리는 허벅지를 느낀 흰개미의 입술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제발, 제발 그만해…….”

그녀의 불안은 틀리지 않았다. 흰개미는 몇 차례 사정했음에도 전혀 그녀에게서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뒤로 하는 자세로도 세 번은 사정한 것 같았다. 어찌나 해 댔는지 바닥과 마찰한 무릎은 감각조차 없었다.

도저히 다리를 세우지 못하자 그제야 그녀의 빨개진 무릎을 발견한 흰개미는 그녀를 옆으로 눕히고 그녀의 등에 가슴을 붙인 채 삽입했다.

“윽, 윽…….”

“요한나, 좋아?”

“…….”

손등으로 입을 막은 손을 치우며 흰개미가 빨갛게 얼룩덜룩한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요한나, 좋아?”

“닥쳐, 괴물 새끼야.”

요한나가 쉰 목소리로 대꾸했다. 전혀 꺾이지 않은 살의와 달리 몸뚱이는 흰개미의 움직임에 따라 인형처럼 흔들거렸다. 여전히 흉흉하게 달아오른 성기가 잔뜩 젖은 음부에서 들락날락했다. 맞닿은 부위 주위로 거품이 인 흰 액체가 뚝뚝 떨어진다.

점액질을 손바닥 가득 묻혀 요한나의 아랫배를 문지르고, 이어 가슴을 주물렀다. 늘씬한 근육질의 몸은 어디랄 것 없이 교미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숨을 가득 몰아쉰 흰개미의 눈매가 만족스럽게 가늘어졌다.

그러고도 몇 번을 더 사정한 흰개미가 축 늘어진 요한나에게서 자지를 뽑아냈다. 요한나는 옆으로 누운 그대로 새액새액 숨을 몰아쉬었다. 흰개미는 지친 기색이 가득한 그녀를 흘끗하고는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늘어진 허벅지 사이에 제 다리를 집어넣자 그녀의 다리가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탈피하며 극도로 줄어든 거웃은 백탁액으로 흠뻑 젖었고, 음부의 갈라진 틈을 타고 덩어리진 액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아직도 후끈거리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음부를 본 흰개미의 뺨에 옅은 홍조가 올라왔다.

그는 두 손가락으로 구멍을 벌리고 안을 휘저었다. 몇 번 휘젓지도 않았는데 안쪽에서 울컥거리며 희끄무레한 정액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원인 모를 갈증이 인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교미 후 뒤처리를 위해 대기한 일꾼개미가 부드러운 나뭇잎을 들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요한나에게 못 박혀 있었다. 코가 아릴 정도로 짙은 요한나의 페로몬에 넋이 나간 얼굴이다.

흰개미가 차가운 눈으로 일꾼개미를 노려보았다. 칼날 같은 살기가 피부를 찌른다. 일꾼개미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와들와들 떨던 일꾼개미는 곧 도망치듯 자리를 비켰다.

흰개미는 흥, 코웃음을 치고는 요한나의 붉어진 목덜미에 입을 묻고 등에 가슴을 딱 붙였다. 문득 그녀의 어깨가 진동했다.

“……알이 부족한 거야?”

그의 눈이 반짝 뜨였다. 요한나가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반대쪽 벽까지 걸어갔다. 흰개미는 텅 빈 품을 힐끗하고 자리에 멀뚱히 앉았다.

벽에 등을 대자마자 주룩 미끄러진 요한나가 중얼거렸다. 힘없이 고개를 떨군 그녀에게서 지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얼마나 더 낳아 줘야 하는데?”

“…….”

“대답해. 네가 말한 1년은 이미 지났잖아.”

흰개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가 벌떡 일어났다. 요한나는 지친 와중에도 그를 필사적으로 노려보았다. 이런 식의 강제적인 교미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따위 행위로는 그녀를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

‘난 무너지지 않아. 지지 않아.’

