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화. 조금씩 시들어가는 꽃
날은 급격히 따뜻해졌다. 두꺼운 외투를 꺼낼 필요조차 없었다.
주변을 채운 꽃향기가 짙어졌고 벚꽃축제가 곳곳에서 시작됐다.
눈 깜짝할 새에 찾아온 봄에 우리는 가벼운 회식자리조차 즐겁게만 느껴졌다.
수진의 일로 고생한 팀원들의 기력을 회복해주겠다면서 우리가 마련한 자리였다.
예약한 고깃집에 들어선 우리는 야무지게 주문을 마쳤다.
기본 반찬과 샐러드가 깔끔하게 상을 채웠다. 맛깔스러운 파절이도 식욕을 돋았다.
“막걸리도 하나 시킬까.”
우리가 메뉴판을 내밀면서 말했다. 선영과 수진은 메뉴판을 나눠들고는 각양각색의 막걸리를 고르는데 열중했다.
“차장님도 막걸리 괜찮죠.”
“좋습니다.”
“근데 나중에 머리 아플 수도 있어서…….”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우리가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는 모두가 한 눈을 팔고 있는 사이.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었다.
테이블 아래로 숙취해소에 도움이 되는 동그란 환을 내밀었다.
“몰래 드세요.”
조용히 말을 내뱉는 우리는 꼭 복화술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대리님은.”
“저도 있어요.”
우리가 빙긋 웃고는 조그마한 봉지 하나를 더 보여주었다.
아침에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 널브러지지 않겠다는 듯 우리는 조그마한 환을 재빨리 넘겼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샐러드를 먹는 우리의 모습에 건우는 하마터면 피식 웃을 뻔했다.
“저흰 딸기 막걸리요.”
“그럼 딸기하고 맥주도 시키면 되겠네.”
“청포도 막걸리도 하나 더.”
선영은 청포도까지 사수하고 말겠다는 듯 힘껏 외쳤다. 순식간에 테이블은 수저 하나 두지 못할 정도로 꽉 찼다.
판은 뜨겁게 달궈졌고 고기는 맛있게 익어갔다.
“먼저 먹어요.”
집중한 얼굴로 고기를 굽는데 열중하던 건우가 우리에게 고기 한 점을 내밀었다.
“가장 배고파 보여서.”
말도 되지 않는 요상한 변명까지 덧붙인 채로.
“그럼 배고픈 저 먼저 먹겠습니다.”
“예.”
건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는 고기를 먹었다. 조금도 타지 않은 고기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맛있었다.
“먹어도 될 것 같아요. 맛있어요.”
“다행이네.”
“차장님도 드세요. 제가 할게요.”
“아뇨. 내가 고기 굽는데 취미가 있어서.”
건우는 우리가 고생할까. 집게를 놓아주지 않았다. 고집스러운 건우를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건우는 건배를 할 때까지도 집게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주변을 힐끗대던 우리는 육즙이 흘러내리는 고기를 건우의 앞에 놔주었다.
“드시면서 하세요.”
“고맙습니다.”
그 다정한 사랑의 현장에 선영의 눈이 빛났다.
그야말로 훈훈한 커플의 길을 그대로 따라 밟고 싶다는 부러움의 눈빛이었다.
“선영씨는 주말에 뭐하세요.”
막걸리를 마시던 수진이 선영에게 말했다.
“저 소설 감상 들으러가요.”
“선영씨, 무슨 스터디 하시나 봐요.”
“아뇨. 출판사 대표님한테 부탁드렸거든요. 소설 봐달라고.”
“대박. 작가님이 계셨다니. 미리 사인 받아도 되죠.”
작가라는 말에 우리는 괜히 뜨끔해 막걸리를 뿜을 뻔했다.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요. 소설 쓰는 건 처음이거든요.”
“그래도 시작이 절반이잖아요. 근데 무슨 소설이에요.”
우리도 어느 샌가 선영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얼마나 진척됐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막걸리 잔을 내려놓은 선영은 앙큼하게 웃었다.
“로맨스요.”
선영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운 기운이 녹아있었다.
“무지 야한 로맨스.”
선영은 야하다는 말에 꾹 힘을 주었다. 달달한 딸기 향을 품은 막걸리가 우리의 목구멍을 타고 느릿하게 넘어갔다.
몰래 제 남자친구만을 챙기고 있던 황주임도 당황한 얼굴로 선영을 봤다.
고깃기름이 지글대는 소리만 크게 들려왔다. 제게 쏟아지는 눈길에도 선영은 순수하게 웃고만 있었다.
소설을 쓰는 것을 맘껏 자랑하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바닥을 뚫고 하늘로 솟구칠 만큼 어마어마한 당당함이었다.
