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76화 (76/102)

제 76화. 키스 타임을 사수한 남자

선영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제자리에 굳어있었다. 야구장에 박제된 조각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건우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선영만큼 적잖이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눈 아래 있는 살집이 바들바들 떨리고 비닐봉지를 들고 있던 손에도 바짝 힘이 들어갔다.

건우는 죽일 듯 전광판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광판 속에 보이는 우리와 성민은 열심히 두 손을 들어 엑스 표시를 해댔다.

강력한 우리와 성민의 부정에 카메라는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차장님.”

건우와 눈이 마주친 우리가 어색하게 손을 들었다.

“자리가 조금 바뀐 것 같은데.”

건우는 가깝게 붙은 우리와 성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서 말했다.

선영까지 가세하면서 우리와 성민의 거리는 본래대로 멀어졌다.

“제가 규칙을 잘 몰라서 성민씨가 설명해줬거든요. 그죠.”

“왜 득점을 못했는지 궁금하다고 하셔서.”

“해설 없이 보니까 잘 모르겠더라고요.”

건우와 선영을 사이에 두고 핑퐁처럼 대화가 오갔다. 야구 하나로 우리와 성민의 거리는 전보다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야식을 시켜먹을 때만큼 쿵짝이 잘 맞았다. 건우가 솟구치는 괜한 질투에 우리와 성민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찍기에는 영 실력이 없는지. 카메라맨은 전광판에 건우와 선영의 모습을 나란히 비췄다.

주변에는 하트가 날리는 CG까지 가득했다. 선영은 난감한 얼굴로 두 손만 흔들어댔다.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것처럼 건우는 커다란 손으로 우리의 얼굴을 감쌌다.

“차장…….”

우리가 건우를 부르기도 전에 건우는 거침없이 우리를 파고들었다. 우리는 놀란 얼굴로 눈만 깜빡였다.

저돌적인 키스에 주변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우리는 건우와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건우의 힘에 꼼짝도 못했다.

맞닿았던 우리와 건우의 입술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뜨거운 건우의 키스를 끝으로 키스 타임은 끝났다.

클리닝 타임이 끝났고 다시 경기가 재개됐다. 하지만 우리의 멘탈은 조금도 제대로 돌아오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갑니까.”

“저…… 화장실이요.”

변명거리를 찾듯 우리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우리는 대강 화장실 쪽을 가리키고는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뺨을 스치는 바람에도 우리의 얼굴을 적신 열기는 조금도 가라앉을 줄 몰랐다.

우리를 보던 건우도 벌떡 일어났다.

“강건우. 너는 어디 가는데.”

“어디 가겠냐.”

“빨리 갔다 와.”

“봐서.”

건우는 성민을 보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건우의 눈동자는 계단을 올라가는 우리의 뒷모습에만 꽂혀있었다.

건우는 금세 우리에게 바짝 붙었다. 그리고는 누가 우리를 치고 가기라도 할까. 경호원처럼 우리를 보호하는데 집중했다.

“차장님. 그러다 차장님이 누구 칠 것 같은데요.”

우리는 두 팔을 벌려 과하게 바운더리를 만든 건우를 보고는 말했다.

그야말로 넘치는 과보호의 현장이었다.

우리의 걱정에도 건우는 야구장 실내 복도로 들어설 때까지도 우리를 보호하는데 열중했다.

화장실로 향하던 우리가 건우를 빤히 쳐다봤다. 우리의 두 뺨은 여전히 새빨갰다.

우리를 적셨던 열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뜨거운 기운을 터는 것처럼 힘껏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완전 망했어요.”

“딱히 망한 것 같지는 않은데.”

“차장님. 잊은 건 아니시죠. 저희 지금 도와주러 온 거.”

우리는 두 손뼉까지 부딪히면서 임무를 상기시켜주었다.

그 손길에도 건우는 무감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근데 차장님 친구하고 부하직원이 있는데 키스는…….”

“아주 적절했습니다.”

건우는 우리의 말허리를 부드럽게 잘랐다.

“어떤 면에서요.”

어디 한 번 말을 해보라는 것처럼 우리가 제 팔짱을 꼈다.

키스 타임은 차장님이 아니고 선영씨하고 성민씨가 사수했어야 했다고요. 차장님!

“자극을 주는 방법이랄까.”

“아니. 무슨 자극을…….”

“우리가 부러워서 옆구리가 시리겠죠. 그럼 누굴 사귀고 싶을 거고.”

“그 상대가 선영씨가 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거기까진 계산에 없었습니다.”

