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67화 (67/102)

제 67화. 육갑커플의 커플템

노트북 화면에는 문서 파일이 아니라 인터넷 검색창이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검색창에는 또렷하게 다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커플 아이템]

건우는 심각한 얼굴로 커플 아이템만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급한 일의 정체를 알게 된 우리는 싱겁게 웃었다.

“중요한 일입니다.”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건우가 말했다. 사뭇 진지한 기운만 건우의 얼굴에 돌았다. 꼭 중대한 프로젝트의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내심 쑥스러웠는지 건우는 노트북을 슬쩍 제 쪽으로 돌렸다.

“그럼 같이 찾아요.”

“혼자 찾아보겠습니다.”

“왜요.”

“글 쓰느라 바쁘잖습니까. 리스트업해서 보고하죠.”

건우의 말에 우리도 질 수 없다는 듯 노트북을 잡았다. 그리고는 건우를 향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궁금해서 잘 쓰지도 못할 걸요. 글은 커플 아이템 잘 결정하고 홀가분하게 쓸게요.”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그리고 저희 커플이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봐야죠.”

우리는 건우의 노트북을 가운데로 끌어왔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우리의 손이 빨라졌다. 30대 커플 아이템, 커플 아이템, 들키지 않는 커플 아이템…….

온갖 키워드가 검색창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우리의 말에 따라 건우가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글을 살피는 우리의 눈동자가 빨라졌다.

길어지는 검색만큼 우리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적당한 아이템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커플 아이템을 찾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운동화도 걸릴 것 같고. 티셔츠는 더 들키겠죠.”

혼잣말을 하듯 우리가 중얼거렸다.

“어우. 반지는…… 완전히 자랑하는 거겠네요. 커플이라고.”

우리는 제 약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모두 어쩔 수 없이 건너뛰고 있었지만 우리도 내심 커플링을 끼고 싶었다.

문규와 5년 간 사귀면서도 커플링 한 번 해본 적이 없던 우리였다.

커플링을 살 돈으로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문규의 지론 때문이었다.

하지만 간혹 누군가 커플링을 자랑하는 것을 보기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는 허한 제 손가락을 바라보곤 했다.

커플링이 작은 수갑이라고 투덜거리는 모습조차 얄밉게만 보였다.

수갑을 채워봤어야 답답한 것도 알지.

그저 배부른 투정들이라고 생각했다.

“반짝거리는 게 예쁘기는 한데.”

“커플링으로 하겠습니까.”

“아뇨. 너무 튈 것 같아요. 다른 걸로 볼게요. 조금만 내려주세요.”

우리의 말에 건우는 스크롤을 내렸다. 반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도 우리의 눈빛은 반지를 갈구하고 있었다.

우리를 빤히 쳐다보던 건우가 스크롤을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인터넷 창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반지를 보는 우리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차장님.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예.”

건우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정말 반지는 별롭니까.”

“네. 반지는 정말 대놓고 사귄다고 말하는 거라니까요.”

단호한 말과는 달리 우리는 반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곧 건우의 시선을 느끼고는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려대면서 다른 커플 아이템으로 눈길을 돌렸다.

“반지 말고 이건 어때요.”

우리가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을 보던 건우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진심입니까.”

“그럼요. 진심이죠. 딱 좋은 것 같아서요. 아무도 모를 것 같고.”

우리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동의를 해달라는 것처럼 우리는 눈썹을 들썩거렸다.

“어떠세요.”

“나는 좋습니다.”

“그럼 디자인은…….”

“고우리씨한테 맡기죠.”

우리는 제 쪽으로 노트북을 끌어당겼다. 진지하게 디자인을 살펴볼 요량이었다.

우리는 금방이라도 노트북에 빨려들 것처럼 보였다. 화려한 디자인에 우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천천히 골라요.”

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우리는 건우의 옷자락을 바짝 잡았다.

“어디 가시게요.”

“야식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괜찮아요. 과일도 있고. 디자인도 금방 골라요.”

우리는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당장 디자인을 고르고 말겠다는 의지까지 솟구쳤다. 건우가 허리를 구부려 우리에게 다가섰다.

우리의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그 바람에 건우의 옷자락이 마구 구겨졌다.

“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무슨 일이요.”

