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건우의 열기가 우리를 짙게 적셨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기운에 우리는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학생들을 보면서도 우리의 신경은 온통 건우에게로 향했다.
귓가를 스치는 숨결, 온기를 품은 너른 품, 가늘고 긴 손가락…….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설레게 만들었다.
건우의 품에 갇힌 우리의 목구멍을 타고 뜨뜻한 침이 넘어갔다. 흐릿해지는 정신을 차리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몸을 돌렸다. 딱 달라붙은 우리와 건우의 몸은 떨어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건우를 봤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지나가다가.”
우리를 품은 건우의 두 팔에 더 힘이 들어갔다.
그 바람에 우리는 더 가깝게 건우에게 붙었다.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갑자기 여길 지나고 있었다는 거죠. 것도 우연히 저를 봤고.”
“예.”
“딱히 여기가 산책길은 아닌데.”
“산책 못할 것도 없잖습니까.”
건우는 우리의 말을 가볍게 받아쳤다.
“그건 그렇지만…….”
우리는 말끝을 길게 끌었다. 건우를 부르겠다던 미순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왜 지나가고 계셨어요.”
“그냥.”
“혹시 누가 저희 엄마가…….”
“핫도그가 생각나서.”
우리의 말허리를 자르고는 건우가 재빨리 말했다. 건우는 핫도그 가게까지 대강 가리켰다.
핫도그 말고는 적당한 변명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당한 우리의 눈빛에 건우는 먼 곳만을 바라봤다.
‘강서방만 믿을게요.’
‘걱정 마시고 쉬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고우리씨 밤길은 제가 잘 지키겠습니다.’
‘역시 든든하네. 고마워요.’
건우는 미순과 다부지게 악수까지 나눴다. 어둑한 밤길을 잘 지키고 말겠다는 비밀 결사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그 굳은 의지도 진실을 갈구하는 우리의 눈빛 앞에서는 한없이 쉽게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럼 보내드릴게요. 핫도그 드시라고.”
“고우리씨는.”
“저는 계속 운동하려고요. 이왕 하는 거 잘 나오면 좋잖아요.”
우리는 능글맞게 그만 각자 갈 길을 가자고 돌려 말하면서 건우의 표정을 살폈다.
제 품을 성큼 나서는 우리의 모습에 건우의 눈동자가 짐짓 흔들렸다.
건우는 뜀박질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는 우리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나 버리고 가는 겁니까.”
아련한 눈빛까지 가득 장착하고서.
“유산소 운동으로 칼로리 태우려고요.”
“혼자는 못 보냅니다.”
“차장님은 핫도그 드신다면서요.”
건우에게 손목이 잡힌 우리는 제자리에서 뛰는 시늉만 해댔다.
“갑자기 먹는 것보다는 운동에 관심이 생겨서.”
건우는 핫도그 쪽은 보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그 대답 하나로 우리는 확실히 알았다.
미순이 건우의 집에 찾아갔을 거라는 걸. 건우와 미순은 아주 짧은 순간. 밤길 수호대라도 결성했을지도 몰랐다.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차장님.”
“내가 본래 변덕맞아서.”
“그게 더 수상하게 들리는데요.”
“그리고 혼자보다는 둘이 더 재밌을 겁니다.”
그럴 듯한 근거라도 대라는 것처럼 우리는 빤히 건우를 쳐다봤다.
“아마도 여러 면에서.”
하지만 건우에게서는 자신 없는 대답만 흘렀다.
“그럼 차장님. 기대할게요. 재밌는 운동.”
우리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앞을 향해 내달렸다. 갑작스러운 달리기에 우리를 잡고 있던 건우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건우는 우리가 저만치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다시는 붙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같이 갑시다.”
건우의 말에 멀어지던 우리가 멈췄다.
“차장님. 빨리요.”
“알겠습니다.”
우리의 손짓에 건우의 발걸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어느새 건우는 우리에게 바투 붙어서는 달리기 시작했다.
칼로리를 모조리 태워버릴 기세로 열심히 질주하던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 지쳐버렸다.
운동부족의 현장을 여실히 느꼈다. 눈동자에조차 생기가 없었다. 우리는 멍한 얼굴로 간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만 빤히 쳐다봤다.
따끈한 붕어빵부터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어묵까지. 지나가는 모든 것이 우리는 유혹적이게만 느껴졌다.
“그만하죠.”
건우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우리를 보고는 말했다.