“얼마나 후끈하냐면…….”
“선영씨 집필을 응원하면서. 건배 어때.”
우리가 황급히 막걸리 잔을 들었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대리님.”
황주임도 우리를 따라 잔을 높게 쳐들었다. 여자들끼리 은밀하게 나누는 대화였다면 선영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을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친구를 둔 우리와 황주임은 상황이 달랐다.
후끈하다는 말만 들어도 온몸에 열이 번지는 것만 같았다.
“건배. 자, 건배.”
우리는 손짓을 하고는 건배만 해댔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막걸리가 온몸에 번진 열기를 누그러뜨렸다.
“또 건배할까요. 대리님.”
“무슨 건배.”
“나쁜 상사 퇴치 기념.”
황주임의 말에 우리는 다시 잔을 들었다. 여섯 개의 잔이 갖가지 소리를 내면서 부딪쳤다.
무심한 얼굴로 잔을 든 건우는 끝없이 막걸리를 마시는 우리를 걱정스럽게 봤다.
금방이라도 우리가 취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 도로를 향해 상추를 흔들어댈지도 몰랐다.
“그만 마셔요.”
건우가 우리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말했다.
“그러고 싶은데 막 들어가네요.”
“취하겠습니다.”
“그러니까요. 좋은 날이라 그런가.”
우리는 막걸리 잔을 매만지면서 히죽거렸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자꾸 목구멍 위로 올라왔다.
수진만큼 우리도 두 다리를 쫙 뻗고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끼리도 즐겨야죠.”
“뭘 즐기시게요.”
우리는 놀란 얼굴로 건우를 봤다. 몽롱해지던 머릿속조차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 정신이 돌아온 것이었다.
“……글쎄. 좋은 날.”
낮은 목소리가 우리의 귓가를 적셨다. 고기 판에서 솟는 열기 때문인지 우리의 얼굴은 화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건우는 말을 아꼈다. 매혹적인 미소만 머금은 채로 맥주를 마셨다.
우리는 넋을 잃은 채로 꿀렁거리는 건우의 목젖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목젖,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 도발적인 눈빛…….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정복욕을 자극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용기를 얻겠다는 듯 막걸리를 잡았다.
“몇 잔만 더 마시고요.”
그리고는 다부진 말을 날리고는 막걸리에 온 본능을 맡겼다.
“금방 즐겨요.”
“그대로 괜찮겠습니다.”
“그럼요. 좋은 날인데 맘껏 즐겨야죠.”
우리는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기세도 막걸리에 꺾여버렸다.
눈이 풀린 우리는 턱을 괴고는 황주임을 쳐다봤다.
“황주임. 나 다 봤어.”
“뭘 보셨는데요.”
우리가 황주임과 사원을 번갈아 쳐다봤다. 음흉한 웃음이 우리의 얼굴에 돌았다.
우리는 금방 시한폭탄을 날릴 듯 보였다.
“둘이 사귀잖아.”
우리의 말에 황주임은 얼어붙었다. 변명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선영만 축하한다면서 박수를 쳐댔다.
“그러니까 둘만의 금요일. 즐기러 가라고.”
“대리님. 그러니까 저흰…….”
“나도 즐기러 갈 테니까.”
폭탄은 하나가 아니었다. 느슨하게 긴장이 풀린 우리는 굳건하게 지키던 비밀을 자기도 모르게 터뜨려버렸다.
건우의 손목을 잡고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비틀거리면서도 우리는 건우를 놓아주지 않았다.
“대리님은 왜 차장님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믿을 수 없던 황주임은 말을 채 마무리 짓지도 못했다.
비틀대는 우리는 황주임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
우리를 부축하고 나가는 건우가 마지막 인사를 날렸다. 그리고는 당황한 얼굴로 당근을 먹던 황주임을 향해 슬쩍 손을 들었다.
뿌연 연기 속에서도 건우의 손에 있는 커플링이 반짝거렸다.
“설마. 실화냐.”
황주임의 손에 있던 당근이 테이블로 떨어졌다.
황주임은 잇자국이 난 당근을 주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실화일 걸요.”
“뭐야. 나만 몰랐던 건 아니지.”
황주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담담한 선영과는 달리 수진도 아무 것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그제야 황주임은 마음을 놓았다. 목이 빠져라 우리와 건우를 보던 황주임이 선영에게 다가섰다.
“누가 먼저 사귀자고 한 거야.”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차장님이 고백하시지 않았을까요.”
“하긴. 반지 자랑하는 것부터 클라스 보소.”
황주임은 반지를 들던 건우를 따라하면서 말했다.
트로피를 탄 것처럼 의기양양한 건우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서로 닮은 사람끼리 사귄다더니. 진짜 육갑 완전체다.”
