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3화. 우리의 처음, 우리의 끝
우리가 사무실을 돌아봤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은 고요했다. 스탠드에서 쏟아지는 불빛만이 우리와 건우의 자리를 채웠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를 누르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우리는 슬쩍 엉덩이를 들고는 건우를 살폈다.
하지만 건우는 퇴근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보였다.
샌드위치로 대충 저녁을 해결하고는 종일 자리에만 붙어있었다.
짙은 한숨을 조용히 흘리면서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턱을 괸 우리는 모니터만 노려봤다.
‘완벽한 마무리는 개뿔.’
여행 계획조차 얼마나 봤는지 몰랐다. 눈을 감아도 계획을 술술 내뱉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일벌레도 아니고. 이러다가 철야까지 하는 거 아니냐고.
턱을 괸 우리는 투덜대듯 진한 콧바람만 연신 쏟아냈다.
“고대리님. 할 일 많습니까.”
“아뇨. 저는 괜찮아요. 차장님은요.”
“나는 많이 남아서. 일단은 일어나죠. 데려다줄게요.”
“얼마나 많이 남으셨는데요?”
우리는 간절한 눈빛을 날렸다.
제발, 지금 끝났다고 해주세요.
“밤새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은 무너졌다. 철야를 하겠다는 소리에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따뜻한 김이 나는 우동 한 그릇을 하고 싶었는데……. 술 한 잔을 기울이면서 허심탄회하게 속내도 털고.
하지만 아늑한 심야 데이트를 즐기려던 계획까지 수포로 돌아갔다.
“일단 일어나죠.”
“아뇨. 저도 같이 있을게요. 도울 만한 일 있으면 말씀주세요.”
“도울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나 때문에 괜히 고생하는 거, 보는 것도 불편하고.”
재킷을 챙기는 건우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러니까 갑시다.”
“저 정말 괜찮은데.”
애절한 눈빛에도 건우는 꿈쩍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빼고 온종일 일에 매달렸다. 일에 골몰하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건우는 자꾸만 우리가 눈에 밟혔다. 졸린 듯 하품을 하거나 턱을 괸 채 무심히 마우스를 내리는 모습까지.
그래서 좀체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우리를 잊고 살 수 있을까.
이별할 수는 있을까.
숱한 감정들이 건우를 붙잡고 늘어졌다.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 마음을 놔주지 않았다.
우리에게 집착할수록 끔찍한 진실이 건우의 목을 졸라왔다.
숨을 쉬지 못할 만큼, 우악스럽게.
“……내가 괜찮지 않습니다.”
묵직한 건우의 말이 허공에 번져나갔다. 까만 눈동자에 넘실대는 단호한 기운에 우리는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짙은 적막이 두 사람을 휘돌았다. 시계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째각, 째각.
날카롭고도 단호한 소리였다.
“저 혼자 갈게요.”
우리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있던 핸드백만 들었다.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밤도 깊었고, 이미 낮에 한 차례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냈었다.
다시 그 요란법석한 폭풍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데려다주겠습니다.”
“아뇨. 택시 부를게요.”
“내 차로 가죠. 더 빠를 겁니다.”
“택시도 부르면 금방 올 거예요. 바쁘실 텐데, 계속 일보세요.”
노트북을 끈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우의 마음을 머릿속으로는 이해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이 나와 버렸다.
“화났습니까.”
“아뇨. 제가 왜 화가 나요. 진짜 걱정 마세요.”
우리는 건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핸드폰을 꺼냈다. 콜택시를 불러 당장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푹 자고 나면 예민해졌던 감정도 누그러들 것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혼자서도 잘 갈 수 있어요.”
우리는 모든 것을 야근 탓으로 돌렸다. 갑작스러운 월요일 야근 때문에 예민해진 것뿐이라고.
우리는 여전히, 괜찮다.
“바로 콜택시 부르면 되니까…….”
“그래도 내가 데려다주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가 콜택시를 부르려던 우리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핸드폰만 가져가려던 작정이었다.
“……!”
하지만 갑작스럽게 밀려온 손길에 놀라 우리는 그대로 핸드폰을 놓쳐버렸다.
묵직한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봤다.
바짝 손을 말아 쥔 우리만큼 건우도 손을 그러쥐고 있었다.