“아뇨. 저 조금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갑자기 무리하면 큰일 납니다.”
“딱 한 시간은 달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내가 보기엔 무리일 것 같은데.”
우리는 걱정 말라는 얼굴로 다시금 거리를 달렸다. 고작 이틀 밖에 없는 귀중한 시간을 날려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쫙쫙 살이 빠지기를 기도하면서 우리는 뒤를 돌았다.
제 능력을 뽐내는 것처럼 제법 우쭐한 얼굴이었다.
“저 진짜 아……!”
넘치는 우리의 자신감은 얼마가지 못했다. 건우를 보면서 뛰다가 잘못 다리를 삐끗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대로 제 발목을 쥐고는 그대로 앉아버렸다. 놀란 건우가 급히 우리에게 달려갔다.
“괜찮습니까.”
“발 삐끗한 것 같아요. 괜찮아요. 가벼운 거니까…….”
“그대로 있어요.”
건우가 우리의 발을 잡고는 말했다. 그 말에 우리는 일어나려다가 말았다. 찌릿한 감각이 우리의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건우는 조심스럽게 복사뼈 근처를 눌렀다. 그 가벼운 손길에도 아릿한 기운이 흘러넘치는 것만 같았다.
“돌아가야겠네.”
“가만히 놔두면 낫지 않을까요.”
“그냥 낫기가 쉽지 않죠. 일단은 돌아가죠.”
심각한 얼굴로 우리의 발을 살피던 건우가 등을 내밀었다.
“업혀요.”
건우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고는 말했다. 널찍한 등이 제법 탐나기는 했지만 우리는 열심히 두 손만 내저었다.
“아뇨. 아뇨. 저 그냥 걸어가도 돼요. 심하지도 않은데요.”
“착각입니다.”
“진짜 걸을 수…….”
고집을 부리면서 일어나려던 우리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발을 땅바닥에만 내려놔도 아린 감각이 다리를 타고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긴장을 늦춘 자의 끔찍한 최후였다. 우리는 건우의 등만 빤히 쳐다봤다.
“계속 보고만 있을 겁니까.”
“솔직히 걱정돼서요.”
“내 힘을 걱정하는 거라면 확실히 말해두죠.”
건우의 눈빛이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힘, 충분히 넘칩니다.”
나직한 건우의 말이 어둑한 허공을 적셨다.
“그럼 실례할게요.”
“얼마든지.”
우리는 조심스럽게 건우의 등에 붙었다. 그리고는 두 팔을 가볍게 건우의 목에 둘렀다.
제 말을 증명하듯 건우는 가뿐하게 우리를 업었다. 끙끙 앓는 조그마한 소리조차 없었다.
가슴팍을 타고 전해지는 두근거리는 소리가 꼭 건우에게 닿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굳은 침을 삼키고는 건우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조용히 부는 바람마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따뜻한 온기가 우리의 두 뺨을 적셨다. 우리가 슬쩍 고개를 들고는 건우를 바라봤다.
“저 무겁죠.”
제 발 저리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쳤다.
“괜찮습니다.”
“혹시 무거우면 외투 때문일 거예요. 무게가 꽤 나가거든요.”
우리는 별로 두껍지 않은 봄 패딩을 펄럭거리면서 변명하듯 말했다.
“잘 감안해보겠습니다.”
“그럼요. 꼭 감안해주셔야 돼요. 운동화 무게도.”
“예.”
“그리고…… 핸드폰 무게도.”
우리는 주변을 살피면서 온갖 소지품을 늘어놓았다.
모두 말한다면 제법 무게가 나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
갖가지 무게를 갖다 붙이지 않으면 순수한 제 몸무게가 탄로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튼 죄송해요. 제가 본래 실수하는 캐릭터는 아닌데.”
“괜찮습니다.”
“너무 방심했나 봐요.”
“다치는 것만 아니면 방심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건우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고는 다정스럽게 말했다.
“업을 수도 있고.”
건우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녹아들었다. 우리를 업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얼굴이었다.
건우는 내려달라는 우리의 말에도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를 내려주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건우에게 팔을 꽉 둘렀다.
우리는 건우의 등에 바투 붙은 것처럼 보였다. 제법 차가웠던 봄바람도 조금씩 따뜻해졌다.
바람결에 실려 서로의 향기가 은은하게 코끝을 간질였다. 따뜻하게 피어올라온 가로등 빛이 우리와 건우를 적셨다.
