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80화 (80/102)

제 80화. 그가 홀로 간직하던 비밀

지옥에서 올라온 저승사자만큼 으스스한 기운을 내뿜던 건우가 가게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의자를 바짝 당겨 우리의 옆에 앉았다.

마치 황후를 지키는 호위무사처럼 건우의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셨네요.”

어색한 기운을 뚫고 우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예. 생각보다 논의가 잘 돼서.”

“하긴. 저번에 스토리보드 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고 촬영 일정도 잘 맞아서 무리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도 가시겠죠.”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황주임한테 완전히 맡기기는 무리일 것 같기도 하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우리와 건우를 보지도 않고 성민은 산낙지를 먹는데 열중했다.

기운이 빠진 건지. 완전히 신경세포가 죽은 건지.

산낙지는 더는 꿈틀거리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었다.

“맛있냐.”

건우가 눈을 번뜩거리면서 산낙지를 먹는 성민에게 던진 첫 마디였다.

건우와 성민은 인사조차 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는데. 너도 한 번 먹어봐.”

성민은 산낙지를 숟가락 가득 집고는 건우에게 내밀었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산낙지 다리를 보던 건우가 성민의 손을 조용히 밀었다.

“살아있는 건 별로.”

“너는 먹어보지도 않고 그러더라. 이상할 것 같은 것도 다 기분 탓이라니까.”

채근하듯 밀려드는 산낙지의 습격을 건우는 한 손을 들었다. 성민의 돌발행동을 완벽하게 저지하는 손짓이었다.

건우는 절대로 산낙지를 먹을 생각이 없었다.

“진짜 맛있는데. 그죠. 작가님.”

하지만 날 것은 절대 먹을 생각이 없다는 건우의 생각에 조금씩 균열이 갔다.

“생각보다 맛있어요. 차장님.”

딱 우리의 말 한 마디에.

“거봐. 맛있다니까.”

“씹는 맛도 있고. 또…….”

산낙지의 매력을 설명하던 우리가 산낙지를 가득 집었다.

“원하시면 더 죽여드릴 수도 있고요.”

살벌한 말을 날린 우리가 빙글 웃었다. 우리는 접시에 산낙지를 내려쳐서 기절이라도 시킬 기세였다.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는 미칠 지경이었다.

맹랑한 그 말조차 사랑스럽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진짜, 미쳐가나 보다.

“싫으면 됐다. 나하고 작가님하고 먹지 뭐.”

“먹어.”

다정스럽게 산낙지 건배까지 하는 성민과 우리를 보던 건우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우리와 성민은 동시에 건우를 쳐다봤다.

“방금 너…….”

“먹겠다고.”

“와. 내 인생에 강건우가 산낙지 먹는 날을 보다니. 특별히 준다. 진짜.”

성민은 집었던 산낙지를 건우에게 왕창 건넸다.

“그만 줘도 될 것 같은데.”

건우는 그만 달라는 듯 성민에게 눈치를 줬다.

하지만 성민은 건우의 첫 산낙지 시식 현장을 놓칠 수 없다는 것처럼 더 맹렬하게 산낙지를 얹어줬다.

건우는 성민을 보면서 어색한 웃음만 터뜨렸다.

입만 웃고 눈은 웃지 않는, 가짜 웃음이었다.

“어허! 그럼 쓰나. 우리 우정이 있는데.”

“그 우정, 너무 넘치네.”

“우정과 사랑은 넘쳐야지.”

성민은 눈에 힘을 잔뜩 주었다. 오늘만큼은 건우의 눈빛에 밀리지 않겠다는 다부진 결심마저 느껴졌다.

“하하.”

“하하!”

두 남자의 가짜 웃음이 테이블을 채웠다.

그야말로 쓸데없이 우정이 넘치는 현장이었다.

“그만하면 됐다.”

“인정.”

고봉밥처럼 쌓인 산낙지를 보던 성민은 뿌듯해보였다.

그새 신경세포가 살아났는지. 산낙지 다리가 파닥거리듯 움직였다. 그 모습에 건우는 더 단단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고우리씨. 건배 하죠.”

건우가 산낙지를 내밀고는 말했다.

“좋아요.”

“근데 그냥 부딪혀도 상관없습니까. 낙지 떨어질 것 같아서.”

“그럼 제가 주워 먹을게요. 걱정 말고 건배요.”

“건배.”

맞닿은 산낙지가 서로를 갈망하듯 꿈틀거렸다. 짤막한 건배를 끝으로 우리는 산낙지를 단숨에 씹어 먹었다.

