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 눈부시게 찬란한
고운 단풍이 곳곳을 채웠고 금세 찬바람이 밀려들었다.
우리와 건우는 결혼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사계절이 그들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꽃향기가 곳곳에서 터지는 봄이 왔을 때. 향긋한 기운을 머금은 청첩장이 나왔다.
분홍 벚꽃이 납작하게 붙은 청첩장은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우리는 가죽 봉투에 든 청첩장만 만지작거렸다.
황주임부터 수진까지. 눈을 반짝거리면서 청첩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진짜 대리님이 먼저 품절녀 될 줄은 몰랐다.”
황주임이 흥분한 얼굴로 선영에게 말했다.
“일에 더 집중하실 것 같았는데.”
“저는 근데 왠지 일찍 가실 것 같았어요.”
“왜왜. 어떤 면에서.”
“그냥 사랑이 넘치셨잖아요. 그럼 아침부터 밤까지 얼마나 붙어 있고 싶은데요.”
두 손을 맞잡은 선영은 아련한 눈빛을 날렸다.
“우리 부러운 대리님…….”
선영은 티슈로 찍어내듯 눈물을 훔쳤다.
칠전팔기.
엉성한 소설을 들이밀면서 구애 끝에 그녀는 성민과 사귀게 됐다.
하지만 그 후에도 완벽한 해피엔딩을 맞지는 못했다.
선영의 아버지가 단호하고도 사나운 반대와 맞닥뜨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장님은 어떠셔?”
“대리님도 아시잖아요. 저희 아빠 완전 원칙주의자인 거.”
“아…….”
우리는 달리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회장님이 낸 책 제목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웬만해서는 꼿꼿한 생각을 꺾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투쟁하기로 했어요.”
“갑자기 무슨 투쟁을.”
“단식투쟁이요.”
굳게 다짐한 말을 뱉은 선영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당황한 얼굴로 선영을 봤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왜 다들 자기를 보는지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이었다.
“지금부터는 아니지.”
“아뇨. 하고 있어요. 어제부터.”
선영이 빙글 웃었다.
커피 잔 잡고 그 말 하지 말라구.
“단식이면 그것부터 먹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검지로 커피를 콕, 가리켰다. 어딘가 회장님 스파이가 활동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괜스레 목을 빼고 우리는 주변을 살펴댔다. 하지만 의심할 만한 사람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하긴 소설도 아니고 스파이는 무슨.
“커피는 돼요.”
“단식투쟁이라면서.”
“아시잖아요. 커피는 생명수인 거.”
“그건…….”
선영이 당돌한 손길로 커피 잔을 들었다. 투명한 얼음이 경쾌하게 부딪혔다.
짙은 갈색 커피가 영롱한 빛깔을 뽐냈다.
“……인정.”
커피 없이 살 수 있는 직장인이 있을까. 아마 얼마 있지 않을 것이었다.
우리가 날린 인정의 파급력은 컸다. 테이블에 있던 황주임과 수진도 맞는 말이라면서 맞장구를 쳐댔다.
게다가 선영은 텀블러에 커피며, 국물이며 전부 채우겠다면서 요령을 피웠다.
그래도 우리는 참 애절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위해 어쨌든 씹을 만한 요리는 전부 포기한 거니까.
회장님이 하루 빨리 고집을 꺾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걱정스러운 눈빛에도 선영은 꽤 씩씩해보였다.
“아. 맞다. 대리님. 뷔페 먹을 수 있는 거죠.”
선영이 부드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런 의미로…….”
우리가 쑥스러운 얼굴로 청첩장을 돌렸다. 모두 반가운 얼굴로 청첩장을 받았다.
“대리님. 너무 예쁜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멘트도 끝내주고.”
“아. 나도 시집가고 싶다.”
모두 저마다 한마디씩 날렸다. 하지만 깔깔거리던 목소리는 금세 사라졌다.
카페 문을 열고 건우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모두 깍듯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차장은 영원한 차장이라는 듯.
“인사는 생략하죠.”
건우에게서도 여전히 상급자의 향기가 풍겼다.
“다들 식사는…….”
“배가 고픕니다. 차장님!”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선영이 발딱 손을 들었다. 우리는 짐짓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봤다.
아니. 방금 전까지 단식투쟁 중이라며.
“배고파 보였습니다.”
“설마. 성민씨가 제 걱정 하고 있는 건…….”
“그쪽도 같이 단식을 하겠다고 나섰길래.”