겨울조차 생각나지 않을 만큼 아주, 따뜻한 밤길이었다.
***
우리는 땅에 발 한 번 대지 않고 금세 건우의 소파에 안착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아…… 네.”
건우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우리의 귓가에 부스럭대는 소리만 조금씩 들려왔다.
건우는 곧 얼음주머니를 들고 주방에서 나타났다. 그리고는 거실 테이블을 당겨 우리의 발을 올려놨다.
건우가 조심스럽게 우리의 양말을 벗겨냈다. 우리의 복사뼈 근처는 조금 부어있었다.
새빨간 살갗을 보던 건우는 복사뼈 근처에 부드럽게 얼음주머니를 올려놨다.
차가운 기운 때문인지 우리가 살짝 움찔거렸다. 차가운 냉기는 화끈거리던 우리의 발목 열기를 누그러뜨렸다.
“조금 괜찮습니까.”
“네. 아까보다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내일 출근길에 바로 병원 가보는 걸로 합시다.”
“아뇨.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예요. 근데 걱정이네요. 운동도 해야 하는데.”
우리는 꼬르륵거리는 배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운동이 어렵다면 더 맹렬하게 굶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밥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듯 배는 끝없이 꼬르륵댔다.
점심 후로 아무 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인지 온몸에 기운조차 빠지는 것만 같았다.
건우를 바라보고 있는 눈빛조차 생기를 잃었다. 우리는 마른 침만 꿀꺽 넘겨댔다.
우리의 발을 잡고 냉찜질을 해주던 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를 그대로 굶길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잘 대고 있어요.”
“차장님은 어디 가시게요.”
“급하게 할 일이 생겨서.”
묘한 말만 남긴 채로 건우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주방 쪽만 빤히 쳐다봤다. 어쩌면 맛있는 요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도마 소리가 들렸고 묘하게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풍기는 것도 같았다.
우리의 후각은 완벽히 적중했다. 건우가 그릇 두 개를 들고 거실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발을 내려놨다. 그리고는 그릇 속에 담긴 내용물을 빤히 쳐다봤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비빔국수의 습격이었다.
“먹어요.”
건우가 우리에게 젓가락을 내밀었다.
“아뇨. 저는 다이어트를 조금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참을게요.”
“걱정할 것 같아서 실곤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말로는 갈등하고 있었지만 그릇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혼자 저녁 먹기도 싫고.”
“그죠. 같이 먹어야 더 맛있더라고요.”
“그러니까 간단히만 먹어요. 너무 걱정 말고.”
“그럼 딱 한 젓가락만 먹을게요. 딱, 한 번만.”
우리는 건우의 마수에 걸려버린 것만 같았다. 왕성히 도는 식욕에 백기를 든 걸지도 몰랐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전투적으로 젓가락을 잡았다. 그리고는 한 입밖에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비장하게 비빔국수를 밀어 넣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식욕은 절대로 멈출 수 없었다. 우리는 어느새 제대로 자리를 잡고 비빔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나 촬영에 대한 생각은 까마득히 잊은 지 오래였다.
우리가 체하기라도 할까. 건우는 미지근한 물을 떠서 우리에게 내밀었다.
“감사해요. 차장님. 근데 진짜 맛있네요.”
“입맛에 맞습니까.”
“네. 장사하셔도 될 것 같아요. 곤약도 쫄깃하고.”
다이어트를 선포한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말끔하게 비빔국수를 비워냈다.
아삭한 배의 식감과 슬쩍 매콤한 맛도 감질나게 우리의 입을 맴돌았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해야겠어요.”
“지금도 좋은데.”
“부하게 나올 것 같아서요.”
“그러지 않겠지만 만약에 그렇대도 굳이 굶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건우가 우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괜찮은 기술도 많은데.”
“아…….”
우리는 탄식하듯 말했다. 없던 라인까지 만들어주는 포토샵의 존재를 간과했던 것이었다.
“진짜 괜히 굶었네요.”
“적당히 건강하게 먹는 걸로 하죠.”
“갑자기 먹고 싶은 게 막 떠오르는데요.”
“말만해요. 바로 사가지고 오겠습니다.”
건우는 우리의 주문만 받으면 바로 뛰쳐나갈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준비된 진정한 배달의 민족이었다.
“오늘은 비빔국수로 만족할게요.”
주인 없는 집에 덜렁 남을까.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흘리면서 빈 그릇만 살짝 들었다.
“근데요. 차장님. 저희도 자리 마련해야하지 않을까요.”