건우도 조심스럽게 산낙지를 입에 넣었다. 산낙지를 씹는 소리는 주변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우리와 성민은 건우의 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무표정으로 산낙지를 씹는 건우의 생각을 조금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건우의 목젖이 느릿하게 아래로 내려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모든 도전을 끝냈다는 것처럼 건우는 조용히 젓가락만 내려놨다.

“차장님. 어때요. 생각보다는 괜찮죠.”

정적을 참지 못한 우리가 쉴 새 없이 질문을 내뱉었다.

“생각보단.”

건우는 우리의 기대를 꺾지 못할 것 같았다. 익숙한 식감은 아니었지만 곧 적응될 것이었다.

“산낙지 더 시킬까요.”

“괜찮습니다. 조개를 먹고 싶어서.”

“조개도 먹고 산낙지도 먹고. 그냥 다 드세요.”

“적당히 먹겠습니다.”

건우는 배가 부르다는 적당한 핑계로 말을 돌렸다.

‘천하의 강건우가 거짓말까지 하고.’

건우가 누군가와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도. 웃는 것도. 실로 간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조개를 추가한 성민이 건우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민우가 죽은 이후 회색 빛깔로 변한 건우의 세상이 조금씩 제 빛깔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형형색색. 찬란하게 젖어가는 건우의 세상에 성민의 코가 시큰거렸다.

성민은 본연의 색을 찾아가는 건우의 세상이 다시 무너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더는 잿빛 세상에 갇히지 않길.

지금처럼 눈부시게 빛나길.

***

쌓여가는 맥주병만큼 조개찜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테이블에서 일어난 우리와 성민은 작은 실랑이를 벌였다.

카운터에서 서로 계산을 하겠다고 지갑을 찾아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저희 동네니까 제가 낼게요.”

“작가님. 제가 내야죠. 제가 쏘고 싶습니다.”

“차장님하고 성민씨 동네 놀러 가면 그때 쏴주세요.”

지갑도 찾지 못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에 건우는 헛웃음만 흘렸다.

“계산해주시죠.”

우리와 성민은 건우가 계산하는 것을 보지도 못한 채로 여전히 말만 주고받고 있었다. 만담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진짜 팬심이거든요.”

“부끄럽게…….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제가 쏩니다.”

“제 팬이라고 하시니까 제가 낼게요. 팬 관리랄까.”

자기가 내뱉은 팬이라는 말에 민망해져 우리의 두 뺨은 빨갛게 열기가 녹아들었다.

우리는 지갑을 찾던 것도 잊고 제 두 뺨만 열심히 쓸어내렸다. 짙은 열기가 우리의 손바닥까지 적셨다.

“나한테도 해주죠.”

계산을 끝낸 건우가 우리의 허리를 감았다. 부드럽게 제 쪽으로 당기는 건우의 힘에 우리는 건우에게 바짝 붙어버렸다.

“뭘요.”

“그 팬 관리.”

우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건우를 쳐다봤다.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리는 우리의 머릿속도 느리게만 돌아갔다.

짙은 적막을 가르면서 우리는 가방을 다시 열심히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가방 바닥에 있던 지갑을 뽑아들듯 힘차게 꺼냈다.

“차장님 몫까지 쏘겠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팬 관리를 시작해볼 생각이었다.

것도 역조공으로.

“사장님. 여기 계산해주세요.”

“계산은…….”

“근데 빌지가 없어서. 어디 갔지.”

산만한 우리를 보던 건우가 지갑을 가져갔다. 갑작스러운 지갑 습격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건우는 가볍게 우리의 손을 피했다.

“계산 끝났습니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우리의 지갑을 가방에 넣어주었다.

“그럼 가죠.”

“제가 계산하려고 했는데.”

“잘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나중을 위해서.”

“진짜 꼭 사드릴게요. 여기 와서.”

성민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로 소리 없이 빙긋 웃고만 있었다.

사랑을 나누는 빛나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처럼 인자한 눈빛까지 장착하고서.

“난 간다.”

성민이 건우를 향해 한 손을 들고는 말했다.

“아직도 있었냐.”

“어쩌다보니까 타이밍을 못 맞춰서.”

“그럼 이제 가라.”

“그러지 않아도 갈 거니까 걱정 마시지.”

사라지겠다는 성민의 말에 건우는 냉큼 도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건우의 간절한 손길에 택시 한 대가 멈췄다.

“무슨 택시를 바로…….”

“조심히 가고.”

