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68화 (68/102)

제 68화.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까.

우리는 건우의 품에서 비켜났다. 그대로 계속 건우의 품에 갇혀있다가는 붉은 드로우즈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찰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것도 퇴근을 할 때까지 쭉. 어쩌면 집에 돌아가서도 드로우즈 생각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지도 몰랐다.

“저 먼저 나가볼게요. 빨리 포워딩할 빨강…… 아니. 파일이 하나 있었는데 깜빡해서요.”

우리는 괜한 변명만 주절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퇴근 할 때 뵙겠습니다. 차장님.”

우리가 슬쩍 문고리를 당겼다. 회의실 문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우리는 그림자가 사라지듯 재빨리 회의실을 나섰다.

종이를 바투 끌어안은 우리가 자리로 돌아가다가 회의실로 다시 유턴을 했다.

그리고는 회의실의 문을 조심히 열었다.

“차장님.”

우리는 문에 고개만 슬쩍 내민 채로 건우를 불렀다.

“그래서 저희 촬영은 언젠데요.”

“수요일입니다.”

“설마. 이번 주 수요일은 아니죠.”

“맞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건 아니고. 준비가 조금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건우가 준비의 정체를 파헤치기도 전에 우리는 냉큼 문을 닫았다. 건우는 꼭 회의실에 갇혀버린 것처럼 보였다.

제자리로 돌아와 키보드에 손을 얹은 우리의 머릿속은 복작거렸다.

적어도 홈페이지 메인에 들어갈 사진이라면 피부 관리정도는 받아야 할 것만 같았다.

촉촉한 피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었다. 제법 올라온 턱살도 우리는 걱정스러웠다.

카메라 앞에서는 날씬한 연예인조차 부해 보인다던데…….

우리는 당장이라도 다이어트에 돌입한 생각이었다. 그것도 반짝 다이어트.

“대리님. 블랙박스는.”

티가 날 정도로 주변을 살피던 선영은 우리에게 조용히 물었다. 멍하니 모니터를 보던 우리는 대답조차 없었다.

“대리님.”

“어…… 어?”

“무슨 걱정을. 설마…… 실팬가요.”

선영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섰다.

“저희 차라리 익명 고발이라도…….”

“조건 하나가 붙었어.”

“헐. 정의를 위해서라는데 조건까지. 완전 너무하시다.”

선영은 팔짱을 끼고는 맹렬하게 본부장실을 노려봤다.

선영의 눈빛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블랙박스만큼은 뺏고 말겠다는 묘한 의지까지 담겨있었다.

“저 무조건 도울게요. 무슨 조건이든.”

“그게…….”

열의를 태우는 선영을 보던 우리는 본부장의 조건을 말했다. 가만히 우리의 말을 듣던 선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우리와 건우의 다정한 사진이 메인에 걸린다는 생각만으로도 제법 뿌듯하다는 얼굴이었다.

“완전 맘에 드는 조건인데요. 대리님.”

“선영씨가 하는 건 어때.”

“제가 하면 이상하죠. 저는 그냥 화장만 도와드릴게요. 카메라빨 딱 받을 수 있게.”

선영은 브러시를 잡은 듯 손목을 움직였다. 선영의 터치로 해쓱해질 제 얼굴을 떠올리던 우리는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몸집은 크고 얼굴은 주먹만 한 외계 생명체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그건 완전 최악이었다.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저만 믿으세요.”

“아니. 내가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영상 보면서 해도 될 것 같고.”

노트북 화면을 가리키던 우리는 에둘러서 말했다.

“아뇨. 제가 확실히 보장하겠습니다. 완벽한 카메라빨.”

하지만 파이팅을 하듯 주먹을 꽉 쥔 선영은 우리의 말을 조금도 간파하지 못했다. 선영은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채 제자리로 돌아갔다.

온갖 연예인 사진까지 뒤적거리면서 선영은 우리에게 맞는 메이크업을 찾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차마 말리기 미안할 만큼.

“지금 업무 시간이야. 선영씨.”

“주임님. 저 지금 완전 중요한 업무 중이예요.”

그리고 우리는 선영을 말릴 수도 없었다.

“대리님이 수요일에 촬영하신대요.”

“무슨 촬영을.”

“저희 홈페이지 메인에 들어갈 사진이요. 그래서 제가 손재간을 부려보려고요. 재능 기부요.”

선영이 자랑하듯 우리의 메이크업을 담당하겠다고 소리 높여 외쳤기 때문이었다.

