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88화 (88/102)

제 88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건우는 별말 없이 우리를 봤다. 담담하던 건우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같이 보였다.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건우의 죄책감을 긁어댔다.

“어디 불났나봐.”

“크게 났나본데. 소방차가 몇 대야.”

스쳐 지나가는 목소리들에 건우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만 들어가죠.”

그래서였다.

건우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우리의 손목을 잡은 건.

그 손길에 소방차를 보던 우리가 건우에게로 눈을 돌렸다. 건우의 얼굴빛은 창백했다.

우리는 아마 민우가 생각났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자기가 아버지 성원을 생각하듯.

“빨리 가요. 갑자기 출출한 것 같아요.”

“저도 출출한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카페 하나 있거든요. 거기로 가요. 벚꽃도 쫙 보일 걸요.”

우리는 건우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였다. 사이렌 소리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소방차를 힐끗거리던 눈길조차 거뒀다. 우리가 먼저 쇼핑몰로 발길을 돌렸다.

“거기 수플레 케이크도 진짜 맛있거든요.”

“기대되네.”

우리는 건우와 나란히 카페로 향했다. 벚꽃 축제 때문인지 카페는 제법 북적거렸다.

목을 빼고 우리는 자리를 찾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자리 뺏기 눈치작전에 돌입한 것이었다.

“저쪽 금방 일어날 것 같아요.”

사냥감을 노리는 야수처럼 카페를 어슬렁거리던 우리가 창가 쪽을 슬쩍 쳐다봤다. 커플이 일어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느릿하게 코트를 걸치고 있는 여자를 힐끗거리면서 창가 쪽으로 슬금슬금 향했다.

우리의 눈치에 떠밀린 여자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의자에 덥석 가방을 둔 우리는 홀가분한 얼굴로 카운터로 걸어갔다.

수플레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늘 운이 진짜 좋나 봐요. 벚꽃도 예쁘고 자리도 잘 잡고.”

우리는 창밖 풍경을 봤다. 호수 풍경이 한 눈에 보였다. 핑크 빛이 녹아든 풍경이 장관이었다.

훈훈한 봄기운이 창에 짙게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건우는 창밖을 바라보던 우리를 조용히 바라봤다.

“차장님. 근데 저희 여행…… 왜요. 설마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꼿꼿한 건우의 눈길에 우리는 얼굴만 매만졌다. 막걸리의 향기가 짙게 풍기는지도 몰랐다.

“아뇨.”

“그럼 왜…….”

“오늘도 예뻐서.”

나지막이 녹아드는 달달한 말에 우리는 진동벨을 만지작거리던 손길마저 멈췄다.

“벚꽃이 예쁘기는 하죠. 색도 예쁘고. 여기 풍경도 좋고.”

우리가 호수를 보면서 말을 돌렸다. 하지만 빨개진 귀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우리는 빤히 벚꽃을 보면서 들뜬 맘을 달랬다.

예쁘다, 예쁘다.

계속 그러니까 정말 예뻐지는 것 같잖아.

“차장님. 아까 제가 어디까지 말했죠.”

“여행까지 말한 것 같습니다.”

“아. 맞다. 저희 일본으로 가는 건 어때요.”

우리가 귀 뒤로 머리를 넘기면서 말했다.

“첫 데이트도 한 곳이기도 하고. 온천에 가서 피로도 풀면 좋을 것 같아서요.”

“좋습니다.”

건우는 고민도 없이 단숨에 오케이를 날렸다. 우리가 그 어떤 곳을 내밀었어도 건우는 마냥 좋아했을 것이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와 단둘이 있을 수만 있다면.

“조금 더 조사해봐야겠어요. 좋은 곳 있나.”

“나도 고민해보겠습니다.”

“빨리 예약도 하고 남은 연차도 써야…….”

우리의 말을 자르듯 진동벨이 거침없이 울렸다. 진동벨을 향해 손을 뻗은 우리가 황급히 손을 말아 쥐었다.

하마터면 건우의 손등에 손이 닿을 뻔했기 때문이었다.

카페가 떠나갈 듯 우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차장님. 제가 갈게요.”

“아뇨. 내가 가죠.”

건우는 승기를 잡았다는 듯 당차게 진동벨을 들고는 카운터로 걸어갔다.

건우를 보던 우리가 제 손으로 눈을 돌렸다. 맨들맨들한 손바닥이 야살스러웠다.

건우와 손을 맞잡고 벚꽃 길을 거닐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따뜻할 텐데.