흰개미는 제게서 멀어진 요한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울긋불긋한 피부에 체액으로 범벅이 된 꼴인데도 금세 저렇게 멀어지고 만다. 방금까지는 이 품에 안겨 헉헉댔으면서.

“씻을 물을, 가져오지.”

“죽어 버려.”

“…….”

“죽여 버릴 거야!”

요한나는 미친 사람처럼 흰개미의 등 뒤에 대고 악을 질렀다. 바닥을 짚은 손에 돌멩이가 잡혔다. 요한나는 뾰족한 돌멩이를 힘껏 붙잡았다. 날카로운 끄트머리가 손바닥을 꿰뚫었다. 예리한 통증이 정신을 일깨웠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흔들흔들. 무력하게 흔들리는 육신이 남의 것처럼 느껴졌다. 요한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깜박거렸다. 다리 사이가 쓰라리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열중하고 있는 흰개미가 보였다. 그것을 보자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 그래. 흰개미의 손에 끌려왔지.’

탈출을 시도하려고 했다. 계속 여기가 입구일 거라고 생각했던 구역으로 나아갔다. 웬일인지 개미들은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아서, 길은 복잡할지언정 움직이는 건 수월했다.

‘분명히 맡았어. 신선한 공기의 냄새.’

입구가 가까이에 있다.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찰나에 시야가 차단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암굴이었고, 흰개미의 품이었다. 그는 다른 때보다도 집요하고 거칠게 아래를 파헤쳐 댔다. 화가 난 건가 했지만, 그의 감정 따위에 신경 쓰는 건 심력 낭비였다.

욱신. 머리가 아프다. 발밑엔 바닥이 없다. 끝도 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불쾌한 부유감에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거 하나만은 뚜렷했다.

나갈 수 있었는데.

실패했다.

흰개미가 날 또 방해하는구나.

이 괴물 놈이 또…….

“헉, 요, 한나, 아.”

“…….”

“아, 하아, 좋아.”

흰개미가 입을 맞추었다. 헐떡거리는 그 얼굴을 보는데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다. 요한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이 따끔했다. 끝이 뾰족한 돌멩이다. 언젠가 쓸모가 있겠다 싶어 내내 손에 품고 있었던 그것.

심장이 쿵쿵 뛰었다. 흰개미를 보자 어찌나 교미에 집중했는지 그녀가 손에 뭘 들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는 눈치다. 어디를 노리고, 타이밍을 재고, 그런 것들을 생각할 틈도 없었다. 손에 있는 흉기. 교미에 열중하는 흰개미. 두 가지를 깨닫는 순간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대로 손을 휘둘렀다.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온 돌멩이가 흰개미의 눈을 강타했다.

물컹. 익숙한 감각이 돌멩이를 통해 전해져 왔다. 달려드는 멧돼지의 눈에 단도를 찔러 넣었을 때, 그때와 비슷한 감각.

초점이 나가 있던 요한나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핏물이 튄 손을 보는 순간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랐다.

데구루루. 돌멩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허공에 뜬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아…….”

낮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그의 시선이 요한나에게 고정되었다. 감은 눈 아래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요한나는 새하얗게 질렸다. 본능적인 공포감에 얼어붙은 몸이 미약하게 경련했다.

흰개미의 손에 죽을 거야.

‘이럴,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결단코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흰개미의 손에 머리통이 터져 죽는 장면이 뇌리에 잔인할 만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에게 죽은 탈의 여왕은 어느새 자신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

“…….”

멈칫한 것도 잠시, 눈을 찔렸음에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은 흰개미가 허공에 뜬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시 허리 짓을 했다.

쯔억쯔억. 찌걱.

멍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뺨을 타고 턱에 맺힌 피 한 방울이 그녀의 입가에 떨어졌다. 잠시의 정적을 지나, 곧이어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찌걱쯔억.

눈알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흰개미가 교미를 멈추지 않는다. 요한나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렸다. 몸 안쪽 깊은 곳이 빠듯하게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몸은 차갑게 얼어붙는다.

“미친……. 미친 새끼…….”

