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화. 눈이 부시게 찬란한
우리의 한숨이 노트북 화면에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우팀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증거자료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블랙박스만 제대로 찍혔어도 우팀장이 꼼짝도 하지 못했을 텐데…….
우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증거가 없다면 증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뿐만 아니라 수진을 최초로 발견한 황주임도 꽤 도움이 될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영업팀 사원의 도움까지 받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우팀장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저도요. 가만히 못 있을 것 같아요. 역시 막장 상사에는 막장 직원이 나서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노트북 속의 영상을 보던 우리의 눈빛이 단단해졌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도 세상은 변했다는 것만은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누구 하나 믿지 못한 채로 모두와 멀어졌던 시간을 수진에게조차 겪게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럼 내가 나서야겠네.”
“차장님이 왜요.”
“나만큼 막장인 상사도 없습니다.”
건우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말했다.
“설마요. 차장님은 거의 저희 본부 빛과 소금일 걸요.”
“우팀장을 발끈하게 만들 최적의 인물이기도 하고.”
건우가 우리가 잡은 마우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길에 우리는 조용히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건우는 블랙박스에 증거가 없다는 것에는 괘념치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실망해도 없는 증거가 갑자기 뛰쳐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영상을 껐다. 그리고는 미련도 없이 SD카드를 빼냈다. 없는 증거에 매달리기 보다는 새 증거를 확보하는데 집중할 요량이었다.
욱하는 우팀장의 성질만 잘 이용하면 없는 증거를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우선은 배를 좀 채웁시다.”
건우는 SD카드를 제 가방에 조심스럽게 넣고는 말했다.
“입맛도 떨어지는 것 같아요.”
“다시 생각하면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생각나는 것도 없고. 그만 허무해해야하는데 자꾸 허망해서요.”
우리는 아직도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다시 SD카드를 돌리고 영상을 보면 무슨 증거라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두 제 헛된 소망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다시 딱 한 번만 볼까요.”
우리가 건우의 팔목을 붙잡고는 말했다.
“정말 한 번입니다.”
“네. 없으면 바로 밥 먹으러 갈게요.”
애절한 우리의 요청에 이기지 못한 건우는 다시 영상을 돌렸다. 하지만 역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우리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영상을 돌리는데 집착하느라 다른 증인을 놓칠지도 몰랐다.
“그만 일어나죠.”
“진짜로 딱 거기만 빼고 찍히고. 다시 봐도 열 받을 것 같아요.”
건우를 따라서 집을 나서는 순간에도 우리는 거실을 힐끗거렸다.
블랙박스조차 간단히 파악해버린 약빠른 우팀장이 우리는 마냥 괘씸했다.
“그래서 정말 먹고 싶은 건 없습니까.”
“정말 없는데…… 치킨은 괜찮을 것 같아요.”
“치킨 괜찮나.”
“그럼요. 치킨은 항상 옳은데.”
우리는 근처에 있던 치킨 가게로 들어갔다. 고소한 치킨 냄새가 가게에 진동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떡 넘기고는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잔뜩 열이 받는 와중에서도 치킨 냄새에 바로 반응하는 제가 웃기게만 보이기도 했다.
열은 받는데 식욕은 돌다니……. 정말 끝내주게 본능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따뜻한 열기를 품은 매콤한 치킨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우리는 빠지지 않고 냉큼 맥주까지 주문했다.
완벽한 조합을 놓칠 수 없다는 것처럼.
“제가 입맛은 없는데…….”
“그래도 천천히 먹어요.”
“네. 그럼 차장님 생각해서 들게요.”
“다리로.”
건우는 휴지에 다리를 먹기 좋게 싸서는 우리에게 내밀었다.
맛있는 부위는 죄다 우리에게 주고 싶은 덕후의 마음이었다.
“차장님은요.”
“가슴이 취향입니다.”
툭, 뛰쳐나온 특수 부위에 대한 말에 닭다리를 들고 있던 우리는 입을 벌린 채 건우를 봤다.
닭다리가 채 우리의 입에 들어가지 못하고 맴돌았다.
하지만 우리는 머릿속을 몰아치던 온갖 상상이 웃기게만 느껴졌다. 건우가 닭 가슴살을 포크로 찍었기 때문이었다.
“차장님. 되게 퍽퍽할 것 같은데요.”
“그 식감을 좋아해서.”