“여행지.”

“아……!”

우리는 탄식하듯 말했다. 여행 상품권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꽉 붙잡았던 옷자락을 놔주었다.

여행지까지 결정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지도 몰랐다.

“그럼 저는 열심히 찾고 있을게요. 차장님.”

“예.”

짤막한 건우의 대답이 우리의 입술에 녹아들었다. 건우는 우리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마우스 휠을 부산히 움직이면서 디자인을 고르는데 열중했다.

한껏 집중한 턱에 주방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조차 느끼지 못했다.

작은 팬에 지글지글 끓는 감바스를 들고 건우는 거실로 나왔다. 도톰한 새우가 마늘과 페퍼론치노와 섞여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바삭한 바게트도 우리의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냄새에 홀린 듯 감바스를 보던 우리가 다시금 마우스를 꽉 잡았다.

“먹고 하죠.”

“주문만 하고 먹을게요. 디자인 골랐거든요.”

우리는 노트북을 건우의 쪽으로 밀고는 말했다. 제법 진지한 얼굴로 건우는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여자 모델이 세련된 붉은 꽃잎 패턴 레이스가 강렬하게 들어차 있는 속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딱 달라붙는 드로우즈를 입은 남자 모델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속옷은 없었다.

레드 섹시 커플 속옷]

커다란 카피와 제품명이 건우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제품 페이지에 있는 두 모델은 우주에서 가장 뇌쇄적인 눈빛을 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건우를 봤다. 건우가 여자 모델의 몸매에 푹 빠졌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어우. 남자 모델 몸이 장난 아니네요.”

우리는 괜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드로우즈도 잘 어울리고.”

“그닥.”

“왜요. 정열의 빨간색이 어울리기가 쉽지 않거든요.”

제 모델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사진가처럼 우리가 칭찬에 열을 올렸다.

끝없이 터지는 남자 모델에 대한 말에 무감한 표정이었던 건우가 미간을 좁혔다. 없던 질투도 솟구칠 것만 같았다.

대체 붉은 드로우즈가 뭘 어쨌다고.

“라인도 살아있고.”

건우는 마우스 휠을 굴리려던 우리의 손목을 잡아들었다. 우리의 손가락은 허공에서 꼼지락거렸다.

“그만 하죠.”

단정한 말투였지만 건우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나도 잘 어울립니다.”

“차장님…… 방금 뭐라고.”

“정열의 빨간색. 나도 잘 소화한다고 했습니다.”

굳은 건우의 목소리가 퍼졌다. 완벽한 질투였다. 것도 얼굴 밖에 모르는 상품 페이지에 있는 남자 모델에게 날리는 질투.

단호한 건우의 말에 우리는 반사적으로 건우를 쳐다봤다.

건우의 말대로 정열의 빨간색이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그 누구보다도.

“그럼 바로 결제할까요.”

“그러죠.”

“낱개로 결제해서 각자 받는 걸로 할게요.”

“귀찮지 않겠습니까.”

주소를 두 번 적는 것만큼 두 번 결제를 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건우가 제 속옷을 건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민망스러웠다.

“각자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민망해지는 것보단 한 번 귀찮아지는 것이 나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금세 결제를 끝냈다.

결제 완료창이 늠름하게만 보였다. 우리는 큰일 하나를 해결한 것처럼 뿌듯한 얼굴로 소파에 기댔다.

“큰 산 하나는 넘었네요.”

“여행지는 내가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죠. 가고 싶었던 곳 있습니까.”

“많죠. 대만도 가고 싶고 파리도 가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을 말하면서 손가락을 접는 우리는 바빠 보였다.

하지만 열 손가락만으로는 가고 싶은 곳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천천히 살펴보죠. 조금 쉬었다가.”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바게트 하나를 들고는 말했다. 통통한 새우 하나와 마늘을 얹고 우리는 한 입 가득 바게트를 물었다.

밑간이 된 새우와 은근히 매콤한 향기가 우리의 입을 맛있게 채웠다.

우리는 제 노트북을 제 쪽으로 바짝 끌었다. 한글 창에는 문장 몇 개만 적혀 있었다.

“저 악역 하나 만들려고요.”

“소설 말입니까.”

