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화. 떠난 사람, 그리고 남은 사람
우리는 건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녹아내리듯 애달픈 눈빛에 문규의 시선도 덩달아 돌아갔다.
그제야 건우를 발견한 문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뒷모습조차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커플끼리 번갈아가면서 무슨 일이야?”
차가운 우리의 목소리가 번져나갔다. 소희부터 문규까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슬금슬금 제 앞에 나타나는 건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숨어 다녀도 모자를 마당에 낯짝도 두껍지.
“무슨 커플? 설마…… 소희도 왔다갔어?”
“그럼 걔 말고 숨겨둔 여친이 또 있니?”
“여친은 무슨 여친. 나 걔하고도 헤어졌는데.”
문규의 목소리에는 묘한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더욱이 우리를 보는 눈동자에는 떳떳한 기운마저 넘실거렸다.
이제는 솔로라는 안정감 같았다.
“걔 너무 징징대더라고. 질투도 너무 심하고. 그리고 또…….”
“나한테 와서 전 여친 뒷담화를 하고 싶니.”
우리가 날선 말로 문규의 말허리를 잘랐다. 관심도 없는 토끼 커플의 근황이라니.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게다가 이미 우리의 머릿속은 건우만으로도 터질 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저 그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나 바빠서 그만 가볼게.”
“우리야.”
“우리 헤어졌잖아. 잊었니?”
“나도 아는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잖아.”
문규는 구질구질하게 우리를 붙잡았다. 실컷 즐길 때는 언제고 이젠 안정적인 상대에게 돌아오겠다는 도둑놈의 심보였다.
“나 너 잊었어.”
“저 새끼하고 사귀고 있어서 그래?”
애꿎은 불똥이 건우에게 튀었다. 문규는 씩씩거리면서 손을 뻗었다. 짜증스러운 손길 끝에 건우가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을 부축하는 건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저만치 멀어질 뿐이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우리가 제 손을 매만졌다. 약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반짝거리던 반지는 책상 속에 들어가 버린 지 오래였다. 손가락이 허했다.
어쩌면 마음이 허한 걸지도 몰랐다. 건우와 헤어졌다는 사실이 다시금 절실히 느껴졌다.
“남자는 남자가 아는데. 저 새끼는…….”
“그만하고 가.”
“우리야.”
“가라.”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사위를 적셨다. 더는 문규를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난 구멍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점점 커다래지는 구멍에 우리는 가히 미칠 지경이었다.
차갑게 몰아치는 서늘한 기운마저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진짜 우리야. 한 번만 기회 주라.”
“나는 가는 놈 안 막아.”
“안 갈게.”
“근데 오는 놈은 좀 막아보려고.”
건우에 대한 미움은 엉뚱한 곳에서 발현됐다. 그가 돌아온대도 받아줄 마음이 없다는 듯 단단하게 말했다.
누가 돌아와도 마음에 자리 하나 남겨두지 않겠다고.
“그럼 잘 구경하고 가.”
“야, 고우리.”
“네가 놓친 콜라보가 얼마나 잘되는지 궁금해 할 것 같아서.”
우리는 차갑게 이기죽거렸다.
“생각해보면 우리 좋았잖아. 엉?”
하지만 문규는 더 간절하게 우리의 팔을 붙잡았다. 우리가 빨판처럼 악착스럽게 팔에 붙은 손을 떼어냈다.
그러고는 메인 무대로 발길을 돌렸다. 건우와 벌어지는 거리 때문일까. 발걸음이 무거웠다.
누군가 가지 말라는 듯 발을 잡아끄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건우가 바로 자신에게 달려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랐는지도 몰랐다.
무시무시한 말로 문규를 단숨에 제압해주길.
자신을 건들지 말라고 경고를 날려주길.
‘고우리 대리. 우리 그만 헤어집시다.’
그러나 그건 건우와 사귀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질투나 경고를 던지지 못할 만큼 두 사람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돼버렸다.
메인 무대에 도착한 우리는 결국 뒤를 돌았다. 저만치 멀어졌던 건우의 모습은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다.
돌아온 남자를 막겠다는 다짐이 일순간 무너졌다.
건우에게만은 예외를 두고 싶었다.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받아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른아른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건우가 나타나기만 한다면.
하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우리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건우가 사라진 곳을 보던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아, 윤실장님. 여기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죠.”
