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66화 (66/102)

제 66화. 내 스타를 위한 조공

워크샵 해방을 알리는 고속버스가 도착했다. 모두의 끝인사를 받으면서 본부장은 제 차에 올라탔다.

본부장의 차가 점처럼 사라지는 순간까지 직원들은 제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본부장의 차가 완전히 연수원을 빠져나갔을 때.

모두 비적거리면서도 질서 정연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풀리지 않는 피로에 모두의 눈가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눌어붙어있었지만 모두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보였다.

버스 가장 한 쪽에서 암흑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우팀장만 빼면.

“다들 뭐해. 빨리 앉지 않고. 집에 가야지. 왜. 다들 갈 생각 없나.”

우팀장은 팔짱을 끼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에라도 화를 풀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모양새였다.

“거 최과장. 빨리 출발합시다.”

“그래도 인원은 체크해야…….”

“아니. 다들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잘 왔을라고. 내가 한가하지가 않아요. 출발!”

우팀장은 목에 퍼런 핏대까지 세웠다. 우팀장의 근처에 앉은 영업1팀 팀원들은 의자에 바짝 달라붙었다.

우팀장에게서 터지는 침을 조금이라도 피하려는 나름의 발악이었다.

“저희 그러면 출발하겠습니다.”

최과장이 버스를 훑고는 말했다. 빈자리 하나 남김없이 모두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었다.

연수원 한 가운데서 덩그러니 신호를 기다리던 버스가 출발했다.

우리는 차창 밖을 바라봤다. 건조한 갈색 나뭇잎이 조용히 바닥을 나뒹굴었다.

단단한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가던 우리의 눈길은 가지에 꽂혔다. 점묘화처럼 가지에 군데군데 번진 초록 잎들이 찬 기운을 몰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연수원의 풍경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봄이 온 걸까. 어쩌면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온풍 때문일지도 몰랐다.

“무슨 생각합니까.”

바깥을 보던 우리가 건우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탁구 경기요.”

“탁구 경기는 왜.”

“동영상 하나도 못 건졌거든요. 다시 못 볼 구경이었는데.”

우리는 제 이마를 톡, 건드렸다. 혹 만들기 기술을 한동안 보지 못할 것 같아 아쉽다는 눈초리였다.

“진귀한 구경이기는 하죠.”

건우는 별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담담히 말했다.

“그러니까요. 진짜 사이다 마시는 줄 알았다니까요.”

“괜찮았습니까.”

“완전요. 저도 나중에 차장님한테 탁구 배워야겠어요.”

말을 끝낸 우리가 쥐 잡듯 팀원들을 잡는 우팀장을 힐긋거렸다.

“딱 한 대만 때리고 싶거든요.”

건우의 눈길도 우리를 따랐다. 우리가 말하는 때리고 싶은 상대의 정체를 누구보다 잘 알겠다는 눈치였다.

“이왕이면 합법적으로.”

우리가 뒷말에 힘을 꾹 눌렀다. 빙긋거리는 우리의 미소는 묘하게 사악해보였다.

얄밉기만 한 우팀장에게 주먹만 한 혹을 만들 날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바득바득 주먹까지 그러쥐었다.

손을 푸는 우리는 당장 우팀장의 얼굴에 주먹을 꽂을 것처럼 비장해보였다.

하지만 우리의 굳센 의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밤새 문자를 하느라 누적됐던 피로가 삽시간에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꾸벅거리는 우리의 머리가 무거워졌다. 우리는 차창에 머리를 부딪치는 줄도 모르고 단꿈에 빠져있었다.

‘어머낫! 차장님. 여기서는 큰일 나는데.’

우리는 꿈에 나타난 건우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건우는 꿈에서조차 우리를 무장해제 시킬 만큼 섹시했다.

‘그럼 키스만…….’

꿈속에서 깊은 키스를 하려던 순간.

“……할게요. 차장님.”

우리의 잠꼬대가 흘렀다. 깜빡 졸았던 건우는 우리의 말에 눈을 떴다. 건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다.

동그랗게 오므린 우리의 입술이 움찔거리면서 앞으로 조금씩 나왔다.

누가 봐도 차창에 키스를 날릴 포즈였다.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가 다정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는 커다란 손으로 창에 부딪히려는 우리의 머리를 막아섰다.

누구보다 은밀하고도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건우의 손길에 우리의 머리는 건우의 어깨로 기울어졌다.

“헛!”

