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79화 (79/102)

제 79화. 갑자기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면

한소민 쇼케이크 축하를 위한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다. 새로 나온 음료 협찬까지 일사천리로 오케이를 따냈다.

쇼케이크를 통한 홍보라는 명목 하에 올라간 결재는 빠르게 처리됐고 우리는 급히 꽃다발과 케이크를 주문했다.

꽃다발은 꽃집에서 견적을 받은 대로 예약을 걸었고 케이크는 레터링이 가능한 떡 케이크로 주문을 마쳤다.

한소민의 얼굴과 신제품까지 케이크 위에 그려질 예정이었다.

한소민이 SNS에 인증만 한다면 제법 홍보에 도움이 될 터였다.

“우내시 장난 아니더라. 완전 칼퇴야.”

“본부장한테 깨졌다던데. 왜 깨진 거야.”

“또 무슨 헛짓했겠지. 아부 잘못했거나.”

“노무사까지 찾았다던데.”

윤실장과 통화를 끝내고 탕비실로 향한 우리가 쫑긋 귀를 세웠다. 탕비실만큼 발 빠르게 정보가 도는 곳도 없었다.

퇴근을 앞둔 직원들의 마지막 뜨거운 감자는 칼퇴를 한 우팀장이었다.

우팀장은 없던 외근도 만들어서 일찌감치 퇴근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진짜 무슨 난리난 건 아니겠지.”

“아침에 우내시가 수진씨 회의실로 끌고 들어갔잖아. 근데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더라고.”

“또 막 그런 짓 한 거…….”

우팀장과 우리 사이에 있던 일이 대화에 섞여 터지려다가 말았다. 모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암튼 나도 퇴근 준비나 해야겠다.”

“같이 가요.”

눈짓을 나누던 직원들은 다급히 탕비실을 나섰다. 커피를 내리던 우리는 황망한 얼굴로 아무도 없는 탕비실을 봤다.

모두가 등을 돌렸던 때가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들었다.

우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다시금 사람들의 입에서 살아나는 예전 일을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리는 코끝을 간질이는 커피 향에 묘한 감정을 꾹 삭였다.

‘그거 다 고대리가 꼬리친 거지. 진짜 여우라니까.’

생채기를 만드는 해묵은 말조차 흐릿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 소리에 집중하느라 우리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기 있었네.”

다정스러운 건우의 목소리조차도. 벽을 보는 우리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과거의 말속에 매몰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는 나올 수 없을 만큼, 아주 깊숙이.

“고대리님.”

“…….”

“고우리씨.”

건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돌려세웠다. 끝없이 골몰하던 우리의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죄송해요. 다른 생각 하느라.”

“무슨 생각을.”

“그냥. 별일 아니었어요.”

싱거운 우리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건우는 대번에 눈치 챘다. 탕비실을 나서던 직원들의 말도 그랬고 눈은 웃고 있지 않은 우리의 표정도 그랬다.

건우는 우리의 생각을 다시 묻지 않았다. 섣부르게 행동하다가 도리어 우리에게 상처를 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근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광고 PPM-사전 제작 미팅- 때문에 늦을 것 같아서 말하려고 왔습니다.”

“늦게 끝나시겠죠.”

“체크 할 사항이 많아서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우리의 얼굴에는 아쉬운 기운이 돌았다. 뜨뜻한 조개찜을 먹으면서 복작거리는 머릿속을 말끔하게 비워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일찍 끝나면 저녁 같이 하려고 했는데.”

“내일 하죠.”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지금 바로 나가시는 거죠.”

“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건우는 손목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의상부터 완성시기까지 조절하려면 제법 부지런히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었다.

우리는 건우와 나란히 탕비실을 나섰다. 황주임과 선영은 사무실로 찾아온 광고대행사 직원들을 맞고 있었다.

“차장님. 대행사 도착해서요.”

건우를 발견한 선영이 냉큼 달려왔다.

“먼저 회의실에 가 있을까요.”

“예.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넵!”

우렁차게 대답한 선영은 광고대행사 직원들을 데리고 대회의실로 향했다.

기획부부터 제작부까지. 최종 논의를 끝내기 위해 모두 총출동한 것이었다.

북적거리던 사무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끝나면 전화하겠습니다.”

건우는 대회의실을 보면서 낮게 속삭이듯 말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예. 잘 기다리고 있어요.”

