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84화 (84/102)

제 84화. 아무도 믿지 못할 때

금요일 점심. 대강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 선영은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천장을 보고 한숨까지 내쉬는 선영의 표정은 제법 진지해보였다.

점심을 먹고 올라온 우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선영에게 다가갔다.

성민과 무슨 일이라도 터졌을지 몰랐다. 그게 아니면 선영이 심각할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영은 우리가 온 줄도 모르고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얼굴을 댔다.

고통을 표현하고 싶은데 화장이 지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우리의 목소리에 선영이 화들짝 놀라면서 수첩을 엎었다.

“아뇨. 없어요. 식사 일찍 하셨네요.”

“줄이 짧아서. 선영씨는.”

“가볍게 샌드위치 먹었어요. 요새 무겁게 먹었더니 살이 찐 것 같아서요.”

“뺄 곳도 없는 것 같은데.”

우리는 가느다란 선영의 팔목을 보고는 말했다.

얇은 선영의 손목은 잘못 건드리면 똑, 부러질 것만 같았다.

“배도 찌고. 나잇살인 것 같아요.”

없는 뱃살까지 짜내는 선영을 보던 우리는 허탈하게 웃었다.

없는 것들이 더한 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내가 보기엔 더 먹어도 될 것 같아.”

“그런가요.”

“한국 직장인은 밥심이야. 체력 없으면 끝장이야. 영양제도 소용없다니까.”

우리의 말에 선영은 목까지 빼고는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말하려는 준비 자세였다.

“대리님. 사실은…… 저도 배고프기는 한데요.”

진실 토로의 순간이 다가왔다. 선영은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한여름에 창을 타고 들리는 매미소리보다 작은 목소리였다.

볼륨을 너무 줄인 통에 우리는 선영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헷갈렸다.

“그니까 제가…….”

들리지 않는 뒷말에 우리는 황주임의 의자를 당기고 선영에게 다가갔다.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릴 정도였다.

우리가 개미만한 선영의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을 때.

귓가로 들리는 놀라운 진실에 우리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그러니까 글을 쓰겠다는 거잖아.”

“넵. 진한 고수위로요.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거든요.”

“무슨 생각을 했는데.”

“성민씨하고 만날 수 있는 방법이요. 밤새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딱 얻은 거죠.”

선영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수첩을 들었다. 수첩 양 끝을 잡은 선영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선영의 미소가 짙어졌다.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힌 생각을 한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표정이었다.

“잭팟이요.”

당당한 손길로 선영은 우리에게 수첩을 내밀었다.

[소설의 필수요소- 인물, 사건, 배경]

하얀 종이에 녹아든 글자들이 보였다. 수두룩한 제목 후보도 눈에 띄었다.

갑작스런 고수위 소설 동지의 등장에 우리는 박수를 쳐야할지 말지 가늠할 수 없었다.

자칫하다가 ‘어쩌다 토끼’ 필명을 덜컥 들키게 될지도 몰랐다.

우리는 후끈한 토끼의 소설을 읽는 선영의 모습을 상상해버렸다. 그것만큼은 막고 싶다는 듯 슬쩍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는 당황한 기운을 숨기면서 선영의 수첩을 가져갔다.

제법 구미를 당기는 제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때요. 대리님.”

“제목 몇 개는 괜찮은 것 같아. 눈에 확 띄기도 하고.”

“진짜죠. 대리님! 괜찮은 것도 있는 거죠.”

선영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혹시 괜찮은 거 집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자꾸 보니까 다 비슷해보여서요.”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듯 우리는 제목 몇 개를 골라주었다. 선영은 재빨리 우리가 가리키는 것들에 동그라미를 쳤다.

장인에게 스킬을 전수받는 제자처럼 선영의 눈빛은 제법 진지했다.

“일단은 이 중에 맘에 드는 제목 하나 골라서 시놉시스 먼저 짜야겠어요.”

“그것도 방법일 것 같네.”

“그죠. 밤새 시놉 완성해서 습격해야겠어요.”

“설마. 그게 오늘밤은 아니겠지.”

우리의 말에 선영은 씩 웃었다.

“대리님. 빙고요.”

그리고는 능청스러운 말을 던지고는 우리의 손에 있던 수첩을 가져갔다.

신줏단지를 모시듯 소중하게.

“저 진짜 하루 기다리는 것도 눈 빠질 것 같아요.”

“그래도 하루 만에 쓸 수 있을까.”

“눈에 파스라도 바르려고요. 사랑을 위해서.”

