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70화 (70/102)

제 70화. 탐나는, 네 색깔

우리의 반짝 다이어트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시큰거리던 발목을 관리하느라 남은 이틀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없던 라인도 만들어주는 포토샵의 힘만 믿기로 했다.

외부 프로모션 새 담당자들과의 미팅을 잘 끝내고 우리는 건우와 나란히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는 크지 않았지만 제법 깔끔했다. 촬영 공간에 세워진 조명과 반사판을 들고 있는 스태프의 모습에서 우리는 눈을 떼지 못했다.

가끔 제품 화보나 연예인 촬영을 따라가기는 했지만 제가 카메라 앞에 서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묘하게 긴장되네요. 조명도 너무 밝고.”

우리는 환한 조명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카메라 뒤에 있을 때는 괜찮았던 것들이 자꾸만 눈에 걸렸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서 조그마한 모공까지 완벽하게 나와 버릴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차장님은 너무 괜찮아 보이시는데요.”

“설마요.”

“진짜예요. 전 지금 심장 소리가 밖에까지 들릴 것 같아요.”

우리가 제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도 떨릴 만큼 심장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너무 긴장해 바다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점심 굶었더니 배도 고프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요. 촬영 끝나면 바로 먹으러 갑시다.”

“잘 생각해볼게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말고 저녁 생각만 하는 걸로.”

다정하게 스치는 건우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신없이 촬영장을 체크하던 홍보팀 직원이 반갑게 우리와 건우를 맞았다.

단정한 인사를 끝낸 홍보팀 막내 직원은 우리와 건우를 각자 대기실로 안내했다.

대기실로 들어선 우리는 흠칫 놀랐다.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선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제품 체험단 가이드라인을 보낸 선영은 뿌듯한 얼굴로 메일 창을 껐다.

제 메이크업 박스를 향해 손을 내뻗던 선영은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선영씨가 무슨 일이야.”

“메이크업 해드리고 싶어서요. 차장님이 허락해주셨거든요. 비용 절감도 되고.”

벌떡 일어난 선영은 브러시를 흔드는 시늉을 하고는 말했다.

“블랙박스 작전에 도움도 되고 싶고요.”

우리는 반짝이는 눈빛까지 날려대는 선영을 마냥 밀어낼 수 없었다. 나쁜 의도가 하나도 담겨있지 않는 순수한 열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대기실 문을 빤히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에 있을 건우를 향해 날아가는 원망의 눈빛이었다.

“과하지 않게만 부탁해.”

“과하지 않게. 그리고 또 요청사항 있으실까요.”

“그리고 쉐딩도 강하지 않게.”

선영은 모두 깊이 새겼다는 것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바로 할게요. 대리님. 빨리하고 차장님도 해드려야 하거든요.”

“맞다. 차장님도 해야지.”

“넵. 그래서 남자 연예인들 사진도 많이 탐구했거든요.”

“나도 구경 가야겠네.”

브러시를 기다리면서 눈을 감고 있을 조신한 건우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괜스레 웃음이 흐를 것만 같았다.

어쩌면 커플 아이템만큼 붉디붉은 색으로 물든 입술은 마냥 섹시한 기운을 내뿜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진귀한 구경이 될 것만 같았다. 웨딩 사진을 촬영하거나 식장에 들어가기 전이라면 모를까.

건우가 화장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기념사진이라도 잔뜩 남길 생각이었다. 결국 남는 건 기억과 사진뿐이기 때문이었다.

“혹시 몰라서 다과도 준비하긴 했거든요. 천천히 드시고 다 끝나면 저한테 말해주세요.”

홍보팀 막내 직원이 테이블 위에 있던 다과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과자를 집을 뻔했다.

하지만 금세 이성을 되찾고는 슬그머니 손을 다시 내렸다.

“그럴게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잘 부탁해요.”

사무적인 말이 몇 번 오갔고 홍보팀 막내 직원은 바삐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고 선영은 메이크업 박스를 열었다.

본래 했던 화장을 지워주는 선영의 손길은 부드러웠다. 제법 전문가 같은 기운도 풀풀 풍겼다.

“저희 아빠도 어제 사진 촬영했거든요. 사무실에서.”

조용한 적막을 뚫고 선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근데 완전 곰처럼 나오셨다니까요.”

