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
우리도 빤히 건우를 쳐다봤다. 그 흔한 건우의 지갑조차 만진 적이 없는데 괜히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건우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우리의 눈길도 조금씩 아래로 떨어졌다.
코트 사이로 전해지는 건우의 손길에 우리는 뜨뜻한 침만 넘겼다.
“만져지는 거 없습니까.”
건우의 저돌적인 말에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대체 뭐가 만져져야 한다는 건데요.
“저 차장님 그러니까…….”
“분명 만졌을 텐데.”
건우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그 말에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제 손가락을 오므렸다.
혹시 무슨 실수라도 했을까.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 정말 아무 것도 못 만졌어요. 결백합니다. 차장님.”
“결백까지야.”
“뭘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요.”
결백을 주장하는 우리의 말에도 우리는 여전히 건우의 손아귀에서 옴짝달싹 못했다.
“다시 한 번 만져 봐요.”
“어디를…….”
“내 주머니.”
건우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손가락을 펴지 못한 채로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대체 밖에서 뭘 만지라는 건데요. 차장님.
흔들리는 우리의 눈빛과는 달리 건우는 곧은 눈길로 우리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주머니를 만져보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야말로 어쩔 줄 몰랐다. 괜스레 민망해져 지나가는 등산객이 있을까. 재빨리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곁을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용기를 내듯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차장님.”
“……맘껏.”
우리의 말을 건우는 부드럽게 받아냈다. 우리는 접었던 손을 펼치고는 주머니를 향해 깊게 손을 내뻗었다.
“딱딱한 거 없습니까.”
노골적인 말에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딱딱…… 설마요. 시기상조인데.”
“시기상조는 아닐 것 같아서.”
“아뇨. 아직은 그럴 때가…….”
주머니를 느릿하게 헤집던 우리의 손이 우뚝 멈췄다. 딱딱한 것이 손끝을 스쳤기 때문이었다.
유난히도 매끄러운 겉면의 감촉에 우리가 화들짝 놀라서는 건우를 봤다.
“꺼내 봐요.”
건우의 나직한 목소리가 우리에게 녹아들었다. 우리는 조심히 딱딱한 것을 집었다. 건우의 코트 주머니에 있던 딱딱한 것의 정체는 조그마한 상자였다.
손바닥을 가득 채우는 에메랄드 빛깔 상자에서 우리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건우가 상자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보자마자 눈치 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상자에 박힌 브랜드명도 그랬지만 상자의 크기도 딱 하나 밖에 없었다.
반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커플링이었다.
“차장님. 저 열어봐도 되는 건가요.”
우리는 상자를 소중하게 들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얼마든지.”
“그럼 열게요. 괜히 두근거리네요.”
“잘 맞았으면 좋겠는데.”
건우의 말에 우리는 빙긋 미소를 머금고는 상자를 열었다. 조그마한 상자 속에는 로즈 골드반지가 나란히 꽂혀있었다.
매끄러운 반지 중앙에는 T자 형태의 라인이 들어가 있었다.
보석하나 없는 단조로운 건우의 반지와는 달리 우리의 반지는 가로등 빛에 반짝 빛났다.
반지 중앙부에 들어간 라인에 촘촘하게 박힌 다이아몬드가 반사돼 눈부시게 빛났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차마 반지를 빼보지도 못한 채로 얼떨떨한 얼굴로 눈만 깜빡거렸다. 우리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쿵쾅거렸다.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네.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는데.”
“정말 예뻐요.”
우리의 말 한 마디에 건우의 얼굴에 다정스러운 미소가 녹아들었다.
예쁘다는 말에 반지를 고르느라 몇 군데의 브랜드를 끝없이 돌았던 순간이 뿌듯하게만 느껴졌다.
우리의 손에 예쁘게 들어갈 반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건우는 마냥 즐거웠었다.
우리의 미소를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예쁜 반지를 찾아 헤맬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반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커플 아이템을 검색했을 때. 커플링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을 때처럼.
“반지는…….”
“제가 낄게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건우의 말을 재빨리 낚아챘다. 잘못 반지를 끼다가 손이라도 스치면 난데없이 산을 눈물바다로 만들지도 몰랐다.
우리가 상자에 있던 반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은근히 묘하기는 하네요.”
우리는 반지를 든 채로 말했다. 제가 직접 반지를 끼워야만 하는 상황이 아쉽게도 느껴졌다.