감탄하듯 말하는 황주임의 목소리가 테이블에 번져나갔다. 모두의 눈길이 식당을 나서는 건우와 우리에게 꽂혔다.
우리를 부축하던 건우가 느릿하게 머리카락을 넘겼다.
커플링을 다시 한 번 자랑하듯.
“대박. 지금 봤니.”
“차장님이 핸드백 든 모습이라니.”
“완전 이상해.”
모두 강렬한 건우의 마지막을 잊지 못했다.
건우의 팔에서 우리의 핸드백이 달랑달랑 흔들리는 모습을.
***
막걸리의 위력은 놀라웠다. 침대에서 눈을 뜬 우리는 일어나지 못하고 관자놀이만 눌러댔다.
아릿한 기운이 머리를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침대에 얼굴을 기댄 채로 책상을 봤다.
건우가 준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빛을 받는 꽃 색깔이 변색되고 있었다. 갈색 빛깔이 하얀 꽃잎을 적셨다.
시들어가는 꽃에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우리가 손수 만든 꽃병을 들었다.
꽃대를 머금은 물은 초록빛깔로 변해 있었다.
“죽는 건 아니겠지.”
중얼거리는 우리의 목소리는 잔뜩 잠겨있었다. 고인 물에서 풍기는 냄새가 우리의 코끝을 찔렀다.
우리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바빠서 갈지 못했던 물을 갈아주고 창문까지 활짝 열었다.
따뜻한 햇볕이 꽃잎에 녹아들었다.
“예쁘다. 잘 커라. 죽지 말고.”
광합성을 하는 꽃을 향해 좋은 말도 아끼지 않았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꽃다발을 살릴 생각뿐이었다. 꽃잎을 매만지는 우리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개딸. 밥…….”
방문을 열고 들어온 미순은 기가 막힌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우리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꽃에 말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것도 머리는 누군가와 다투기라도 한 것처럼 산발을 해서는.
“그만 난리 피우고 밥이나 먹어.”
“아직 생각 없는데.”
“점심 먹고 벚꽃놀이 가겠다며.”
“누가. 누가 벚꽃놀이를 가는데. 설마 나는…….”
벚꽃을 떠올리던 우리의 눈이 커졌다. 회식이 끝나고 제가 한 만행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못 걷겠다면서 건우의 등에 업힌 우리는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었다.
‘가요. 차장님. 벚꽃놀이 하러!’
‘내일 갑시다.’
‘벚꽃 아래에서 뜨거운 키스. 진짜 예쁠 것 같죠. 딱 직접 해봐야 영감이 오는데.’
건우의 귀청이 떨어질 만큼 벚꽃과 키스를 외치던 모습도 점점 더 또렷해졌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벚꽃 타령은 끝날 줄을 몰랐었다.
‘우리 내일 벚꽃놀이 갈 거야.’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벚꽃 차장님. 가세요.’
미순과 건우의 앞에서 온갖 주정을 부렸던 것이었다.
벚꽃 차장님이라니…….
고우리. 진짜 미쳤구나.
“내가 가는 거네.”
대번에 몰려든 기억에 우리는 허망한 얼굴로 미순을 봤다.
“……벚꽃놀이.”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얼른 먹고 가. 계속 기다리겠네.”
등을 떠미는 미순의 말에 우리는 바삐 준비를 시작했다. 필름이 끊긴 게 아니고 조금 흥이 올랐던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멘탈을 다잡은 우리는 금세 준비를 마쳤다. 살구색 블라우스에 슬랙스를 입은 우리가 서랍에 뒀던 커플링을 꺼냈다.
밖에서만큼은 우리도 한껏 자랑을 하고 싶었다.
커플링을 집은 우리의 눈에 아버지 성원과 찍은 사진이 들어왔다.
액자를 사는 것도 잊고 있었다. 우리는 사진을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다녀올게요. 아빠.”
사진을 쓸던 우리가 약지에 반지를 꼈다. 우리는 슬랙스에 어울리는 코트와 구두까지 장착하고 위층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는 손길이 유난히도 조심스러웠다. 우리를 기다린 듯 현관문이 금방 열렸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그럼요. 제가 진짜 부지런하잖아요.”
“몸은 괜찮습니까. 어제 너무 달렸던 것 같아서.”
“튼튼해요. 기억도 멀쩡하고.”
우리는 어제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듯 말했다.
“차장님은.”
“저도 괜찮습니다. 준비도 끝냈고.”
건우가 들고 있던 코트를 걸쳤다. 아이보리색 니트와 코트 하나만 걸쳤는데도 건우의 얼굴이 살았다.