단 건우의 향기가 손을 타고 온몸에 번질지도 모르고.

짙은 갈망에도 우리는 손을 오므릴 수밖에 없었다.

건우의 손을 스치자마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우. 진짜 맛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건우가 내려놓은 수플레 케이크를 보고는 말했다.

탱글탱글한 수플레 케이크 위로 하얀 생크림이 맛깔스럽게 흘러내렸다. 우리가 건우를 향해 포크를 내밀었다.

“맛있게 드세요.”

“고우리씨도.”

우리가 포크로 조심스럽게 수플레 케이크를 찍었다. 달달한 생크림이 포크에 잔뜩 묻었다.

우리는 달달한 기운에 나쁜 생각들을 털어버리기로 했다. 우리가 한 입 크게 수플레 케이크를 먹었다.

사이사이에 있는 상큼한 과일과 부드러운 빵이 맛있게 어우러졌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먹는데 열중하던 우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홀로 케이크에 집중한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건우가 들고 있는 포크는 말끔하기만 했다.

“차장님도 드세요. 저만 먹는 것 같아서.”

“나도 잘 먹고 있습니다.”

“보기만 하시는 것 같은데요. 수플레 케이크 별로면 다른 걸로 주문해드릴게요.”

우리는 지갑을 들고는 일어났다.

“샌드위치도 있고 머핀도 있는 것 같고요.”

우리는 카운터를 향해 목을 내빼고는 메뉴들을 쏟아냈다.

멀찍이 있는 메뉴를 살피던 우리의 눈은 가늘어졌다가 커졌다가를 반복했다.

“먹는 건 괜찮을 것 같고.”

“그래도 하나…….”

건우가 카운터에 집중하고 있던 우리의 손목을 잡았다. 우리는 손목을 붙잡힌 채로 건우만을 봤다.

빙긋 웃는 건우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집중을 해 봐도 결과는 같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차장님!

“놀이동산은 어때요.”

건우의 말에 우리는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호수 한 가운에 자리 잡은 놀이동산이 보였다.

“갑작스럽지 않을까요.”

“무계획이 가장 짜릿한 법이죠.”

“저야 괜찮을 것 같은데. 혹시 놀이기구 못 타실까봐.”

우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건우를 봤다.

“저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건우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말했다.

그깟 놀이기구 따위는 무섭지도 않다는 듯.

“제가 진짜 무서운 것만 타거든요.”

“재밌겠네.”

건우는 자존심을 팍 세웠다. 무서운 것에는 도가 텄다는 표정이었다.

우리가 건우를 빤히 쳐다봤다. 무슨 일에도 대범한 건우라면 짜릿한 놀이기구도 잘 탈 것만 같았다.

따분하다는 얼굴로 바이킹을 탈지도 몰랐다.

어쩌면 하품을 해댈지도.

“그럼 가요.”

“좋습니다.”

“케이크만 다 먹고요.”

우리가 포크를 집고는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맛있는 수플레 케이크를 두고는 가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포크로 케이크를 크게 잘라 입에 욱여넣었다.

채 들어가지 못한 생크림이 우리의 입가에 묻었다.

“천천히 먹어요. 체하겠네.”

건우의 말에 우리는 괜찮다고 웅얼거렸다.

“커피도 마시고.”

우리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건우는 빨대를 물려주었다.

갈증을 해소하려는 듯 우리는 컵을 들고는 열심히 빨대를 빨아댔다. 순식간에 커피는 절반이나 사라졌다.

“차장님도 많이 드세요. 빠릿빠릿하게 돌아다니려면 체력이 필수거든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본래 고수는 쉬는 법을 모르니까요.”

“그래서 그런가. 나도 쉬는 법을 몰라서.”

의자에 기댄 건우가 제법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우리의 말에 냉큼 수저를 올린 것이었다.

“그럼 저희 출발할까요.”

“다 먹었습니까.”

테이블은 남은 것 하나 없이 말끔하기만 했다.

아직 다 마시지 못한 건우의 아메리카노만 짙은 커피 향을 풍기고 있었다.

“빨리 가고 싶어서요. 벌써 스트레스 싹 풀리는 것 같아요.”

놀이동산을 보던 우리의 목소리가 한껏 커졌다. 들뜬 얼굴로 건우와 나란히 카페를 나설 때까지도 우리는 조금도 몰랐다.

건우가 단 한 번도 놀이기구를 타본 적이 없다는 걸.

***

건우는 그까짓 놀이기구 타는 건 일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롤러코스터가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완전히 부서졌다.