요상한 저주만 아니었다면 차장님 손에도 직접 끼워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럼 감사해요. 차장님.”
“나중에는 잘 강구해보겠습니다.”
“뭘요.”
“내가 직접 끼워줄 방법.”
“저도 잘 생각해볼게요. 차장님 손에 저도 직접 끼워드리고…….”
다정한 대화로 우리와 건우의 주변에 온기가 피어나려던 때였다.
반지를 끼우던 우리가 난감한 미소를 흘렸다.
약지에 반지가 들어가다가 덜컥 걸렸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몸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반지를 욱여넣으려고 온 힘을 썼다.
하지만 반지는 쑥 들어갈 기세가 없었다. 우리의 약지만 빨개져갔다.
하지만 우리는 건우가 민망하기라도 할까. 구태여 내색하지 않고 빙긋 어색한 미소만 날리면서 있는 힘을 주었다.
그야말로 소용없는 발악이었다.
“사이즈가 작은 것 같네.”
“아뇨. 들어가요. 반지는 빡빡하게 껴야죠. 빠지지 않게.”
“그만해요. 손만 빨개지네.”
“정말 괜찮…… 지 않은 것 같아요.”
얼굴에 시퍼런 핏대가 설 만큼 힘을 줬지만 결국 반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반지가 망가질까 걱정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황망한 얼굴로 제 손바닥에 있는 반지를 바라봤다.
“진짜 거의 들어갈 뻔했는데. 제가 손마디가 생각보다 굵어서요.”
“내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아뇨. 차장님이 무슨 실수를 해요. 당연히 아무도 모를 걸요.”
우리는 한 손에 반지를 소중하게 쥔 채로 다른 한 손을 쫙 펼쳤다. 건우와 손을 잡은 거라곤 스카프에 의지한 채였다.
손을 제대로 잡아봤어야 사이즈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우리는 건우의 손을 온전히 잡을 수 없는 제 손이 못내 미웠다.
“제가 딱히 사이즈 말한 적도 없잖아요.”
“그래도 한 번에 맞추고 싶었는데. 아쉽네.”
“저도 차장님 반지 사이즈도 모르는데요. 하나씩 맞춰 가는 걸로 해요.”
“고맙습니다.”
낮은 건우의 목소리가 너풀거렸다.
“제가 더 감사드리죠. 반지도 주시고. 근데 설마 사이즈 교환 못 하는 건 아니겠죠.”
“혹시 몰라서 이니셜은 못 새겼습니다.”
“그럼 사이즈 바꾸는 김에 이니셜도 새겨야겠어요. 잃어버리면 큰일이니까.”
“그럽시다.”
“그럼 다시 제자리에 둘게요.”
건우의 손에 있는 상자를 보던 우리가 다시금 반지를 바라봤다.
눈부시게 찬란한 야경보다 어둠을 뚫은 별보다 반지가 더 밝은 빛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태양처럼 제 몸을 한껏 태워 빛을 내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우리는 어느 샌가 거북이처럼 목을 빼고 반지를 보고 있었다. 자꾸만 봐도 미소가 지어질 것만 같았다.
반지를 보는 우리의 눈에서는 달달한 꿀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 유명한 족쇄가 정말, 눈부시게 맘에 들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바로 바꿉시다.”
“근데요. 차장님.”
“예.”
조용히 반지를 상자에 둔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회사에서는 비밀. 아시죠.”
“나만 끼는 것도 반칙입니까.”
“그럼요. 차장님이 끼면 소문이 장난 아닐 걸요. 다 여친 찾겠다고 난리 날지도 몰라요.”
“잘 찾아 보라죠.”
우리는 반지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로 뜨악했다. 무슨 말을 해도 반지를 하고 다니겠다는 건우의 다부진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건우를 말릴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을 것처럼 보였다. 건우가 허리를 구부리고는 우리에게 눈을 맞췄다.
“……내 여자친구.”
건우는 우리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당황한 모습조차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그게 싫으면 고우리씨가 하고 다녀도 되고.”
“왠지 되게 피곤할 것 같은데요.”
우리는 반지에 관심을 보일 직원들이 잔뜩 생각났다. 황주임은 상대를 캐묻기 위해 악착같이 달라붙을 것이었다.