건우의 눈동자는 바람 앞에 선 촛불처럼 힘없이 흔들렸다.
자칫 과거가 들킬까. 그날의 진실을 마주한 우리가 경멸 섞인 눈길과 비난을 날릴까. 그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없을까.
수많은 질문이 건우의 심장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뜨거운 열기를 품은 숨이 입술 틈새로 흘러내렸다.
건우는 차마 핸드폰을 향해 손을 내뻗지도 못했다.
“미안합니다.”
그저 묵묵히 사과만 했을 뿐이었다. 쭈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집은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정말 미안합니다.”
건우는 우리를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로 말했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돌아가신 소방관 가족들이 있다는 동네를 한동안 맴돌았다.
성원과 닮은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스름이 깔릴 때까지 건우는 매일 같이 동네를 돌고, 또 돌았다.
모르는 동네를 구태여 왜 찾는지 모르겠다는 성민의 말에도 건우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제 실수를 꺼내면 그대로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남은 가족에게 사과도 못한 주제에…….
‘강건우. 이 동네는 왜 매일 오는데.’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대체 뭘 보는 건데.’
그래서 차마 말하지 못했다.
제 욕심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여자앨 찾는다고.
합동장례식장에서 눈이 새빨개지도록 울던 그 애에게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고.
“괜찮아요. 액정도 멀쩡한데요.”
“정말 괜찮습니까.”
“그럼요. 스크래치도 없고요.”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금이 간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제 핸드폰이 생각보다 튼튼하거든요.”
걱정 말라는 듯 우리는 빙긋 웃어보였다.
“다행이네. 그럼 갑시다.”
“아뇨. 저 진짜 택시타면…….”
“나도 바깥바람 좀 쐬고 싶어서.”
“아…….”
그제야 우리는 건우가 고집을 부린 이유를 알겠다는 얼굴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우리의 표정이 꽤 맹해보였다.
옅은 미소를 짓던 건우는 의자에 걸려있는 우리의 코트를 들었다.
“바람 쐴 생각이신지는 몰랐어요.”
“그런 이유라면, 드디어 봐주는 겁니까.”
“네, 뭐. 겸사겸사 좋을 것 같아서요.”
우리는 눈썹까지 움직이면서 인심 쓰듯 말했다. 그 말에 딱딱하던 분위기가 한결 풀어졌다.
코트를 건네받은 우리는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의 불이 완전히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을 등지고, 두 사람은 사무실에서 멀어져갔다.
***
짙은 어둠이 조금 연해졌다. 세상은 남색 빛깔로 젖어들었다.
몽글몽글 붙은 구름에 가려져 해는 보이지 않았다.
온온한 바람결에 나뭇잎들이 흔들거렸다.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건우는 창밖 풍경을 바라봤다.
모든 것은 적막하고도 평온해보였다.
초록빛 향기가 널찍한 창을 뚫고 풍겨왔다.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마시던 건우가 뒤를 돌았다.
거실에 있는 적당한 크기의 캐리어가 건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하려면 아직 꽤 시간이 남았다.
늦잠을 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
깊은 한숨이 건우를 맴돌았다.
우리의 집에서 성원의 사진을 발견한 이후. 건우는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반복되는 꿈 때문이었다.
‘아니야. 아니잖아.’
꿈속에서조차 성원을 잡지 못했다. 마치, 결말은 이미 정해졌다는 것처럼.
쾅, 그리고 쾅. 폭발한 건물에서 풍기던 죽음의 냄새조차 선명해졌다.
조용한 바깥을 보던 건우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차올랐다.
숨통이 막혀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더 담담한 얼굴로 우리를 마주할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다. 건우는 살고 있는 집을 내놨고, 이직을 준비했다.
조금씩 우리의 곁을 떠날 준비를 시작한 것이었다.
“고우리.”
뜨거운 목소리가 창에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멀어지려고 할수록 우리의 모든 것이 그리워졌다.
웃는 모습부터 당황해하는 모습까지…….
사랑스러운 그 모든 걸 잊을 수는 있을까. 잊히기는 할까.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설령 우리의 곁에 다른 사람이 생겼대도.
너밖에 그릴수가 없다.
“……고우리.”
모든 찬란한 순간이 사라지듯 창에 붙은 입김마저 사라졌다. 건우는 한참이고 창밖만 바라봤다.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햇빛에 남색 하늘은 금세 환해졌다.
