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91화 (91/102)

제 91화. 시작부터 잘못된 관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은 끈덕지게 건우를 갉아댔다.

“다시 들어가셨거든요.”

건우의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죄책감이 목을 졸라왔다.

더는 숨을 쉬지 말라고 누군가 손을 내뻗는 것만 같았다.

“아무도 못 들어갔던 현장을요.”

“장례식은.”

“합동장례식 치루고 현충원에 모셨어요. 그날 화재 현장이 조금 컸거든요.”

건우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날의 일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살기 위해 버둥거렸고 남은 자들은 절망했다.

풀 하나 없는 아스팔트에 고개를 처박고 우는 이도 있었다.

그 지옥의 불구덩이를 어찌 있을 수 있을까. 당장 죽는대도 건우는 잊지 못할 것이었다.

가족을 찾는 절규와 흩날리기 시작한 재 가루가 모두를 온통 회색빛으로 적셨다.

어른거리는 기억에 건우는 잔뜩 얼이 빠져 있었다.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의 건우의 손에 있던 사진을 가져갔다.

“지금은 잘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건우를 봤다. 씩씩하게 지내고 있으니 자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눈빛이었다.

숨을 죽인 건우가 우리를 봤다. 하지만 금세 우리의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마.’

성원의 마지막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살아야죠.”

“…….”

“씩씩하게.”

주먹 하나를 꽉 쥔 우리는 꼭 파이팅을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빙긋 웃던 우리는 사진을 책상에 내려놨다. 하지만 여전히 건우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잘못 본 것이길 바랐다. 자기가 착각을 한 것이길.

하지만 건우가 부정할수록 기억 속 성원의 얼굴은 더 또렷해졌다.

사진 속 얼굴과 똑같이. 성원을 마주하는 건우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솟구치는 절망과 죄책감이 온몸에 번져나갔다.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는 건우의 목에 퍼런 핏대가 돋았다.

“그럼 다시 일정…….”

“그만…… 그만 올라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건우가 우리의 말을 빠르게 가로챘다. 가빠지는 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시야에 붙잡혔던 모든 것들이 마구잡이로 일그러졌다.

창을 타고 미끄러지는 빛이 살갗을 태우는 것만 같았다.

그날처럼.

“일이 있어서.”

건우는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갑작스러운 건우의 말에 우리는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인데요.”

“온라인 광고 채널 컨펌을…….”

“그거 금요일에 픽스하셨잖아요. 근데 차장님. 어디 아픈 건 아니죠.”

건우의 얼굴빛에 핏기가 없었다. 창백하게 부서지는 눈동자는 갈피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굵직한 땀이 반듯한 건우의 이마에 돋아났다. 생기를 놓친 건우의 눈빛에 우리는 마냥 걱정스럽기만 했다.

“얼굴이…….”

우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괜찮습니다.”

하나씩 쏟아내는 목소리가 뜨거웠다. 건우는 화마가 온몸에 번진 것만 같았다.

온몸이 펄펄 끓어 귀까지 멍멍해질 지경이었다.

살 수 있을까. 살아낼 수 있을까.

그 질문만이 끝없이 건우의 머릿속을 돌았다.

“아니. 얼굴빛이 정말 나빠요. 차장님.”

“괜찮아요.”

“열이라도…….”

우리가 발꿈치를 들고는 건우의 이마에 손을 댔다.

건우는 우리의 손이 닿은 곳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파왔다.

“괜찮다고 했습니다.”

머릿속을 쑤시는 끔찍한 고통에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우리의 손을 뿌리쳤다.

“……차장님.”

건우를 보는 우리의 눈빛이 떨렸다. 갑작스러운 변화를 종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열이 나시는 것 같은데.”

“그냥. 골치 아픈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여행은 나중에 얘기하죠.”

우리의 말을 하기도 전에 건우는 방을 나섰다. 단호한 태도에 우리는 건우를 잡을 수도 없었다.

도어락이 닫히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휑덩한 방을 살폈다. 방이 유난히도 조용하게만 느껴졌다.

책상에 앉은 우리가 손을 쫙 폈다. 건우의 열감이 손바닥에 남아 사라지질 않았다.

감기에 걸렸나. 몸살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문을 봤다.

하지만 건우는 돌아오질 않았고 마른 꽃잎만 우리의 손바닥 위로 떨어져 내렸다.

