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83화 (83/102)

제 83화. 나만보고 따라와요

영화관에 도착한 순간부터 우리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포스터만 봐도 무서운 기운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선영의 등장에 성민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팝콘 살까요.”

선영만 들뜬 얼굴로 매점으로 달려갔다. 괜히 성민의 눈치를 살피던 우리도 선영을 따랐다.

“와. 강건우. 거짓말도 칠 줄도 아네.”

“스트레스도 풀고 좋잖냐.”

건우는 성민의 말을 가볍게 받아쳤다. 한 번 밀렸다가는 종일 핀잔을 들을지도 몰랐다.

능청스러운 건우의 말에 성민은 그저 기가 막힌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너도 절반은 눈치 챘을 거고.”

“누가 눈치를 채.”

“내가 갑자기 영화 타령할 위인은 아니잖아.”

핵심을 찌르는 건우의 말에 성민은 뜨끔한 표정이었다.

성민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굴러갔다. 딱 봐도 변명을 찾고 있는 모양새였다.

“눈치 채고도 온 건…….”

“맹세코 몰랐다.”

성민이 선서라도 하듯 한 손을 들었다.

“강건우가 사람 된 줄 착각하고 온 거지.”

“변명 치곤 너무 올드한 거 아니냐.”

“변명 아니고 진짜야. 겸사겸사 작가님도 뵈러 온 거고.”

건우는 팔짱을 낀 채로 성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속내를 꿰뚫는 것만 같은 강렬한 눈빛을 쏘아대면서.

그 눈빛을 피해 성민은 매점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큼지막한 팝콘 세트를 들고 있는 선영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성민.”

성민의 눈길을 쫓던 건우가 경계하듯 말했다.

“작가님은 탐내지 마라.”

건우는 털을 바짝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보였다.

우리를 보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마저 타올랐다.

“누가 탐냈다고.”

“눈빛부터가 불순해.”

“내 눈빛이 어때서. 인마. 너보다는 낫거든.”

성민의 말에 건우는 코웃음을 쳤다.

“어쭈. 강건우. 네 얼굴 보라니까. 음흉해.”

건우는 핸드폰을 코앞에 들이미는 성민의 손을 뿌리쳤다. 우리만을 사수하겠다는 집념만이 살아있었다.

건우는 우리가 들고 있던 팝콘 세트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성민을 향해 의기양양한 웃음을 날렸다.

우리의 손을 보호하는 일이 진정한 팬의 일인 것처럼.

“저 주세요. 차장님.”

“괜찮습니다.”

“제가 들어도 괜찮은데.”

“본보기를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건우가 그럴 듯한 핑계를 댔다. 난데없이 날아든 뼈 있는 말에 성민은 어색하게 선영을 쳐다봤다.

“주세요.”

성민은 무심하게 손을 내밀었다.

“무겁기는 한데. 괜찮아요. 충분히 들 수 있어요.”

“괜찮다면 어쩔 수 없죠.”

성민은 선영을 향해 내민 손을 거뒀다. 팝콘 상자는 영원히 선영의 품에 있을 것처럼 보였다.

심각한 얼굴로 성민과 선영을 번갈아 쳐다보던 우리가 건우의 팔꿈치를 쳤다.

무슨 충고라도 따끔히 날려보라는 눈빛이었다.

“강선영씨. 몇 관입니까.”

고민하던 건우가 말을 꺼냈다. 팝콘 상자를 들고 있던 선영이 힘겹게 가방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저희가 몇 관이냐면…….”

“핸드폰 꺼내기 힘들겠다. 누가 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

우리는 말을 하면서도 꼿꼿하게 성민만 바라보고 있었다. 팝콘 상자를 들 주인공은 정해져있다는 듯이.

우리의 눈빛에 반쯤 떠밀려 성민은 자연스럽게 선영의 팝콘 상자를 가져갔다.

선영은 감동한 얼굴로 성민을 봤다.

“누가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성민은 괜스레 다른 곳을 보면서 말을 흐렸다.

가방에 있던 핸드폰을 꺼낸 선영의 눈빛은 한없이 반짝거렸다.

백마 탄 왕자님이라도 목격한 표정이었다.

“감사해요. 잘못하면 쏟을 뻔했는데. 딱 구해주셨네요.”

선영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하트가 쏟아질 기세였다.

“저 주셔도 될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아뇨. 무거우실 것도 같고. 제가 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요새 힘이 막 넘치거든요.”