선영은 따봉을 날리면서 흐뭇한 미소만 흘릴지도 몰랐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냐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장님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반지에서 손을 뗐다. 건우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닫고는 코트에 넣었다. 건우의 손길을 따라서 우리의 눈길도 움직였다.
“할 말이라도.”
뚫어져라 제 코트를 보는 우리의 눈길에 건우가 입을 뗐다.
“아뇨. 없어요. 그냥 또 보고 싶어서.”
“꺼낼까요.”
“괜찮아요. 괜히 가지고 있으면 밤새 꺼내 볼 것 같아서요.”
“사실 나도 밤새 꺼내봤습니다.”
건우는 은밀한 말이라도 하듯 조용히 말을 흘렸다.
“고우리만큼, 나도 좋아서.”
건우의 얼굴에 매혹적이게 번지는 미소에 우리는 녹아들어갈 것만 같았다. 아니. 녹아버렸다.
그래서였을 것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빙글 미소를 짓고는 두 팔을 가득 벌려 건우의 품에 달려든 건.
건우는 우리가 추울까. 코트를 바짝 당겨 우리를 감쌌다.
건우의 품에 쏙 들어간 우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살포시 발꿈치를 들었다.
쪽, 경쾌한 소리와 함께 우리와 건우의 입술이 맞닿았다가 느릿하게 떨어졌다.
“반지 덕을 조금 봐야겠어요.”
“무슨 덕을.”
“누가 그러더라고요. 반지요. 회사 뱃지 같은 거라고.”
“소속 증명입니까.”
건우의 말이 정확하게 맞았다는 것처럼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실한 증명이요.”
“그럼 잘 끼고 다녀야겠네.”
우리와 건우는 바투 붙은 통에 빈틈조차 찾을 수 없었다.
“누구 건지 자랑하려면.”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깊숙이 녹아들었다.
그 말에 우리는 괜스레 뿌듯해져 짙은 미소만 흘렸다.
“꼭 잘 가지고 다녀주세요.”
“고우리씨는.”
“저도 회사 말고는 꼭 끼고 다닐게요. 잘 증명하면서.”
우리가 걱정 말라는 듯 다부지게 말했다. 야경에 비할 수 없이 반짝이는 우리의 눈동자에 건우의 미소가 짙어졌다.
함께하는 것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건우는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행복해하는 우리의 미소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행운을 얻은 것만 같았다.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미소를 온종일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조금도 바스러지지 않게.
지금처럼 계속 우리가 반짝거릴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어야겠네.”
“뭘요.”
“주말하고 퇴근 때만.”
“저도 기다려질 것 같아요. 정말로.”
우리의 목소리가 따뜻하게 흘렀다.
“참. 근데 제가 뭘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아! 사진 보여드릴게요.”
우리는 제 주머니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건우의 품에 갇혀 제대로 손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우리는 제법 비밀스러운 미소를 날리면서 몸을 돌렸다.
너른 건우의 품 대신 시원스럽게 펼쳐진 야경이 우리의 눈에 들어왔다.
슬쩍 야경을 살피던 우리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건우의 사진이 담긴 핸드폰이 손에 잡혔다.
우리는 열심히 갤러리를 살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 잘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의 대부분은 초점이 맞지 않거나 흔들린 것이 많았다.
생각지도 못하게 우리는 사진 하나 제대로 건지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는 미간을 좁히고 있는지도 모르고 사진 넘기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건우의 사진을 건지지 못했다는 현실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오늘 볼 수는 있습니까.”
건우는 우리의 어깨 위로 고개를 내밀고는 말했다.
“아…… 망했어요. 차장님.”
“얼마나…….”
우리를 위로하려던 건우는 사진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지나가듯 찍는 우리 나름의 기법 때문인지 사진이 꼭 심령사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제법 느낌 있네.”
건우는 우리를 위로하듯 사진을 열정적으로 칭찬했다.
“예술 작품 같기도 합니다.”
“설마요.”
“정말로. 빛이 번지는 효과도 좋고.”
하지만 건우의 칭찬은 급속도로 바닥을 보였다.
건우는 영혼까지 끌어 모아 칭찬할 거리를 찾았지만 마지막 한계에 부딪혔다.
“초현실주의 같네.”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건우의 말은 비장해보이기까지 했다. 초현실주의를 대체할 단어는 그 무엇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난데없는 예술적인 용어에 하마터면 우리는 웃을 뻔했다.
그냥 잘못 나온 사진을 포장하는 건우의 스킬이 놀랍게만 느껴졌다.