아련한 선영의 눈빛에 우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누구도 선영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반나절 만에 줄거리까지 완성하겠다니…….

우리는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는 선영의 앞날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럼 열심히 달려볼게요. 대리님.”

하지만 앞날을 예상하지 못한 선영은 그저 싱글벙글거렸다. 우리는 말없이 선영의 어깨를 잡았다.

일종의 넘치는 동지애였다. 선영도 조만간 글 쓰는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었다.

“수고해.”

“넵! 대리님. 감사해요.”

제자리로 돌아가는 우리를 보던 선영은 다시 수첩으로 눈을 돌렸다.

“남주는…… 성민. 강성민 좋네.”

선영은 제 성에 성민의 이름을 붙였다. 갖가지 조합을 하면서 선영은 끝없이 이름을 만들어냈다.

“나 소질 있는 것도 같은데.”

자화자찬까지 날려대면서.

우리는 끝없이 볼펜을 움직이는 선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습니까.”

“선영씨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소설 쓰겠대요. 것도 아주 초고수위로.”

선영을 보는 우리의 눈동자에는 걱정이 잔뜩 녹아있었다.

“기본서는 잘 가지고 있는 것 같네.”

건우가 턱 짓으로 선영의 책상을 가리켰다. 우리의 책이 탐스런 붉은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책에 박힌 19세 미만은 구독할 수 없다는 경고 문구가 유난히도 도드라져 보였다.

“설마. 제 책 보고 말하는 건 아니시죠.”

“맞습니다.”

“차장님. 저 놀리시면 진짜 화냅니다.”

우리는 눈에 힘껏 힘을 주었다. 제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민망한 눈치였다.

“진짠데.”

“차……! 아니. 차장님. 저도 진짜예요.”

크게 건우를 부를 뻔하던 우리는 가까스로 이성을 찾았다. 여기는 회사라고 수백 번 되뇄다.

점심을 먹고 올라온 직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대리님.”

사무적인 말투로 무장한 건우가 우리의 책상에 손을 짚었다.

몸까지 숙인 통에 우리와 건우의 거리는 제법 가까워졌다.

“화나게 하긴 싫지만. 사실입니다.”

“차장님 진짜…….”

“토끼를 봐야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건.”

건우의 말이 우리의 귓가에 무르녹았다. 열기를 품은 목소리는 쉬이 우리의 귓가를 떠나지 못했다.

“확실합니다.”

“…….”

“……내가 경험자니까.”

빙긋 웃는 건우의 얼굴에는 묘한 장난기마저 녹아있었다.

그 말 하나에 우리는 제 책을 정독하는 건우의 모습을 상상해버렸다.

우리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빨개졌다.

“아니. 무슨 경험을 하셨다고.”

“할 만큼은 했죠.”

여유로운 건우의 기운을 막듯 우리는 슬쩍 건우의 발을 밟았다.

천천히, 아주 꾹.

발끝을 타고 번지는 아린 기운을 건우는 마냥 삭였다.

“아프실 것 같은데.”

“예. 아픕니다.”

“그럼 토끼는 비밀로 묻는 걸로.”

“예.”

담담한 목소리가 재빨리 뛰쳐나왔다. 우리는 건우를 용서하겠다는 듯 지그시 건우를 밟고 있던 발을 뗐다.

“오늘 쇼케이스 끝나면 바로 퇴근해요.”

“차장님은요.”

“퇴근하자마자 바로 가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우리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누가 볼까. 주변의 눈치까지 슬금슬금 살펴댔다.

외근을 하고 사무실로 복귀한 우팀장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우리와 건우를 빤히 쳐다봤다.

우팀장의 눈빛에는 냉랭한 기운만 감돌았다.

‘저건 또 무슨 작당모의야.’

우팀장은 징계위원회 일로 우리가 건우를 꼬드기고 있다고 착각했다.

‘고우리. 잘못 건드렸어. 천하의 우종길 쉽게 죽지 않는다 이거야.’

우리의 뒷모습을 보던 우팀장이 조소를 흘렸다. 그리고는 멀찍이 홀로 영업1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진에게 손을 까딱거렸다.

흠칫 놀란 수진이 우팀장에게 다가섰다.

“오늘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뭘…….”

“우리는 얘기가 잘 끝났는데 고대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아서 말이야.”

우팀장이 수진의 어깨를 툭 쳤다. 그 힘에 떠밀린 수진의 낯빛은 어두웠다.

수진은 우리의 자리를 빤히 쳐다봤다. 수진의 입술은 버석하게 말라갔다.

“이따가 따로 말할게요.”