선영은 성민을 향해 두 손을 내뻗었다. 성민을 힘들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성민이 팝콘 상자를 한 번 들어준 것만으로도 선영은 잔뜩 격양됐다. 목소리 톤마저 끝없이 올라갈지도 몰랐다.

“아뇨. 제가 들겠습니다.”

“진짜 제가 들 수 있는데.”

“몇 관인지만 알려주시죠. 다들 기다리는 것 같아서.”

성민은 우리와 건우의 핑계를 댔다.

“3관인데. 자리는…… 제가 앞장설게요.”

상영관으로 향하는 선영의 얼굴에 엉큼한 미소가 녹아들었다. 우리 빼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미소였다.

우리는 곧 선영의 미소에 담긴 의미를 간파했다.

그것도 3관에 들어서자마자.

상영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바삐 고개를 돌려봤지만 빈 의자만 즐비했다.

수상한 기운이 우리의 등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우리는 자리를 스캔하고 있는 선영에게 바짝 다가섰다.

“우리 자리는.”

“아무데나 앉으셔도 될 것 같아요.”

“설마…… 아니지.”

우리는 힐끗 성민을 쳐다보고는 조용히 물었다. 상영관을 통째로 빌렸냐는 질문에 선영이 헤벌쭉 웃었다.

“맞아요. 그냥 다 빌렸어요.”

우리가 놀란 기운을 숨기면서 상영관을 돌아봤다.

아무도 없는 상영관은 조용했지만 썰렁하기도 했다. 우리는 유난히 상영관이 크게만 느껴졌다.

빈자리를 가득 둔 채로 호러 영화를 봐야하다니……. 생각만으로도 닭살이 돋는 것만 같았다.

“저는 성민씨하고 G열에 앉을게요.”

“우린 구석에 박혀있는 게 좋겠다.”

우리는 구석진 끝자리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양쪽에 빈 의자를 두고 호러 영화를 맞이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두 팔을 쓸어내렸다. 스산한 기운이 살갗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넵! 그럼 즐데하세요. 대리님.”

즐거운 데이트를 하라는 줄임말까지 선보인 선영은 마냥 들떠있었다.

“차장님. 저희는 저 끝으로 가면 될 것 같아요.”

“너무 구석 아닙니까.”

“제가 구석을 사랑해서요.”

“그럼 가야죠.”

건우는 투덜대는 것도 잊고 구석진 자리로 걸어갔다.

“강건우. 어디 가냐.”

“내 자리.”

담담한 건우의 목소리가 상영관을 채웠다. 건우는 점점 멀어지는 성민과의 거리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은 건우는 팔걸이를 걷었다.

“그쪽으로 가면 되냐.”

“자리 없다.”

건우는 단칼에 성민을 막았다. 성민까지 곁에 두고 영화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예요.”

건우의 맘을 아는 듯 선영이 성민의 코트를 붙잡고 말했다.

끝자리로 향하던 성민이 발길을 멈추고 선영을 봤다.

코트를 잡고 있던 선영의 손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G열 8번하고 9번이요.”

“너무 거리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죄송해서요. 제가 부탁해서 영화도 봐주시는 건데. 두 분만 계실 수 있는 시간까지 뺏는 것 같아서…….”

양심고백을 하듯 선영이 진실을 꺼내들었다. 성민은 별다른 말없이 선영을 봤다.

선영의 비밀 계획이 마냥 밉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것도 있었고.

“일단은 앉죠. 영화도 시작할 것 같은데.”

성민은 주변을 살피면서 말했다. 곧 영화가 시작될 것처럼 조명이 어둑해졌다.

흥미진진한 로맨스 영화를 보듯 건우는 팝콘을 먹으면서 성민을 빤히 쳐다봤다.

제법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는 것도 같았다.

“더 관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뭘요.”

“강선영씨.”

“그런가요. 그래도…… 아. 시작할 건가 봐요.”

우리는 선영을 살필 수도 없었다. 무섭다는 말에 반쯤 얼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두려운 기운을 떨치려는 듯 우리는 빨대만 열심히 빨아댔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얼음 알갱이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명이 완벽하게 꺼졌다.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빛만 강해졌다.

초반부터 스산한 노래가 흘렀다. 팝콘을 집은 우리의 손은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뜨거운 콧김을 뱉은 우리는 눈만 깜빡거렸다.

“괜찮습니까.”