“진짜 하나도 못 먹은 건 아니겠죠.”
“종일 굶고 있던데요. 단식이니까.”
단칼 같은 말에 선영은 하늘이 무너진 얼굴이었다. 커피 생명수까지 챙겨먹던 스스로를 탓했다.
성민은 굶고 있는 마당에 커피까지 쪽쪽 빨아먹었다니.
그녀는 무조건 완전한 단식에 들어가고 말겠다고 열의를 태웠다.
“어쨌든 저녁만 먹고 단식 들어가죠.”
“아뇨. 아뇨. 저는 빼고 가세요.”
“그래도 그냥 갈 순 없죠. 그 녀석한테 부탁까지 받았는데.”
“사랑을 먹고 견디겠습니다. 차장님.”
선영이 냉큼 제자리에 앉았다. 울적한 표정이었다.
아마 쫄쫄 굶고 있을 성민이 걱정된 모양이었다.
“죄송한데요. 대리님. 저도 가볼게요. 누가 기다려서.”
눈치를 보던 황주임도 슬쩍 손을 들었다.
“저도 약속이 있는 것 같아요.”
덩달아 수진까지 도망을 택했다. 어색한 저녁을 즐기느니 새 약속을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왜? 다들 저녁 먹고 가.”
우리는 절실히 모두를 잡아댔지만 수확은 없었다. 미꾸라지처럼 그녀의 손에서 쏙쏙 빠져나갔다.
테이블은 금세 휑덩해졌다. 남아 있는 사람이라곤 우리 커플과 선영뿐이었다.
선영은 그리운 눈길로 핸드폰 배경 화면 속에 있는 성민의 사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선영씨가…….”
“우리가 있어도 도움은 못 될 겁니다.”
“그냥 두고 가도 괜찮을까요. 걱정되는데.”
“난 내 신부 걱정하기도 바빠서.”
달달한 건우의 눈빛이 넘실거렸다. 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우리를 바라봤다.
온종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랐다. 점심까지 건너뛰고 일에 매달렸다.
우리를 봐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건우가 서슴없이 우리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가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절대로 놓아줄 수 없다는 듯 깍지까지 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보드라운 살결이 느껴졌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그녀는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손은 왜 이렇게 부드러운 거야.
계속 잡고 싶어지게.
“그래도…….”
그녀의 목소리는 개미만큼 작았다. 노래에 묻혀 겨우 건우만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조용히 갑시다.”
“괜찮을까요.”
“그게 좋을 겁니다.”
그를 따라서 우리가 조용히 일어섰다.
“스파이도 붙어 있으니까.”
“무슨 스파이요?”
갑작스러운 말에 우리의 눈이 커졌다.
“심이사님만큼 회장님하고 친한 분도 없죠.”
그제야 우리는 창 쪽에 앉은 심이사 비서가 눈에 들어왔다.
일에 집중한 것처럼 푹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었다.
무서운 스파이의 세계에 혀를 내두르면서 우리는 카페를 나섰다.
“그냥 만나게 해주시지.”
맘껏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딱하게만 보였다.
“우리부터 맘껏 만납시다.”
“저흰 자주 보잖아요.”
“요즘 자주 못 봤잖습니까. 청첩장 돌리느라.”
“하긴. 바쁘기는 한 것 같아요. 매일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니까요.”
몇 지인들을 만나 저녁을 대접하고 청첩장을 건넸다.
웨딩 카부터 주례까지. 끝없이 선택을 하느라 바빴다.
“오늘은 조금만 쉽시다.”
“그래도…….”
“내일 마지막 청첩장만 돌리면 되니까.”
건우가 부드러운 손길로 우리의 손목을 잡았다.
가느다란 손목이 한 손에 쏙 들어왔다.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적셨다.
“그래도 될까요. 왠지 해야 할 게 또 생각날 것 같아서.”
“됩니다.”
우리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갑자기 준비해야 하거나 할 일이 또 생각날지 모를 일이었다.
코앞에 닥친 예식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우리만 생각합시다.”
“생각 중인데요.”
“아니. 지금 다른 생각이 너무 많아.”
건우가 우리의 두 어깨를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는 모양새가 됐다.
그를 올려다보던 우리는 눈만 깜빡거렸다. 여전히 머릿속은 시끄러운 듯 보였다.
아닌 척 능청스러운 표정까지 지어 보였지만 효과는 없었다.
“나만 생각해요.”
“저도 그러려고 하는데 자꾸 생각이 많아져서요.”