건우는 성민의 말허리를 잘랐다. 더 말이 길어지다가는 잡았던 택시까지 놓칠지도 몰랐다.

건우가 뒷좌석의 문을 열고 성민을 단박에 구겨 넣었다. 건우의 손길에 떠밀려 성민은 어느 새 택시에 올라타 있었다.

“아직 작가님하고 인사도 못했는데. 작가님!”

우리를 부르는 성민은 마치 절대 죽지 않는 좀비 같았다.

“기사님. 죄송하지만 빨리 가주시죠.”

“진짜 보내는 건 아니지.”

“그만 가라.”

건우는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성민을 살포시 눌렀다.

좀비를 처치하듯 건우는 금세 택시를 향해 손까지 흔들어댔다.

“담에 또…….”

우리가 성민에게 끝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택시는 떠나버렸다.

“……가세요.”

황망한 우리의 말만 사위를 떠돌았다. 우리는 멀어지는 택시 뒤꽁무니를 향해 손만 흔들어댔다.

소란스럽던 성민이 사라지고 사위는 금방 조용해졌다.

“우리도 가죠.”

건우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형형색색이 녹아든 시내 풍경을 보던 우리가 건우의 손을 빤히 쳐다봤다.

따뜻한 건우의 손을 잡으면 어떨까. 서로를 갈망하듯 맞잡은 손은 꼼지락거릴지도 몰랐다.

정말, 그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무슨 생각합니까.”

그럼 얼마나 좋을까.

“무슨 생각은요. 그냥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정말…….”

“차장님. 저희 가요.”

우리는 건우의 소매를 잡았다. 우리의 손길에 건우의 재킷이 조금 구겨졌다.

“낮에는 따뜻해졌던데 밤은 그래도 춥네요.”

해가 떨어진 거리는 제법 쌀쌀했다. 진해졌던 봄기마저도 자취를 감췄다. 한기가 우리의 얇은 블라우스를 파고들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우리를 보고 있던 건우가 제 재킷을 벗었다.

“차장님. 저 괜찮아요. 집도 코앞이고요.”

“감기 걸립니다.”

“차장님 재킷도 너무 클 것 같고. 괜찮아요. 빨리 걸으면 금방 도착하니까요.”

우리는 두 손을 내뻗고는 건우의 재킷을 막아섰다. 재킷을 내어주면 건우는 겨우 셔츠 한 장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셔츠 한 장으로는 찬기를 막아낼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러니까 내 말 들어요.”

건우는 우리에게 재킷을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단단히 앞섶을 잡아주었다.

어둑한 풍경에 번진 빛이 우리와 건우를 아련히 적셨다.

무거운 눈두덩을 깜빡거리면서 우리는 건우를 빤히 바라봤다.

재킷에 스민 건우의 온기가 우리에게 짙게 녹아들었다. 재킷 앞섶을 잡은 건우가 우리를 부드럽게 당겼다.

그 손길에 우리는 단박에 건우에게 바짝 붙었다.

우리의 두 뺨이 새빨개질 때까지도 건우는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감기 걸리면 혼내줄 테니까.”

낮은 건우의 목소리가 녹아내렸다.

“어떻게요.”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요. 확 감기에 걸리면…….”

우리는 비밀을 캐낼 기세로 재킷을 벗었다.

하지만 건우가 재킷 앞섶을 잡고 있는 통에 재킷은 오픈 숄더처럼 어깨만 흘러내린 상태가 됐다.

“……정말, 벌 줘야지.”

옅은 미소를 날리면서 건우는 앞섶을 부드럽게 당겼다. 한 치의 멈춤도 없는 손길이었다.

우리와 건우 사이에는 순식간에 빈틈조차 사라졌다.

“기대해도 좋고.”

건우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묻어나왔다. 그 목소리는 차가운 기운을 뚫고 우리의 입술에 흐무러졌다.

흐릿하게 번지는 건우의 숨결에 우리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입술이 품은 신경이 모두 예민해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뜨겁게 쏟아질 건우의 키스를.

건우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허리까지 감싸고는 우리를 헤집었다.

달달한 건우의 향기가 뜨거운 타액을 타고 녹아들었다.

“아…….”

가지런한 치열과 얇은 점막까지도 건우에게 모두 점령당했다. 군데군데 번져나가는 향기는 금세 우리의 온몸을 뜨겁게 태웠다.

달뜬 숨소리가 녹아내렸고 우리는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가지를 훑는 밤바람 소리…….

그 모든 소리는 입술이 맞닿은 조그마한 소리에 묻혀버렸다.