선영을 힐끗 보던 우리는 쉽게 맞장구를 칠 수 없었다.

HJ그룹 대표님을 욕할 직원이 어디 있냐고.

“웃는 것도 어색하고.”

“정말 어색하셔서 그러지 않으셨을까. 텔레비전에도 거의 나오지 않으셨잖아.”

숱한 구설수로 골머리를 앓는 재벌에 비해 HJ그룹은 조용한 쪽에 속했다.

사회나 경제면을 장식하는 일도 극히 드물었고 소란한 폭풍에 시달리는 일도 적었다.

하지만 말을 내뱉은 우리는 후회했다. 괜히 아는 체에 마음이 상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의도하지 않게 신경을 긁었을 수도 있고.

“사회면에 나오면 거의 멘붕이셨을 걸요.”

선영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는 것처럼 피식 웃었다.

“휠체어 타는 모습도 어색하셨을 거고요.”

“그래도 그럴 일은 없으니까.”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쭉, 지금처럼.”

브러시를 쥐고 있던 선영은 잘은 한숨을 내뱉었다. 휠체어는 아니더라도 선영은 나름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회사 경영 방식 차이로 오빠가 집에 오는 날이면 집은 한없이 냉랭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영은 회사 경영이나 지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우리가 기획한 프로모션과 맡은 일에 바짝 매달려 신제품 목표 매출을 달성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야구장에서 만날 성민과 끝내주는 메이크업 완성도.

선영은 코앞에 있는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만큼 세상 뿌듯한 일도 없을 것만 같았다.

“아무튼 저 토요일만 기대하고 있어요. 대리님.”

컨실러로 우리의 잡티를 커버하면서 선영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저 완전 설레요. 거기 치느님도 그렇게 맛있다던데.”

“맛있기는 하지.”

“1인 1닭 하면 너무 별로겠죠.”

“화통하고 좋은데 뭘. 같이 해. 1인 1닭.”

시원스럽게 날아든 우리의 말에 선영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선영은 난생 처음 야구장을 가는 것도 마냥 들떴고 첫눈에 반한 직후로 쭉 보지 못했던 성민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야구 룰은 탐구하고 가야겠어요.”

선영의 목소리에는 굳은 의지가 배어있었다.

“진짜로 잘 보이고 싶거든요.”

선영의 열정은 우리까지 자극했다. 야구 하나 모르는 것보다는 조그마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게 건우와 대화할 때 좋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선영이 성민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만큼 우리도 여전히 건우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것도, 아주 여러 면에서.

선영의 터치는 세심하고도 부드러웠다. 화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색깔을 선명하게 살려주었다.

선영은 허리춤에 손을 대고는 우리를 봤다. 제 놀라운 손재주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괜찮죠. 얼굴빛도 확 살고.”

“괜찮네.”

“그럼 차장님 대기실로 출동할게요. 빨리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선영은 제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제 얼굴을 바라보던 우리도 선영을 따라서 일어났다.

우리는 제 핸드폰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귀한 순간을 놓칠 수 없다는 다부진 손길이었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건우의 대기실 문을 열었다.

“차장님.”

조용한 우리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최종 확정된 프로젝트 내용을 살피고 있던 건우가 우리를 봤다.

“무슨 일…….”

건우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완전히 문이 열렸다. 메이크업 박스를 번쩍 들고 있는 선영이 보였다.

건우는 올 것이 왔다는 것처럼 초연해보였다.

마치 득도한 부처처럼.

“고대리님은 끝난 겁니까.”

“네. 근데 되게 어색해서…….”

우리는 괜스레 민망해 목덜미만 쓸어내렸다.

“예쁩니다.”

건우는 조금의 생각도 없이 단숨에 말했다. 화장기 하나 없는 모습을 봤더라도 건우는 매일 감탄만 뱉어냈을 것이었다.

우리의 그 어떤 모습도 건우에게는 그저, 예쁘게만 보였다.

“그죠. 차장님. 대리님 진짜 예쁘죠.”

“예.”

호들갑을 떠는 선영의 말에도 건우의 눈길은 우리에게 머물러있었다.

“그럼 제 금손으로 차장님도 잘 해드리겠습니다!”

“적당히 하죠.”

“그래도 최선을 다할게요.”

