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9화. 괜찮아, 길을 잃어도
혜원의 기억 속에서 우리와 건우는 서로를 바라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두 죽었다.
두 사람이 사랑한 사람들이 모두.
화마가 잔혹하게 두 사람을 집어삼켰기 때문이었다.
폐허처럼 변해버린 건물은 황량해 보였다.
“우리 아빠.”
“…….”
“차장님 때문에 들어간 거예요? 그런 거냐고요!”
목에 퍼런 핏대까지 세우면서 우리가 소리쳤다. 공허한 외침이었다.
건우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을 것이었다. 그 누구도 폭발을 예상하진 못했으니까.
그저, 건우는 동생을 살리고 싶을 뿐이었다.
누구라도 소방관에게 매달렸을 것이었다.
건우를 원망한대도 죽은 성원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건우를 탓하는 마음까지는 잡지 못했다.
아마도 바로 눈앞에서 성원을 놓쳤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누구든 미워해야 죄책감이 덜어질 테니까.
“그래서…… 헤어진 거예요?”
속엣말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래서 말도 없이 가버렸구나.”
숨이 벅차올랐다. 가빠진 호흡에 우리는 불안정해 보였다. 가느다란 날숨조차 내뱉지 못했다.
건우가 미웠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공존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쳤다.
건물에서 쏟아지는 매캐한 연기에 우리의 눈이 시큰거렸다. 금세 눈동자가 새빨개졌다.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던 우리는 제 두 손을 바라봤다.
성원을 잡지 못했다. 건우를 잡지 못했던 것처럼.
그을음이 번진 손을 보던 우리가 사위를 둘러봤다.
지옥이었다. 현실에 눌어붙은 지옥.
새까만 어둠과 시뻘건 불길이 엉겨 녹아내렸다.
모든 것이 사라져갔다. 한낱 과거라는 걸 알려주듯.
우리는 현실로 돌아왔다.
“괜찮으세요?”
걱정스러운 혜원의 목소리가 귓가를 적셨다.
“……네.”
우리가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괜찮다는 짤막한 말조차 제대로 이을 수가 없었다.
울컥 솟는 감정에 묻혀버렸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쪽으로.”
혜원이 우리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카운터 뒤쪽에 있던 의자가 보였다.
다리가 후들거려 우리는 무너지듯 의자에 앉았다.
“제가 물 좀 사올게요.”
“아뇨. 저는…….”
“바로 앞이에요. 그니까 걱정 말고 쉬고 계세요.”
우리를 다독이던 혜원이 가게를 나섰다. 널찍한 통유리 너머로 혜원이 보였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혜원을 보던 우리는 두 손을 꽉 맞잡았다. 무너지려는 마음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었다.
울음을 쏟아낸 눈은 타들어갈 듯 뜨거웠다.
“하아.”
힘껏 눌렀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우리의 눈초리에 매달린 눈물이 툭, 떨어졌다.
‘설마. 제가 차장님 버리고 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진즉에 건우는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모든 비밀을 알아도 자신이 건우를 버리지 못할 거라는 걸.
속만 앓다가 힘들어할 거라는 것도.
‘고우리씨가 날 버릴 일은 없죠.’
‘절대요.’
건우를 향해 빙글거리던 제 모습조차 눈에 선했다.
‘그럴 일은 꿈에서도 없을 걸요.’
우리는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건우를 놓지 않겠다고.
하지만 정작 건우의 과거를 알게 됐을 때. 우리는 어쩔 줄 몰랐다.
원수라도 대하듯 건우를 미워하고 증오해야 하는 걸까.
그리워하는 본능마저 반듯하게 접어야 하는 걸까.
쉽게 답을 낼 수 없었다. 손등에 떨어진 눈물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웠다.
아랫입술을 힘껏 깨문 우리는 고개를 떨궜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흐늘거리는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었다.
‘그만 올라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성원의 사진을 보고 창백하게 굳어간 건우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건우의 세상도 차갑게 무너져 내렸을 것이었다.
지금의 자신처럼.
“편의점에 사람이 많네요. 여기 물 좀 드세요.”
“감사합니다.”