“얜 또 왜 죽는 거야.”

바삭거리는 꽃잎을 매만지던 우리의 볼멘소리가 터졌다.

말라비틀어진 꽃은 팔락대지도 못하고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찬란하지 못한 마지막.

***

종로 포장마차 거리.

따뜻한 김이 나는 우동 한 그릇과 양념된 꼬막이 테이블을 채웠다. 건우가 빈 제 잔을 채웠다.

“그만 마셔.”

넘치는 잔을 보던 성민이 황급히 건우를 말렸다.

하지만 건우는 말없이 빙긋 웃고는 잔을 비웠다.

“오늘만 마시자.”

“아니. 왜 갑자기 일요일에 달리겠다는 건데.”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성민의 말에도 건우는 상관없다는 듯 빈 잔을 채우는 데만 골몰했다.

끝없이 잔을 비우는 건우의 모습에 성민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무려 소주만 두 병째였다. 건우의 눈도 풀릴 만큼 풀렸다.

성민은 건우를 데리고 집까지 가는 것도 걱정이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주만 계속 퍼붓는 건우가 걱정됐다.

건우가 다시 한 번 손을 들고는 소주를 추가했다. 말리는 성민의 손길도 소용없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일은 무슨. 없다.”

“지금 네 꼴을 보고 말해.”

성민의 말에 건우가 제 두 손을 펼쳤다.

큼지막한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폭발한 화재 현장에 남아 사시나무처럼 떨어대던 그날처럼.

‘내가 가마.’

짙은 취기에도 성원의 목소리는 희미해지질 않았다. 도리어 더 짙어질 뿐이었다.

“내가…… 내가 죽였어.”

두 손을 보던 건우의 조용한 목소리가 번졌다.

“무슨 소리야. 네가 갑자기 누굴 죽여.”

“내가 죽인 거야.”

“아니. 그니까 네가 무슨 수로 누굴 죽이냐고.”

성민이 따져 묻듯 말했다. 하지만 종일 캐내도 쉬이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성민은 꼭 건우와 스무 고개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엔 내가 다 죽게 만든 거야.”

건우에게서 비릿한 웃음이 터졌다.

어쩌면 그때, 죽었어야 했던 건 나일지도.

“작가님하고 무슨 일 있었냐.”

“있었지.”

“그냥 웬만하면 네가 접고 들어가.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서는 여자 말을 잘 들어야…… 야. 자냐.”

성민은 테이블에 널브러진 건우를 봤다.

“형님이 말하는데. 자고 싶냐.”

열심히 건우를 깨우려 어깨를 흔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건우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한숨을 내뱉던 성민이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쓴 소주의 기운에 혀끝이 알싸했다. 소주잔을 내려놓은 성민은 건우를 빤히 쳐다봤다.

담담하던 건우의 표정이 녹아내렸다. 금세 건우의 얼굴이 구겨졌다.

나쁜 꿈을 꾸는 건지. 건우는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괴로움을 견디는 건우만의 촌스러운 습관이었다.

민우가 죽은 이후로 이만큼 무너진 건우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진짜 무슨 일이냐. 강건우.”

성민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흘렀다. 성민이 꼬막 하나를 잘근 씹을 때였다.

진동 때문에 테이블이 덜덜 떨렸다. 성민은 테이블에 있던 건우의 핸드폰을 들었다.

[고우리씨~]

핸드폰 액정에 반짝거리는 이름에 성민은 말문이 막혔다.

“와. 촌스럽게 물결 뭐냐.”

성민은 감탄하듯 말했다. 하트는 붙일 수가 없었을 테니. 밤새 온갖 고뇌를 펼쳤을 터였다.

하트, 별, 느낌표…….

갖가지 기호 속에서 건우가 생각했을 때. 가장 다정한 기호였을 것이었다.

그래도 물결이라니.

성민은 혀를 차면서 전화를 받았다.

“예. 작가님. 저 한성민입니다.”

-아…… 성민씨. 혹시 차장님은.

“지금 건우가 뻗어서요. 전화를 받을 만한 상황은 아니기는 한데.”

-왜요. 무슨 일 있나요.

“그건 아니고요. 취해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은 성민은 괜찮다면서 너스레를 떨어댔다.