무표정한 건우와 우리는 마치 심각한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우리와 건우 사이의 다정한 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건우는 대회의실로 걸어갔다. 멀찍이 멀어지는 건우의 뒷모습을 보던 우리의 눈빛은 유달리도 애달았다.

꼭 견우와 직녀가 이별하는 것처럼.

애절한 우리의 눈빛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로 건우는 대회의실로 사라졌다.

건우가 사라진 곳만을 빤히 쳐다보던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

일찌감치 퇴근한 우리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두 뺨을 스치는 바람이 우리는 무겁게만 느껴졌다.

노곤한 기운이 우리의 온몸을 감았다. 팔로 흘러내리던 가방 끈을 바짝 다잡은 우리가 공동현관으로 들어서려던 때였다.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토록 선영이 갈망하는 성민이었다.

현관 비밀번호를 모르는 성민은 건우의 집 호수만 열심히 눌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 있는 건우가 문을 열어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성민씨.”

우리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번졌다. 번호를 꾹 누르던 성민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다.

성민은 반갑게 인사를 날리면서도 우리의 주변을 살폈다.

“건우는.”

“차장님 늦으실 것 같은데.”

“설마요. 금방 퇴근하겠다고 해서 온 건데.”

성민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논의가 끝나려면 적어도 두 시간 이상은 소비될 터였다.

그런데 금방 퇴근을 하겠다니.

우리는 수상하다는 눈길로 성민을 쳐다봤다.

“차장님하고 통화는 하신 거죠.”

“한 1시간 전인가. 네. 딱 1시간이네요. 그때 했습니다.”

뚫어지게 손목시계를 보던 성민이 확실에 차서는 말했다. 그 말에 우리는 제 기억을 느릿하게 더듬거렸다.

한 시간이면 우리가 퇴근을 한 직후였다. 미팅에 들어간 건우가 금방 퇴근을 할 거라고 말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성민을 골탕 먹이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라면. 대체 왜 일찍 끝난다고…….

우리는 소심하게 제 핸드폰 화면을 켰다. 건우에게서는 단 한 통의 메시지도 없었다.

조용한 핸드폰을 보던 우리는 열심히 머리를 굴러 봤지만 건우의 의도를 간파하기 어려웠다.

“차장님은 광고 최종 논의 중이라 아마 늦으실 거예요.”

“아…….”

건우 말만 믿고 부랴부랴 퇴근을 해 집으로 달려온 성민은 탄식을 내뱉었다.

“같이 소주 한 잔 하려고 온 건데.”

성민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아파트를 보고는 말했다.

“저도 저녁 전인데. 같이 하실래요.”

빤히 성민을 보고 있던 우리가 조심히 물었다. 꿀꿀한 기분을 품은 채로 혼밥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상 광고 세부 사항을 체크하려면 건우도 꽤 늦게 끝날 것 같았고.

우리에게로 눈을 돌린 성민의 눈빛은 한없이 반짝거렸다.

“그래도 될까요.”

좋아하는 작가와의 식사는 항상 설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괜찮겠죠.”

그러면서도 성민은 내심 건우가 걸렸다. 야구장에서 이글거리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하지만 그 두려움도 팬심만큼은 이기지 못했다.

한 번 사는 인생. 먹고 죽자고.

“저도 마침 소주 한 잔 하고 싶었거든요.”

“그럼 가시죠. 작…… 아니. 우리씨.”

두 손을 내뻗은 성민의 손이 방황했다. 적당히 소주 한 잔을 할 만한 가게를 미리 찾지 못한 것이 성민은 땅을 치고 후회될 지경이었다.

작가를 만날 때는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이 성민 나름의 철칙이었기 때문이었다.

“메뉴는…… 조개찜 어떠세요.”

“좋습니다.”

성민은 무조건 오케이를 날려대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못 드시면 말해주세요. 다른 메뉴로 생각해볼게요.”

시내로 향하던 우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 물었다.

“저 다 잘 먹어서요. 좋습니다.”

“저도 다 잘 먹는데. 다행이네요. 그럼 계속 가실까요.”

“예!”

대답하는 성민의 목소리가 제법 컸다. 성민은 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선영의 모습과 퍽 닮아있었다.

건우를 생각하면서 성민은 우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야말로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었다.