“아뇨. 바깥바람도 쐬고 좋은데요.”
“숨 좀 돌리면 말씀주세요. 동선 미리 안내드릴게요.”
윤실장은 우리가 건넨 물을 받아들었다. 찬 기운이 두 사람의 손을 적셨다.
윤실장이 숨을 돌릴 동안. 우리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 일을 할 때만큼은 건우에 대한 생각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각 섹션과 메인 무대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모자랐다.
“그럼 동선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이쪽으로 오시죠.”
“이번 행사 퀄리티가 진짜, 어우. 컬러감부터가 너무 좋네요. 이벤트 참여 고객도 많고.”
부스들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지막 공연만 잘 끝나면 한시름 놓을 것 같아요.”
“그건 걱정 마세요. 다들 경력 많은 가수들이라.”
윤실장에게서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유명 인디밴드부터 한소민이 속한 걸그룹까지. 화려한 라인업만큼 엄청난 무대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대에서 실수가 나도 빠르게 대처할 역량을 가진 가수들이었다.
더욱이 무대 스태프들조차 엄청난 경력을 자랑했다. 리허설대로만 움직인다면 큰 문제없이 행사가 마무리될 터였다.
우리는 빙긋 미소를 짓고는 가수들의 이동 경로를 설명했다.
한 치의 낭비도 없이 깔끔한 동선이었다.
“경호 인력은 동선 따라서 배치되는 건가요?”
“네. 대기실하고 무대 앞쪽에 집중적으로 배치될 예정이고요.”
“충분하겠네요. 소속사 쪽에서도 경호 인력 붙여서 올 거라서.”
“모자란 것보단 넉넉한 게 낫죠.”
우리가 멀찍이 눈길을 던졌다. 건우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됐다.
“그럼 전 이따 뵙겠습니다.”
“아, 네네. 연락주세요.”
우리는 가볍게 목인사를 끝냈다. 윤실장이 멀어지기 무섭게 우리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연락처를 살폈다. 건우의 이름이 눈앞을 맴돌았다.
전화를 걸어볼까, 말까. 쓸데없는 고민에 빠졌다.
좀체 통화 버튼을 누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의 손가락이 맥없이 허공만 맴돌았다. 고민에 깊숙이 빠졌을 때였다.
따가운 봄볕에 피어난 아지랑이처럼 건우가 나타났다.
안도의 숨이 우리의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다시 나타나지 못할 만큼 홀연히 사라진 줄만 알았다.
그런데 다시 나타나서.
그래서 참, 다행이다.
***
어스름이 짙게 젖어들었다. 작열하던 태양조차 자취를 감췄다.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열기를 달래듯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곧 메인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분주히 사람들을 받아내던 부스들조차 마감을 내걸었다.
메인 무대 최종 체크를 끝낸 우리가 무대 앞을 살폈다.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객석을 채웠다.
앞줄에 앉은 가수들의 팬들은 대포 카메라까지 꺼내들었다.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우리는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메인 스크린에 광고 쏴주세요.”
우리의 말에 무대 대형 스크린에서 신제품 CF가 나왔다.
청량하면서 활동적인 색감이 살아있는 영상이었다.
광고가 끝나고 진행된 메인 공연은 기획대로 움직였다. MC가 화려한 입담으로 관객석을 쥐락펴락했다.
“HJ음료에서 푸짐한 경품까지 준비해주셨는데요. 절대 놓치실 수 없겠죠.”
레크레이션을 시작으로 예정된 순서대로 가수들이 무대에 올랐다.
초록빛으로 물든 밤풍경에 어울리는 달콤한 노래부터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빠른 템포의 노래까지.
여러 노래가 허공을 느릿하게 적셨다.
무대 앞 차단봉 근처에 서 있던 우리가 관객석을 봤다.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과 다정한 연인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건우가 보였다. 아주, 선명하게.
두 뺨을 적시는 훈훈한 바람에 우리의 눈꺼풀이 떨렸다.
‘차장님. 정말 관두시는 거 아니죠?’
건우가 사표를 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선영은 곧장 건우에게 다가가 물었다. 우리가 몇 번이고 묻고 싶던 말이었다.
‘관둡니다.’
‘왜요? 언제 관두시는데요?’
‘플레이레드 행사만 끝나면 바로 정리할 것 같습니다.’