이놈은 미쳤다.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 영역에 있지 않으니까.

교미에 열중하는 얼굴을 보는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끝이 없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듯했다. 차라리 그녀에게 분노를 터뜨리고 머리채를 휘어잡았다면 이렇게까지 막막하지는 않았을까. 눈앞이 아득해져 온다.

“눈이, 아파…….”

목소리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근데, 흐, 요한나, 좋아?”

반사적으로 도리질을 쳤다. 비릿한 철 냄새가 물씬 났다. 입술에 묻은 흰개미의 피 냄새다. 그러자 무슨 일인지, 죽었던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랫배가 저릿하고 눈앞이 하얗게 번쩍거린다.

흰개미는 괴물이다. 눈이 터졌는데도 좋다고 허리를 흔들어 대는 미친 괴물이다. 아, 그래서 나도 미쳐 가는 걸까? 괴물과 수도 없이 배를 맞추어서…….

“흐윽!”

흰개미가 몸을 껴안음과 동시에 요한나는 허리를 휘었다. 오랜만에 맞은 절정의 쾌감이 그녀를 덮쳤다. 생생한 반응에 흰개미는 기뻐하며 그녀의 가장 깊은 곳에 씨물을 쏟아 냈다.

요한나는 흐리멍덩한 눈을 깜박였다.

‘아, 끔찍해…….’

이제는 뭐가 더 최악인지 알 수 없어졌다.

* * *

마치 이곳에 처음으로 왔을 때 같다.

무지 속에서 하루하루 피가 말라 가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 건 아닐까.

그 뒤로도 매일매일 찾아와 끌어안는 흰개미 때문에 요한나는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서 있었다. 누가 툭 친다면 끊어져서 여기저기 상처를 내고 말 것이다.

쉼 없이 질겅대던 손가락 끝에서 기어이 핏방울이 터졌다.

스윽.

시야 구석에 들어온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검은 개미다. 그가 입구를 통과하다 말고 코를 감싸 쥐었다.

“윽, 냄새.”

경멸스러운 눈에 요한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를 본 검은 개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독, 하군.”

그녀는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흰개미의 체액이 하얗게 말라붙은 몸은 볼품이 없었다. 피부색은 더 가관이다. 보라색 멍, 푸른색 멍, 노란색 멍, 붉은 손자국이 가득한 피부는 어린아이가 아무렇게나 물감칠을 한 낙서장 같다.

“오랜만이네?”

물어뜯고 있던 손가락을 내리고 빈정거렸다. 잔뜩 쉰 목소리가 성대를 거칠게 긁으며 기어오른다.

“하도 안 보여서 죽은 줄 알았어.”

검은 개미가 거만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너와, 달리, 난, 바쁘, 거든.”

여왕의 의무는 알을 낳는 것. 암굴에 처박혀서 흰개미의 정액만 받아들이고 있던 요한나에게 그의 말은 비수처럼 꽂혔다.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분노가 치솟는 것도 잠시, 콧잔등에 주름이 잡힌다. 검은 개미에게서 풍기는 낯선 냄새.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하다.

‘이 냄새를 어디서 맡았더라.’

문득 떠오른 생각에 요한나는 다시 검은 개미를 보았다.

“하?”

기가 막힌 웃음이 터졌다.

“새로운 공주랑 뒹굴다 왔나 봐?”

검은 개미는 부정하지 않았다. 가증스러운 꼴이다. 날 이렇게 만든 주제에 저는 재미나 보고 있다니.

“석굴, 개미의, 페로몬을, 덮어야, 하거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그래서였군.”

“아, 그래. 바쁘긴 바쁘지. 공주가 알집을, 가져서, 말이야.”

요한나는 눈을 크게 떴다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검은 개미를 노려보았다. 그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오만한 낯을 하고 히죽 웃었다.

“어쩐 일로 날 찾아왔나 했더니……. 암굴을 비켜 주란 말을 하러 왔어?”

“그래.”