건우는 짤막한 탄성을 쏟아낸 선영과 눈이 마주쳤다. 건우는 비밀로 해달라는 것처럼 입술에 조용히 검지를 올렸다.

선영은 알겠다는 듯 살포시 눈을 감았다. 마치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슬그머니 건우는 주변을 살폈다. 모두 여전히 남은 취기에 흐무러지듯 의자에 널브러져 있었다.

간간히 코를 고는 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건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우리에게 눈길을 돌렸다.

우리가 힘들기라도 할까. 제 어깨까지 열심히 치켜들었다.

“……좋아요.”

우리는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을 남기고는 건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얇은 셔츠 사이로 우리의 따뜻한 숨이 번져나갔다.

정신없이 달리는 앞 유리창을 바라보던 건우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마저 돌았다.

청량한 우리의 향기가 건우의 코끝을 적셨다. 어깨를 채우는 적당한 무게감도 마냥 좋았다.

빠르게 달리는 버스는 모든 소리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길쭉한 터널로 들어간 버스로 잘은 빛이 들어왔다.

손톱만한 어둠 속에서 어깨에 기댄 우리는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다.

건우는 여전히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제 인생에 나타난 우리를. 건우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정말, 다시는.

***

HJ그룹 본사 앞.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버스가 본사 앞에 섰다. 버스의 실내등이 켜졌다.

눈두덩을 찌르는 빛에 모두들 깨어났다. 누구하나 멀끔한 꼴 없이 부스스하기만 했다. 주중 근무부터 주말의 절반을 잡아먹은 워크샵까지. 누적된 피로를 조금도 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리는 직원들의 동작은 날쌨다. 모두 얼마 남지 않은 주말을 즐기고 말겠다는 의지까지 태웠다.

찌뿌듯한 몸을 풀면서 우리도 버스에서 내렸다.

C조 조원들이 우리와 건우에게 걸어왔다.

“저희 가보겠습니다. 대리님. 차장님.”

“주말 잘 보내요.”

“대리님도 잘 보내세요!”

모두 급히 인사를 하고 파하는 분위기였다. 뻐근한 목을 주무르던 우리도 당장 집에 돌아가고 싶은 눈치였다.

밀린 원고도 걱정됐고 따뜻하게 목욕을 하면서 남은 피로도 몰아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습니까.”

“목이 왜 뻐근하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목을 가볍게 돌렸다. 하지만 뭉친 근육은 풀어질 줄을 몰랐다.

“나는 알 것도 같습니다.”

건우는 제 어깨를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어깨를 바짝 올리고 있는 통에 건우의 어깨는 아직도 얼얼하기만 했다.

“왜요.”

“일단은 가면서 얘기하죠. 전부 있으니까 정신이 없네.”

“그럴까요. 그럼 먼저 가시면 제가 눈치보고 따라갈게요.”

“그러죠.”

건우가 HJ그룹 본사로 들어갔다.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 우리도 본사 지하주차장으로 갈 계획이었다.

우리는 바삐 고개를 돌리면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모두 집에 돌아가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밀 작전이라도 펼치듯 우리는 슬금슬금 본사로 움직였다.

본사 입구의 자동문이 열렸다. 모두가 한 눈을 판 새에 우리가 본사로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수진이 제 손을 매만지면서 본사에서 나왔다.

“대리님. 어디 가세요.”

“나…… 사무실에. 두고 나온 게 있더라고. 수진씨는.”

“화장실 급해서요. 참느라 죽는 줄 알았거든요.”

“다행이네. 그럼 나는 먼저.”

“네. 주말 잘 보내세요. 대리님.”

수진은 제 배꼽에 손을 대고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래. 수진씨도.”

간결한 우리의 말을 끝으로 수진과 우리의 거리가 멀어졌다. 묘하게 탁한 기류가 우리의 두 뺨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회사로 들어가려던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가방 끈을 붙잡고 있는 수진의 모습이 보였다.

“수진씨!”

우팀장의 옆에 있던 최과장이 수진에게 손짓했다. 우리는 빤히 수진을 바라봤다. 갈까 말까. 내심 고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수진에게 다가서려다가 말았다. 괜한 말다툼만 지루하게 이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괜찮겠지. 최과장님도 있는데.’

짐짓 멈췄던 우리의 발걸음이 다시금 움직였다.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최과장도 있었고 보는 눈도 많았다.

