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89화 (89/102)

제 89화. 집에 가지 말아요

집에서 목욕까지 마친 우리가 건우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굳게 닫혀있던 현관문이 열렸다.

우리를 보는 건우의 눈에서는 달달한 기운이 떨어졌다.

우리의 샛노란 후드티조차 예쁘게만 보였다.

주머니에 넣어 두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무슨 요리 하시게요.”

우리는 화제를 던지면서 건우의 집으로 들어섰다.

“닭볶음탕 어떻습니까.”

“좋죠. 매콤하게 해서 맥주까지 하면 딱인데.”

우리가 잔을 꺾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말을 내뱉고 나서도 우리는 아차 했다.

건우의 등에 반쯤 매달려온 어젯밤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맥주는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우리는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나도 그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저도 바로 도와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앉아있어요.”

“아뇨. 저도 꼭 도와드리고 싶어서요. 같이 요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우리는 소매를 걷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건 좀이 쑤실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주방으로 돌격했다.

조리대에는 재료들이 말끔히 손질돼 있었다. 우리는 냄비 속을 봤다.

깨끗하게 손질된 데친 닭이 맛깔스러운 색을 뽐냈다.

“차장…… 아니. 건우씨가 양념장 만들면 제가 쌀 씻을게요.”

건우의 이름을 부른 우리의 귀가 빨개졌다. 차장님이라는 호칭이 익숙해 건우라는 말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씩 연습을 할 생각이었다.

건우씨.

그 말이 어디서든 톡, 뛰쳐나올 만큼 익숙해지도록.

“제가 쌀 하나는 또 기가 막히게 잘 씻거든요.”

우리는 밥솥에 쌀을 적당히 부었다. 찬물로 쌀을 씻던 우리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후드티에 붙어있던 모자를 썼다. 거슬리던 머리카락이 모자 속에서 옴짝달싹도 못했다.

“그럼 바로 양념장 만들겠습니다.”

“네. 건우씨만 믿을게요.”

건우가 조그마한 종지를 꺼냈다. 고추장, 다진 마늘, 귀한 매실 액……. 갖가지 재료를 섞어 황금 양념장을 만드는데 열중했다.

그 진지한 눈빛에 쌀을 씻던 우리의 입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저 양념장 한 번 맛봐도 될까요. 궁금해서.”

“일단 제가 먼저 먹어보겠습니다.”

건우는 맛없는 양념장은 주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기미상궁에 빙의된 듯 건우는 숟가락에 있는 양념장을 콕 찍어 맛봤다.

조금 매콤하기는 하지만 단맛도 도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어때요.”

“먹을 만한 것 같습니다.”

“그럼 저도 한 번.”

건우를 보는 우리의 눈빛이 번득였다. 단홍빛을 뽐내는 양념장의 자태에 홀린 것처럼 보였다.

건우가 손을 씻고는 숟가락에 있던 양념장을 꼭 찍어주었다.

“너무 기대는 말고.”

우리가 조금 입을 벌렸다. 매끄러운 건우의 손가락이 우리의 입술에 닿았다.

보드라운 감촉이 우리의 입술을 적셨다. 혀끝을 내민 우리가 양념장을 맛봤다.

말캉한 감각과 뜨거운 숨결이 건우의 손끝에 녹아들었다.

강렬한 자극이 건우의 전신을 맴돌았다. 건우는 제법 진지하게 양념장 맛을 보는 우리를 봤다.

마지막 맛까지 음미하듯 양념장을 씹어대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건우가 기대에 찬 눈빛을 날려댔다.

“진짜 맛있는데요!”

우리의 목소리가 커졌다. 맛깔스러운 양념장 맛에 푹 빠진 표정이었다.

“밥도 맛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요. 누가 씻었는데요.”

“제 여친이 씻었죠. 것도 무척 열심히.”

건우는 팍팍 쌀을 씻던 우리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가히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인상적인 쌀 씻기였다.

“맛있게 만들러 갈게요.”

우리가 개수대에 있던 밥솥을 들었다. 우리의 손목을 타고 굵직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밥솥은 꽤 묵직했다.

우리는 밥솥을 두고는 취사 버튼을 눌렀다. 금방 맛있는 밥이 완성될 것이었다.

“이제 닭볶음탕만 하면 되겠네요.”

“그건 내가 맛있게 만들죠.”

“열심히 보조할게요.”

다부진 우리의 말에 건우가 빙긋 웃었다. 엉큼한 속셈이 풍겼다.

“그럼 하나만 먼저 도와줍시다.”

“뭘요.”