우리는 성민을 끌고 시내에 있는 조개찜 맛집으로 들어섰다. 월요일인데도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가 코트를 벗었다.

우리가 주문한 조개찜과 도시락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와. 진짜 푸짐하네요.”

풍성한 조개찜을 보는 성민이 감탄하듯 말했다.

“그죠. 여기가 진짜 저희 동네 맛집이거든요.”

“건우랑 있었으면 이런 조개찜은 구경도 못했겠네요.”

“좋아하시니까 괜히 뿌듯하네요. 여기 주인도 아닌데.”

손을 닦던 우리가 빙글 웃었다. 큼지막한 키조개부터 통통한 백합까지. 갖가지 조개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솟는 조개찜을 보고만 있어도 우리는 군침이 돌았다.

그러면서도 건우와 같이 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짙게 녹아들었다.

“그럼 잘 먹…….”

“잠시만요!”

우리는 두 손을 내뻗고는 젓가락을 든 성민을 막았다.

“죄송해요. 사진 하나만 찍을게요.”

얼마든지 찍으라는 듯 성민은 젓가락을 테이블에 살포시 내려놨다. 우리는 포토그래퍼처럼 사진을 찍어댔다.

조개의 감촉까지 담아내겠다는 의지로 클로즈업을 해댔다.

그러다가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성민의 눈치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서슴없이 항공샷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우리의 얼굴은 꽤나 진지했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건진 우리가 어색하게 웃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잘 찍힌 사진 몇 장을 골라 건우에게 날렸다.

-차장님. 성민씨하고 집 앞에서 만나서 근처에 조개찜 맛집 왔어요.

건우에게 메시지를 날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끝나면 전화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렇다고 괜히 너무 빨리 끝내지는 마시고요. 파이팅입니다. 차장님.

메시지를 쓰는 우리의 손길이 빨라졌다. 바글바글 끓는 국물조차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했다.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이모티콘조차 우리는 심혈을 다해 골랐다.

미팅 때문인지. 건우에게서 답장이 날아들지 않았다.

“죄송해요. 제가 사진 남기는 습관이 생겨서. 드세요.”

우리는 조개 하나 집지 못한 성민을 보고는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짤막한 말을 끝내고 성민은 큼지막한 가리비를 집었다.

성민은 쫙 벌어진 조개의 속살을 간장에 콕 찍어 먹었다. 담백한 맛이 제법 일품이었다.

“우리씨. 소주도 한 병 시킬까요.”

“가볍게 맥주부터 어떠세요.”

“것도 좋죠.”

“조개 맥주 진짜 최고거든요.”

“역시. 드실 줄 아시네요. 건우는 탄산만 먹어대거든요.”

말을 끝낸 성민이 맥주를 시켰다. 우리도 두 손을 비비고는 고소한 맥주를 기다렸다.

마침내 시원한 맥주가 올라왔을 때. 우리와 성민의 눈이 반짝거렸다.

갈색 맥주병을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럼 따겠습니다.”

성민이 조심스럽게 맥주병을 들었다. 그리고는 우리의 잔을 채워주었다.

맥주잔에는 손톱만큼 적당히 거품만 남고 맥주로 가득 찼다. 단박에 군침이 돌 만큼 완벽한 밸런스였다.

“저도 한 잔 드릴게요.”

“영광스럽네요. 작가…… 아니. 우리씨가 따라주시는 맥주도 받고.”

“그냥 작가라고 부르셔도 돼요.”

“좋아하지 않는다고 건우가 신신당부를 해서.”

“회사만 아니면 괜찮아요. 괜한 소문 도는 건 진짜 싫거든요.”

우리가 성민의 맥주잔을 채워주면서 말했다.

“작가님. 그럼 저희 건배할까요.”

우리의 허락에 냉큼 성민은 작가님을 외쳤다. 우리씨보다 입에 더 착 달라붙었다.

“좋아요.”

“그럼 작가님을 위해 건배.”

“저는 조개찜을 위해 건배할게요.”

우리와 성민의 맥주잔이 경쾌하게 부딪혔다. 우리는 목구멍을 부드럽게 넘어가는 맥주가 참 맛있게만 느껴졌다.

조개를 뜯는 우리와 성민은 먹는 데 있어서만큼은 죽이 척척 맞았다.

우리는 싱싱한 산낙지까지 주문해 바다의 향기에 흠뻑 취했다.