선영의 말을 부정했다가는 선영만 어색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언제 또 빅이슈가……!”

황주임은 놀란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대리님 혼자 찍으시는 건가.”

“아뇨. 차장님하고 나란히.”

“실…… 실화냐.”

황주임의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와 건우가 앙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육갑커플을 붙여서 홈페이지 메인에 걸겠다니.

황주임은 슬쩍 영업1팀을 힐끗거렸다. 마케팅1팀을 갈라놓으려는 우팀장의 계획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쏟아지는 황주임과 선영의 눈길에 건우가 짐짓 걸음을 늦췄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황주임은 죽어도 이 모든 것이 우팀장의 계략인 것 같다는 말은 꺼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촬영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선영의 눈빛이 반짝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강차장님한테 붙어있고 싶니.’

황주임은 선영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선영이 조금이라도 건우의 곁에 붙어있고 싶어 우리의 메이크업 담당을 자원했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차장님 메이크업도 제가 해드릴까요.”

선영은 눈을 번뜩거리면서 건우를 봤다. 새 먹잇감을 찾은 듯이.

“거절하겠습니다.”

하지만 건우는 고민도 없이 거절을 날렸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휑뎅그렁하게 남은 선영을 바라보던 황주임의 눈빛은 아련해졌다.

“메이크업을 잘 모르시네. 신입 손재간 장난 아니던데.”

황주임은 위로하듯 말했다.

“그죠. 제가 손재주 하나는 끝내주는데.”

“남자들은 화장을 몰라서 그래. 로션만 바를 줄 알지.”

“그건 노코멘트 할게요. 그 말은 조금 민감한 것 같아서요.”

깔끔하게 두 손을 든 선영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민감한 말에는 동조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기운마저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황주임은 얼떨떨한 얼굴로 선영을 봤다. 다시금 연예인 사진을 찾는데 열중한 선영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황주임은 제자리에 앉아서도 허탈한 웃음만 뱉어냈다. 열혈한 짝사랑을 응원해줬더니 곧바로 배신이라니…….

아군에게 격하게 배신을 당한 장군처럼 황주임의 얼굴에는 씁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황주임. 무슨 일 있니.”

매대에 들어갈 광고용 디자인 시안을 확인하던 우리가 황주임을 보고는 말했다.

키보드를 미친 듯이 두드려대는 통에 키보드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뇨. 저 굉장히 기분 좋아요.”

키보드에 손을 얹은 채로 황주임은 어둑한 미소만 날렸다. 억지 미소를 짓는 턱에 황주임의 얼굴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래. 할 일 해.”

“넵. 그럼 일 해볼게요.”

우리가 황주임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디자인 추가 수정 사항을 우리가 덧붙이려던 순간이었다. 우리의 핸드폰이 정신없이 울렸다.

수정 사항을 적으면서 힐끗 핸드폰을 보던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경비 아저씨가 택배 있대서 찾아가는데. 갑자기 무슨 속옷이야.

미순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택배 상자를 뜯는 순간. 아주 섹시한 속옷이 미순을 반길 것이었다.

것도 보통 때는 사지도 않았던 레이스로 가득한 붉은색 속옷.

무채색의 속옷만 고집하던 우리였다. 갑작스런 속옷 취향의 변화는 어떤 말로도 수습이 어려울지도 몰랐다.

우리는 목숨 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핸드폰을 꽉 붙잡고는 복도로 나갔다. 습관적으로 미순이 상자를 뜯기 전에 말려야만 했다.

우리는 황급히 문자를 두드려댔다. 하지만 문자를 모두 치기도 전에 미순의 문자가 다시 날아들었다.

-딸. 책상에 잘 놔뒀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미순이 택배 상자를 곱게 책상에 놔둘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그 촉은 역시나 틀리지 않았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택배 상자를 가만히 쳐다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택배 상자는 멀쩡해보였다. 하지만 상자에 딱 달라붙었던 테이프를 떼는 순간.

우리는 확실히 미순이 속옷을 확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테이프가 부드럽게 떼어졌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범죄를 꿈꾸면서 미순은 열린 상자에 다시 테이프를 붙인 것이었다.

우리는 뜨거운 콧김을 내뱉으면서 속옷을 꺼냈다. 속옷은 인터넷에서 볼 때만큼 확실히 섹시해보였다.

아주 강렬한 레드 컬러를 뽐내며.

“어우.”

우리는 슬쩍 방문을 쳐다보고는 포장을 뜯어냈다. 그리고는 얇은 옷 위에 브래지어를 입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패션이었다.