우리는 말만 하면 돕겠다는 듯 열의를 태웠다.

“집중력이 자꾸 흐려져서.”

“피곤하시면 제가…….”

“고우리씨 때문에.”

우리를 보는 건우의 눈길은 꼿꼿하기만 했다. 우리 때문에 정말 미칠 지경이라는 듯.

“제가 멀리 갈게요. 거실까지만.”

우리는 거실 쪽을 보면서 말했다. 젖은 우리의 손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우리가 다시 건우를 봤을 때.

적당한 타이밍만을 노리던 건우가 우리의 후드티 모자를 잡았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모자를 제 쪽으로 당겼다.

“어디 가려고.”

우리와 건우의 입술은 금방이라도 닿을 듯 가까워졌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뜨뜻한 타액이 우리의 목구멍을 훑고 내려갔다. 끓는 건우의 숨결이 우리의 입술을 적셨다.

달달한 눈빛을 흘리던 건우가 우리에게 입을 맞췄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열린 창에서 들어온 벚꽃 향기가 맴도는 것만 같았다.

달뜬 숨이 우리를 눅진히 적셨다. 배고팠던 것도,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희미해졌다.

온 감각은 건우에게만 손을 내뻗고 있었다.

우리는 탈 것 같이 입술이 뜨거웠다. 건우의 온기에 우리의 입술은 한없이 붉어졌다.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매혹적인 키스가 우리를 떨리게 만들었다.

깊이 우리를 파고들던 건우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자칫하다가는 저녁조차 먹지 못할지도 몰랐다.

“이제 조금 집중할 수 있겠네.”

건우가 우리의 후드티 모자에서 손을 뗐다.

“다행이네요. 저녁 못 먹을까봐. 조마조마했는데.”

“고우리씨 굶길 수는 없죠.”

“배고프면 승질 낼지도 몰라요. 식탐이 있어서.”

우리는 중요한 경고라도 하듯 말했다. 배고픔에 몸서리치기 전에 닭볶음탕을 완성시킬 생각이었다.

우리가 인덕션을 켰다. 냄비에 양념장까지 투하하고 닭볶음탕이 바글바글 끓기를 기다렸다.

센 화력에 닭볶음탕은 매운 냄새를 풍기면서 끓기 시작했다.

닭볶음탕을 젓는 건우를 보던 우리가 감자와 양파를 들었다.

감자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서도 우리는 자꾸만 뚜껑을 열어댔다.

“진짜 늦게 익는 것 같아요.”

우리는 초조한 얼굴로 감자를 찔러댔다.

“방금 넣어서.”

“하긴. 방금 넣기는 했죠.”

우리는 긴 주걱을 들고는 팔짱을 꼈다. 냄비 지킴이라도 된 것처럼 인덕션 주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시 찔러볼까요. 꽤 기다린 것 같은데.”

우리가 건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당장 감자를 못살게 굴겠다는 다부진 다짐마저 느껴졌다.

“아직 더 익혀야 할 것 같습니다.”

“그죠. 더 익혀야겠죠. 제가 성급한 거겠죠.”

“예. 조금.”

건우가 우리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는 커다란 손으로 우리의 허리를 감쌌다.

우리가 고개를 돌려 건우를 봤다. 밀착된 몸이 또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별일 아닌 듯 빙긋 웃고는 우리의 어깨에 턱을 댔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

따뜻한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의 얼굴을 적셨다.

“완성되면 놔줘야 할 것 같으니까.”

우리는 슬그머니 들던 주걱을 다시 내려놨다. 등에 번지는 건우의 온기가 싫지 않았다.

그 향기에 빠져 우리는 감자가 바스라질 때까지 뚜껑을 열지 못했다.

***

말끔하게 설거지까지 마친 우리가 널브러지듯 소파에 앉았다. 탄력적인 소파가 우리를 절로 늘어지게 만들었다.

“배 터질 것 같아요.”

우리는 따뜻한 차를 내려놓는 건우를 보고는 말했다. 차를 마실 배는 따로 있는 듯 우리는 본능적으로 찻잔을 잡았다.

옅은 노란 빛이 도는 차에는 꽃잎이 찻잔 속을 뱅글뱅글 돌았다.

“이거 무슨 차예요. 꽃도 있고.”

“매화꽃 찹니다.”

“향기 진짜 좋네요. 잘 마실게요. 차장…… 건우씨.”

우리가 수줍게 웃고는 차를 마셨다. 은은한 매화 향기가 우리에게 녹아들었다.

낮에 있었던 일은 말끔히 잊힐 만큼 따뜻한 온기가 우리의 몸을 적셨다.