건우는 우리의 얼굴을 살폈다. 경직된 우리의 표정은 풀어질 줄 몰랐다.

“그럼요.”

“지금 나가도 됩니다.”

“아뇨. 혹시 차장님 무서우시면 나가셔도 되고요. 제가 생각보다 고수거든요. 무서운 영화 진짜 잘 봐요.”

우리는 자기 때문에 건우가 보고 싶던 영화를 놓칠까. 구태여 강한 척까지 해대면서 빙글 웃었다.

억지로 웃는 통에 우리의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온갖 핑계를 대고 상영관을 탈출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럼 계속 볼게요.”

우리가 스크린을 콕, 찍었다. 건우는 흔들거리는 우리의 손끝을 빤히 쳐다봤다.

‘괜찮은 것 같지 않은데.’

우리를 보는 건우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무서운 장면에서는 어쩔 줄을 몰랐다.

쫄깃해지는 우리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보였다.

영화는 초반부부터 놀랄 만한 장면들을 터뜨려댔다. 선영의 비명소리만 간혹 들릴 뿐. 상영관은 조용하기만 했다.

너무 놀란 우리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건우가 커다란 손으로 우리의 눈을 가렸다.

“나갑시다.”

건우의 말에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건우의 손은 여전히 스크린을 막아주고 있었다.

짐짓 들리는 소리에 긴장한 우리는 눈을 깜빡대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아직 영화 하는데요.”

우리가 건우에게 다가서서는 속삭였다.

“영화가 너무 재미없어서.”

“진짜 나가도 괜찮을까요. 아직 선영씨도 있는데.”

우리와 건우의 거리가 코앞까지 가까워졌다. 건우의 숨소리가 따뜻하게 우리의 입술에 녹아들었다.

청량한 온기가 주위를 밝혀주는 것만 같았다. 우리의 곧은 눈길은 건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나가야겠습니다.”

“차장님.”

“내가 무서워서.”

건우는 스크린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단호하게 번진 건우의 말에 우리의 고개는 절로 끄덕거렸다.

그 어떤 무서운 영화도 우리는 맘껏 즐길 수 없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스산한 소리만으로도 우리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진정 해야 할 것도 같고.”

건우는 우리에게서 조금도 눈을 떼지 못했다. 놀란 우리를 달래주고만 싶었다.

“그니까 나만보고 따라와요.”

낮은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를 적셨다. 우리는 건우를 따라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스럭대는 소리는 사방에서 몰아치는 음악 소리에 묻혔다.

스크린을 볼 새도 없이 우리는 건우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를 놓아줄 수 없다는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노랫소리가 점점 커졌다.

심장을 두드려대는 소리에 우리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상영관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목을 죄이는 것만 같은 노랫소리에 우리는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나만 보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스크린으로 향하던 우리의 눈길이 건우에게 박혔다.

건우는 두 손으로 우리는 귀를 막아주었다. 웅웅대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건우의 말대로 우리는 건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서운 장면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건우는 빤히 스크린을 봤다.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표정 변화가 하나도 없던 건우 덕분에 우리는 무슨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제 가도 될 것 같습니다.”

건우의 손이 귀에서 떨어졌을 때. 무서운 장면이 끝났다는 걸 지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가죠.”

건우가 부드럽게 우리의 손목을 잡았다. 몸을 조금 낮추고 조용히 상영관을 나설 때까지도 건우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가 무서운 장면을 보게 되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건우만을 바라본 채로 상영관을 나섰다. 묵직한 커튼 덕분에 상영관으로 빛 한 줌 새어들지 않았다.

상영관을 나온 우리는 진이 다 빠진 것처럼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팝콘을 먹었다.

“팝콘은 맛있습니까.”

팝콘을 먹는 우리의 두 볼은 터질 것이 보였다. 우리를 보던 건우의 얼굴에 다정한 미소가 녹아들었다.

멍하니 팝콘을 씹고 있는 우리의 모습마저 건우는 사랑스러웠다.

“당이 부족해서요.”

웅얼대는 우리의 눈동자에는 한결 생기가 돌았다.

“선영씨는 괜찮을까요. 은근히 무섭던데.”

“왠지 잘 즐기고 있을 것 같습니다.”

건우는 나가기 직전에 봤던 선영과 성민의 모습을 떠올렸다. 선영은 달달한 로맨스 분위기를 만들려고 성민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깜짝 놀라는 장면에서조차 선영은 놀란 기색이 없었다.