“역시 열정은 조금 죽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건우의 말에도 선영의 열정은 꺼질 줄을 몰랐다. 도리어 다정한 우리와 건우의 모습에 더욱 타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선영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근데 차장님. 피부 진짜 좋으시네요.”

감탄하듯 내뱉은 선영의 말에 우리는 선영만 빤히 쳐다봤다.

“그냥 쌩얼로 나가셔도 될 것 같아요.”

듣도 보도 못한 말에 자기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말을 왜 차장님한테만 해주는 건데.

“가볍게만 할게요.”

“다 보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너무 조용해질 것 같아서요.”

선영은 너무도 조용한 대기실을 살피고는 말했다.

“영업팀에 프로모션 디자인 시안은 넘겼습니까.”

조용한 적막을 뚫기라도 하려는 듯 건우는 업무 얘기를 꺼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몰라 화장품을 쥐고 있던 선영은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강선영씨 말입니다.”

“아. 저였구나. 그거 우팀장님이 일단 홀딩하자고 하셔서요.”

“인쇄비용 기안은.”

“컨펌 받으면 바로 올릴게요. 차장님 일단은 입을 조금…… 다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묘한 상황에 가만히 서 있던 우리는 하마터면 풉, 웃어버릴 뻔했다.

입을 다물라니. 의도된 것처럼 정말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나한테 하는 말 맞습니까.”

“넵. 립을 발라야 돼서요.”

선영은 립글로즈를 건우의 앞에 들이밀고는 말했다.

“됐습니다.”

“그래도…….”

선영은 도와달라는 것처럼 우리에게 간절한 눈빛을 날렸다.

“차장님. 바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네. 튀는 색도 아니고. 생기만 조금 더 돌 것 같아요.”

우리의 말에 립글로즈를 보고 질색팔색하던 건우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바르죠.”

하지만 건우는 우리의 말을 완벽히 거절할 수 없었다. 립스틱을 눈썹에 바른다고 해도 알겠다고 대답했을 것이었다.

건우는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제 입술을 내어주었다.

우리가 돌부처처럼 멍하니 앉아있는 건우를 찍었다. 찰칵, 하는 날 것의 소리가 대기실에 퍼졌다.

“설마. 나 찍은 겁니까.”

건우는 표범보다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현장에서 범인을 잡은 것처럼 제 근처에 있던 우리의 손목을 부드럽게 당겼다.

“너무 괜찮게 나와서요.”

우리는 변명하듯 제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래도 말없이 찍는 건 큰일이죠.”

“그렇기는 한데…….”

“죗값은 금방 받겠습니다.”

“아니. 죗값까지는 과잉 처벌인 것 같은데요. 차장님.”

밀려날 수 없다는 것처럼 우리도 단단한 눈빛을 날렸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고우리 찬스의 늪에 다시 빠질지도 몰랐다.

다시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 수는 없었다. 놀부를 제압하는 흥부도 싫었다.

“좋은 시간을 위해서 저는 나갈게요. 제가 눈치가 완전 있어서요.”

눈치 없는 말을 던진 선영은 대기실을 나갔다. 우리는 황당한 얼굴로 대기실 문만 가만히 쳐다봤다.

하지만 선영의 말도 꿀 떨어지는 건우의 눈빛을 막을 수는 없었다.

“눈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네.”

“그런 것 같아요.”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죗값 당장 받죠.”

“또 무슨 죗값을 받으시려고. 노래는 절대 못해요. 댄스도.”

“그만큼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건우의 말을 해석하기도 전에 건우는 우리의 손목을 부드럽게 당겼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힘에 우리는 건우의 쪽으로 기우뚱했다.

사진 값은 생각만큼 싸지도 않았지만 비싸지도 않았다.

맞닿은 입술을 타고 말캉한 감촉이 무르녹았다. 우리는 눈을 감지도 못한 채로 가만히 건우를 바라봤다.

은은한 코코넛 향기가 우리의 코끝을 간질였다. 뜨뜻한 침만 우리의 목구멍을 훑고 넘어갔다.

“자꾸 탐나서.”

“뭐가요.”

“……고우리, 색이.”

건우의 입매가 조용히 휘어졌다. 매혹적인 미소는 금방이라도 우리를 홀릴 것처럼 보였다.

건우는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꼭 한 눈을 팔면 우리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차장님.”