-거기 어딥니까.

산낙지와 격렬한 사투를 벌이던 우리가 핸드폰을 봤다. 건우의 메시지였다.

-여기 그 시내에 있는 ‘뭘 봐 조개’요. 지금 끝나셨으면 더 시킬까요.

-뭘 시켰길래.

-지금 커플 세트요. 2인용이라 더 시켜야 될 것 같아요.

우리는 건우의 답장을 기다렸다. 건우가 도착할 때에 맞춰 조개를 추가할 작정이었다.

고생한 건우가 바로 먹을 수 있게.

-금방 갑니다.

얼마나 걸리는지 묻는 우리의 메시지에 건우는 답이 없었다.

마치 메시지를 확인할 새도 없이 회사에서 달려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건우죠.”

“네. 지금 끝난 것 같아요.”

“칼국수는 나중에 넣어야겠네요.”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차장님 금방 올 것 같아서요.”

우리는 핸드폰을 확인하면서 말했다. 여전히 건우의 답장은 없었다. 우리는 진득하니 건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대행사 직원들과 마무리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고 운전을 시작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맥주 하나 더 시킬까요.”

성민이 맥주병을 흔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탄산도 하나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건우 생각하는 건 작가님밖에 없네요.”

“성민씨도 생각해주시잖아요.”

“아…… 저는 빼야죠. 저랑 경쟁하시면 피곤하실 걸요.”

맥주 한 병을 추가한 성민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왠지 성민씨하고 경쟁하고 싶은데요.”

“제가 거절하겠습니다. 잘못하면 질 것 같아서.”

“그러니까 더 구미 당기는데요.”

제 잔을 채운 우리가 빙긋 웃었다.

“차장님은 어땠어요. 학교 다닐 때.”

“지금하고 비슷했던 거 같습니다. 무표정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성민은 맥주잔을 뱅글뱅글 돌리면서 말했다. 잔에 있던 맥주가 성민의 손길을 따라 출렁거렸다.

“멘탈 관리 하나만큼은 끝내줬거든요. 아마 국가대표였으면 금메달은 바로 땄을 걸요.”

“운동 관두고 많이 힘들어하셨죠.”

“그랬을 거예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날의 일을 상기하듯 성민은 기억을 헤집었다. 양궁을 관두겠다고 선포한 후로 건우는 공부를 하는 데만 골몰했다.

양궁부를 찾는 일도 없었고 부원들을 피해 다녔다.

학교가 끝나면 건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건우를 몰래 쫓던 성민은 아직도 미스터리였다. 멀찍이 있는 동네까지 걸어가 빤히 아파트만 서성대다가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던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리 치부하기에 여자의 모습을 눈곱만큼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강건우. 이 동네는 왜 매일 오는데. 종착지는 있는 거냐.’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대체 뭘 보는 거냐고.’

어스름이 짙게 깔리면 건우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제대로 울지도 못한 건우가 우는 방식이라고 성민은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괜한 말을 꺼내서. 건우는 아직 멀었나요.”

성민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우리가 조용한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왠지 운전하시는 것 같아요.”

“그럼 저희 먼저 다시 건배하는 건.”

“좋죠.”

성민의 말에 우리도 맥주잔을 들었다. 우리와 성민의 잔이 가볍게 부딪히려던 찰나였다.

성민이 손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얼어붙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에 우리의 눈동자도 빠르게 굴러갔다.

“뭘 보시는…….”

성민의 눈길을 따라 우리도 창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맥주잔을 들고 있던 우리도 성민처럼 바짝 굳어버렸다.

건우가 창에 붙어서는 어두운 기운을 잔뜩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우의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제가 환영 보는 건 아니죠. 작가님.”

“네…… 제 눈에도 보여요.”

침도 넘기지 못한 채로 우리와 성민은 건우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건우의 얼굴에 묘하게 사악한 미소가 돌았다.

픽, 흘리는 조소에 얼어붙은 우리와 성민의 몸은 녹을 줄을 몰랐다.

우리와 성민은 꼭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저승사자와 조우한 것처럼 보였다.

묘한 긴장이 널찍한 창을 비집고 새어들었다. 성민과 건우를 보는 우리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돌아갔다.

건우는 강렬한 눈빛으로 성민에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뭘 봐, 조개!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