많이는 마시지 않았다는 거짓말도 덧붙였다.

“바꿔드릴게요.”

-아뇨. 괜찮아요. 정말…….

우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민은 건우에게 붙었다.

그리고는 건우의 귀에 핸드폰을 대주었다.

-성민씨. 성민…… 아니. 차장님이 받고 계시는 건가.

우리의 목소리가 건우의 귓가에 녹아들었다. 그 목소리 하나에 자고 있던 건우가 깨어났다.

느릿하게 눈을 뜬 건우는 앞만 바라봤다.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다.

조그마한 숨소리조차 흘리지 않고 그저 가만히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네 얼굴을 보지도 못할 것만 같은데…….

건우는 그대로 땅 깊숙이 꺼져버리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모두가 묻힌 그곳까지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다시는 빛을 볼 수 없도록.

-차장님.

우리의 다정한 목소리가 아득해졌다.

-건우씨.

잡고 싶은데.

남은 빛 한 줄기라도 너무 붙잡고 싶은데.

-정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

-아닐 거야. 그럼 건우씨가 꼭 말할 테니까. 그죠.

건우는 차마 손을 내뻗을 수가 없었다. 예쁜 빛을 망가뜨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러운 손길을 묻힐 수는 없다.

건우가 조용히 다시 눈을 감았다. 말없는 건우를 힐끗거리던 성민이 핸드폰을 떼어냈다.

건우의 눈초리를 타고 굵직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죄책감이 심장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건우는 살려달라고 외칠 수도 없었다.

아린 기운이 이미 온몸에 퍼져나갔기 때문이었다.

빛이 멀어져간다. 아득하게.

‘내가 가마.’

일생을 품었던 그 말에 삼켜져.

‘아니야. 아니잖아.’

빛이 손을 흔든다.

‘아니…….’

안녕, 하고.

***

택시에서 내린 성민이 건우를 부축해 내렸다. 제 어깨에 건우의 팔을 두르고 한없이 낑낑거렸다.

여름이 아닌데도 성민은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것만 같았다.

“강건우. 집이다.”

성민은 바닥에 앉으려는 건우를 추켜세웠다.

“여기 집 아니다.”

건우를 지탱하는 성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식이 생각보다 무겁네. 자, 이제 강건우. 비번 말해 봐.”

“…….”

“여보쇼. 비번.”

가까스로 집까지는 데리고 왔는데 공동현관부터가 난관이었다. 비밀번호의 습격에 성민은 건우의 몸을 더듬거렸다.

우리에게 전화를 하지 못했다면 근처 호텔에 가야했을 것이었다.

늦은 밤이었는데도 우리는 단숨에 나타났다.

우리는 자기를 반갑게 맞는 성민을 보지도 못하고 건우에게 다가갔다.

뜨거운 건우의 숨이 고르지 않았다.

우리가 손을 내밀어 건우의 이마에 손을 댔다. 펄펄 끓듯 이마는 뜨거웠다.

“혹시 차장님 기침은 없었나요.”

“기침은…… 가끔 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열이 나서요.”

우리는 제가 걸쳤던 카디건을 벗어 건우에게 덮어주었다.

들뜬 열이 건우를 약하게 만들었다.

지치고 힘없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일단 빨리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공동현관문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앞장섰다.

건우의 집은 적막하기만 했다. 꽉 닫힌 커튼 때문에 조그마한 빛조차 들지 않았다.

성민은 건우를 침대에 눕혔고 우리는 감기약을 찾아댔다.

하지만 체온계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가 집을 박차고 나갔다.

열기가 건우를 잡아먹도록 놔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시내에 있던 24시간 약국까지 달려가 감기약을 사들고 돌아왔다.

“차장님 열은요.”

성민은 제 이마와 건우의 이마를 동시에 짚었다.

“아직. 그대론 것 같은데.”

“젖은 수건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열은 내려야 할 것 같아서요.”

“네. 바로 가져올게요.”

성민이 분주하게 방을 나섰다. 갑작스러운 지시에도 야무지게 움직였다.

우리는 성민이 가져온 젖은 수건을 꽉 짜서는 건우의 이마에 올렸다.

찬기가 체온을 조금 낮춰줄 것이었다.

“차장님. 힘들겠지만 조금 일어나보세요.”