우리는 브래지어 끈을 잡고는 화장대로 걸어갔다.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세상 가장 섹시한 표정까지 지어보였다.

“괜찮네.”

제 라인을 살피는 우리에게서는 묘한 자신감마저 흘러넘쳤다.

미순이 방문을 열고 들이닥치기 전까진.

“저녁…… 아주 그냥 쇼를 한다.”

“노크도 없이.”

우리는 황급히 후크를 풀면서 말했다. 넘치는 자신감을 뿜어내던 붉은 브래지어는 침대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것도 늘 두드리던 집이나 두드리는 거지. 갑자기 노크 타령은.”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니까.”

“늦었을 땐 그냥 늦은 거야.”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담담하게 말을 하면서도 미순의 눈길은 침대로 향했다. 미순은 대강 상황을 파악한 눈치였다.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완전히 걱정을 떨칠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개딸아…….”

미순은 굳은 침에 녹은 잔소리를 꿀꺽 삼켰다.

“저녁이나 먹자.”

우리가 더는 마냥 꼬마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순은 요염한 기운을 내뿜는 브래지어는 보지도 못했다는 것처럼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못 먹어.”

“못 먹는다니.”

“살 빼야 돼. 것도 당장.”

미순을 보는 우리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단단해보였다.

“갑자기 살을 왜 빼겠다는 건데. 지금 보기 딱 좋구만.”

“수요일에 사진 찍는대서.”

“무슨 사진을…….”

말끝을 흐리던 미순의 눈길은 어느새 침대에 꽂혔다. 정확히는 벌레가 던지고 간 껍데기처럼 널브러져 있는 붉은 브래지어에.

우리는 미순의 나쁜 생각을 모조리 없애버리겠다는 듯 브래지어를 냉큼 말아 쥐었다.

바람마저 잘 드나들 것만 같은 야시시한 팬티까지도.

“아냐.”

“아니기는 뭐가 아닌데.”

“생각하고 있는 거.”

우리와 미순의 눈이 마주쳤다.

“내가 무슨 누드 사진이라도 찍겠어.”

우리는 상자에 브래지어와 팬티를 넣으면서 말했다. 최대한 별일이 아니라는 표정까지 한껏 지어보였다.

“그냥. 기분 전환하는데 좋다고 해서 새 걸로 사봤어. 되게 시원하다고 하더라고.”

“통풍은 잘되긴 하겠네.”

미순은 우리에게 바짝 다가서서는 상자에 있던 팬티를 들었다.

제법 레이스 사이사이의 얼개로 바람이 찬 기운이 쉽게 들락날락할 것처럼 보였다.

은밀한 것을 다루듯 미순은 조심스럽게 팬티를 내려놨다.

“우리 엄마 것도 하나 주문할까.”

“됐다. 됐어. 망측하게.”

“왜. 요즘은 다들 젊게 사는데. 야시시한 누드톤으로 사드릴게.”

우리는 브래지어를 들고는 미순의 앞에 흔들어댔다.

격렬하게 미순이 거부하는 반응이 재밌어 더욱 가깝게 브래지어까지 들이밀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저녁이나 먹어.”

지독하게 달라붙는 모기라도 내쫓듯 미순은 박력 있게 손을 내젓고는 말했다.

“근데 진짜 굶으려고.”

“무슨 사진을 찍는데 그래.”

“홈페이지 메인에 걸릴 거래. 부하게 나올까봐 이틀만 굶게.”

“근데 왜 널 찍겠대.”

“그러니까…… 글쎄.”

우리는 딱히 제가 홈페이지 대문에 걸려야 하는 근거를 댈 수 없었다. 사내에 꽤 예쁘장한 직원도 많았고 활기 넘치는 신입도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그럴 듯한 근거를 찾던 우리의 머릿속에는 촬영을 통보하던 건우의 모습만 생생하게 떠올랐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건우의 소행이었다. 어쩌면 은근히 사귀고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온풍으로 땀이 나는 사무실에서도 구태여 적색 코트를 입고 다녔던 건우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내가 능력이 있잖아.”

“능력하고 사진하고 무슨 상관인데.”

허를 찌르는 미순의 말에 우리는 괜스레 뜨끔했다.

“요새는 다 상관있어. 무튼 나 운동하러 가야겠다.”

“늦었는데 일찍 들어오고.”

“괜찮어.”

“괜찮기는 세상 흉흉하다니까. 네가 딸 가져봐야 내 맘을 알지.”