“아 맞다. 차장님.”

찻잔을 내려놓은 우리가 손을 들었다.

“반지요. 바꿨더니 딱 맞아요.”

우리는 약지에 있는 반지를 자랑하듯 말했다. LED등에 부딪힌 반지가 반짝거렸다.

“오늘부터 계속 끼고 다니는 겁니까.”

“쉬는 날엔 매일 하고 다니려고요.”

우리가 소중한 반지를 매만졌다.

“출근할 땐.”

“그때는 아쉽지만 빼야죠.”

“계속 하고 다녀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건우를 봤다.

“우리가 사귄다는 발표를 누가 해버려서.”

담담한 건우의 말에 우리의 눈이 커졌다. 고깃집에서 있었던 일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니…… 누가요.”

“글쎄.”

건우는 말을 줄이고는 찻잔을 들었다. 매화꽃 차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우리는 슬쩍 건우의 눈길을 피했다.

하지만 폭탄 발표를 한 정체를 콕 집어주듯 건우의 눈길은 우리를 따라 움직였다.

“설마. 저는 아니겠죠.”

우리의 말에 건우는 말이 없었다. 강력한 긍정의 기운이 흘렀다.

조그마한 정적이 번졌다.

‘둘만의 금요일. 즐기러 가라고.’

‘대리님. 그러니까 저흰…….’

‘나도 즐기러 갈 테니까.’

빤히 건우의 손목을 보던 우리의 눈동자가 떨렸다. 고기 냄새로 가득한 식당에서 건우의 손목을 박력 있게 당기던 제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막걸리에 취해 봉인해제를 해버린 것이었다.

“범인이…… 저였네요.”

두 뺨을 쓸던 우리가 얼이 빠져서는 말했다.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건우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우리는 시무룩한 얼굴로 몽글몽글 피어나는 김만을 바라봤다.

“제가 어제 진짜 흥분했나봐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쳤지. 다 숨긴 비밀을…….”

우리는 말을 완성하지도 못했다. 맙소사. 그 말만 우리의 머릿속을 떠돌았다.

건우를 단속하면서도 정작 제가 떠들어버린 것이었다.

차장님과 뜨겁게 사귀는 중이라고.

“정말 죄송해요. 차장님.”

“차장님이라고 말해서 사과하는 겁니까.”

“아뇨. 제가 막 말하고 다녀서. 어제 곤란하셨죠.”

말을 끝낸 우리는 묵직한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진상이었다.

등에 매달려 왔던 것도 모자라서 멋대로 사귄다고 발표하고 말다니.

어젯밤 일로 매력이 썽둥 깎였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정나미가 떨어졌을지도.

우리는 끝없이 퍼마셨던 막걸리를 원망했다. 그게 아니면 미워할 것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쌔무룩한 우리를 보던 건우가 조용히 웃었다. 우리는 그 미소가 결코 좋은 뜻은 아닐 거라고 넘겨짚었다.

“곤란하기는 했죠.”

“죄송해요. 제가 맹세컨대 막걸리는…….”

우리가 손을 들고 금주를 선포하려던 때였다.

“너무 좋아서.”

건우의 말이 우리의 선서를 관통해버렸다. 건우는 조용히 우리만을 바라봤다.

우리 말고 다른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눈빛이었다.

“계속 웃을 뻔했거든요.”

“그게 무슨.”

“좋았다는 말입니다. 진심으로.”

건우는 직진만 할 줄 아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은 나도…….”

건우가 비밀이라도 말하듯 우리에게 다가갔다. 낮은 목소리가 사위를 끈적끈적하게 적셨다.

우리는 소파에 기댄 채로 건우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건우의 새까만 눈동자가 우리의 관심을 힘껏 당겼기 때문이었다.

다정한 눈빛 위로 섹시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침을 삼키는 것조차 잊고 건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묘한 기류가 우리에게 녹아들었다. 농염해진 기운에 우리는 건우의 뒷말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근질근질했거든.”

바닥에 손을 짚은 우리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그 낮은 목소리가 모든 세포를 톡톡 두드려대는 것만 같았다.

“제 기억엔 다들 코가 비뚤어지게 마신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죠.”

“예. 대부분 멀쩡했습니다.”

“대부분이면…… 아. 혹시 저만 심각했나요.”

우리는 기억을 더듬었다. 건우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예스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말없이 반지를 봤다.

소 잃고 마구간 수리를 하겠다고 나서봤자 속만 쓰릴 뿐이었다.

“쏟을 말을 다시 담을 수는 없을 것 같고.”

“아마도.”