얼굴을 녹아내리는 햇볕이 유난히도 뜨겁게만 느껴졌다.
커튼을 치면서 생긴 까만 그늘 속으로 건우가 모습을 숨겼을 때였다. 약속시간에 맞춰 우리가 초인종을 눌러댔다.
비디어폰으로 한껏 멋을 부린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건우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활기찬 기운이 스피커를 타고 전해졌다.
“예. 강건우입니다.”
건우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번졌다.
-저 왔는데. 들어갈까요.
“바로 가죠.”
건우는 우리를 집에 들이지 않았다. 곳곳에 짙게 남을 우리의 잔향에 얼마나 무너질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움에 안달이 나 주저앉게 될지도 몰랐다.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싱글벙글거리는 우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환하게 미소 짓는 얼굴을 더는 보지 못할지도 몰랐다.
닿을 수 없는 빛을 향해 손을 내뻗듯 건우는 조심스럽게 비디어폰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화면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벌써부터 겁이 났다. 매몰차게 떠나야 하는데. 슬퍼하는 우리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미는 것만 같았다.
건우는 비디어폰 속의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끝이 가까워졌다는 걸 느꼈기 때문일 것이었다.
보고 있는데도, 자꾸 보고 싶어지는 건.
-나오기는 하시는 거죠.
“예. 바로 나가겠습니다.”
건우는 비디어폰을 보면서 입꼬리에 힘껏 힘을 주었다.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 찬란한 순간을 망칠 수는 없었다.
흐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건우는 캐리어를 끌었다.
크게 숨을 내뱉은 건우가 현관문을 열었다.
“제가 너무 빨리 왔죠.”
문을 열자마자 우리가 반갑게 건우를 반겼다.
“캐리어가 크지는 않으시네요.”
“고우리씨는…….”
우리의 캐리어를 보던 건우는 말문이 막혔다. 이민이라도 가듯 큼지막한 캐리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출장용 캐리어는 잃어버렸습니까.”
“처음에는 그걸로 꺼냈는데 너무 작더라고요.”
“끌고 다니기 힘들 것 같은데.”
“제가 힘은 좋거든요. 그리고 기념품까지 생각하면 딱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뿌듯한 얼굴로 캐리어를 두드렸다. 하드 케이스에서는 명랑한 소리가 났다.
“그럼 저희 슬슬 출발해요.”
우리가 흘러내리는 선글라스를 치켜 올리면서 말했다. 폼나는 여행을 위해 미순에게서 급히 공수해온 선글라스였다.
둥그스름한 선글라스에는 굵은 하얀 테두리가 둘러져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촌스러운 외계인 같은 모양새였다.
“선글라스 잘 어울리네.”
“그죠. 해외여행에는 선글라스 하나는 필수잖아요.”
차에 올라타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온갖 포즈를 취하는데 심취했다. 발걸음부터가 남달랐다.
마치, 모델처럼 위풍당당하게 주차장을 휘어잡았다.
“차장님도 하나 하시면 멋있을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왜요. 커플 아이템 하나는 있어야죠.”
우리가 검지로 슬쩍 선글라스를 내리고는 말했다. 이번 여행으로 얼어붙었던 관계를 회복시킬 참이었다.
여행길이 주는 낯선 기운과 여유로움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여행비도 굳었고…… 제가 선글라스는 쏠게요.”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값은 상관없나.”
건우는 우리를 놀리려는 듯 능청스러운 말을 던졌다.
얼마나 값비싼 걸 고르시려고.
건우를 보던 우리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다음 달에 나갈 카드 값을 꼼꼼히 계산해봐야 할 것만 같았다.
“상관은 없는데요.”
“없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합리적인 소비자면 좋지 않을까요.”
운전대를 잡은 건우가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괜히 뜨끔해져 슬그머니 선글라스를 올렸다.
콧잔등에 걸쳐있던 선글라스는 금세 자리로 돌아왔다.
“요새 가성비도 중요하잖아요.”
의자에 기댄 우리는 어색한 웃음까지 터뜨렸다.
“기대하죠.”
난데없이 던져진 선전포고에 우리는 침묵을 고수했다. 명품 선글라스 가격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곁눈질로 건우를 보던 우리는 자는 척, 어설픈 연기를 펼쳤다.