하늘과 맞닿은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높이에서 건우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손에 쥔 호랑이 모양 머리띠만 하느작거렸다. 조금의 적막을 뚫고 롤러코스터는 바닥으로 질주했다.

강력한 바람이 건우의 얼굴을 강타했다. 건우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한 채로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옛날에는 이것도 되게 무서웠던 것 같은데.”

“…….”

“지금은 조금 시시한 것 같아요. 다른 걸로 탈까요.”

“……예.”

건우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더 재밌는 게…….”

놀이동산을 살피는 우리의 눈빛이 번뜩였다. 끝없이 하늘로 올라가는 자이로드롭이 보였다.

우리는 손으로 햇볕을 가리고는 놀이기구를 빤히 쳐다봤다.

발만 떠다니는 것 같은 놀이기구에 건우는 할 말을 잃었다.

저것까지는…….

도망칠 때가 있다면 지금이었다.

“조금만 쉬죠.”

“저게 진짜 재밌는데.”

하지만 건우는 우리를 말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갑시다.”

“어디 가시게요.”

“강약 조절하러.”

우리가 다시 묻기도 전에 건우는 냉큼 앞장섰다. 자칫하다가는 자이로드롭에 앉아있게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바삐 걷던 건우가 놀이동산 내부에 있는 호수에 도착했다.

“진짜 너무 잔잔한데요. 차장님.”

우리는 호수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오리 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놀이기구를 탄 사람들의 비명조차 아득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푸릇한 나무들로 감겨 있는 호수는 조용하기만 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들만 오리 배에 타고 있었다. 세상 짐을 멘 얼굴로 페달을 밟는 모습이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보기만 해도 심심한 오리 배를 타자니…….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건우를 봤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데요.”

“그냥. 이런저런.”

건우는 말을 얼버무렸다. 조금만 더 있다가는 우리에게 진실을 실토할 것만 같았다.

“갑시다.”

건우의 손에 떠밀려 우리는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빳빳하게 다려진 상아색 재킷에 어울리지 않는 새빨간 구명조끼였다.

먼저 오리 배에 올라탄 건우가 손을 내뻗었다.

“조심해요.”

우리는 건우의 손목을 잡고는 오리 배에 올라탔다.

조용하던 오리 배가 조금 기우뚱했다. 우리가 다급히 중심을 잡았다.

절대로 호수에 빠질 수 없다는 듯.

“놀이기구보다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설마요.”

“진짜예요. 호수에 빠지면…… 아니. 말이 씨가 되니까 나쁜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목구멍을 근질거리는 말을 꿀꺽 넘겼다. 자리에 앉은 건우가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차장님. 부딪힐 것 같은데요.”

우리가 부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긴 줄로 막힌 안전선 때문에 오리 배가 갈 수 있는 범위는 넓지 않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바로 방향을 돌려야만 할 지경이었다.

“여기도 부딪힐 것 같아요.”

“갑갑하네.”

“그죠. 역시 다른 놀이기구를 타는 게…….”

“풍경 보는 재미는 있는 것 같습니다.”

건우는 괜히 주변을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풍경을 논하기에는 여기저기 막힌 호수는 미니 풀장처럼 보였다.

있는 힘껏 발을 굴리는 건우를 보던 우리는 그제야 눈치 챘다.

건우가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차장님. 풍경도 좋기는 한 것 같아요.”

고개를 든 우리의 눈에 노을이 지는 하늘이 보였다.

하늘은 주황빛과 파란빛이 섞여 묘한 색깔을 만들어냈다.

“하늘은 예쁜데. 제 배는 또 고프네요.”

“저녁 하러 가죠.”

“좋아요.”

우리가 고개를 돌려 건우를 봤다. 그리고는 빙긋 웃었다.

건우의 마지막 자존심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짜릿한 놀이기구를 꺼려한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눈치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습니까.”

“어…….”

우리는 고심하듯 말끝을 끌었다.

“하나 생각나는 게 있기는 한데.”

“뭡니까.”

“차장님이 해주시는 요리요.”

음흉하게 웃은 우리가 말했다. 저녁을 핑계로 건우의 집을 습격할 작정이었다.

우리의 미소에 홀린 듯 페달을 밟던 건우의 발이 멈췄다. 동시에 오리 배는 꼼짝하지 않았다.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서 출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조용한 호수 위.

오묘한 빛깔의 노을만이 호수에 녹아들었다.