코를 훌쩍대던 우리가 물을 받아들었다.
“조금 괜찮아지셨어요?”
“……덕분에요.”
“제가 해드린 것도 없는데요.”
다정한 혜원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우리는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끔찍한 과거를 털어내고 싶었다.
과거와 현실의 경계에 서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죠.”
“네. 조금요. 혹시 제 꽃다발이 별로인가. 걱정했거든요.”
카운터에 있는 꽃다발을 든 혜원이 농담을 날렸다. 꽃다발이 움직일 때마다 풋풋한 꽃향내가 났다.
“아뇨. 꽃 때문은 정말 아니에요.”
“진짜요?”
“네. 예뻐요. 그냥 개인적인 일이라…….”
우리는 말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꽃다발이 좋은 기운이라도 드렸으면 좋겠네요.”
우리가 꽃다발을 받았다. 어설프게 깜짝 이벤트를 하던 건우의 모습이 설핏 떠올랐다.
꽃이 다 보이는지도 모른 채.
홀로 고군분투하던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바보 같이.
“길을…… 잃은 것 같아서요.”
옅게 번진 적막을 뚫고 우리가 속마음을 꺼냈다. 부스러질 듯 약한 감정이었다.
“잘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그럴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혜원이 카운터에 등을 기대고 섰다. 기억을 더듬듯 허공을 보는 혜원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제가 어렸을 때 꿈이 모델이었거든요.”
“잘하셨을 것 같아요.”
“아마도 열심히는 했을 것 같아요. 결국 못 하게 됐지만요.”
혜원의 얼굴에는 씁쓸한 기운조차 돌지 않았다.
주어진 운명을 모두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사고가 있었거든요.”
“무슨 사고가…….”
“불난 건물에 갇혔어요.”
우리가 봤던 과거가 혜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때 다리에 심하게 화상도 입고 친구한테 목숨도 빚졌어요.”
“힘드셨겠네요.”
“네. 그래서 방황도 많이 했어요.”
“…….”
“저만 살았거든요.”
혜원은 다리에 길게 남은 화상에 절실히 갈망하던 꿈을 접었다.
차가운 바닥에 매몰된 민우를 두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도 컸다.
묵직한 날숨이 혜원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내렸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것 같아요.”
“뭐가요?”
“피하지 말고 힘들어할 걸.”
제 다리를 힐끗거리던 혜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 앞에 생긴 새 길이 더 잘 보였을 텐데.”
다정스러운 미소가 혜원의 입가에 번졌다. 혜원이 검지로 꽃 하나를 톡, 가볍게 건드렸다.
하얀 꽃은 손길을 견디며, 꼿꼿하게 향긋한 향기를 풍겼다.
“괜찮아요. 길을 잃어도.”
온화한 목소리가 우리를 다독거렸다.
“다시 새 길이 있을 거니까.”
괜찮다고.
“그 길만 열심히 다시 살면 돼요.”
정말 다 괜찮다고.
우리는 생수병만 만지작거렸다. 상냥한 그녀의 말에도 우리는 갈팡질팡했다.
여전히 두 갈래의 갈림길이 눈앞을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건우를 잊는 게 새로운 길인지. 아니면 그와 같은 길을 가는 게 새로운 길인지.
우리는 무엇 하나 붙잡을 수가 없었다.
머리는 건우를 잊자고 말하면서도 마음만은 아직도 그를 원했다.
꽃다발을 보던 우리가 조용히 숨을 흘렸다. 얇은 꽃잎이 숨결을 따라 팔락거렸다.
***
우리는 오후 반차를 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감기가 걸린 듯 목이 아팠다.
침을 삼킬 때마다 우리의 얼굴은 구겨졌다. 온몸에서 솟구치는 열기에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우리가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다. 뜨거운 땀이 손등을 적셨다. 기운 없는 얼굴로 우리는 병원에 도착했다.
예상한대로 지독한 감기 몸살 판정을 받았다. 따끔한 주사까지 한 대 맞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우리의 눈동자가 떨렸다.
16층. 그곳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탔을까. 우리는 약봉지를 꽉 잡았다.
가만히 16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자기야. 저녁을 어떻게 할까.”