건우의 대답에는 막힘이 없었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어디든 가겠죠. 아마도.’
흔한 눈길조차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 우리는 무대를 봤다. 공연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건우와 일을 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조급해졌다. 완전한 끝이 다가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달아오른 무대 아래에서 우리는 침전하는 것만 같았다.
지구, 끝까지.
다시는 건우를 볼 수 없을 것이었다. 공통분모가 하나도 없으니까.
그나마 선영을 통해 간간히 소식을 접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가정이었다.
자신이 상처라도 받을까. 선영이 단단히 입조심을 할 확률도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아.”
긴 한숨이 우리를 맴돌았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던 사람이 이젠 가장 멀게만 느껴졌다.
이제 다시는 건우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슬퍼졌다.
“정말 구질구질하네, 고우리.”
이미 다 끝났으면서도.
“뭐가 좋다고. 계속 보고 싶어 하니.”
가만히 녹아드는 눈길에 건우가 우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북적대는 인파도, 화려한 무대조차도.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만을 바라봤다.
서로를 그리는 마음을 숨기면서.
“……바보 같이.”
휘청대는 우리가 걱정돼 건우는 한달음에 무대 앞으로 걸어갔다.
“좀 쉬어요. 나머지는 내가 체크하겠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저녁도 못 먹었잖습니까.”
“아직 체력은 있어서요. 그러니까 걱정 안하셔도 돼요.”
우리는 무너지는 마음을 단단히 그러잡았다. 가엾은 동정을 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마지막 무대 체크해야 할 것 같아서요.”
선의를 거절한 우리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자기도 모르게 건우를 붙잡을 것만 같았다.
끔찍한 상황은 애초에 차단하는 게 나았다. 우리는 분주한 무대 뒤로 향했다.
이제 마지막 무대였다.
메인 모델 소민이 속한 걸그룹이 무대로 올라갔다.
전주부터 에너지가 넘쳤다. 휘황찬란한 조명이 무대를 빛냈다. 걸그룹의 칼군무에 환호성이 터졌다.
메인 카메라가 움직이면서 멤버들을 잡았다. 멤버들의 모습이 큼지막한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노래에 맞춰 빛을 받은 스모그가 무대에 퍼져나갔다.
“네게 빠진 것만 같아. Destiny.”
청량한 노랫소리가 야외무대를 달궜다. 환호성을 헤치고 우리는 엔터테인먼트 박실장에게 향했다.
박실장은 업로드 된 V라이브 영상 반응을 체크하고 있었다.
“실장님. 오늘 의상부터 메이크업까지 상당하네요.”
반갑게 인사한 우리가 칭찬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무슨 일로?”
“질문 내용은 잘 전달됐는지 싶어서요.”
두 번째 곡이 끝나면 바로 인터뷰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네. 멤버들도 잘 인지하고 있어서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럼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릴게요.”
“저희가 잘 부탁드리죠.”
사무적인 인사를 끝낸 우리가 다시 무대 앞으로 나왔다.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행사는 무사히 마무리 될 것이었다.
여전히 긴장의 끈을 팽팽히 잡은 채로 우리는 관객석을 살폈다.
인형탈을 쓴 채로 물개박수를 치고 있는 선영이 시선을 강탈했다.
하지만 곧 우리의 시선은 선영의 뒤로 향했다. 그곳엔 건우가 있었다.
무대를 보는 사람들과 달리 건우는 관객석을 살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지. 우리만큼 경계를 하는 모양새였다.
그게 자기 때문이 아니라 일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괜스레 설렜다.
“나를 봐줘. 네 뒤에 있는 나를.”
경쾌한 멜로디에 숨어있는 가사가 우리를 흔들었다.
“보내지 못해. 끝내지 못해.”
“…….”
“Darling. Darling. Darling.”
뜨거운 박수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곳곳에서 휘슬도 터졌다. 소민을 포함한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높아졌다.
그들의 인기를 몸소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모든 조명이 무대를 찬란하게 빛냈다. 모든 것들이 눈부셨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우리는 가만히 건우만을 바라봤다. 어둑한 그림자에 사로잡힌 건우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우리는 건우가 자신을 돌아봐주길 바랐다.
무감한 얼굴이라도 좋았다.
그저, 봐주기만 한다면.