건우는 단박에 제 실수를 인정했다. 제 말을 뒷받침해줄 근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라는 것처럼 건우를 빤히 쳐다봤다. 수상하다는 우리의 눈빛에 건우는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질투 나서 그랬습니다.”

건우의 진심이 톡 뛰쳐나왔다.

“전광판에 한성민하고 고우리가 뜨는 것도 예정에 없던 일이니까.”

다시금 전광판 속에서 다정하던 우리와 성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건우의 얼굴은 상기됐다. 다시 생각조차 하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그건…… 인정할게요.”

“왜 하필 잘못 잡아서.”

“그러니까요. 근데 아무리 잡았어도 맹세컨대 수상한 일은 없었을 거예요.”

우리가 바짝 건우에게 붙었다.

“차장님만 남자거든요. 저한텐.”

우리는 비밀스러운 말이라도 하듯 조용히 말했다. 그 말 한 마디에 건우의 질투는 눈 녹듯 사르르 녹았다.

우리를 바라보는 건우의 사랑스러운 눈길에서는 단 향기가 날 것만 같았다.

“한 번만.”

건우가 두 팔을 벌렸다. 주변을 살피던 우리가 조심스럽게 건우의 품에 달려들었다.

코끝을 적시는 우리의 향기에 건우는 자꾸만 바보처럼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건우는 우리의 머리에 살짝 턱을 대고는 터지려는 웃음을 꾹 눌러 넘겼다.

“여기서 그냥 빠지면 조금 그러겠죠.”

우리는 조용히 얼굴을 들고는 말했다.

“완전 수상할 것 같기는 하네요. 화장실 간다고 하곤 도망가고.”

“방금 키스도 하고.”

곧게 날아든 건우의 말에 우리의 눈이 커졌다. 키스를 하고는 한동안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커플이라니…….

요상한 상상을 자아내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빨리 돌아가야겠어요.”

“왜요. 수상해서 돌아가는 겁니까.”

“네. 그리고 야구도 봐야죠. 그러니까 저희 얼른 가요.”

우리는 채근하듯 말했지만 건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를 놓아줄 수 없다는 것처럼 두 팔에 더 힘껏 힘을 줄 뿐이었다.

널찍하고도 단단한 건우의 품에서 우리는 옴짝달싹 못했다.

“차장님. 손만 조금…….”

“조금만 더.”

“진짜 더 수상해질 것 같아요.”

“아마 관심도 없을 겁니다.”

건우의 말에 우리는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버둥거리던 우리는 다시 조용히 건우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댔다.

“돌아가는 거. 포기한 겁니까.”

“아뇨. 조금만 더 시간 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누구한테.”

“그거야 당연히 저…… 선영씨죠.”

우리는 황급히 말을 바꿨다. 조금 더 건우의 품에 있고 싶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야구 경기가 다 끝나도록 힘껏 포옹만 해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8회 말이 끝나도록 야구장 실내 복도를 거닐던 우리와 건우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리와 건우에게서는 아쉬운 기운이 짙게 배어나왔다. 우리가 돌아온 줄도 모르고 선영은 성민의 말에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아마 출전하는 야구 선수가 백 명이라고 해도 선영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었다.

“우와. 진짜 야구 많이 아시네요. 모르는 것도 없으시구!”

“아닙니다. 모르는 것도 많은데요.”

“그래도 제가 여쭤보는 거에 다 대답해주셨잖아요.”

제 두 손을 맞잡은 선영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금방이라도 선영의 눈동자에서 별빛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꼭 만화처럼.

“운동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하는 것도 좋아하고. 보는 것도 좋아하고.”

“저도 보는 거 좋아하는데. 야구도 좋고 축구도 좋고. 다 좋아해요!”

선영은 바짝 성민에게 다가서서는 말했다. 하지만 온통 쏟아지는 관심에도 성민은 야구 경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커지는 함성에 제 목소리가 묻힐까. 선영의 목소리는 조금씩 커져갔다.

“성민씨도 축구 좋아하세요.”

“예.”

“그럼 저하고 나중에 같이 축구 보실래요.”

갑작스럽게 날아온 돌직구였다.

경기장을 보던 성민은 선영을 봤다. 해맑게 웃는 선영은 성민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성민은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 선영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겠다는 다부진 의지가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짐짓 멀어진 거리에도 선영은 눈 하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곧 봐도 좋구요.”

성민의 반응을 선영은 제멋대로 긍정적이게 해석해버렸다.

어쩌면 자기를 밀어내는 성민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요. 같이 봐요. 축구.”

혹시 또 성민이 단칼에 거절할까. 우리가 목을 내빼고는 말했다.

