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화. 아무도 몰랐던 탁구 기술
건우가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다가섰다. 금방이라도 서로의 숨결이 녹아들 것처럼 우리와 건우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심해처럼 깊은 건우의 눈동자에 우리는 그대로 홀려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홀렸는지도 몰랐다.
“내려갈까요.”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는 문 쪽을 가리켰다.
“조금 더 있죠.”
“다들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럼 아쉬운 대로.”
나직한 건우의 목소리가 녹아내렸다.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가 이불 끝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흘러내린 이불을 따라 우리도 미끄러져 내려왔다.
건우의 입가에 색정적인 미소가 돌았다. 건우는 커다란 손으로 우리의 얼굴을 감쌌다.
“금방 끝내겠습니다.”
뜨겁게 젖어드는 건우의 말에 우리는 굳은 침만 넘겼다. 워크샵만 아니었다면 당장 건우의 목에 팔을 두르고는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을지도 몰랐다.
건우만큼 우리도 밤새 건우가 그리웠다. 낮은 목소리, 차분한 숨소리, 야릇한 미소, 은은한 향기…….
그 모든 것은 상상만으로도 우리를 달뜨게 만들었다. 마치 아는 맛이 더 그리운 것처럼.
고개를 기울인 건우가 우리의 입술을 탐했다. 벌어진 입술을 타고 더운 열기가 몰려들었다.
우리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새에 건우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더욱 바투 건우에게 다가섰다.
꼭 원초적인 욕망에 굴복해버린 것처럼 보였다. 한 줌의 숨결도 흐를 틈이 없이 우리와 건우는 서로의 향기를 촘촘히 채워나갔다.
“차장…….”
우리의 말은 건우의 입속으로 꼼짝없이 사라졌다. 건우가 지나간 자리마다 신경이 예민하게 살아났다.
건우의 팔을 잡은 우리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건우가 우리에게 더욱 깊숙이 밀려들 때마다 건우의 단단한 팔 근육이 연신 꿈틀거렸다.
건우의 숨소리가 우리에게 끈적끈적하게 녹아들었다. 조금도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숨결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좁은 장롱은 금방이라도 열기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똑똑. 조금씩 또렷해지는 문 두드리는 소리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단숨에 건우를 덮쳤을지도 몰랐다.
“진짜 가야할 것 같아요.”
우리가 뒤로 몸을 젖혔다. 맞붙었던 입술이 떨어졌다.
우리는 문 쪽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지만 건우의 시선은 우리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방해꾼이 상당하네.”
건우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여기 있을 겁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그죠.”
우리의 말에 건우는 우리를 빤히 바라봤다. 번들번들해진 우리의 입술은 유난히도 붉었다.
하얀 설원에 피어난 동백꽃처럼. 탁, 튀는 붉은 빛이 우리의 두 뺨에까지 진하게 돌았다.
“예. 그게 좋겠습니다.”
건우는 다정스러운 손길로 우리의 입술을 쓸었다. 장롱 속에 있는 모습마저 건우는 그저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조명하나 없이도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누구라도 당장 찾아버릴 만큼.
“확실히.”
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문을 열어줄 때가지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치지 않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문을 향해 걸어가던 건우가 뒤를 돌았다. 두 팔로 힘껏 흘러내린 이부자리를 밀어 넣는 우리가 보였다.
우리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냉큼 장롱 속에 들어갔다.
조용히 닫히는 장롱이 우리의 발에 채여 다시 열렸다. 머쓱한 미소를 터뜨리고는 우리는 다시금 꽉 문을 닫았다.
여전히 타는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건우는 현관문에 섰다.
“누굽니까.”
“차장님. 저요. 조력자.”
선영은 뒷말을 속삭이듯 말했다. 그 바람에 건우는 조력자라는 말은 듣지도 못했다. 건우가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내려 갈 겁니다.”
“우팀장님이 자꾸 차장님이 도망간 거라고 하셔서요. 근데 대리님은.”
“왜 내 방에서 찾습니까.”
“그냥 여쭤본 거였는데. 여기 계시는구나. 제가 조력자로써 시간을 벌까요.”
선영은 아무도 없는 빈 복도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비밀스러운 스파이 업무를 완성하게 말겠다는 묘한 의지마저 풍겼다.
“시간을 버는 게 좋겠죠. 그럼 제가 제 탁구 실력으로 정신을 쏙 빼놓을게요.”
