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90화 (90/102)

제 90화.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했던 얼굴

고개를 들어 건우를 보던 우리의 얼굴에서 힘이 빠졌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어느 샌가 침대에 바짝 붙어버렸다.

뜨거운 건우의 눈빛이 우리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주 느릿하게.

그리고 아주 끈적끈적하게.

건우가 우리의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었다. 뺨을 스치는 건우의 손길에 우리의 온몸이 달아올랐다.

부드러운 살결을 스르르 미끄러지는 손길에 우리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고우리씨.”

열기를 품은 목소리가 우리를 뜨겁게 적셨다.

“계속 예뻐져서 어떡하나.”

“…….”

“가만히 두지 못하게.”

그 말에 우리는 가만두지 말라고 소리칠 뻔했다. 건우의 숨결이 우리의 입술에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두 팔로 건우의 목을 감은 우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돌적인 손길에 건우는 씩 웃고는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고른 숨소리가 우리의 살결을 간질거렸다. 우리는 침도 삼키지 못하고 건우의 눈만 바라봤다.

까만 눈동자에 얼마나 더 빠져들 수 있을까.

매혹적인 향기의 끝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가랑비처럼 조용히 젖어드는 적막에 우리의 눈동자만 천천히 움직였다.

“가만 두지, 말까.”

어쩌면 이성을 붙잡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건우의 마지막 말이 번지기 전까진.

우리는 하얀 심지에 불이 탁, 붙는 것만 같았다.

화르륵. 온몸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후끈거렸다.

“가만히 두라고 말하면요.”

“설득해야죠.”

건우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몇 번이고 설득할 수 있다는 다부진 눈빛이었다.

“가만히 두지 말라고 하면…….”

우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건우는 쫙 뻗고 있던 팔을 구부렸다. 차가운 코가 맞닿았다.

“정말 가만두지 말아야지.”

갑작스럽게 사라진 거리에 우리의 심장은 펄떡거렸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제법 소란스러웠다. 뜨뜻한 타액이 우리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건우의 눈길을 슬쩍 피한 우리가 건우의 콧잔등만 빤히 쳐다봤다.

“그럼 저는요.”

“예. 말해요.”

“그러니까…….”

신중하게 선택을 내리듯 우리는 말을 아꼈다. 짤막한 침묵. 그 끝에서 우리는 다시 눈을 들어 건우를 봤다.

건우의 눈빛이 조용히 우리에게 내려앉았다.

이 남자, 가까스로 붙잡고 있다.

원초적인 욕망이 만든 열기가 터지지 않게.

“후자로 갈게요.”

우리는 짙은 페로몬 향기를 머금은 그 욕망에 굴복해버렸다.

“그니까 가만 두지 않는 걸로 결정할게요.”

“좋은 결정이네.”

“그건 두고 봐야죠.”

우리는 건우를 향해 씩 웃었다. 절대로 방심하지 말라는 경고가 우리의 눈동자에 넘실거렸다.

우리가 두 팔에 힘을 주어 다시 한 번 건우를 당겼다.

건우는 그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유혹적인 눈빛과 손길은 모두 받아낼 준비가 끝났다는 듯.

“그럼 가만 두지 말아 봐요.”

“건우씨. 진짜 괜찮겠어요?”

건우는 부드러운 손길로 우리의 얼굴을 감쌌다.

“충분히.”

우리를 당긴 건우가 거침없이 우리를 파고들었다.

맞닿은 입술은 터질 것 같이 달아올랐다. 톡, 건드리면 터지는 봉숭아처럼.

빨갛게 여문 입술이 아주 느릿하게 벌어졌다.

머금고 있던 뜨거운 숨이 서로를 향해 눅진히 젖어들었다.

달달한 열매의 과즙을 먹듯 우리는 건우의 향기를 탐했다. 저돌적인 몸짓에 건우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우리를 깊이 갈망했다.

부드럽고도 올곧이 밀려드는 열기에 우리는 어쩔 줄을 몰랐다.

온몸을 도는 열기가 우리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냥 자꾸 욕심만 났다. 제 얼굴을 쓰는 건우의 손끝이 남긴 여운 때문일지도.