“그래도 다리도 하나 드셔보세요. 완전 신세계일 걸요. 촉촉해서 맛있어요.”
“난 괜찮으니까 많이 먹어요.”
건우는 살코기로 가득 찬 가슴살을 들고는 말했다. 건우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고맙다는 미소를 날리면서 닭다리를 먹었다. 바삭한 소리와 고소한 맛이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치킨의 힘은 대단했다. 아무 것도 없었던 블랙박스 영상에 시무룩해졌던 우리에게 금세 힘을 밀어주었다.
우리는 한 손으로 묵직한 생맥주를 들고는 건배를 외쳤다. 우리와 건우의 잔이 부딪혔다.
우리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맥주가 갑갑했던 우리의 속을 뻥 뚫어주었다.
“조금 기분 풀립니까.”
눈 깜짝할 새에 치킨을 반이나 해치운 우리는 보고는 건우가 물었다.
“네. 역시 치느님이예요.”
“다시 괜찮아졌다니까 다행이네.”
“아까 되게 절망한 표정이었죠.”
“예. 지구라도 멸망한 줄 알았습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해도 요리조리 빠져나갈 것 같아서요. 예전에는 징계위원회에 내보내지도 못했기도 하고.”
우리는 제가 겪었던 일을 슬며시 풀고는 맥주를 마셨다. 건우의 자리를 맡고 있던 전임자는 우리에게 징계위원회까지 갈 일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었다.
모두 시끌시끌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었다. 도리어 우리는 잘못 일을 키웠다가는 감봉을 하겠다는 겁박까지 들어야만 했다.
“그래도 달라지겠죠.”
하지만 지금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예전하고 많이 달라졌으니까.”
적어도 자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건우가 있으니까.
“많이 달라졌죠.”
“차장님도 계시고요.”
“적당한 파워를 가진 조력자도 있고.”
“설마. 그 조력자…… 선영씨 말하는 건 아니시죠.”
“맞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만들어야죠. 빠져나가지 못하게.”
건우의 말에는 조금의 농담기도 없었다. 건우의 계획은 간단했다.
건우는 수진에게 사내 고충처리부서에 우팀장 사건을 접수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선영의 입김을 이용해 사건을 강하게 사건을 키워 우팀장을 자극시킬 계책이었다.
욱하는 우팀장의 성격만 잘 이용하면 괜찮은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건우의 장대한 계획에 우리는 닭다리를 든 채로 고뇌에 빠졌다.
자칫 일을 키우는 효과만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 말고는 일관적으로 증언 하는 방법도 있고.”
“근데 제대로 된 목격자가 없으니까…….”
우리는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보면 우팀장이 수진을 건드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흘러내린 수진의 원피스와 주차장에서 들리던 소리만이 전부였다.
우리는 복작거리는 머릿속을 식히려는 것처럼 거칠게 닭다리를 뜯었다.
제법 매콤한 기운이 우리를 적셨다. 일관된 수진의 말만큼 한 방이 될 수 있는 증거도 중요했다.
우리가 열심히 씹고 있던 살코기를 꿀꺽 넘겼다. 그리고는 입가심을 하듯 맥주도 완벽하게 비웠다.
“수진씨한테는 제가 잘 말해볼게요.”
“부탁하죠.”
“차장님은 그 영업팀 사원 부탁드릴게요. 저희 팀만 증인으로 나가면 조금 이상해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설득력 있네.”
“그럼요. 저 고대립니다. 차장님.”
우리는 어깨를 쫙 펴고는 말했다.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우리가 치킨 무를 아삭거리게 씹으면서 건우에게 다가섰다.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조용한 목소리에 건우도 우리의 쪽으로 바투 다가갔다.
“근데 쉽지는 않을 거예요.”
“이유는.”
“황주임하고 사귄다는 걸 밝혀야 할 수도 있잖아요. 황주임하고 그 사원하고 마주칠 일이 하나도 없을 걸요.”
“것도 참고해서 설득해보죠.”
건우는 걱정하지 말라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차장님.”
“나도. 잘 부탁해요. 고우리.”
존댓말과 반말이 묘하게 뒤섞인 말을 날리면서 건우는 빙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딱 한 잔만 더 하고 일어날까요.”
“아니. 그만 마시고 갈 곳이 있어서.”
“어딘데요.”
“보면 좋아할 겁니다.”
건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우리는 테이블에 남은 치킨과 건우를 번갈아 쳐다봤다.