우리는 억지로 건우를 깨웠다. 탈수 증세까지 나타나기 전에 물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해열제도 먹어야 했고.

우리의 손길에 건우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열기에 녹는 것만 같았다.

우리마저도 흐릿하게 보였다. 꿈인지 현실인지. 건우는 제대로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칼칼한 목을 넘어가는 약만 또렷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냉수에도 끓는 열감은 가라앉지 않았다.

자리에 누운 건우는 수건을 적시는 우리를 조용히 바라봤다.

얼굴에 스친 잔향은 그대론데.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우리가 밀려나가는 것만 같았다.

잡고 싶다는 갈망이 건우의 손을 당겼다. 그 손길은 조심스럽기만 했다.

소중한 꿈을 깨버리지 않겠다는 듯이.

“차장님.”

건우의 손이 수건을 든 우리의 뺨에 닿았다.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주무세요.”

건우는 뚫어져라 우리를 바라봤다.

눈에 폭 담았다. 눈을 감아도 떠도 기억날 수 있게.

기억 속에서 증발될 수 없게.

건우는 우리의 눈동자부터 숨결까지 모두 기억할 생각이었다.

우리가 뺨을 스치는 손을 때어낼 때였다. 건우가 우리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지 마요.”

“…….”

“나만 두고 가지 마.”

절대로 놓아줄 수 없다는 듯 절실한 손길이었다.

“저 여기 있을 거예요.”

우리의 말이 건우를 다독거렸다.

“그러니까 걱정 말고 주무세요.”

“정말 있어주는 겁니다.”

“그럼요. 저 거짓말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건우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힘없이 침대에 제자리로 돌아온 팔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젖은 수건을 건우의 이마에 올려주었다. 차가운 기운이 이마를 돌았다.

호수에 빠진 솜처럼 온몸이 무거웠다. 눈두덩조차 무거워 자꾸 눈이 감겼다.

우리의 얼굴을 보려고 발버둥을 쳐봤지만 소용없었다.

아픈 기운이 온몸을 쑤셨다.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을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고장 난 것처럼 제어가 되질 않았다.

“잘 자요. 차장님.”

따뜻한 말에 건우의 눈이 결국 감겼다. 어지러운 머리 때문인지 모든 소리가 까마득히 멀어졌다.

우리의 숨결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했다.

우리가 나온 꿈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는 그리는 습관 때문일까.

타는 듯한 온몸이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도 같았다. 더는 녹지 않도록.

열이 내리는 기분이었다. 베개를 적시던 땀조차 누그러들었다.

가빴던 건우의 숨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찡그렸던 표정도 한결 풀렸다.

‘고우리씨.’

까마득한 꿈속을 한없이 달리던 건우가 우리를 불렀다.

‘우리씨.’

‘…….’

‘우리야.’

마지막 발버둥을 친 것이었다.

조그마한 빛 속에 사라지는 우리를 잡고 싶어서.

하지만 건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를 잡을 수 없다는 걸.

우리를 향해 걷던 건우는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짙은 어둠에 매몰됐다.

따뜻했던 세상은 무너졌다. 이제 냉기와 어둠만 건우를 반겼다. 꿈속에서 건우는 한없이 실소를 뱉어냈다.

허망하게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 세상에 돌아왔다. 너무도 잘 어울리는 차가운 세계로.

그래. 강건우.

이게 맞는 거야.

***

월요일 아침부터 마케팅팀 분위기가 묘했다. 우리는 건우의 눈치만 살폈고 건우는 무심하게 일만 하고 있었다.

핑크빛 분위기를 생각하던 황주임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황주임이 선영에게 슬그머니 다가갔다.

“월요일부터 분위기 왜 이래.”

“저도 모르겠어요.”

“두 분이 싸웠나. 그거 말곤 없는 거겠지.”

황주임의 목소리는 땅굴을 팔 만큼 한없이 낮아졌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대리님이 무슨 실수를 하셨나본데요.”

“내가 보기에도 그래.”

“무슨 일일까요.”

“그건 나도 궁금하다.”

황주임과 선영은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해댔지만 뾰족한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저 하루 빨리 폭풍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난 후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고대리님.”

“예. 차장님.”

“우리 여행 취소할 수 없습니까.”

우리와 조용히 산책을 하던 건우가 폭탄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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