대답 없는 성민의 모습에 조급해져 팔꿈치로 건우의 옆구리를 찌르기도 했다. 움찔한 건우가 우리를 봤다.

우리는 눈에 잔뜩 힘을 주고는 건우에게 눈짓을 보냈다.

빨리 도와달라는 간절한 눈빛.

“차장님 집에서.”

“우리 집은…….”

“차장님도 바로 좋다고 하시네요.”

빙긋 웃는 우리의 팔꿈치는 더욱 깊숙이 건우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러든지.”

그 몸짓에 건우는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내뱉었다.

“웬일이야. 강건우. 해가 바닥에서 뜨겠다.”

“그래서 볼 거냐.”

“무조건 가야지.”

“무조건까지야.”

기약 없는 축구 약속에 건우는 절망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소중한 주말은 우리와만 단둘이 보내도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더블데이트라니……. 건우는 성민과의 약속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우리 몰래 건우는 성민을 향해 집에 올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눈빛을 쏘아댔지만 성민은 가볍게 그 눈빛을 넘겼다.

건우는 조금씩 우리의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남은 시간만큼은 우리에게 집중하고 말겠다는 굳은 다짐마저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차장님. 부담스러운데요.”

경기장을 보던 우리가 나직하게 말했다.

“나는 좋은데.”

하지만 우리의 말은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건우는 야구보다 덕질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보던 건우가 조용히 빙긋 웃었다.

가히 우리 덕후가 완벽한 덕질을 하는 영광스러운 한 때였다.

***

야구 경기가 끝나고 네 사람은 선영이 예약한 식당으로 향했다. 연남동에 위치한 식당은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있었다.

고즈넉한 기운이 식당을 적셨다. 선영은 빙긋 웃고는 묵직한 식당 문을 열었다.

“제 단골 가겐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선영은 걱정돼 죽겠다는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근데 가게가 아직 조용하네. 저녁 시간인 것 같은데.”

“제가 통째로 빌렸거든요.”

가게 하나를 빌리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선영의 말투는 담담하기만 했다.

“시끄러우면 집중도 잘 못할 것 같아서요.”

선영은 힐끗 성민을 봤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성민의 말에 집중할 것처럼 눈빛까지 반짝거렸다.

정말 어쩌면 속기사처럼 성민의 말을 모조리 받아 적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꽤 부담됐을 텐데…….”

무시무시한 스케일에 우리는 식당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사실 제 친구가 여기 주인이거든요. 그래서 싸게 빌렸어요.”

“좋다.”

“친구 찬스 최고죠. 나중에 대리님도 혹시 필요하면 말해주세요. 제가 잘 말해 놓을게요. 지인 할인 해달라구.”

방긋 웃는 선영의 앞에 셰프가 나타났다. 남색 셔츠에 옅은 갈색의 앞치마를 두른 훈훈한 셰프의 등장에 우리의 눈도 커졌다.

아니. 이렇게 훈남인 친구도 있는데 왜 멀리서 인연을 찾는 거야.

“위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선영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눈 셰프는 두 손을 내뻗어 2층을 가리켰다.

“준비는.”

“다 끝냈지.”

“그럼 주문한대로 부탁할게.”

선영은 맛있게 해달라는 당부의 말까지 남기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셰프의 말처럼 널찍한 테이블은 완벽하게 세팅이 끝나있었다. 고풍스러운 소품과 통유리로 보이는 저녁 풍경도 예쁘게만 보였다.

선영이 얼마나 이번 만남에 힘을 줬는지 한 눈에 봐도 느낄 수 있었다.

곧 테이블에는 따뜻한 요리가 올라왔다. 스테이크부터 달팽이 요리까지. 프랑스 요리가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적당히 올라온 와인도 요리의 풍미를 살렸다.

“차장님은 드세요. 누가 운전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리는 와인 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고대리님이 마셔요.”

“저 괜찮아요.”

“스파클링 와인 좋아하잖습니까.”

“탄산으로 만족할게요.”

우리가 유리컵을 들었다. 투명한 컵 속에 있던 탄산이 표면 위로 올라오다가 톡, 터졌다.

“나도 그럼 탄산으로 하죠.”

“아뇨. 진짜 괜찮아요. 차장님.”

“나만 마시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건우도 식탁에 있던 유리컵을 잡았다.

“닭살 돋겠어.”

와인 잔을 내려놓은 성민은 제 팔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얇은 솜털이 정말 오소소 돋아날 것만 같았다.

우리와 건우에게서 넘치는 사랑의 기운 때문에.