“그럼 나만 생각하게 만들어야겠네.”
“어떻게요.”
“글쎄. 방법은 많지.”
씩 웃는 모습이 야릇하게만 보였다. 서로만을 바라보는 우리와 건우 사이로 가로등 빛이 스며들었다.
가게 외벽 위로 벚꽃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았다.
두 뺨을 훑고 지나가는 훈훈한 봄바람마저 기분 좋게 느껴졌다.
봄이 왔다.
진짜, 봄이다.
***
예식 전 마지막 주말. 우리와 건우는 마지막 청첩장을 건넸다. 땅에 고이 잠든 민우와 성원에게.
푸릇한 잔디가 봉안묘를 감쌌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비석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우리는 짙은 회색빛이 도는 민우의 비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너의 매일이 지금처럼 빛나길.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강민우 19XX.XX.XX~20XX.XX.XX]
하얗게 새겨진 글씨 덕분일까. 민우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줄곧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비석 앞에 내려놨다. 손수건 끝이 팔락거렸다.
“민우씨가 저보다 나이가 많았네요.”
우리는 묘한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가끔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던 민우가 동생인 줄만 알았다.
교복 때문일까. 그럴지도 몰랐다.
그런데 한없이 동생 같았던 그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니.
“별 차이도 없죠.”
“그래도 볼 때마다 동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교복 때문인가.”
“무슨 교복을.”
“가끔 민우씨를 봤거든요. 근데 생각해보면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나타났던 것 같아요.”
빤히 비석을 보던 우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지금도 보입니까.”
“아뇨.”
그녀는 괜스레 주변을 살폈다. 따사로운 봄볕만이 그득했다.
지천에 핀 벚나무가 분홍빛 잎만 흩날렸다. 향긋한 향기가 비석을 맴돌았다.
“가버린 것 같아요.”
땅과 맞닿은 하늘이 유난히도 푸릇했다.
건우와 매일 함께한 지도 일 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종이에 손을 베는 일조차 없었다. 무탈한 하루만 존재할 뿐이었다.
붙지 않았던 인연이 딱 붙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민우가 더는 나타나지 않는 건.
제 할 일을 끝냈기 때문일지도.
더는 그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이제 민우도 편히 잠들 때가 온 거였다. 붙지 않은 끈을 힘겹게 붙들 것도 없이.
“손수건 때문일지도 모르고.”
“손수건은 왜요.”
“저희 아버지가 항상 그러셨습니다. 죽은 사람 물건을 붙들면 죽은 사람이 어디 가지 못하고 주변을 떠돈다고.”
“그럼 진짜 가버렸겠네요.”
“보내줄 때가 온 거죠.”
건우가 주머니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무늬 하나 없는 단조로운 가죽 상자였다.
그 속에서 깍지 핑거탭이 나왔다.
민우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손수건 옆에 상자를 내려놨다. 한결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매일같이 온몸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었다.
이젠 정말 민우를 보내줄 때였다.
제 욕심에 꽉 붙잡았던 녀석을.
우리는 건우를 봤다. 비석을 보는 얼굴이 제법 담담했다.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한 빛이 그를 적셨다.
잘 가겠다고 손짓을 날리듯 바람이 일었다.
따뜻한 바람에 빙글 웃던 우리가 건우의 손을 잡았다. 그는 다정한 손길로 우리에게 깍지를 꼈다.
“고맙습니다.”
“동생 앞이라고 갑자기 맹세하려는 건 아니죠.”
“하면 문제 있습니까.”
“왠지 민우씨가 닭살 돋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말하고 싶은데.”
피식 웃던 건우가 맞잡은 손을 당겼다. 그 손길에 우리는 그에게 가깝게 붙어버렸다.
괜스레 민망해져 그녀의 두 뺨이 조금 붉어졌다. 어딘가에 아직도 민우가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선전포고인지도 모르고.”
건우는 브레이크를 부러 망가뜨린 것만 같았다. 쑥스러운 기색조차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여 우리를 더 가깝게 마주할 뿐이었다.
가까운 거리만큼 뜨거운 숨소리가 엉겨 붙었다.
“점점 더 미쳐볼 생각이거든.”
“…….”
“……고우리한테.”
가히 무시무시한 선전포고였다.
아니. 차장님! 애정표현은 지금도 충분한데요.
“고정하세요. 건우씨.”
“고정을 못하겠습니다.”