“글쎄. 우리 자기 먹고 싶은 걸로 하자.”
“나도 자기 먹고 싶은 거면 되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달달한 신혼부부의 등장에 우리가 살짝 비켜났다.
옷깃을 여미면서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옆구리 시리게.”
깨소금 떨어지는 부부의 모습에 우리가 꿍얼거렸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폈다.
부부 말곤 아무도 없었다.
뭘 기대한 걸까.
잠깐 빛났던 우리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고우리, 가자. 집에.”
우리는 힘없이 닫힘 버튼을 눌렀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아무 생각 없이 잠이나 자볼 생각이었다. 지친 몸을 비집고 건우에 대한 생각이 밀려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16층을 보고 기대하던 것부터가 그랬다.
이미 떠나버린 건우가 돌아올 리가 없는데.
쓸데없이 온갖 기대만 해댔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종일 추억만 되새겨댈지도 몰랐다.
우리는 자겠다는 일념 하나로 집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다짐한대로 잘 준비를 마치고 약을 먹었다.
쓴 맛이 입 안을 가득 돌았다. 우리가 목 끝까지 이불을 잡아당겼다.
“그래도 반차 내니까 좋네.”
중얼거리던 우리가 눈을 감았다.
“괜히 병도 다 낫는 것 같고.”
무거웠던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곤히 잠들었다. 깨우려고 해도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막힌 코 때문에 우리는 드릉거렸다. 깊은 잠에 빠졌던 우리가 인상을 찡그렸다.
“바보네.”
꿈속에서 손수건을 던져주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울고 싶음 그냥, 우는 거지.”
손수건을 받아든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널찍한 등과 유난히도 큰 키가 눈에 들어왔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닦아내던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른 등만 보던 그날의 기억과 다른 행동이었다.
“비 때문에…….”
건조하기만 하던 그날을 원망하면서 우리가 남자의 팔을 잡았다.
무심히 앞만 보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남자.
갑작스러운 성원의 죽음에 무너지던 우리를 붙잡아준 남자였다.
그리고 그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우리의 눈꺼풀이 떨렸다. 건우였다.
차장님이 왜…….
건우를 보던 우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손수건을 건넸던 남자가 건우였을까.
그게 아니면 단순히 건우가 그리웠던 걸까.
모든 기억들이 무질서하게 헝클어진 것만 같았다.
“제가 만든 기억인 거죠.”
“…….”
“차장님이…….”
우리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손수건 선물은 처음이네요.’
‘정말요?’
‘예전에 동생한테 받았을 때 말곤.’
손수건을 받고 좋아하던 건우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손수건을 바라봤다. 손수건을 준 남자를 만난 것 같았다.
아마도.
“가까이 붙어있었는데도 몰랐네요.”
아니. 만났다.
“차장님인 줄.”
우리는 건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랐다. 건우의 부탁에 성원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걸 아는데도.
자꾸만 건우가 보고 싶었다. 사진부터 전화번호까지 모질게 삭제한 순간마저 후회됐다.
원망보다 그리움이 커져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우의 기억이 옅어져갔기 때문이었다.
건우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우리의 손에 제법 힘이 들어갔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차장님. 지금은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모르겠습니다.”
“꿈이잖아요. 정말, 꿈이니까.”
“예.”
다정한 건우의 목소리가 녹아들었다. 우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건우를 안아버렸다.
따스한 온기가 흘러들었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보고 싶었습니다.”
“저 이상한 거죠. 정말 이상한 건데. 그런데…… 너무 보고 싶어요.”
우리가 두 팔을 꽉 그러잡았다. 건우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코끝을 적시는 향기조차 영원히 남길 바랐다. 하지만 운명은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가지 마요. 차장님.”
건우가 조금씩 희미해져갔다. 우리의 세상 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가 열렬히 건우를 열망할수록 사라지는 속도는 빨라졌다.
“가지 마. 가지 마요.”
“…….”
“차장님. 차장님!”
완전히 건우가 사라졌을 때.
“차장님!”
우리가 화들짝 놀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에서 깬 우리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덩달아 놀란 미순이 우리를 빤히 바라봤다.