타는 듯 화끈거리는 입술을 건우는 끝없이 깊게 밀고 들어왔다.

차갑던 바람마저도 건우와 우리의 맞닿은 입술 사이로 흐르는 열기에 금세 훗훗해졌다.

예민해진 감각에 우리가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건우가 느릿하게 입술을 떼어냈다.

넘실대는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는 것이 진짜 벌이라는 듯.

“이만하면 알았을 것 같으니, 가죠.”

건우는 흘러내린 재킷을 올려주고는 말했다. 우리의 제 아랫입술을 혀로 살짝 할짝거렸다.

금방이라도 김이 날 것처럼 빨개진 입술은 뜨거웠다.

“……네.”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이 우리의 목 끝까지 차올랐다. 뜨뜻한 침을 넘기면서 우리는 입술의 열기가 빨리 식어가길 바랐다.

또 벌을 받겠다고 손까지 드는 제 모습을 상상조차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단단히 마음을 잡듯 건우의 소매를 잡았다.

“근데 차장님. 진짜 추우실 것 같은데.”

“춥습니다.”

“그러니까 재킷을…….”

“재킷을 받을 생각은 없으니까. 이러면 될 것 같네.”

건우는 우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건우와 우리의 몸이 딱 달라붙었다.

“따뜻합니다.”

건우가 우리를 보고는 빙긋 웃었다. 우리와 나란히 걷는 길이 반짝거리는 것만 같았다.

노랗게 번진 가로등과 전조등 빛이 꼭 옅게 번진 수채화 같았다.

힐끗 곁눈질로 건우를 보던 우리도 조심스럽게 건우의 허리를 감쌌다.

조그마한 틈도 없이 바투 붙은 채로 건우와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막 벌어진 꽃봉오리가 짙은 꽃향기를 피어냈다.

그 달큰한 향기를 달고 우리와 건우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우리가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던 때였다.

건우가 아래로 내려가는 버튼을 먼저 눌러버렸다.

“차에 두고 온 게 있어서.”

그리고는 무심하게 말을 뱉어냈다.

“내려갔다가 올라가면 되겠네요.”

“그래주면 고맙죠.”

“설마. 제가 차장님 버리고 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우리가 열린 엘리베이터에 먼저 올라탔다.

“그럼요. 고우리씨가 날 버릴 일은 없죠.”

“절대요. 그럴 일은 꿈에서도 없을 걸요.”

우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말만으로도 건우는 마냥 기뻤다.

누군가 제 손을 잡아주는 듯 든든하기까지 했다. 건우는 우리를 지그시 바라봤다.

제 편이 돼주겠다는 우리에게라면 혼자 간직하던 비밀조차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민우의 사고가 있던 날부터 건우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건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소방관들을 붙잡고 민우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그날.

건우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소방관 한 명을 붙잡았다.

‘제 동생이 있어요. 중학교 교복 입은 놈인데. 제발. 우리 민우 살려주세요.’

‘학생. 맘은 알겠지만 지금 불길도 너무 크고. 조금만 잡히면 바로 구조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기다려줘. 꼭 구해줄 테니까.’

‘아뇨.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제가 오길. 그러니까 아저씨. 못하시겠다면 제가 갈게요. 제가…….’

건우는 막무가내로 소방관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소방 장비라도 두른 채 불길로 돌진할 기세였다.

소방관은 펌프차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도 잡히지 않는 불길을 봤다.

나이가 있는 여자가 깨진 창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가마.’

소방관은 건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공기호흡기를 착용한 소방관은 모두가 정신없는 사이에 건물로 뛰어들었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 속에서 소방관은 여자인 학생을 구하고 다시 들어갔다.

두 손을 맞잡은 건우는 모두가 무사하길 바랐다.

비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를 뚫고 민우가 나타나주길.

하지만 건우는 민우도 소방관도 다시 볼 수 없었다.

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건물이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아니잖아. 아냐…….’

얼빠진 얼굴로 건물을 향해 걸어가던 건우는 경찰에게 제지당했다.

죽은 소방관의 딸에게 손수건을 던져주듯 주고 도망친 건우는 합동장례식장에는 다시 갈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죄책감이었다.

제가 아니었다면 민우는 학원에 가지 않았을 거고 소방관은 다시 건물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었다.

결국 건우는 자기가 그들을 죽였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속으로만 삭히던 그 죄책감을 건우는 말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차장님. 계속 거기 계실 건 아니시죠.”

항상 제 곁에 있겠다는 우리에게라면.

어쩌면 정말, 너에게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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