“내가 낳고 싶다고 낳나. 딸하고 아들은 남자가 결정하는 걸.”

우리는 미순의 말을 가볍게 넘기면서 외투를 입었다. 간단히 동네라도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몸을 지치게 만들면 절로 곯아떨어질 것이었다. 제법 몸도 가벼워질 거고.

“밝은 데로만 다닐게.”

“우리 강서방한테 같이 가달라고 할까.”

“엄마. 너무 급하게 갈아타는 것 같은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성서방이 최고라며.”

“그 쌍놈의 자식은 내가 진짜 만나면 다리몽둥이를 콱!”

문규를 떠올리던 미순은 치를 떨었다.

“그냥 조용히 다녀올게.”

“어우. 개딸. 걱정되게 저녁에 나간다고. 딱 동네만 돌아. 컴컴한 곳은 가지도 말고.”

미순은 우리가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끝까지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동네를 돌기 전에 생수도 한 병 샀다. 모든 땀을 빼고 말겠다는 강렬한 결심까지 다졌다.

우리는 발목을 가볍게 돌리고는 몸을 풀었다. 운동을 하기도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이 한 다발 생각났다.

매콤한 떡볶이, 바삭한 치킨, 보드라운 보쌈…….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잔뜩 군침이 돌았다.

“달리자. 달려.”

두 주먹을 꽉 쥔 우리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힘차게 달릴 요량이었다.

냉기가 우리의 두 뺨을 스쳐 지나갔다. 끝없이 달리던 우리의 숨은 한없이 가빠졌다.

길목에서 쏟아지는 냄새가 우리를 자극했다. 거친 호흡과 끝없이 울리는 배꼽시계가 우리를 괴롭혔다.

우리는 골골을 넘어선 저질 체력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동네를 돌던 우리의 달리기는 점점 속도를 줄어들었다.

북적거리는 학원가에서 핫도그를 먹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아…… 미치게 먹고 싶다.

“뺏을 생각은 아니죠.”

등을 타고 번지는 온기에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진지한 농담을 던진 건우가 조용히 미소를 흘렸다.

“제가 뺏을 거라도 있나요.”

“글쎄. 핫도그.”

정확히 적중한 건우의 말에 우리는 뜨끔했다.

“제가 핫도그는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냥 파릇파릇한 청춘 구경 중이었어요.”

“밝기는 하네.”

“그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즐겁고 그랬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까.”

우리는 깔깔거리고 있는 학생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더 열심히 공부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고 더 열심히 놀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막상 모두가 눈부시다고 한 그 시절에도 고민은 있었고 다시 돌아가도 다른 후회를 가지고 돌아올 거라는 걸.

어쩌면 기억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시절이 더 싱그러운 걸지도 몰랐다.

짐짓 짙은 미소를 머금던 우리가 웃음기를 지우고는 건우를 쳐다봤다. 건우는 우리의 말을 기다리듯 우리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뇨. 지금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저때는 남친이 없었거든요. 차장님은요.”

질문의 주사위가 건우에게로 넘어왔다.

“나도 지금이 더 좋습니다.”

건우는 고민을 하는 새도 없이 단숨에 대답했다.

“왜요.”

“그건…….”

“아마도 능력 있고 좋은 여친 때문이죠.”

건우가 근거를 대기도 전에 우리는 냉큼 자문자답을 해버렸다. 그리고는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핫도그를 먹고 있는 학생들을 쳐다봤다.

얇게 잘 튀겨진 바삭한 겉면과 길고 굵직한 소시지의 조합을 좀체 넘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렸다. 핫도그 하나면 악마에게 영혼도 팔 수 있을 것만 같은 거대한 유혹이었다.

까짓 핫도그 하나 먹는다고 살이 찌겠어. 내일만 쫄딱 굶자. 그럼 되는 거야.

괜찮아, 고우리.

“돌아가면 못 보여줄 거 아닙니까.”

자기도 모르게 우리가 핫도그 가게로 향하려던 찰나였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잡힌 것처럼 건우가 뒤에서 우리를 안았다.

커다란 품에 우리는 폭 안겨버린 꼴이 됐다. 따뜻한 열기가 우리의 등을 타고 전해졌다.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식욕이 조금씩 희미해져갔다.

“……우리 커플 아이템.”

그리고 마침내 유혹적인 건우의 목소리가 귓가에 녹아들었을 때.

우리의 식욕은 완전 소멸돼버렸다. 식욕조차 굴복해버린 것이었다.

붉은 드로우즈를 입은 강건우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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