“무슨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자네.”
미순은 땀에 젖은 베개를 보고는 말했다. 구태여 건우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우리가 내내 말을 하기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건우와 깨졌다는 걸 지레 짐작만 할 뿐이었다.
미순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리의 이마를 짚었다.
“그래도 열은 떨어졌네.”
침대에 걸터앉은 미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따뜻한 물이라도…….”
“……엄마.”
우리가 방을 나서려던 미순을 잡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봤다.
우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입을 삐죽거렸다. 그 모습에 미순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다정한 목소리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미순은 말없이 우리를 다독여주었다.
따뜻한 품에 우리는 아이처럼 엉엉 목놓아 울어댔다.
“보고 싶어.”
“누가.”
“너무 보고 싶어.”
울먹대는 소리에 그리움이 묻어나왔다. 등을 다독이는 미순의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움은 사라질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짙어질 뿐.
보고 싶다.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
.
.
우리는 가슴에 품은 말들을 모조리 쏟아냈다. 성원과 건우에 대한 말들이었다.
성원이 죽은 날에 대한 말을 들었는데도 미순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조용히 우리의 말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너는 어떤데.”
난데없이 던진 미순의 질문에 우리는 코만 훌쩍거렸다.
“누구도 생각하지 말고 너만 생각해봐.”
“…….”
“강서방. 아니. 그 총각. 계속 싫어하고 싶어?”
우리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굴러갔다. 건우가 떠나고 우리의 일상은 엉망이 됐다.
글 하나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밥을 넘기는 것조차 힘들었다. 일에 매진해도 그때뿐이었다.
회사부터 집까지. 사방에 남은 건우의 흔적이 우리에게 손을 내뻗었다.
빈 그네를 타면서도 울컥거릴 지경이었다. 건우와 맥주를 들이켜던 모습이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주변은 온통 건우의 잔향이 남아 넘실거렸다.
모든 걸 놓고 가버린 것이었다.
정작 건우의 주변에는 제 것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데.
“이건 누구 잘못도 아냐.”
“하지만…….”
“그냥 그럴 운명이었던 거야.”
미순이 우리의 말을 부드럽게 가져갔다.
“누가 말렸어도 들어갔을 거야. 그 양반은.”
“차장님만 아니면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
“아니. 들어갔어. 분명. 자기 몸보단 늘 남이 먼저였으니까.”
우리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니까…….”
미순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움에 빠져 우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성원도 그걸 바라진 않았을 것이었다.
“아무도 미워하지 말자.”
미순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빙긋이 번졌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엄만 너만 행복하면 돼.”
“엄마.”
“아빠도 그걸 바랄 거고.”
미순은 떨리는 우리의 손을 잡았다. 성원이 죽은 직후.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손이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손을 우리는 피하지도 못했다.
우리는 얼이 빠진 얼굴로 미순을 봤다. 아무 과거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미순의 손을 피했었다. 합동장례식장에서 저민 가슴을 붙잡던 모습을 보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순에게는 아무런 과거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의 아픔을 완전히 털어낸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야.”
“…….”
“네 맘이 시키는 대로 살아.”
우리는 미순의 손을 꽉 붙잡았다. 훈훈한 온기가 맞잡은 손에 녹아들었다.
‘인연을 잘 묶을 방법은 없나요.’
‘그기야 기스 난 맴이 나으면 잘 무까질지도 모른다 카이.’
결국 그날의 기억에 파묻혔던 건. 민우가 아니라 건우였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지옥 속에서 살았을 것이었다.
민우와 성원을 모두 다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빠져.
“그럼 되는 거야.”
미순의 말이 맞았다. 그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지독히도 나쁜 타이밍에 걸린 것뿐이었다.
뜨뜻한 침을 삼키던 우리가 이불을 걷어 젖혔다.
“나 잠깐 어디 좀 갔다 와야 할 것 같아.”
“어디 가게?”
“잠깐이면 돼.”
“열 내렸다고 바로 나가면…….”
“금방 올게요.”
우리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강 옷을 껴입은 우리는 방을 나섰다. 구태여 미순도 우리를 잡지 않았다.
우리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도 그리운, 건우에게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