우리는 남은 치킨을 두고 그대로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차장님. 저 날개 딱 하나만 더 뜯을게요.”
자리에 앉지도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로 우리는 날개 하나를 들었다.
“날개 말고.”
“왜요.”
“도망갈까 봐.”
“차장님도 참. 그거 다 미신이에요. 날개가 너무 맛있으니까 못 먹게 하려고.”
“그래도…… 다른 곳이 좋겠습니다.”
건우는 가장 진지한 얼굴로 날개를 뺏고는 남아있던 가슴살을 내밀었다. 살 하나만큼은 통통하게 올라온 부위였다.
“설마. 그거 버리실 생각은 아니죠.”
“잘 놔두고 갈 겁니다.”
건우가 조심스럽게 접시에 날개를 내려놨다. 우리는 가슴살을 뜯으면서도 날개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마침내 가슴살 하나를 다 해치웠을 때. 우리는 계산을 하는 건우의 눈치를 살피면서 날개를 반쯤 먹었다가 덜렁 내려놨다.
“방금…….”
“저희 가요. 차장님.”
던지듯 날개를 접시에 내려놓은 우리가 먼저 씩씩하게 가게를 나섰다.
범죄현장에서는 역시나 빨리 달아나는 게 제일이었다.
“근데 저희 진짜 어디 가는 거예요.”
“가보면 압니다.”
“아주 멀리 가는 건 아니죠. 갈만한 곳이 없는데.”
우리는 주변을 살피면서 말했다. 집만 즐비하게 들어선 동네였다. 어쩌면 조금 더 시내로 걸어 나가서 펀치 기계라도 날릴 생각일지도 몰랐다.
건우는 별다른 대답 없이 빙긋 미소만 머금었다. 제법 따뜻해진 바람이 우리의 두 뺨을 스치며 흘러갔다.
***
우리는 건우의 미소에 담긴 의미를 늦게 눈치 챘다.
간단히 동네 산책을 할 거라는 제 생각과는 달리 우리는 어느 샌가 산을 타고 있었다. 것도 제법 높이가 있는 산.
우리는 걸치고 있던 외투까지 후텁지근하게만 느껴졌다.
“차장님. 얼마나 더 가야돼요.”
우리의 원망스러운 목소리가 번졌다. 우리는 제 외투를 벗으려고 발버둥을 쳐댔다.
“벗지 마요.”
“근데 더워서요. 땀도 나는 것 같고.”
“그러다 감기 걸립니다.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참아요.”
건우는 흐트러진 우리의 외투를 다시금 말끔해 정리해주었다.
산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이 꽤 찼기 때문이었다. 자칫 감기라도 걸릴지도 몰랐다.
“그래도 더운데…….”
우리는 볼멘소리를 터뜨렸지만 건우의 손길을 뿌리지지는 못했다.
“걷기도 힘들고. 그냥 내려갈까요. 차장님.”
우리가 은근슬쩍 건우를 회유하려고 눈썹까지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건우는 산을 내려가는 데는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올라가죠.”
“운동은 내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오늘은 고생해서 다리도 아프고요.”
우리는 짙은 동정을 호소하는 눈빛을 날려댔다. 우리의 옷깃을 잘 여며주던 건우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의 말에 건우는 어느 정도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제 말을 들어달라는 것처럼 쐐기를 박듯 눈에 진득하니 힘을 주었다.
“그럼 밀어주겠습니다.”
“아니. 또 뭘 밀어주신다고.”
“가기 수월할 겁니다. 그게 싫으면 업혀도 되고.”
“그건 더 괜찮아요.”
건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가 바로 외쳤다. 건우는 우리가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우리의 허리를 감싸고는 바짝 힘을 주었다.
건우의 힘에 떠밀리듯 우리는 걸어 나갔다. 몸을 지탱해주는 건우의 힘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다.
건우는 우리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하느라 땀까지 흘려댔다. 우리가 힐끗 고개를 돌려 건우를 봤다.
어쩌면 건우는 산으로 올라온 것을 죽도록 후회할지도 몰랐다.
건우의 힘에 기대 편히 산을 올라온 우리의 눈이 커졌다.
“와아…….”
산을 내려다보던 우리는 절로 감탄을 내뱉었다. 노란 가로등 빛이 환하게 밝혀진 산 속은 예쁜 도시의 야경을 품고 있었다.