차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난 우리가 그대로 곯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힘차게 도로를 내달리던 건우의 차가 속도를 줄였다.
빨간불에 건우의 차가 부드럽게 멈췄다. 건우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다.
한껏 제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목이 아파보였다.
건우는 우리의 얼굴에 손을 대주었다.
“선글라스 사요. 선글라스…….”
희미한 잠꼬대를 내뱉는 모습마저 귀엽게만 보였다.
거치적거릴까. 콧등까지 내려간 선글라스를 벗겨주었다.
그리고는 잠든 우리의 얼굴을 눈에 가득 담았다.
“자는 것도 예쁘네.”
깊숙이 숨겨둔 속내가 입술을 비집고 흘렀다. 우리에게 완벽히 홀려버릴 것만 같았다.
넋을 잃은 건우의 얼굴에 빙긋이 미소가 돌았다.
부드럽게 휘어진 입매는 금방이라도 귀에 걸릴 것처럼 보였다. 차창을 넘어 녹아드는 봄 햇살마저 따뜻했다.
우리의 얼굴에 녹아든 빛이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환한 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건우는 행복했다. 이별이나 어둠이나. 아무 것도 떠올릴 틈이 없었다.
건우의 머릿속은 그저, 우리로 가득했다.
큰일이었다. 멀어져야 할수록 갈망이 짙어지고 있었다.
탐난다, 네가.
지독하게도 탐나.
“고우리.”
건우가 나지막하게 우리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가 몸을 꼼지락거렸다.
고 작은 움직임에 우리의 머리칼이 건우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내렸다.
“……우리야.”
널 두고 어떻게 떠날까.
너 없는 세상에서 살 수는 있을까.
숱한 생각들이 건우를 무너뜨렸다.
차창을 넘어 미끄러진 빛이 맥없이 바스라졌다.
***
구름 위를 날던 비행기가 고도를 낮췄다. 기류는 안정적이었다.
솜사탕만큼 새하얀 구름 아래에 숨겨졌던 홋카이도 전경이 우리를 반겼다.
영화에 집중하고 있던 우리가 어느 샌가 이어폰을 뺐다. 그리고는 창밖 풍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푸릇하게 물든 섬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다와 어우러진 섬은 청량한 향기마저 품고 있었다.
햇살이 부서져 바다 위로 물비늘이 일었다. 찰랑거리는 물결을 따라 빛이 반짝거렸다.
조그마한 창을 넘어 번지는 훈기에 우리의 입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하겠습니다. 좌석 등받이와 테이블은…….”
안내 방송이 기내에 울려 퍼졌다. 단정한 안내 방송과 함께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체크했다.
분주하던 착륙 준비가 끝났다. 비행기가 활주로로 착륙했다.
강한 마찰에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우리는 긴장한 얼굴로 건우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저는 착륙이 제일 무섭더라고요.”
안정된 기체만큼 우리도 여유를 찾았다.
“지금은 괜찮습니까.”
“네. 좋아요. 얼른 내리고 싶기는 하지만.”
우리는 활주로를 뱅글뱅글 도는 비행기를 보고는 말했다.
새로운 장소를 왔다는 설렘이 우리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빨리 선글라스 껴야겠어요.”
“지금부터?”
“그럼요. 지금부터 커플여행 시작이니까.”
우리가 작은 크로스백에 숨겨뒀던 선글라스를 내밀었다.
면세점에서 큰맘 먹고 산 선글라스였다.
“뭡니까.”
“선물이요.”
“설마…….”
“네. 그 설마, 맞아요.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하나 샀어요.”
건우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을 찾는데 얼마나 열중했는지 몰랐다.
제 물건을 고를 때보다 더 신중하기까지 했다.
“커플여행에 멋진 아이템 하나는 있어야죠.”
“그래도.”
“그러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고맙다고만 해주세요.”
우리는 건우의 손에 선글라스를 쥐어주었다. 단단한 손길만큼 목소리마저 다부졌다.
“……고마워요.”
빙긋거리는 웃음에 결국 건우는 백기를 흔들었다.
우리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가방에 있던 미순의 선글라스를 꺼냈다.
“자, 그럼. 갈까요.”
그리고는 도도하게 선글라스를 꼈다.
마치, 패셔너블한 공항 패션을 선보이는 유명 연예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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