마지막을 태우는 햇빛에 비친 수면 위로 물비늘이 반짝거렸다. 건우가 우리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는 우리가 상황을 깨닫기도 전에 우리의 머리를 감쌌다.

“계속 예쁘면 어쩌나.”

뜨거운 목소리가 우리의 입술에 번졌다.

“키스하고 싶어지게.”

건우는 우리를 제 쪽으로 당겼다.

“차장…….”

우리와 건우에게 있던 조그마한 틈조차 단숨에 사라졌다. 건우는 우리의 말을 따뜻한 타액 속에 삼켰다.

맞닿은 입술을 타고 벚꽃 향기가 넘실거렸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달달하다.

너무 달달해서 그냥 녹아내릴 것만 같다.

예민한 감각이 하나씩 살아났다. 건우의 숨결조차 또렷하게 느껴져 온몸이 짜릿했다.

우리는 상상하지도 못할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었다.

자극적이면서도 심장을 떨리게 만드는 건우에게 중독될 것만 같았다.

“……!”

짙어지는 숨을 주체하지 못할 때였다. 오리 배가 우리 쪽으로 기우뚱거렸다.

눈에 보일 정도로 기울어진 배 때문에 우리의 손끝이 호수 표면에 닿았다.

“으악!”

화들짝 놀란 우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황한 우리의 반사적인 행동에 오리 배가 요동쳤다.

대번에 우리는 중심을 잃었다. 건우가 손을 내뻗었지만 우리는 그 손을 잡지 못하고 호수에 빠졌다.

“악!”

절규에 가까운 외마디 비명까지 날렸다.

“살려주세요. 살려.”

우리는 허우적대면서 소리쳐댔다. 버둥거리는 손 때문에 우리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

“잡아요.”

건우가 손을 내밀었지만 당황한 우리는 듣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건우는 뱃머리를 돌려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섰다.

“조금만 기다려요.”

“살려주세요. 죽기 싫단 말이에요.”

“가만히만 있어요.”

건우는 우리의 구멍 조끼를 잡았다. 그리고는 힘껏 우리를 당겨 올렸다.

종이 인형처럼 우리는 달랑달랑 건우의 손에 수면 밖으로 올라왔다.

안전요원이 도착하기도 전에 상황이 빠르게 종료된 것이었다.

“괜찮습니까.”

안전요원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퍼졌다.

“예. 괜찮습니다.”

“배 당겨드릴게요.”

안전요원은 오리 배에 모터가 달린 배를 묶었다. 배가 움직일 때도 우리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너무도 민망해 우리는 목까지 새빨개졌다. 땅만 바라보는 우리는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아…… 정말.

쪽팔려! 쪽팔린다고.

“금방 도착할 것 같습니다.”

건우가 재킷을 벗어 우리에게 덮어주었다. 제법 차가운 호수에 우리의 몸이 달달 떨렸기 때문이었다.

“……네.”

우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어떤 말에도 괜찮다고 대꾸하던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놀이동산을 나갔다.

발 빠르다는 치타보다 더 빠른 달리기였다.

“아빠. 저 누나 저기서 놀았나봐.”

우리를 힐끗 보던 남자 아이가 냉큼 호수를 가리켰다.

자기도 물놀이를 즐기고 싶다는 손짓이었다.

“놀면 큰일 나.”

“그래도 저 누나도 놀았는데.”

“착한 사람은 여기서 노는 거야. 저기 말고.”

또렷하게 들리는 말에 반박도 하지 못한 채로 우리는 주차장으로 내달렸다.

재킷과 바지는 축축하기만 했고 물이 들어가 버린 구두는 찌걱거리는 소리만 냈다.

주차장으로 질주한 우리는 건우의 차에 쉽게 타지 못했다.

혹여 시트가 젖을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말리고 갈까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우리가 말했다.

“젖을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타요.”

“제가 나중에 깔끔하게 세차해드릴게요.”

“다른 걸로 보상해주면 될 것 같습니다.”

건우가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보상을…….”

우리는 건우의 눈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빛 속에서 보상 방법을 찾고 말겠다는 듯.

“같이 있어주는 거.”

매혹적인 눈길과 낮은 목소리가 우리를 파고들었다.

“차장님. 보상하러 갈게요.”

“…….”

“지금, 당장.”

우리가 고개를 들어 건우를 보고는 말했다.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가벼운 웃음을 흘리면서 건우는 조수석의 문을 닫았다. 건우의 차는 쭉 뻗은 도로를 향해 내달렸다.

빌딩 아래로 사라지는 해가 건우의 차를 뜨겁게 적셨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