“부럽냐.”

“부럽기는 누가 부럽다고.”

“옆구리 시릴 때가 진짜 누굴 만나야 할 때다. 인마.”

무심히 던진 건우의 말은 성민의 속을 후볐다. 성민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누굴 만나야 한다고 목청이 터지도록 건우에게 외쳐댔었는데……. 성민은 상황이 역전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나 요즘 무진장 바빠. 누구 만날 시간도 없고.”

성민은 건우에게 강력하게 철벽을 쳐댔다.

“시간 남아서 누굴 만나냐. 누굴 만나려고 시간 내는 거지.”

스테이크를 집는 건우를 보던 성민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건우가 진정한 사랑꾼으로 거듭난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래도…….”

“그만큼 바쁘면 가까이서 찾는 것도 방법이고.”

건우의 눈길은 노골적이게 선영을 가리켰다. 성민의 짝은 선영 밖에 없을 거라는 굉장히 단호한 눈빛이었다.

건우답지 않게 곰살궂은 말에 성민은 선영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로 칠링-차갑게 하는 것-된 화이트 와인만 들었다.

호박색 빛깔이 도는 와인이 금세 성민의 잔을 가득 채웠다. 냉수라도 들이키는 것처럼 성민은 순식간에 잔을 비웠다.

성민은 급히 화제를 돌리기 위해 머리를 굴려댔다. 하지만 괜찮은 소재가 생각나질 않았다.

“요새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피곤한 것 같아요. 영양제라도 먹어야 하나.”

조용한 테이블의 적막을 깨고 선영이 말을 꺼냈다.

몸을 보양하는데 관심이 많은 성민을 저격한 소재거리였다.

“글쎄. 영양제는 성민씨가 잘 아실 것 같은데. 그죠. 차장님.”

“예.”

“성민씨가 괜찮은 걸로 추천해주시면 되겠다.”

“그럼 되겠네.”

우리의 말에 건우는 끝없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선영이 쏘아올린 작은 말의 결말은 대단했다.

성민은 잔뜩 들뜬 얼굴로 영양제를 설명하는데 열을 올렸다.

성민과 선영의 거리는 제법 가까워졌다.

“비타민을 드셔야 할 것 같기는 한데. 괜찮은 브랜드가…….”

영양제를 검색하는 성민의 손이 빨라졌다. 괜찮은 브랜드를 추천하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성민은 선영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머리가 맞닿은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선영은 계속 싱글벙글댔다.

선영은 단 눈빛을 날리면서 검색을 하는 성민을 바라봤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하늘로 두둥실 떠갈 것만 같았다.

다정한 선영과 성민의 모습을 보던 우리가 건우의 팔꿈치를 콕 찔렀다.

지금이야말로 중매쟁이들이 빠져야 할 타이밍이었기 때문이었다.

“차장님.”

우리는 눈동자를 가볍게 굴리면서 떠나자는 눈빛을 날렸다.

그 눈빛을 제대로 받았다는 것처럼 건우는 집었던 달팽이 요리를 조용히 내려놨다. 이제 정말 떠나야 할 때였다.

“제가 속이 쓰린 것 같은데요!”

“야구장에서도 좋지 않더니.”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쉬면 금방 괜찮아질 것 같아서요.”

“그럼 가야죠.”

우리는 건우는 온 힘을 다해 자리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연기를 펼쳤다.

남녀조연상을 거머쥘 만큼 영혼을 태우는 인생 연기였다.

하지만 성민은 영양제를 찾는데 열중하느라 우리와 건우가 일어섰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성민의 반응에 우리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여보세요. 저희 갈 건데요. 집중을 조금…….

“아아! 속이야.”

우리는 꿈쩍없는 성민을 겨냥해 크게 말했다. 그제야 성민은 우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왜 우리와 건우가 일어섰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서.

“우리 간다.”

“왜 가는데.”

성민은 자기만 두고 가지 말라는 눈빛을 쏟아냈다.

“제가 속이…….”

“각자 놀 때가 된 것 같아서.”

속 타령을 하려던 우리를 막고는 건우가 담담히 말했다.

그 짤막한 말에서는 짙은 진심이 배어나왔다.

“그럼 가죠. 고우리씨.”

“아…… 네.”

“잘 놀다 가라.”

“담에 또 뵐게요.”

우리와 건우는 만담이라도 하듯 말을 주고받다가 대화를 끝냈다. 성민이 비집고 들어올 새도 없었다.

우리는 냉큼 핸드백을 들고 건우와 식당을 나섰다.

중매쟁이들의 기가 막힌 탈출 현장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