“확실히 프로이트 영향을 받아서…….”
담담한 건우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진지한 기운만 녹아있었다. 하지만 멍한 건우의 눈동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저 우리가 민망하지 않도록 사진을 칭찬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말은 제 사진에는 리얼리즘이 하나도 없다는 소리죠. 차장님.”
“아무래도.”
힐끗 건우를 돌아본 우리는 솟구치는 웃음을 꾹 넘겼다.
“초현실주의니까.”
어쩌면 건우의 말대로 초현실주의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우리는 다시금 사진을 봤다. 하지만 덕지덕지 건우가 붙여준 포장에도 사진은 그냥 건우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실수작일 뿐이었다.
“차장님. 저는 그래도 리얼리즘이 좋은 것 같아요.”
가볍게 웃음을 내뱉은 우리가 갤러리를 닫고는 말했다.
“확실히 얼굴이 잘 나와야 할 것 같아요. 내일 홍보팀 가서 달라고 할까요.”
“내가 도전하죠.”
“차장님이 하면 조금 그러지 않을까요.”
“포커페이스 하나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초반에는 차장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파악도 못했다니까요.”
우리는 웃음기 하나도 없이 무감했던 건우의 표정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주차장에서 건우를 봤을 때가 생생하면서도 또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풋풋한 기억에 빠진 우리를 보던 건우는 코트를 더욱 바투 여몄다.
“나는 고우리씨 얼굴만 봐도 잘 알겠던데.”
“저도 나름 포커페이슨데요.”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건우를 돌아봤다.
“근데 고우리씨 표정은 다 읽히더라고.”
“…….”
“좋은지, 싫은지, 슬픈지, 기쁜지.”
건우가 바람 빠지듯 픽, 웃었다. 살랑거리면서 귓가를 간질이는 봄바람처럼.
건우의 따뜻한 목소리가 우리의 귓가에 흐무러졌다.
“참, 신기하게.”
엘리베이터에서 우리가 제 책을 발견한 순간부터였을지도 몰랐다.
눈앞에 도는 우리의 표정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던 건.
그 누구의 감정도 관심 없던 건우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진 건.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몰랐다. 민우가 억지로 만든 인연 말고 진짜, 운명.
잔잔히 흘러가는 바람 속에서 건우는 그리 믿고 싶었다.
속에서 묘하게 요동치는 뒤숭숭한 기운을 떨어뜨리면서 건우는 우리를 더욱 꽉 감쌌다.
“근데 사실 비밀인데요. 차장님.”
“비밀도 있습니까.”
“지금 밝히면 비밀이 아니겠지만. 사실 저도 차장님 표정을 조금 읽을 수 있기는 하는 것 같아요.”
“진담입니까.”
“제가 눈치 하나는 빠르거든요.”
우리가 건우를 향해 의기양양한 미소를 날렸다. 우리는 건우의 포커페이스가 제 앞에서는 완전히 고장 난 것 같다는 말은 비밀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럼 사진은 차장님만 믿을게요.”
“예.”
“정말 자연스럽게 아시죠.”
우리는 재차 당부하듯 말했다.
“걱정 마요.”
“…….”
“나도 꼭 사수해야겠으니까.”
건우의 목소리에는 묘한 의지까지 피어올랐다.
커플 아이템을 장착한 사진만큼은 꼭 가지고 말겠다는 전투력이었다.
“근데 설마 센스 없이 차장님 단독컷만 주는 건 아니겠죠.”
우리는 괜히 조마조마했다.
“것도 아니면 제 얼굴만 잘라서 준다든가.”
자기도 모르게 던진 가정이 꽤나 그럴 듯해 보이기도 했다.
온갖 생각에 가득 찬 우리의 표정은 꽤나 심각해보였다.
“완벽하게 가져오죠.”
하지만 건우는 조금의 걱정조차 말라는 것처럼 확실히 못을 박았다.
건우와 우리의 얼굴이 나란히 나온 사진을 꼭 들고 오겠다고.
“보정됐으면 더 좋고요.”
“것도 명심하죠.”
그제야 좁혀졌던 우리의 미간이 풀렸다. 우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앞을 봤다. 아득하게 보였던 야경이 우리의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
제각각 갖가지 모양으로 어둠을 적시는 빛은 밤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별밭처럼.
정말 눈이 부시게 예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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