차가 다니는 도로부터 군데군데 빛을 쏟아내는 아파트까지.
찬란한 빛깔의 빛들이 우리의 눈동자에서 반짝거렸다.
“맘에 드는지 모르겠네.”
“우와. 진짜 좋아요. 차장님. 이런 데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나도 여기저기 다니다가 찾았습니다.”
“다들 모르기는 하나 봐요. 되게 조용한 거 보면.”
우리는 주변을 살피면서 말했다. 간간히 산책을 즐기는 몇몇 사람들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산은 조용했다.
소란스러운 도시의 소리는 흐릿하게만 들려왔다.
잔잔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와 옅은 풀벌레 소리만 간간히 들려올 뿐이었다.
“근데 날 더 따뜻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춥습니까.”
“조금요. 땀이 식나 봐요.”
건우가 제 외투를 벗고는 우리에게 덮어주었다. 등을 포근하게 적시는 외투의 온기가 탐났지만 우리는 외투를 벗으려고 했다.
건우의 윗옷은 두껍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건우가 잘못 감기라도 걸릴지도 몰랐다.
“견딜 만해요. 그러니까 그냥 입으셔도 될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그러다가 차장님 감기 걸리면 큰일이잖아요. 주말에 야구도 달려야 하는데.”
“야구는 넘어가고 싶네.”
“차장님 빠지면 티켓 없이 비행기 타는 거라니까요.”
건우는 우리의 코트를 넘겨주면서 말했다.
“가나마나라는 소리죠.”
똑 소리가 나게 우리는 제가 뱉은 비유를 설명했다.
우리의 말에 굴복하듯 코트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우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고우리 없으면 비행기 없이 출장 가는 거하고 같으니까.”
“동감해요.”
우리의 얼굴에 씩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건우의 비유가 쏙, 맘에 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건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두 팔을 벌렸다.
단추를 채우지 않은 건우의 코트가 활짝 열렸다. 너른 건우의 품이 우리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따뜻하게 해줘야지.”
“그건 받아들일게요.”
“고맙습니다.”
“내가 고맙죠.”
우리가 두 팔을 벌리고는 성큼 건우에게 다가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건우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조심스럽게 건우의 가슴팍에 고개를 기댔다. 조용히 퍼지는 건우의 심장 고동과 온기가 우리의 뺨을 느릿하게 적셨다.
건우는 우리를 품에서 절대 내보내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우리를 두 팔 가득 감쌌다.
멀리서보면 우리는 건우의 품에 갇혀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바투 붙은 건우와 우리의 온몸을 타고 짙은 열기가 조용히 피어났다.
뜨뜻한 침이 우리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우리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거의 매일 만나고 부딪히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건우만 보면 그저, 좋았다.
건우를 볼 때마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고장이라도 난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매일 뛸 수가 있나.
어쩌면, 건우이기 때문에.
당신이라서. 그래서 그럴까…….
“주머니에 따뜻하게 손 넣어요.”
“아뇨. 괜찮아요.”
“내가 괜찮지 않아서.”
건우는 우리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고는 제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우리의 손은 커다란 건우의 주머니로 쏙 들어갔다.
건우는 우리의 머리에 살짝 턱을 대고는 꽉 우리를 품었다. 코끝을 적시는 우리의 향기가 달달하게만 느껴졌다.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
“차장님이 더 수고하셨죠. 포즈가 장난 아니시던데요. 차장님 아니었으면 아무 것도 못했을 거예요.”
“나도 고우리씨 없이는 아무 것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기엔 너무 카메라 체질이시던데요.”
건우의 품에서 우리가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카메라 질색입니다.”
건우는 다시는 촬영하기 싫다는 듯 딱 선을 그었다. 우리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면 죽어도 거절했을 건우였다.
하지만 우리와 찍는 사진이라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어색하게 손 하트를 짓는 사진조차도.
“사진은 잘 나왔겠죠.”
“그러길 바라야죠.”
“차장님은 잘 나오시더라고요. 제가 단독컷 몰래 봤거든요. 사실 온갖 핑계대면서 몇 장 건지기도 했는데 보여드릴까요.”
우리가 건우의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려던 찰나였다. 건우가 코트 바깥쪽에서 우리의 손을 잡았다.
건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선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모습에 꼭 현장에서 붙잡힌 절도범처럼 보였다.
차장님, 저 아무 것도 가져간 게 없는데요.
결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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