“배운 적은 있습니까.”
“이미지 트레이닝하면 될 걸요.”
무한 긍정을 뿜어내는 선영을 건우는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인조이 커플 타임하세요. 차장님.”
선영은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심히 들뜬 모습에 건우는 팔짱을 꼈다.
미친 사교성을 발휘하는 성민과는 제법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같이 가. 선영씨.”
어느 샌가 장롱에서 뛰쳐나온 우리가 신발을 냉큼 구겨 신었다.
“대리님. 왜요. 제가 시간 벌게요.”
“같이 내려가는 게 덜 이상할 것 같아서. 가자.”
“해피 커플 타임은요.”
“그건 차장님하고 내가 알아서 즐길게. 가자구.”
우리는 한없이 커플 타임을 외치는 선영의 등을 떠밀었다. 우리를 보는 선영은 커플 타임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선영과 나란히 내려가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확신했다.
적어도 온갖 추리를 해댈 우팀장의 의심을 피하기엔.
“곧 내려오신다고 할게요.”
“예.”
우리의 빠른 상황 판단을 건우는 전적으로 믿었다.
고로 여자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진다던 할머니의 말을 완벽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너무 슬프잖아요. 대리니임.”
“슬플 게 뭐가 있는데.”
“단둘이 계실 시간도 필요한데. 저 코딱지 같은 탁구 때문에…….”
계단을 내려가던 선영은 투덜대듯 말했다. 선영의 얼굴에는 간만에 맡은 큐피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짙은 안타까움이 배어있었다.
“괜찮으니까 얼른 가자. 빨리 끝내고 올라가야지.”
“그래도…….”
“해피 타임은 걱정 말고.”
우리가 선영의 어깨를 다독거리면서 말했다.
“어차피 역사는 밤낮으로 이뤄지는 법이니까.”
우리의 목소리는 꽤나 은밀했다. 의미심장하게 던져진 우리의 말에 선영은 우뚝 멈췄다.
그리고는 멀어지는 우리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역사…… 밤낮.”
선영은 숙소 입구에 덜렁 서서는 우리의 말을 곱씹었다. 그제야 선영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역사라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표정이었다. 선영은 우리의 말이라면 확실히 가슴에 새기겠다는 것처럼 단단히 그 말을 담고는 우리에게로 걸어갔다.
“대리님. 같이 가요!”
선영의 우렁찬 목소리가 맑은 하늘을 짙게 적셨다.
***
낡은 탁구대 위는 말끔했다. 조그마한 탁구공이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이 번들거리기까지 했다.
탁구대 앞에는 건우와 우팀장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우팀장은 온갖 호들갑을 떨면서 몸을 풀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연체동물이 될 것처럼.
반면에 건우는 탁구 라켓만 그러쥐었다. 제법 널찍한 탁구대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팔짱을 끼고 있던 우리가 주변을 살폈다. 청량했던 하늘도 어둑해진 것만 같았다. 산등성이를 타고 흐르는 바람도 스산하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우팀장님이 이기지 않을까. 탁구 하나는 장난 아니잖아.”
“하긴. 탁구까지 잘하면 강차장님이 너무 비현실적이기는 하지.”
“우팀장님 신난 얼굴 상상하기도 싫다.”
모두 조심스럽게 우팀장의 승리를 점쳤다. 그간 우팀장이 보여줬던 실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리님. 차장님 괜찮으실까요.”
모두의 말에 떠밀려 선영도 잔뜩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다들 너무 우팀장님이 잘하신다고 하니까 팔랑거려요.”
“가끔은 소수가 맞을 때도 있으니까.”
“그죠. 믿어야겠죠.”
“차라리 그냥 이기는 거면 다행인데…….”
건우를 보던 우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길 생각 없습니다.’
묘하게 자신만만하던 건우의 말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다른데 관심이 생겨서.’
건우가 말하던 관심의 정체를 우리는 아직도 간파하지 못했다. 무감한 건우의 얼굴에서 힌트를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려웠다.
모두 흥미진진한 얼굴로 탁구 대결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본부장은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호들갑스러운 우팀장의 탁구 포즈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꼽 빠져라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장기자랑의 사회를 맡았던 최과장이 경기 진행을 담당했다.
“우선은 선의의 경쟁을 위한 악수 한 번.”