“다 수진씨하고 고대리 위해서야. 다들 바쁜데 시간 낭비하면 못쓰지.”

“……네.”

“그럼 꼭 나 있을 때 말하고.”

우팀장의 말에 수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힐끗 수진을 보던 우팀장의 차가운 눈빛은 우리에게 꽂혔다.

헐렁하게 웃고 있는 모습조차 가증스러웠다.

“고대리 표정, 꼭 보고 싶으니까.”

우팀장은 우리를 향해 이죽거렸다. 얼빠진 표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팀장은 통쾌해죽을 것만 같았다.

웃는 날도 지금이 끝일 거다. 고우리.

***

자리를 정리하는 우리의 손길이 빨라졌다. 꽃다발과 앙금 케이크를 픽업해 쇼케이스장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우리가 노트북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의 주변을 배회하던 건우가 은근슬쩍 우리를 배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대리님. 외근 나갑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흠칫 놀랐다. 건우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순진무구한 눈빛을 쏘아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 나갈 거라고 우리가 진즉 보고를 마쳤는데도.

“네. 쇼케이스 시작 전에 도착해야 할 것 같아서요.”

“잘됐네. 나도 막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어디 가시는데요.”

“로비 카페 갑니다.”

갑작스러운 우리의 질문에도 건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 질문쯤은 예상한 것처럼 여유마저 돌았다.

“카페인이 부족하네.”

건우는 뒷목에 손을 대고는 가뿐하게 몸까지 풀어댔다. 우리는 수선스럽게 가방을 살피면서 사무실을 나섰다.

빠진 것을 체크하던 우리가 엘리베이터 문을 빤히 쳐다봤다.

“왜요.”

“뭘 빠뜨리고 온 것 같아서요. 근데 생각이…….”

“찬찬히 생각해요. 아직 엘리베이터 도착하려면 멀었으니까.”

엘리베이터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면서 미간을 좁히던 우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가 재빨리 명함 케이스를 꺼내 살폈다. 케이스에는 명함 하나 들어있지 않았다.

“차장님. 죄송한데 사무실 다녀올게요. 명함이 없어서.”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금방 올게요.”

우리가 출입 통제 기계에 사원증을 댔다.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을 때였다.

죽을상을 한 수진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수진은 말없이 손만 굼지럭거렸다.

“무슨 할 말 있니.”

우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던 수진이 고개를 돌렸다.

닫혔던 문이 벌어진 사이로 모르는 척 눈을 돌리는 우팀장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 들어가자.”

“아뇨. 대리님. 지금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여길 막을 수는 없잖아.”

우리는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눈치만 살피는 직원을 보고는 말했다.

“죄송해요.”

조그마한 목소리로 사과를 하면서 수진은 길을 비켰다. 수진이 방심한 틈을 타 우리도 사무실로 들어갔다.

우리를 쫓던 수진이 힐끔 우팀장을 봤다. 우팀장은 눈을 부라리면서 당장 말하라는 눈빛을 쏘아댔다.

“대리님.”

그 눈빛에 떠밀려 수진은 우리의 가방을 잡았다.

“제가 확실히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무슨 말을.”

“그니까 그게…….”

“무슨 말이든 여기가 말하기 딱 좋은 장소는 아닌 것 같은데. 회의실로 가자.”

우리는 수진이 무슨 말을 꺼낼지 눈치 챈 얼굴이었다.

깊은 날숨을 뱉은 우리가 회의실로 들어갔다. 우팀장의 눈치만 살피던 수진도 회의실로 향했다.

“아니. 그냥 여기서 말하지. 뭘 또 들어가.”

쓸데없이 복합기만 만져대던 우팀장이 궁싯거렸다. 수진이 제 말대로 잘하고 있는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우팀장은 괜스레 회의실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유리로 된 벽면으로 설핏 수진의 얼굴이 보였다.

수진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웅얼대는 소리조차 없었다.

하지만 제 상황을 설명하듯 수진은 끝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런 수진을 설득하는 것처럼 우리도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 못하겠다고 해야지.”

우팀장은 멀찍이서 수진을 코치하고 있는 것처럼 중얼댔다.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

수진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우리의 목소리가 커졌다. 회의실 문을 타고 듬성듬성 들리는 우리의 목소리는 한껏 격양돼 있었다.

우팀장의 얼굴이 거의 회의실 문에 달라붙기 직전.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인데 그래.”

수진과 마주한 우팀장은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진씨. 우팀장님 때문이니. 그래서 다 포기하겠다는 거냐고.”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그럼 그냥 모른 척 해주세요. 그게 진짜 도와주시는 거니까.”