우리의 말에 건우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 지금을 즐기렵니다.”

다부진 얼굴로 우리는 건우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우리의 두 팔이 야무지게 건우의 목을 감았다.

“괜찮겠습니까.”

“괜찮지 못할 것도 없죠.”

우리는 이미 결심을 한 것처럼 보였다.

본능에 충실하기로.

“괜찮지 못할 수도 있죠.”

“왜요.”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온 걸 아니까.”

건우의 말에 우리는 반사적으로 바닥을 봤다. 미순이 팔짱을 낀 채로 천장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제가 내려간다고 하면 붙잡아 주실 거죠.”

“지금은 못 놔주죠.”

“놔주지 마세요. 잘못 놔주시면 저 삐칠 지도 모르니까.”

“걱정 말아요.”

거실에는 조그마한 소리조차 없었다. 건우의 목소리만 매끄럽게 돌 뿐이었다.

“……놔줄 생각, 없어.”

건우의 얼굴에 도발적인 미소가 번져나갔다. 건우가 한 손으로 우리의 허리를 감았다.

우리는 그대로 건우에게 빨려드는 것만 같았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건우는 고개를 기울여 우리의 입술을 삼켰다.

따뜻한 입술이 맞닿았다. 건우와 우리를 오가는 열기에 옅은 매화 향기가 짙어졌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흘렀다. 건우의 셔츠를 잡은 우리가 손에 꽉 힘을 주었다.

예민한 감각들이 모두 살아나 온몸을 찌릿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온몸이 아찔해졌다. 조금이라도 톡, 건드리면 열기에 그대로 폭발해버릴 지도 몰랐다.

점막을 스치면서 번지는 향기가 우리를 깊게 파고들었다.

강하게 밀려드는 건우의 기운에 우리의 몸이 조금씩 뒤로 기울어졌다.

“차장님.”

“바닥이 너무 딱딱하네.”

“괜찮은데요.”

건우를 붙잡고 있는 우리의 목소리는 애달았다.

지금 당장 거사를 치르자는 유혹적인 눈빛까지 날려댔다.

“내일 아침에 아플지도 모릅니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냥 가요. 건우씨.”

우리는 뒷말에 힘을 꽉 담고는 건우를 당겼다. 하지만 건우는 쉽게 우리와 가까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탐스러운 건우의 입술만 애처롭게 바라봤다.

“꽉 잡고 있어요.”

“뭘…….”

우리는 곧 그게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건우가 힘껏 힘을 주어 우리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으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우리는 팔에 잔뜩 힘을 주었다. 건우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살기 위한 발버둥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아기 코알라처럼 건우에게 딱 붙었다.

“놀랐습니까.”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나도 급해서.”

“그니까 그냥 하셔도 된다니까요.”

우리가 거실 바닥을 빤히 보면서 궁싯거렸다. 타던 열기가 식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금방 그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싫습니다.”

고집스러운 말을 끝으로 폭풍 같은 키스가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맞닿았다가 떨어지는 입술과 목을 타고 넘어가는 끈적끈적한 열기가 우리를 달뜨게 만들었다.

달아오른 우리의 두 뺨은 금세 붉은 빛이 돌았다.

건우가 거침없이 침실로 향했다. 우리는 건우를 도발하듯 슬쩍 건우의 입술을 깨물었다.

매끄러운 입술이 가지런한 치열 사이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우리를 조용히 바라보던 건우의 목젖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느릿하게 올라왔다.

“한계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증명하듯 건우는 우리를 침대에 내려놨다. 건우의 향기가 그윽하게 우리의 코끝에 살랑거렸다.

“저도 한계에 온 것 같아요. 차장님.”

“집에 가지 마요.”

저돌적인 우리에게 건우도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에 가둔 건우의 본심이 결국 뛰쳐나왔다. 침대에 두 손을 짚은 건우의 눈동자엔 원초적인 본능만이 넘실거렸다.

“정말 못 보낼 것 같아.”

건우는 거침없이 우리에게 다가갔다. 서로를 갈망하는 눈빛이 일렁였다.

우리를 향한 갈증이 너무도 심해 건우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단번에 건우는 우리의 입술을 삼켰다. 목을 미끄러져 내려온 열기가 건우를 잠식해갔다.

매혹적인 기운이 건우의 눈동자에 녹아들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심해에 빠져든 것만 같았다.

온전히 건우의 숨소리만 짙게 들려왔다. 모든 것이 아스라이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아도 떠도. 숨을 마셔도 내쉬어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건, 건우뿐이었다.

단단히 갇힌 것이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그의 세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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