“그럼 다음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앙코르 곡이 끝날 때까지도 건우는 관객석만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빛나는 밤 되세요!”
“HJ음료 파이팅.”
경쾌한 인사를 날리면서 멤버들이 무대를 내려갔다. 앙코르 소리를 진정시키듯 MC가 마지막 마무리 멘트를 했다.
몇 달 간 공을 들인 플레이레드 행사는 끝이 났다.
부스와 무대 철거 작업이 빠르게 시작됐다.
바빴던 하루가 꿈처럼 느껴졌다. 무대 철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 남아있을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기진맥진해 널브러진 팀원들을 돌려보냈다.
다들 간절히 남은 주말을 즐기기만을 기다렸을 것이었다.
“선영씨. 오늘 고생 많았어. 집에 돌아가도 돼.”
“대리님은요?”
“철거 작업만 끝나면 바로 갈 거야.”
곱게 갠 인형탈을 든 선영은 어쩔 줄을 몰랐다. 우리만 두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차장님은요?”
“잠시 어디 가신 것 같은데.”
하지만 사위를 둘러보는 우리의 모습에 단숨에 걱정이 누그러들었다.
도리어 빠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건우와 우리가 대화를 할 테니까.
“퇴근은 내가 전달드릴 테니까 걱정 말고 가봐.”
“넵. 그럼 저는 먼저 갈게요. 대리님.”
“인형탈은 들고 갈 생각은 아니지?”
“아, 네. 탐나긴 하지만 회사 재산이니까. 그럼 가보겠습니다!”
인형탈을 건넨 선영이 날름 인사를 날렸다. 칼퇴를 외치는 선영의 재촉에 각 부서에서 차출된 직원들은 순식간에 퇴근을 했다.
그제야 온종일 서 있던 우리가 벤치에 앉았다. 단단하던 무대가 하나씩 분리됐다.
뻐근한 몸을 풀 듯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까만 하늘 위로 구름들이 유유히 흘러갔다.
묵직한 한숨을 흘리던 우리가 인형탈을 봤다. 커다란 인형탈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해사한 미소를 날리는 토끼가 부럽게만 느껴졌다.
“그냥, 토끼하고 살 운명인가.”
푸념을 흘린 우리가 인형탈을 썼다. 순간 모든 소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조용히 흘러내리는 제 숨소리만 크게 들릴 뿐이었다.
갑갑한 열기에 우리가 탈을 벗으려던 찰나였다.
“다들 갔습니까.”
건우가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탈을 벗지도 못한 채로 건우만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고는 세차게 고개만 끄덕였다.
“다행이네. 고대리님은?”
건우는 똑같은 스태프 차림새에 우리를 선영이라고 착각했다.
마른 침을 삼킨 우리는 모르는 척 고개를 내저었다. 건우가 우리를 찾듯 사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우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수고 많았습니다.”
“…….”
“조심해서 돌아가요. 성민이하고도 잘 지내고. 두 사람 제법 잘 어울리니까.”
용기를 주듯 따뜻한 말이 새어나왔다. 마지막 인사였다.
연하게 도는 미소에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건우의 옷자락을 잡았다.
가지 말아요. 꼭, 그리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우리 대리, 잘 부탁합니다.”
짤막한 말 하나에 우리의 코끝이 싸해졌다.
“많이 힘들 겁니다.”
지금도 힘들어요.
“그러니까 잘 부탁해요.”
숨조차 못 쉴 만큼 너무 힘들어.
“너무 오래 슬퍼하지 않게.”
“…….”
“힘들어하지 않게.”
옷자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원망과 갈망이 뒤범벅돼 우리를 옥죄였다.
수없는 말들이 우리의 혀끝만 휘돌았다. 부탁만 남긴 채로 건우는 멀어져갔다.
왈칵 솟구치는 눈물이 우리의 두 뺨을 적셨다. 설움 섞인 울음에 시야가 뿌옇게 물들었다.
새빨개진 눈이 시큰거릴 지경이었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소리만이 인형탈 안을 맴돌았다.
가지 마요. 가지 말란 말이야.
제발, 가지 마.
소리 없는 애달픈 비명 소리만이 우리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가련한 말은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게, 끝이었다. 행사가 끝난 직후. 건우는 말끔히 자리를 정리했다.
건우의 자리는 순식간에 비워졌다. 본래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말끔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