우리는 건우와 나란히 석촌 호수로 향했다. 벚꽃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호수는 북적거렸다.
분홍 빛깔과 하얀 빛깔을 품은 벚꽃이 우리와 건우를 맞았다.
살랑대는 바람결에 녹아 달큰한 꽃향기가 코끝을 적셨다.
도시의 풍경과 벚꽃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조용한 호수에 비친 물비늘이 수면을 빛냈다.
“커피라도 드실래요.”
우리는 푸드 트럭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주전부리도 사죠.”
“좋아요. 닭 꼬치 어떠세요.”
“좋습니다.”
숯불 향기가 잔뜩 밴 닭 꼬치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우리는 호수를 거니는데 집중했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벚꽃이 예뻤다. 하얀 꽃비는 그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진짜 예쁘네요.”
우리는 푸른 하늘 아래 탐스럽게 핀 벚꽃을 보고는 감탄하듯 말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바람에 떠밀려 떨어졌다.
“잠깐.”
건우가 우리에게 다가섰다. 벚꽃 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굳은 채로 눈만 깜빡거렸다.
천천히 다가온 건우의 얼굴에 우리는 눈을 감아야 하는 타이밍인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벚꽃 아래에서 뜨거운 키스.’
‘딱 직접 해봐야 영감이 오는데.’
우리는 벚꽃 아래에서 키스를 하자고 울부짖던 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감을까 말까.
한창 고민에 빠졌던 우리는 눈을 감지도 못하고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머리에 붙어서.”
건우가 우리의 머리에 붙은 꽃잎을 떼어주었다.
“감사해요.”
“별말을.”
우리는 건우의 손끝에 있는 벚꽃이 마냥 얄미웠다.
벚꽃만 아니었다면 키스를 착각한다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근데 벚꽃 보니까 일본 갔을 때 생각나는 것 같아요.”
붉어지는 두 뺨을 숨기면서 우리는 화제를 돌렸다.
“그때도 진짜 좋았는데.”
“지금도 좋고.”
“맞아요. 적어도 지금은 닭꼬치도 있잖아요.”
우리는 닭꼬치를 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맑은 하늘과 벚꽃 풍경이 우리를 들뜨게 만들었다.
쏟아지는 햇살조차 따뜻했다. 은은한 꽃향기를 만끽하듯 우리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우리는 보던 건우는 우리에게 발을 맞췄다.
뚜벅뚜벅.
그리고 또 뚜벅.
햇볕이 우리의 얼굴을 적셨다. 환한 표정 때문인지 얼굴빛이 밝아보였다.
벚꽃을 보는 눈동자마저도 끝없이 빛났다. 우리에게 벚꽃 향기가 짙게 나는 것만 같았다.
우리만을 바라보던 건우의 미소가 짙어졌다.
“차장님. 저희도 사진 찍을까요.”
우리의 말에 그제야 건우가 주변을 살폈다. 모두 벚꽃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당장 찍죠.”
“일단 차장님 먼저 찍어드릴게요. 전신이 또 나와야 멋이 살거든요.”
우리는 손을 내뻗어 한껏 구도를 잡는 시늉을 해댔다.
프로 포토그래퍼를 능가하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피식 웃던 건우가 우리의 어깨를 감쌌다.
“둘이 나와야 멋이 살 것 같아서.”
건우가 우리를 제 쪽으로 부드럽게 당겼다. 우리는 건우에게 꼭 붙어버렸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우리가 힐끗 건우를 봤다. 호수에 부딪힌 빛이 모조리 건우의 얼굴에 스며든 것만 같았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건우를 볼 때면 우리는 아직도 심장이 뛰었다.
얼마나 더 좋아질 수 있는지.
이제는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몰랐다.
마지막을 화려하게 맞이하는 벚꽃처럼 아름다운 건우에게서.
“그럼 찍을까요.”
비처럼 떨어지는 벚꽃을 바라보던 건우가 말했다.
“그래야겠어요. 여기가 명당인 것 같아요.”
“다 떨어지기 전에 찍어야겠네.”
“네. 타이밍 잘 노려서.”
우리는 꽃비가 내리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끝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예쁜 사진들이 우리의 핸드폰에 담겼다.
사진을 찍고 호수를 벗어나 쇼핑몰로 걸어가던 우리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차장님. 사진 진짜 잘 나온 것 같아요. 포즈가 다…….”
목소리가 앰뷸런스 소리에 묻혔다. 붉은 소방차와 사이렌을 울리는 구급차가 우리의 눈앞을 지나갔다.
우리는 빠르게 내달리는 소방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애애애앵. 앵앵.
소방차에서 터져 나온 사이렌 소리가 우리의 귓가에 끝없이 맴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