수진은 우리의 말허리를 싹둑 잘랐다.

“그럼 갈게요. 대리님.”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수진의 얼굴은 창백하기만 했다.

더는 움직일 마음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허탈한 얼굴로 멀어지는 수진을 봤다.

“수진씨.”

하지만 그대로 수진을 포기할 수만은 없었다. 우리가 수진에게로 발을 뗀 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우팀장이 우리의 앞길을 막았다.

“어허. 더 못 보겠네. 고대리. 우리 수진씨 그만 괴롭혀.”

“그건 제가 드릴 말인데요.”

“난 수진씨 보호해주는 거고.”

“두 번 보호해주시다가는 정말 큰일 내시겠네요.”

“고대리는 다 별론데. 그 중에서도 말하는 게 제일 별로야. 화가 너무 많다고 해야 하나.”

승기를 잡은 우팀장이 한껏 거들먹거렸다. 문고리를 잡은 우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회사만 아니었다면 괘씸한 우팀장을 향해 주먹이라도 한 방 크게 날렸을지도 몰랐다.

“누가 자꾸 화나게 하네요.”

우리의 말에 우팀장이 코웃음을 쳤다. 보잘 것 없는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모습이 웃길 지경이었다.

우팀장은 우리의 코를 아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뒷짐을 진 우팀장은 우리를 코너로 몰았다.

“고대리. 졌으면 인정은 해야지.”

“설득할 수 있어요. 설득만 하면…….”

“내가 말했잖아. 쟤 너무 믿지 말라고.”

우리에게 얼굴을 들이밀던 우팀장이 씩 웃었다.

간사한 기운이 우팀장의 얼굴을 짙게 적셨다.

“쟨 배짱이 글렀어. 말 몇 마디면 내 말대로 한다고.”

“그게 자랑거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오지랖 피우다가 뒤통수 맞는 것도 자랑은 아닌 것 같은데.”

우팀장은 우리의 말을 단박에 받아쳤다. 우팀장을 노려보는 우리는 눈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우팀장에게 밀릴 수 없다는 의지였다.

“그만하자고.”

“싫다면요.”

“계속 하겠다는 거야?”

“여자가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끝장을 봐야죠.”

수진이 모든 것을 관둔다고 해도 우리는 끝까지 가볼 생각이었다. 그게 수진의 생각을 돌릴 수 있다는 것처럼.

막무가내로 밀려드는 우리의 기세가 우팀장은 딱할 지경이었다.

‘자기가 끝장나는지도 모르고. 끝장은 무슨 끝장.’

우팀장은 우리를 향해 동정 어린 눈빛까지 쏴댔다.

“고대리가 뭘 진짜 모른다니까.”

우팀장이 우리에게 다가갔다.

“칼로 무라도 자를 수 있는 건 남자지.”

“…….”

“고대리 같은 여자가 아니고.”

우리는 몸을 뒤로 빼고는 바짝 다가서는 우팀장을 피했다.

우팀장과 숨조차 섞고 싶지 않은 우리 나름의 발버둥이었다.

“그러니까 조용히 살아. 수진씨처럼.”

우팀장이 우리를 향해 강한 경고를 날렸을 때였다.

“그만하시죠.”

회의실로 들어온 건우가 우팀장을 밀었다. 그 손길에 우팀장과 우리의 거리가 멀어졌다.

“강차장님. 거치시네.”

“예. 경고 드렸을 텐데요. 제 사람은 건드리지 말라고.”

“건드린 적 없습니다. 고대리가 건드렸으면 모를까.”

우팀장은 결백하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그럼 수고들 하세요. 나는 누구 때문에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빠서.”

우팀장은 말을 덧붙이면서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눈빛을 받아내던 우리가 회의실 문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우리의 어깨가 우팀장의 팔을 툭, 쳤다. 짜증스러운 얼굴로 우팀장은 우리를 노려봤다.

“뭐하는 짓…….”

“팀장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우리가 운을 뗐다. 만족할 만한 말을 기다리는 우팀장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무슨 말이든 포용하겠다는 여유마저 돌았다.

“무는 남자가 써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별말 아니에요. 그냥 우팀장님은 회사보단 주방이 체질일 것 같아서요.”

우리는 무를 써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요새 또 조신한 남자가 대세잖아요.”

우리의 말에 우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우팀장은 너무도 당황해 소리를 칠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그럼 징계위원회에서 뵙겠습니다. 팀장님.”

말을 끝낸 우리는 차가운 얼굴로 회의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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