우팀장이 괜스레 소란을 만들 작자도 아니었다. 우리는 짙은 걱정을 털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괜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그래야 편하게 푹 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열심히 자신을 다독여 봐도 우리는 찝찝한 맘을 털어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운전석의 차장을 두드렸다. 건우가 차창을 내렸다.

“차장님. 죄송한데요. 저 다시 올라갔다가 올게요.”

“잊은 거라도 있습니까.”

“걸리는 게 있어서. 정말 금방 오겠습니다.”

건우가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로비를 나서는 우리는 다급해보였다.

본사 앞을 살피는 우리의 눈동자가 빨라졌다.

수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우팀장의 모습조차도.

“황주임.”

우리가 황주임에게 달려가듯 빠르게 걸어갔다.

“혹시 수진씨 못 봤니.”

“집에 가는 것 같던데요.”

“우팀장님은.”

“아마도…… 집에.”

황주임은 자신 없게 말했다. 우팀장의 향방에는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리님. 그건 왜요.”

“아냐. 갔는지 궁금해서. 주말 잘 보내고.”

“넵!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황주임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가면서도 우리의 눈길은 자꾸만 수진이 서 있던 곳으로 향했다.

높다란 빌딩을 헤집고 바람이 밀려왔다. 바닥을 돌던 바람은 마른 나뭇잎을 거칠게 쓸었다.

우리는 황주임의 말을 무조건 믿기로 했다. 조그마한 상황 하나로 상상하는 일은 관두기로 했다.

소설 에피소드를 짜는 것도 아니고……. 잘 갔을 거다. 정말 괜한 걱정이야.

우리는 고개를 내젓고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일은 잘 해결하고 왔습니까.”

“제가 그냥 착각한 것 같더라고요. 별일 아니었어요.”

우리가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빨리 가서 쉬어야겠어요. 글도 쓰고.”

“일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아마도. 일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거니까. 글로 분출해줘야 머릿속이 말끔해지거든요.”

우리는 복작거리는 제 관자놀이를 살며시 두드리고는 말했다.

“글은 우리 집에서 쓰는 걸로 합시다.”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건우를 봤다.

건우에게 소설을 보여주는 일은 있었지만 작업하는 모습까지 보여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뇨. 그냥 집에서 할게요.”

“그럼 얼굴을 못 보잖습니까.”

“소설은 내일 쓸게요. 차장님. 오늘은 같이 저녁하면 되겠죠.”

“일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나도 급히 할 일도 있고. 그러니까 걱정 말고 써요.”

건우는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블랙홀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건우의 눈동자만 보면 우리는 꼭 홀려버릴 것만 같았다.

건우의 말대로 행동하도록.

“나도 분출을 해야 머릿속이 말끔해질 것 같기도 해서.”

건우의 말에 우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한 번에 건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무슨 분출을…….”

“글쎄.”

건우가 의미심장한 말을 날렸다. 분출이라는 말을 곱씹던 우리의 눈이 커졌다.

목구멍을 맴도는 말이 우리에게서 쉽사리 쏟아지지 못했다.

“그럼 갑시다.”

건우는 핸들을 돌리면서 조용한 미소를 흘렸다. 우리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거렸다.

설마. 차장님.

욕망을 분출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시죠. 정말 설마!

***

우리의 설마는 확실히 빗나갔다. 말끔하게 샤워를 마친 우리는 건우의 집에서 열심히 노트북만 두드려대고 있었다.

우리는 슬쩍 고개를 기울여 주방 쪽을 바라봤다. 음소거라도 한 듯 주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부스럭대는 소리조차 없었다. 우리는 정말로 건우가 주방에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우리의 따가운 눈길에 떠밀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건우가 주방에서 나왔다.

새빨간 딸기와 정갈하게 깐 레드향과 컵까지 들고.

“먹고 해요.”

건우는 거실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놨다.

“제가 괜히 귀찮게 해드리는 것 같은데.”

“아뇨. 재밌습니다.”

“뭐가요.”

건우는 적절한 단어를 찾는 것처럼 짐짓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조공.”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건우가 담담히 말했다. 조공이라는 말과 건우의 건조한 표정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열성적으로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진정한 팬의 표정이라면 모를까.

“예. 지금 조공 중입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조공을 하신다고.”

당황스럽게 밀려든 단어에 우리도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그러고 싶어서.”

건우가 우리에게 컵을 내밀었다. 거무죽죽한 빛깔의 액체가 컵에 가득 담겨있었다.