“어떤 자리 말입니까.”
“성민씨하고 선영씨요.”
“갑자기 맞선처럼 자리는 만드는 것도 이상할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괜히 거리감만 생길 수도 있고.”
얼음주머니로 지그시 복사뼈를 누르던 우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건우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맘이 있는 선영은 몰라도 성민은 떠밀리듯 소개팅 자리에 나올 것이었다.
한 번의 만남 끝에 말끔히 성민과 선영의 관계가 끝날지도 몰랐다.
첫인상이나 느낌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소개팅 자리라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 맘이 통하지 않으면 세상 쿨하게 헤어질 수 있다는 것도.
확실히 다른 방법이 필요하기는 했다.
“가짜로 우연을 계속 만드는 건요.”
심각한 얼굴로 빈 그릇을 바라보던 우리가 말했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죠. 서로 붙이다보면 겹치는 취향도 있을 거고.”
우리는 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온갖 데이트 장소를 검색했다.
“뭘 하는 게 좋을까요. 아쿠아리움 갈까요.”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그럼…… 남산은요.”
“것도 적당하지는 않을 것 같고.”
“그럼요. 차장님이 하나 추천해주세요. 성민씨가 좋아할 만한 걸로.”
우리의 말에 건우는 팔짱을 꼈다. 딱히 성민이 좋아할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제 집에 초대해 게임을 하는 수고로움은 건너뛰고 싶었다. 제 핸드폰을 든 건우의 손길이 빨라졌다.
“야구는 어떻습니까.”
“지금 야구 할까요.”
“프로야구 시범경기 있답니다.”
우리는 건우의 핸드폰을 바라봤다. 꼼꼼하게 경기장과 일정도 살폈다. 토요일에 수원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시합이 가장 빠른 경기였다.
누가 경기에 출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선영과 성민이 가까워질 수 있는 자리는 만드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좋은 것 같아요. 그럼 차장님이 성민씨 맡아주세요. 제가 선영씨한테 말할게요.”
“그러죠.”
“표는…… 제 친구가 줬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요.”
우리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갑작스럽게 야구 경기를 가자고 졸라대는 건우의 모습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제 친구네 회사에서 나온 표라고 하면 더 좋을 것 같고요.”
“그럴 듯하네.”
“그죠. 키스 타임에 두 사람 얼굴만 나와도 딱 좋은데.”
“그건 운에 맡겨보죠.”
커다란 구장 화면에 성민과 선영의 얼굴이 잡힌다면 없던 감정도 조금씩 생겨날지도 몰랐다.
어쩌면 박력 있는 선영이 완벽한 타이밍에 멋진 한 방을 날릴지도 모르고.
“저희도 같이 따라가는 게 좋겠죠.”
“적당한 타이밍에 빠집시다.”
“역시. 차장님하고 잘 통한다니까요.”
우리는 하이바이브라도 할 것처럼 건우를 향해 쫙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접었다.
손바닥도 마주치면 소리가 난다던데…….
우리는 하이바이브조차 할 수 없는 재주가 얄궂게만 느껴졌다.
“예.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건우는 우리에게 다가섰다. 그리고는 곧장 우리에게 입을 맞췄다.
하이바이브를 대체하는 하이키스의 탄생이었다. 보드랍게 맞닿은 입술이 떨어졌다.
“그럼 고우리씨가 말하는 대로 전하죠.”
건우가 자못 진지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작전이 잘 통했으면 좋겠는데.”
“잘 될 겁니다.”
“하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죠.”
“그래도 두 사람이 잘될 것 같기는 합니다.”
건우는 마이크를 잡고 무대를 뛰어다니던 선영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그날 선영의 모습은 성민과 꼭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대학교 신입생 OT(오리엔테이션)때 조명을 받으면서 광란의 무대를 선보였던 최강 인사이더, 한성민의 모습과.
“진짜 잘될까요.”
우리는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예.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그 이론이 맞다면.”
건우의 말을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붓기가 많이 빠졌네. 따뜻하게 데워오죠.”
우리의 발목을 보던 건우가 얼음주머니를 들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발목을 휘감는 아린 기운이 자취를 감출 때까지도 우리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확고한 건우의 말과는 달리 성민은 선영에게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실패 확률이 높은 작전이었다.
작전의 결말을 우리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가짜 운명을 만들어내는 연애 조작은 바로 내일부터 시작될 거라는 걸.
도가 되든 모가 되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