팝콘을 집다가 서로 손이 맞닿는다든가, 갑자기 무서운 장면에서 성민의 품에 달려든다든가…….

건우는 선영이 그 절묘한 타이밍만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간파했다.

우리가 선영을 걱정하는 건 정말로 쓸데없는 일일지도 몰랐다.

“제가 정말 무서운 거 잘 보는데. 저건 조금. 진짜 조금 무섭더라고요.”

“잔혹한 부분도 조금 있고.”

“그죠. 꿈에 나올 것 같다니까요.”

동조하는 건우의 모습에 우리는 열변을 토해냈다.

끔찍한 장면들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도는 것만 같았다.

“저는 그냥 코믹 영화가 좋은 것 같아요. 재밌는 것만 보기에도 인생 짧잖아요.”

“그럼 우리는 다른 영화 보러 갑시다.”

“선영씨랑 성민씨는요.”

“고우리씨만 생각하려고.”

건우는 상영관 쪽만 빤히 쳐다보고 있는 우리의 시선을 막아섰다.

“그러기에도 제법 바빠서.”

따뜻한 온기가 건우의 미소에 달라붙었다. 건우는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달달한 팝콘을 집은 우리의 손이 움찔거렸다.

재미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열망과 갑작스럽게 사라질 수 없다는 도덕성이 충돌했다.

“갑시다.”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를 깊게 파고들었다. 내적 갈등에 빠진 우리를 유혹하듯.

“……진짜 데이트 하러.”

빠르게 밀려든 건우의 말에 우리는 홀려버렸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건우의 손목까지 덥석 잡았다.

심각한 얼굴로 티켓 판매기를 살피던 우리는 가장 빠른 시간대의 코믹 영화를 예매했다. 영화표를 보던 우리가 핸드폰을 꺼냈다.

-선영씨. 우리가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먼저 갈게. 내일 봐.

그리고는 선영에게 변명 섞인 메시지를 날렸다. 우리는 양심을 찌르는 묘한 책임은 떨쳐내기로 했다.

성민을 극장까지 데려왔으니 제 할 일은 끝난 걸지도 몰랐다.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우리는 한참 따뜻한 커피만 홀짝 마셔댔다.

“차장님. 설마 성민씨하고 마주치는 건 아니겠죠.”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영 기분이 싸해서요. 꼭 설마가 현실이……!”

우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상영관으로 향하던 우리가 먼저 성민을 발견했다.

우리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팝콘을 모두 쏟을 뻔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성민을 본 건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니. 차장님. 지금 그럴 때가 아니고…… 이쪽으로요.”

우리는 건우를 끌고 영화관 한 쪽에 배치된 전시물 뒤에 몸을 숨겼다.

첩보요원을 능가하는 민첩한 몸짓이었다.

비상상태를 선포한 우리와는 달리 건우는 평온하기만 했다.

“들키면 끝장이에요.”

“끝장까지야.”

우리가 성민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성민은 우리와 건우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성민은 주변을 살피고는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빠져준다면서 몰래 데이트만 하고 있고. 괜히 모양새만 이상해진다니까요.”

“그것 말곤…….”

“성민씨가 절대 차장님을 놔주지 않을 걸요.”

우리의 말은 현실이 됐다. 건우의 핸드폰이 무섭게 울어댔다.

“그럼 잘 숨어야겠네.”

“그죠.”

“예.”

굳은 다짐을 품은 건우의 목소리가 번졌다. 건우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핸드폰을 꺼버렸다.

“셋이 데이트할 생각은 없거든.”

건우의 눈동자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겠다는 결심만 넘실거렸다.

우리와 건우는 커다란 히어로 피규어 밖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성민은 동아줄을 잡듯 끈덕지게 건우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아마도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소리만 듣고 있을 것이었다. 건우는 성민이 한 눈을 팔자마자 우리를 데리고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꼭 제 모습이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는 스파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뭐가 재밌습니까.”

“차장님하고 저하고 너무 손발이 잘 맞는 것 같아서요.”

“그건 인정하죠.”

“거의 셜록하고 왓슨 같았다니까요.”

환상의 콤비에 감탄하던 우리는 금세 영화에 집중했다. 건우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다. 스크린을 보면서 깔깔 웃어대는 우리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웃는 우리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건우는 행복해졌다.

우리를 따라 건우의 입매도 부드럽게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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