“조금 느슨해진 것 같아서요. 긴장을 높일 필요도 있는 것 같고.”

말을 끝낸 우리가 폭신해진 바게트를 씹었다.

“차장님 탁구 기술만큼 저도 괜찮은 기술 하나가 있거든요.”

“무슨 기술을.”

우리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제 노트북을 가리켰다. 한글 창에 있는 글자가 또렷하게 건우의 눈에 들어왔다.

[나쁜 놈, 악독의 끝, 완전 악역: 우종길]

때 아닌 우팀장의 등장에 건우는 바람 빠지듯 웃었다. 가히 칼보다 강한 펜의 등장이었다.

화면을 빤히 쳐다보던 우리는 바게트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타자를 쳤다.

[우종길(여주 아빠, 여주 괴롭힘, 벼락 맞을 예정, 감옥에 갈 거임)]

악역다운 말로였다. 건우의 얼굴에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져나갔다. 우리를 보던 건우는 우리가 물고 있던 바게트를 당겼다.

바게트는 절반으로 툭, 찢어졌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건우는 노트북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탐나는 기술이네.”

그리고는 반쪽짜리 바게트를 먹었다. 잘게 날숨을 쉬는 것처럼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그거 제가 먹던 건데요.”

우리는 얼떨떨한 얼굴로 건우를 보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원래 한입만이 더 맛있는 법이니까.”

건우는 우리의 말을 능청스럽게 넘겼다. 우리도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다시금 노트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이미 먹어버린 바게트였다. 토하라고 할 수도 없으니 맛있게 먹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더 맛있었을 수도 있고.

“감옥에서 종신형은 어떻습니까.”

건우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종신형 받기가 쉽지 않아서요.”

“죄목은 전부 끌어올 수 있으니까. 아니면 아주 길게 감옥에 사는 것도 좋고.”

“그건 저도 찬성이요.”

우리는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와 건우의 대화 속에서 우팀장은 감옥 밖으로는 나오지도 못할 완전한 악역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서로를 보던 우리와 건우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녹아들었다.

정말로 은밀하고도 짜릿한 복수의 현장이었다.

***

우팀장의 악행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본부장이 순순히 블랙박스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내 블랙박스는 왜.”

“주차장 근방에서 잃어버린 게 있는데 연수원 CCTV는 작동은 안 한다고 해서.”

“최과장한테 말해봐. 연수원에서 발견된 거 있으면 최과장 쪽에 전화 갔을 테니까.”

본부장은 완곡한 거절을 날렸다. 건우가 예상치 못했던 난항이었다.

손쉽게 블랙박스를 확보해 그날의 일을 밝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직접 보고 싶은데 어렵겠습니까.”

“하나 방법이 있기는 한데…….”

본부장은 곧 본론을 꺼낼 듯 말끝을 흐렸다.

“우리 회사 홈페이지 리뉴얼을 한다던데.”

“제가 맡을 일이라도 있습니까.”

“홍보팀 쪽에서 마케팅팀 사진하고 인터뷰를 따고 싶대서.”

건우는 본론을 말하라는 것처럼 본부장을 쳐다봤다. 본부장의 제안은 간단했다.

직무 가이드에 실릴 인터뷰와 메인 화면에 나올 사진만 찍어주면 블랙박스를 내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본부장은 F&B 사업팀의 젊고 훈훈한 기운을 자랑하고 싶은 눈치였다.

능력만 있으면 젊은 나이에도 괜찮은 직급을 가질 수 있다는 스토리텔링까지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본부장은 고개를 내밀고는 건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두 손을 맞잡은 건우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떤가.”

본부장이 재촉하듯 말했다.

“그게…….”

“우리 사업부 이미지도 좋아지고 얼마나 좋아.”

본부장은 눈썹까지 들썩거렸다. 블랙박스가 필요하기는 했지만 건우는 쉽게 승낙할 수가 없었다.

홈페이지를 들어갈 때마다 나타날 제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커플 사진이라면…….

“하겠습니다.”

건우는 사진 하나 찍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주말에 봤던 커플 속옷 모델들의 화보처럼 만족스러운 사진이 탄생할지도 몰랐다.

“여자 모델은 강선영씨로 내가 추천을…….”

“고대리하고 찍겠습니다.”