건우의 짙은 눈빛을 견디던 우리는 건우의 입술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제 립스틱 색이 건우의 입술을 짙게 물들였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건우가 립스틱을 발랐다고 착각하지 않을 것이었다.

진한 키스에 립스틱을 먹었다면 모를까.

우리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막겠다는 듯 건우의 두 볼을 감쌌다. 그리고는 두 엄지로 부드럽게 건우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색깔은 한결 옅어졌지만 우리는 건우에게서 완전히 제 색을 지우지 못했다.

“리무버로 지워볼까요. 깔끔하게 지워질 텐데.”

“괜찮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빨개지신 것 같아서요. 선영씨 부를게요.”

우리는 대기실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선영에게 다시 메이크업을 수정해달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가죠.”

“아뇨. 제가 가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요.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세요.”

“것보단…….”

건우는 대기실을 나서려던 우리의 팔목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우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건우를 쳐다봤다.

건우가 다시 키스라도 할까. 우리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무방비 상태로 당했을 때와는 달리 우리는 눈까지 꽉 감았다.

“나도 다시 하고는 싶지만…….”

말끝을 끄는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의 귓가를 적셨다.

열기를 품은 따뜻한 손끝이 우리의 입술을 스쳤다.

예민한 입술의 신경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에 우리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

“너무 번진 것 같아서.”

건우의 말에 그제야 우리는 제 입술을 살폈다. 건우에게 녹아든 색깔만큼 우리의 입술은 연해져있었다.

“저도 당장 수정해달라고 할게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제 얼굴을 살피던 우리는 후다닥 대기실을 나갔다.

은은한 건우의 코코넛 향기가 깊숙이 제 입술에 스며든 것만 같았다.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할 때조차 우리는 코코넛 향기에 사로잡힌 것처럼 느껴졌다.

“저 봐주시고. 가볍게 미소.”

사진작가가 우리에게 포즈를 주문했다. 하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빛만 봐도 우리의 머릿속은 백지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눈만 웃지 마시고 입도 스마일!”

사진작가는 우리의 최대한을 뽑아내기 위해 온갖 주문을 해댔다.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미소만큼은 고쳐질 줄을 몰랐다.

우리도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눈아, 코아. 조금 더 웃어봐. 제발!

“긴장하신 것 같아서. 남자 모델부터 가면 좋을 것 같은데.”

“같이 찍겠습니다.”

사진작가의 말에 대적하듯 건우가 말했다.

“단독샷보다는 투샷을 먼저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적당히 덧붙은 근거에 사진작가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 우리의 곁에 건우가 다가왔다.

“괜찮습니까.”

건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제가 생각해도 어색한 것 같아요. 자꾸 토할 것도 같고.”

“나하고 둘만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저기 많은데…….”

우리는 눈앞에 있는 직원들과 사진작가를 보고는 조용히 말을 흘렸다.

커다란 카메라 렌즈가 코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셀카 찍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네.”

우리가 고개를 돌려 건우를 봤다.

“그때, 도쿄에서처럼.”

손가락 하트를 날려대던 건우의 해맑은 모습에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뛰쳐나왔다.

카메라 앞에 선 이후로 선보인 가장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사진작가가 셔터를 눌렀다. 환하게 터진 플래시에 우리가 사진작가를 봤다.

“방금 좋았어요.”

사진을 확인한 사진작가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진짜 괜찮네. 계속 자연스럽게 부탁드릴게요.”

“……네.”

얼결에 대답한 우리가 슬그머니 건우를 쳐다봤다.

“무서울 것도 없잖습니까.”

“…….”

“커플 아이템도 했는데.”

건우의 말에 우리의 눈길은 자동적으로 붉은 드로우즈가 살아있는 바지로 향했다. 묘하게 붉은 열정이 피어나는 것도 같았다.

우리가 다시금 용기를 붙잡고 하얀 배경 앞에서 온갖 포즈를 준비했다.

그늘진 부분을 없애려고 스태프들은 바삐 지시에 따라서 조명을 움직였다.

정신없는 상황에 스태프 하나가 줄을 잘못 밟았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덜컥 발에 걸린 줄은 팽팽하게 당겨졌다.

강한 힘에 묵직한 조명은 중심을 잃고 우리에게로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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