“아뇨. 아뇨. 지금 여기가 어딘지 잘 생각해보시면 진정될 거예요.”
우리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잘못하다가는 민우 앞에서 진한 키스라도 날릴 기세였다.
손아귀를 피하는 미꾸라지처럼 그녀는 빠르게 건우 품을 벗어났다.
“민우씨. 죄송해요. 먼저 갈게요.”
그리고는 냉큼 급한 인사를 날렸다.
“어디 갑니까.”
“도망이요.”
“도망 못 갈 텐데.”
짧은 보폭으로 산을 내려가는 우리는 분주했다. 폴짝 뛰는 것만 같은 모양새에 건우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조차 야릇하게만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두 주먹까지 그러쥐고 더 힘껏 산을 내려왔다.
하지만 건우의 말대로 완벽한 도망을 갈 수 없었다.
이미 꽉 붙잡혀버렸으니까.
***
신부 대기실은 깔끔했다. 순백색 꽃이 벽면을 채웠고 소파 아래 깔린 러그까지 하얬다.
부케를 붙잡은 우리는 긴장한 얼굴이었다. 청심환을 먹었는데도 굳은 몸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따뜻한 차라도…….”
“아뇨. 괜찮아요.”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건우의 팔을 붙잡았다. 동아줄을 잡듯 절실한 손길이었다.
“손만 잡아주셔도 금방 괜찮아질 것 같아서요.”
그 말에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우리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가만히 우리를 보는 그의 눈빛에서는 금방이라도 꿀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긴장한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웠다.
네모나게 네크라인을 낸 웨딩드레스가 우리와 퍽 잘 어울렸다.
화려한 장식 하나 없이 심플한 실크 드레스는 그녀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짧은 베일과 부케까지. 모든 것들이 그녀를 빛냈다.
카메라에 잔뜩 담아두고 싶을 만큼.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맞잡은 손을 보던 우리가 빙긋 웃어보였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지고 있어요.”
건우는 그녀의 얼굴에 묻은 먼지를 떼어주었다.
조그마한 먼지조차 침범하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듯.
“나만 믿고 와요.”
“그니까요. 건우씨만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저만 왜 이렇게 떨리는지.”
“사실 나도 떨립니다.”
“거짓말이죠. 지금 굉장히 평온해 보이는데요. 집에 있는 것처럼.”
건우가 맞잡은 손을 끌어와 가슴팍에 댔다. 쿵쾅거리는 기운이 우리 손등을 타고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커졌다. 눈 하나 꿈쩍 하지 않는 그가 긴장했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었다.
“왜 떠세요.”
“그럼 고우리씨는 왜 긴장합니까.”
“건우씨 손잡고 들어가는 것도 걱정되고. 또 드레스 밟을 것 같기도 하고…….”
“그 걱정 다 줘요. 나한테.”
건우가 베일을 조심스레 매만지면서 말했다.
다정한 목소리가 유난히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뇨. 그냥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왜요. 못 미덥습니까.”
“건우씨 심장 터질 것 같아서.”
진심이었다. 쿵쾅거리는 모양새가 심상찮았다.
어쩌면 자기보다 더 긴장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청심환이라도 드릴까요.”
우리는 그가 민망하기라도 할까. 한껏 몸을 가깝게 붙이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고우리 때문에 긴장하는 중이니까.”
“저 때문에 왜요.”
그 바람에 두 사람의 숨결이 맞닿았다.
“키스하고 싶어서.”
그제야 우리는 건우가 바짝 가까워졌다는 걸 느꼈다. 두 사람의 입술은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소파를 짚은 건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퍼런 핏줄이 손등에 돋아났다.
당장 우리를 들쳐 메고 단둘만 있는 곳으로 향하고만 싶었다.
“그러니까 긴장하고 있어.”
눈이 부시게 예쁜 그녀를 아무도 볼 수 없게.
정말 너한테 완전히 미쳤나 보다.
“지금은 몰라도.”
“…….”
“절대 못 재울 것 같아서. 오늘밤은.”
건우는 마지막 말에 힘을 담았다. 열기를 품은 말은 단숨에 우리에게 녹아들었다.
유혹적인 눈빛에 부케를 잡은 우리의 손이 꼼지락거렸다. 식장에서까지 매혹적이라니.
요물이 따로 없었다.
꼼짝없이 굳은 우리와는 달리 건우는 그녀에게 다가섰다. 조금씩. 또 조금 더.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이 입술이 닿으려던 때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 소리가 퍽이나 유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