우리는 모든 생각이 마비된 것만 같았다. 잇새로 녹아든 건우의 향기를 빨아들이는 데만 골몰할 뿐이었다.

서로에게 돌진하던 우리와 건우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건우씨.”

건우의 셔츠를 잡은 우리의 목소리가 애달팠다.

“진짜…… 긴장하셔야 될 걸요.”

우리는 가쁜 숨을 넘기면서 말했다. 하지만 대범한 말도 쿵쾅거리는 심장만은 가라앉히지 못했다.

아마도 건우의 잔향이 입속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지금부터가.”

“…….”

“진짜 시작이거든요.”

우리의 말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그 뜨거운 말에도 건우는 꼿꼿이 우리만을 바라봤다.

복숭앗빛으로 익은 우리의 두 뺨이 그저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건우는 끝없이 쏟아지는 키스에 빨개진 우리의 입술만 천천히 손으로 쓸어주었다.

건우의 손길이 스친 곳마다 예민한 감각이 살아났다.

스치는 살결에 모든 신경이 모였다. 침을 넘기는 우리의 목젖이 느릿하게 내려갔다 올라왔다.

그 조용한 모든 순간.

우리와 건우는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우리씨.”

건우가 우리의 입술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그거 압니까.”

나직하게 번진 목소리가 우리의 귓가에 깊이 박혔다. 여전히 우리만을 바라본 채로 건우는 꼿꼿하게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벌어진 단추 사이로 조각 같은 건우의 몸이 설핏 보였다가 사라졌다.

“뭘요.”

우리는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눈길만큼은 건우의 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단추가 하나씩, 하나씩 계속 풀려갔다.

끝을 모른 채.

“공격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

“그건…….”

“먼저 공격하는 거죠.”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단추가 열렸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건우가 셔츠를 벗었다.

거친 손길에 셔츠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금처럼.”

***

건우는 땀에 젖은 우리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우리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우리는 널브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우리가 가슴께까지 이불을 잡아당겼다. 혼이 전부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괜찮습니까.”

“아…… 네.”

질문에 대한 대답조차 느릿하게 터졌다.

“마실 거라도.”

“그냥 냉수면 될 것 같아요. 목이 타서.”

“조금만 기다려요.”

우리는 멀어지는 건우의 뒷모습을 봤다.

얼마나 더 환희에 찰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갈망할까.

그 모든 질문에 우리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이 부시도록 완벽한 건우에게 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셔요.”

건우가 침대에 걸터앉아서는 물컵을 내밀었다. 우리가 몸을 일으키고는 물컵을 받았다.

손바닥의 온도 때문일까. 우리는 물이 미지근하게만 느껴졌다.

우리가 물을 마셨다. 목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물이 미지근했다.

“냉수 마시고 싶었는데.”

우리가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배가 따뜻해야 좋을 것 같아서.”

건우가 우리의 배에 손을 올렸다. 우리는 보드라운 이불을 뚫고 건우의 온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배에 돌던 저릿한 기운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건우씨. 지금 이 포즈요.”

“예.”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지극히 정상적인 것 같은데.”

건우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우리를 봤다.

티끌하나 없는 순진무구한 얼굴이었다. 눈동자에 넘실대던 매혹적인 기운조차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그…… 뭔가 임산부가 된 느낌이랄까.”

두 사람의 눈길이 동시에 우리의 배로 향했다.

“생각만 해도 좋네.”

“어우. 큰일이죠. 아직 할 일이 산더민데.”

“커리어 문제면 내가 외조하겠습니다.”

진담인 듯 건우는 진지하기만 했다.

산더미 같은 빨래부터 우는 아이를 달래는 일까지. 천하무적으로 해낼 것처럼 보였다.

“아기 보는 게 진짜 힘들다던데요.”

우리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운이 돌았다.

새벽마다 교대로 일어나 밥을 먹이고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직원들의 경험담을 설핏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러겠죠.”

“지금 조금 눈빛이 떨리신 것 같은데.”

“생각만 해도 좋아서.”

“뭐가요.”

건우가 온기를 풍기는 우리의 뺨을 쓸어내렸다. 사랑스러운 눈길이 우리에게 스며들었다.

“고우리씨 닮은 예쁜 딸이면.”