“그래도 밝게 강선영씨하고 찍는 게 낫지 않나.”

“프로페셔널하게 고대리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밝은 것도 좋지만 멋진 것만 못한 법이죠.”

건우의 말에 본부장은 묘하게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선영보다는 우리를 모델로 세우는데 마음이 기울었다.

건우와 우리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떠올리기까지 했다.

건우의 말대로 젊지만 누구나 닮고 싶은 멋진 기운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럼 내가 말해두지. 고대리로 가겠다고.”

본부장이 비서를 부르려고 수화기를 들던 찰나였다.

“블랙박스는.”

“강차장. 너무 급하네. 수요일에 촬영 끝나면 바로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본부장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럼.”

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서를 부르던 본부장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건우는 비서에게 가볍게 목인사를 하고는 본부장실을 나섰다. 파티션 너머로 슬쩍 고개를 내밀고 있는 우리가 보였다.

“차장님.”

우리는 아무 종이나 들고는 건우에게 다가갔다.

“프로모션 때문에 드릴 말이 있어서요. 시간 괜찮으실까요.”

누구라도 들으라는 것처럼 우리가 크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에게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해독할 수 없는 눈빛만을 날려대면서 우리는 회의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림자처럼 스며들듯 회의실로 들어섰다.

“블랙박스는요.”

문을 닫자마자 우리가 속삭이듯 말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조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조건인지 차마 묻지 못했다. 뭔가 가벼운 조건은 아닐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본부장이 제시한 조건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뜨악한 얼굴로 우리는 건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할 말을 완전히 잃어버린 얼굴이었다.

“그래서 차장님하고 제가 사진을 찍는다는 거죠.”

“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것도…… 홈페이지에 실리는.”

우리의 눈동자가 끝없이 떨렸다. 홈페이지 메인에 당당하게 붙은 제 얼굴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멘탈이 붕괴되는 것만 같았다.

“저보다는 그래도 젊은 피가 나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제가 본부장님한테 설득을…….”

우리가 문고리를 잡고 본부장실로 돌진하려던 찰나였다. 건우가 우리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좋은 방법은 아닐 겁니다.”

“제가 생각보다 설득의 기술이 있거든요. 금방 설득하고 오겠습니다. 차장님.”

“내가 설득한 거라.”

담담한 건우의 말에 우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기름칠이 덜 된 기계처럼 삐걱거리면서.

“지금 그 말은 차장님이 저하고 찍겠다고 설득했다고 들리는데요. 아니죠.”

“맞습니다.”

건우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곧은 눈빛에 우리는 눈만 깜빡거렸다.

“저 표정도 어색하단 말이에요. 카메라 울렁증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홈페이지에 걸리는 건 생각도 하기 싫고요. 매일 제 얼굴 나올 거 아니에요.”

우리는 제 두 뺨을 쓸어내렸다.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이 벌써부터 회사 홈페이지 메인에 돌아다닐 것만 같았다.

어쩌면 얼굴만 따서 기괴하고도 웃긴 짤로 사내를 들썩거리게 만들지도 몰랐다.

어쨌든, 한 마디로 최악이었다.

“그래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폭격처럼 쏟아지는 건우의 말에 우리는 건우를 빤히 쳐다봤다.

무슨 말인지 당장 설명을 해달라는 눈빛이었다.

“커플 아이템도 샀는데 자랑해야죠.”

“차장님. 그건 자랑할 만한…… 그러니까 속옷이잖아요.”

우리는 건우에게 바투 다가서서는 낮게 속삭였다.

“설마. 겉에 입으실 건 아니죠.”

우리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아졌다. 우리는 건우가 붉은 드로우즈를 바지 위에 입는 몹쓸 상상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제가 무슨 소리를……. 근데 어차피 커플 아이템은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요.”

우리가 급히 말을 돌렸다.

“모두 모르지는 않죠.”

“그럼 누가.”

건우는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섰다.

“……적어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건우가 조용히 색정적인 미소를 흘렸다. 빤히 건우를 보던 우리는 슬그머니 건우의 눈길을 피했다.

무심한 얼굴로 드로우즈를 겉에 입은 건우의 모습이 너무도 강렬해 머릿속에서 떠날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죽일 놈의 상상력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