“좋아. 얼마든지 내줄게. 대신 이제 날 내보내 줘.”

요구하면서도 기대하는 마음은 없었다. 벌써 수백 번 흰개미에게 빌었다. 위협을 하기도 했고, 화를 내기도 했고, 애걸하기도 했다. 모두 내보내 달라는 요청이었고, 한 번도 통하지 않았다.

그놈과 한통속인 검은 개미도 역시 그러리라.

“그러지.”

눈이 번쩍 뜨였다.

“……정말로?”

“그래. 그, 말을, 하려고, 온, 거다. 마침, 궁금했던, 것도, 있고.”

놀란 것도 잠깐이었다. 몇 번이나 기대를 배신당했던 요한나는 반사적으로 그를 경계했다.

“이제까지 본 척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왜?”

“흰개미의, 눈.”

“…….”

“너지?”

움찔.

요한나의 눈 밑이 바르르 떨렸다. 그날 이후, 한쪽 눈에 흰 붕대를 감고 다니는 흰개미가 뇌리를 스쳤다. 그녀의 반응에 검은 개미가 이를 드러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으르렁, 짐승 소리가 새어 나왔다.

“흰개미는, 네게, 집착, 하고, 있다.”

시린 눈이 요한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넌, 이제, 없는, 게, 낫다.”

* * *

“그대로 가면, 돼.”

검은 개미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통로를 가리켰다. 요한나는 자리에 선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검은 개미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왜, 그러, 지?”

“이것도 네 수작이 아닌가 싶어서.”

“흥,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자유다.”

“…….”

“하지만, 기회는, 이걸로, 끝일 거야.”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거대한 체구의 검은 개미는 귀찮은 것이라도 보는 시선으로 그녀를 굽어보았다.

“흰개미는 어디 있어?”

“석굴, 개미의, 군락에 있다. 지금쯤, 전투 중이겠지.”

“석굴 개미를 치러 갔다고?”

“그러지, 않으면, 석굴, 개미, 측에서 군대를, 보내겠지. 공주를, 회수, 하고 널, 죽이기, 위해서…….”

떠보는 듯한 검은 개미의 시선이 불쾌하다.

“그래서 뭐?”

검은 개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렸다.

“어쨌든, 지금이, 기회다. 일꾼, 개미의, 눈에, 띄지, 마라. 흰, 개미의, 명령으로 널, 감시하고 있으니.”

“사방이 일꾼개미 천지인데 어떻게 피하라는 거야?”

검은 개미가 캄캄한 정면을 가리켰다.

“이쪽 통로는, 아무도, 없다.”

“…….”

“나간다면, 가급적, 호수를, 찾아라. 페로몬, 없애진, 못해. 그래도, 흐리게는 가능하다.”

잠시 침묵하던 요한나가 중얼거렸다.

“어째서 네가 날 도와주는 거야?”

검은 개미가 코웃음을 쳤다.

“일족엔, 흰개미가 필요해. 네가 여기, 없으면, 흰, 개미도, 포기할, 테니.”

“…….”

“왜, 그렇게, 보지?”

“난 네가 날 죽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검은 개미가 입을 벌렸다. 입 안에 가득한 뾰족한 이빨이 웃느라 요동쳤다.

“그런, 생각도, 했지.”

검은 개미의 눈에 불길한 웃음기가 스쳤다.

“내, 복수는, 진행 중이다. 사는, 게, 네게는, 더한, 지옥이지 않나?”

새카만 눈이 가늘어진다. 의미심장한 표정이 더없이 역겨웠다.

“가라. 흰, 개미가, 오기, 전에.”

요한나가 떠나고,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검은 개미가 묘한 눈으로 응시했다. 이상야릇하게 굳어진 표정은 지금이라도 그녀를 다시 잡아 와야 하나 하는 일말의 후회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니야. 지금은, 공주보다는 흰개미의, 동태가 더 중요해. 혼혈 공주는, 더는 없다. 흰개미, 이제 어떻게, 할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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