생각만으로도 건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정말 완벽한, 딸바보 예약이었다.

“근데요. 건우씨. 순서가 틀린 것 같은데요.”

들뜬 건우를 달래듯 우리가 말했다.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아기 생각까지 하는 건…….”

“너무 빨랐나.”

고개를 기울인 건우의 눈동자에서는 금방이라도 달달한 꿀이 떨어져 내릴 듯했다.

우리의 세상에 녹아드는 것만으로도 건우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그건 차차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빨리 생각하고 싶은데.”

“전 지금 조금만 더 쉬고 싶어서요.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우리는 냉큼 다시 침대에 누웠다.

“노는 것도 힘드네요.”

그리고는 푸념 섞인 말을 중얼대면서 눈을 감았다.

어제 남은 숙취부터 도발적인 순간까지.

우리는 끈덕지게 달라붙는 노곤한 기운을 힘껏 뿌리치지 못했다.

생각보다 제법 하루에 많은 일을 해낸 것만 같았다.

눈을 감은 우리의 귓가에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곧 따뜻한 건우의 체온이 느껴졌고 단단한 팔이 우리를 파고들었다.

우리는 팔베개를 해주는 건우에게 꼭 붙었다.

따뜻한 건우의 향기가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조금만 눈 붙여요.”

“……그럴게요. 진짜 조금만 잘게요.”

우리는 건우의 품에 쏙 들어갔다. 잠기 섞인 목소리가 건우의 가슴팍을 적셨다.

“저 꼭 깨우셔야 돼요. 건우씨.”

“예.”

“근데 진짜…… 진짜 따뜻하다.”

꿈속을 헤매듯 우리의 목소리는 몽롱하기만 했다.

건우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든 우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우리가 달콤한 잠에서 깰까. 건우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정지된 것처럼.

우리의 무게에 아릿해지는 팔도 건우는 꼼짝하지 않았다. 건우는 우리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건우의 얼굴에 가만히 미소가 흘렀다. 믿을 수 없는 행운에 감사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아름다운 너를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운명에.

***

일요일 점심. 우리의 집은 복작거렸다. 식탁에 앉은 건우는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한 채로 어정쩡하게 있었다.

갑작스런 주말 점심 초대였다. 어젯밤 몰래 우리를 데려다주다가 미순과 바로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미순이 맑은 냉잇국을 건우에게 떠주었다. 짙은 봄 향기가 피어올랐다.

국그릇을 받아든 건우가 고맙다는 듯 미순에게 목인사를 했다.

국을 끝으로 미순도 식탁에 앉았다. 건우는 수저를 들 생각도 못하고 식탁을 봤다.

상다리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들어요.”

건우를 보는 미순은 뿌듯한 얼굴이었다. 미래의 사위에게 걸맞는 한상을 차렸다는 만족스러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너무 많아서 죄송한데요.”

“아니에요. 별 거 없어요. 다 집에서 거의 먹던 거라서.”

미순이 호호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냉잇국도 간이 잘 됐더라고요. 향기도 좋고.”

“예. 맛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얼른 먹어요.”

“먼저 드시면 먹겠습니다.”

“예의도 바르지. 얼굴도 훈훈…….”

우리가 급히 미순의 팔을 톡 쳤다. 괜한 소리는 하지 말라는 몸짓이었다.

우리를 보고 눈을 부라리던 미순이 다시금 온순한 얼굴로 돌아왔다.

건우가 우리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감추겠다는 생각이었다.

“하하. 들어요. 다 식겠네.”

가짜 웃음을 터뜨리던 미순이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는 대충 국을 떠먹었다.

자기가 수저를 들 때까지 건우가 정말로 아무 것도 먹지 않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맛있게 먹겠습니다.”

미순이 한 숟갈을 먹고 나서야 건우도 수저를 들었다. 따뜻한 김이 나는 맑은 냉잇국에서는 봄기운이 물씬 풍겼다.

싱싱한 조갯살에서는 모래 하나 자분거리지 않았다. 향긋한 냉이가 입맛을 돋웠다.

“어때요.”

“맛있습니다.”

“어머머. 입맛에 맞다니까 다행이네.”

미순은 조기 살까지 발라 따뜻한 건우 밥 위에 올려주었다.