“흑마늘 즙입니다.”

“정말 괜찮아요. 차장님.”

“기력 떨어졌을 때는 흑마늘 즙만 한 게 없답니다.”

우리는 얼결에 컵을 받아들었다. 그야말로 갑작스러운 흑마늘의 습격이었다.

한없이 까만 즙을 바라보던 우리는 눈동자만 굴려댔다.

제 아무리 건강에 좋아도 쓰거나 알싸한 즙만큼은 도전할 생각조차 없었던 우리였기 때문이었다.

“장운동에도 좋고. 그리고…….”

흑마늘 효능을 읊던 건우의 말이 멈췄다. 완벽하게 효능을 숙지하지는 못한 모양새였다.

“잠깐.”

건우가 다시 주방으로 걸어갔다.

차장님, 장운동 너무 활발해서 문젠데요.

“독소도 제거해주고 스트레스를 푸는데도 좋답니다.”

건우는 흑마늘 즙이 가득 담긴 종이 박스까지 들고 나와서는 설명에 열을 올렸다.

결국 박스에 있는 글자를 읽는 것이 전부였지만.

“정력에도…… 이건 넘어가고.”

“차장님 드시는 건 어떠세요.”

우리가 두 손으로 컵을 내밀었다.

“사양하겠습니다.”

“왜요.”

“좋은 걸로 바쳐야죠. 조공은.”

건우의 눈빛에 떠밀려 우리는 결국 단숨에 흑마늘 즙을 들이켰다. 조금 단맛이 돌기는 했지만 마늘 특유의 맛을 모두 감출 수는 없었다.

우리는 조금 알알한 혀끝을 내밀고는 원망스럽게 건우를 쳐다봤다.

사약이라도 받은 신하처럼.

“한성민이 사왔으니 괜찮은 걸 겁니다.”

건우는 박스에서 사탕 하나를 꺼냈다. 붉은 빛이 도는 알사탕이었다.

“생각만큼 건강식품에 관심이 많은 친구라.”

사탕의 껍질을 깐 건우는 우리의 혀끝에 사탕을 놔주었다. 끈적끈적한 타액에 사탕이 녹아들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사탕을 먹었다. 우리의 말캉한 입술 위로 건우의 손끝이 스쳤다.

마늘 특유의 은근한 매운 맛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사탕을 오물거리지도 않은 채로 건우를 봤다. 조금씩 번지는 달달한 맛이 입속의 점막을 짙게 적셨다.

사탕 하나도 특별하게만 느껴졌다. 단 기운을 품고 넘어가는 타액이 우리는 유달리 뜨거운 것만 같았다.

“약간. 네. 약간…… 마늘 맛이 있기는 하네요. 기운도 나는 것 같고.”

“그건 너무 빠른 것 같은데.”

“밤새 마감 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노트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눈을 팔 때가 아니었다. 소설 한 화 마감을 쳐야만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폭풍 같은 건우를 감당할 체력을 비축하지 못했다.

흑마늘 즙을 배부르게 마시면 모를까.

“나도 일 해야겠네.”

건우도 제 노트북을 펼쳤다. 제법 진지한 얼굴로 노트북을 보는 건우의 마우스는 한없이 빨라졌다.

딸깍거리는 소리가 꽤 심각해보이기까지 했다. 건우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열심히 스크롤을 내렸다. 글을 쓰던 우리가 건우를 힐끗 쳐다봤다.

“할 말 있습니까.”

건우는 여전히 노트북을 보면서 말했다.

“아뇨. 할 말은 없는데 궁금해서요. 화보 촬영 최종 컨셉이라도 나왔나 싶어서.”

“그건 아직입니다.”

“그럼. 설마 성운백화점 프로젝튼가.”

우리는 호기심 넘치는 눈길로 건우의 노트북을 봤다.

하지만 재빠른 건우의 손길에 노트북 화면은 조금도 보지 못했다.

“것도 아닙니다.”

“그럼 설마 저 몰래 비밀 프로젝트라도 하는 건…….”

우리가 말끝을 늘리는 척 하면서 건우에게 달려들었다. 건우의 쪽으로 돌아간 노트북 화면을 보고야 말겠다는 다부진 몸짓이었다.

건우의 품에 반쯤 안긴 줄도 모른 채로 우리는 건우의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니. 차장님. 진짜…….”

멍한 눈동자로 화면을 보던 우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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