“나는.”

우리가 슬그머니 미순에게 밥그릇을 내밀었다.

“어이구. 봐요. 다 컸는데도 아기 같다니까.”

“아기는 절대 아니고요.”

우리는 재빨리 미순의 말을 부정했다. 잘 발린 생선살을 먹고 싶기는 했지만 아기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투닥거리는 우리와 미순의 모습이 건우는 다정하게만 보였다.

“먼저 먹어요.”

건우가 빙긋 웃고는 제 오곡밥 위에 있던 생선살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아뇨. 괜찮아요. 차장님.”

“나도 괜찮습니다.”

“진짜 여기 많아요. 제가 발라 먹을게요.”

“것도 발라줄게요. 다른 거 먹고 있어요.”

다정한 말이 식탁을 채웠다. 미순은 흡족한 얼굴로 건우를 봤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미순의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 눈에 피눈물을 낸 성서방의 존재가 말끔하게 잊힐 만큼 완벽한 강서방이었다.

“아, 맞다. 내가 점심 먹고 약속 있는 걸 깜빡했네.”

미순이 손뼉을 딱 치고는 말했다. 갑작스러운 박수에 우리가 놀란 얼굴로 미순을 봤다.

우리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미순의 속셈을 단숨에 파악했다.

짜릿한 집 데이트를 만들어주겠다는 속셈이었다.

음흉하게 웃던 미순은 식사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거지만 부탁해. 딸.”

우리는 구태여 집을 나서는 미순을 붙잡지 않았다. 미순이 없는 새에 여행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

설거지를 조금 미뤄둔 채로 우리는 건우를 손목을 끌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건우씨. 어제 보내드린 훗카이도 료칸(일본 전통 숙박시설)은 예약했어요.”

“가고 싶은 곳은 정했습니까.”

“몇 군데 정하기는 했는데. 건우씨는요.”

“나도 열심히 조사했습니다.”

노트북을 켜는 우리의 책상에 건우가 프린트물을 내려놨다.

아날로그적인 향기가 가득 풍겼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프린트물을 살폈다.

관광지별 위치부터 식당 영업시간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진짜 열심히 하셨네요.”

“설레서.”

민우가 죽은 이후로 가족 여행조차 가본 적 없던 건우였다. 건우는 들뜬 맘을 감추지 못했다.

노트북에 집중한 우리를 보던 건우가 말라가는 꽃을 봤다.

꽃잎 하나가 책상 위로 떨어졌다. 꽃잎 아래에는 사진이 놓여 있었다.

마른 꽃잎에 가려져 환하게 웃고 있는 우리의 모습만 보였다.

운명에 끌리듯 건우가 사진을 들었다. 꽃잎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꽃잎에 가려진 성원의 얼굴이 건우의 눈에 들어왔다.

“……!”

건우가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한 얼굴이었다.

정말, 단 한 번도.

사진을 보는 건우의 손이 떨렸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뜨거운 타액이 온몸을 태우는 것만 같았다.

건우는 어떤 말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무슨 말을 들을까. 그저 두렵기만 했다.

지독한 악몽이 반복되는 것만 같았다.

“아. 맞다. 액자도 샀어야 했는데.”

건우가 조사한 자료를 보던 우리의 눈길이 사진으로 움직였다.

우리는 사색이 된 건우를 보지도 못한 채로 사진만 빤히 쳐다봤다. 건우에게 기댄 우리의 입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저희 아빤데. 잘생기셨죠.”

우리가 사진 속 성원을 가리켰다.

“제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어요.”

“어쩌다…… 돌아가셨습니까.”

건우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출동하셨는데 폭발이 있었대요.”

“…….”

“마지막까지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우리의 말이 건우를 시리게 만들었다. 건우는 우리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떨리는 눈동자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제 잘못이었다. 모든 것이 제 실수다.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실수.

‘아저씨. 못하시겠다면 제가 갈게요. 제가…….’

모든 것이 타들어가던 그날의 냄새가 건우의 콧속을 파고들었다.

악착같이 살아남은 냄새가 건우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내가 가마.’

건우는 제 어깨를 두드리던 성원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쾅, 거대하던 폭발소리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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