최과장의 말에 건우가 탁구 라켓을 내려놓고는 우팀장에게 걸어갔다.
요란하게 몸을 풀던 우팀장은 건우를 훑었다. 기선제압을 하고야 말겠다는 것처럼 우팀장은 눈을 부라렸다.
“눈 아프시겠습니다.”
조근조근한 건우의 말이 우팀장을 덮쳤다.
“무슨 소리. 내 눈이 본래 커서.”
“눈물이 흐르시는 것 같아서.”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남자는 딱 태어나서 세 번만 우는데…….”
“적당히 악수하고 시작하시죠. 우팀장님.”
길게 설교를 시작하려던 우팀장의 말허리를 건우는 단칼에 잘라냈다. 그리고는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그렁그렁 눈물이 매달린 눈에 잔뜩 힘을 주면서 우팀장은 재빨리 악수를 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눈물이 떨어지는 모습은 보여줄 수 없다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서브는.”
탁구대 가운데 선 최과장이 건우와 우팀장을 보고는 말했다.
소매로 대강 눈물을 훔친 우팀장은 껄렁거리면서 탁구대 앞에 바투 섰다.
“강차장님 먼저 주죠. 보아하니 금방 끝날 것 같기는 한데.”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우팀장의 여유만만한 양보를 건우는 놓치지 않았다. 우팀장은 금세 수비 자세를 취했다.
건우의 탁구공을 모조리 막아내고 말겠다는 것처럼 이까지 악물었다. 우팀장을 보던 건우가 바람 빠지듯 웃었다.
건우가 손을 곧게 폈다. 손바닥에 탁구공을 올리고는 서브 자세를 취했다. 부드럽게 손목 스냅을 이용해 건우는 우팀장의 쪽으로 탁구공을 날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우팀장의 광활한 이마를 향해.
“악!”
강하게 날아든 탁구공이 우팀장의 이마를 정확히 맞췄다. 짧고 강렬한 비명소리는 묘하게 경박스러워보였다.
어벙한 얼굴로 우팀장은 제 이마를 감쌌다. 일순간 정적이 돌았다. 로켓처럼 날아간 주홍색 탁구공을 모두 잊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모두 웃음을 참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깔깔거리는 모습을 들켰다가는 우팀장의 후환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웃음을 참는 모두의 얼굴은 새빨개지고 있었다.
심지어 본부장까지 먼 산을 바라봤다.
“강차장. 지금 뭐하는 겁니까.”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 우팀장은 슬금슬금 본부장의 눈치를 봤다.
본부장의 앞에서 소리를 높여봐야 제 인상만 나빠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건우의 얼굴은 무미건조했다. 심지어 사과하는 말투조차도.
“일부러 이마로 던지신 것 같은데.”
“설마요. 농담도 지나치십니다.”
여유로운 건우의 말에 우팀장은 애꿎은 이마만 문질러댔다. 부글부글 끓는 맘을 구태여 진정시키면서 우팀장은 탁구공을 잡았다.
말로 이길 수 없다면 얄미운 건우의 이마를 향해 똑같이 탁구공을 던져줄 생각이었다.
봉긋하게 부풀 건우의 이마만 생각해도 우팀장은 속이 시원해지는 것만 같았다. 우팀장은 탁구 라켓을 꽉 붙잡았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강스파이크를 날릴 것이었다.
우팀장은 장기자랑의 치욕을 탁구로 씻을 참이었다.
‘탁구 실력이라고 허접해서는. 강차장. 진짜 한 방에 보내주지.’
탁구공을 가볍게 던진 우팀장은 강하게 서브를 넣었다. 탁구공은 정확하게 건우의 이마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기다리던 우팀장의 예상은 처참하게 빗나갔다. 건우는 누구보다 부드럽고도 정확하게 탁구공을 쳐냈다.
도리어 긴장을 늦춘 우팀장은 건우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했다. 헛스윙을 날리던 우팀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완벽하게 조절된 힘은 건우의 탁구 실력을 대강 짐작하게 만들었다.
우팀장은 믿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건우는 확실한 실력자였다.
“강차장 봐줬더니 막 힘이 나나봐?”
우팀장은 모두 예상했다는 것처럼 허세를 부려댔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맘대로 하시죠.”
하지만 건우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우팀장의 깐족스러운 발재간조차 건우의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못한 것이었다.
건우의 스코어가 한없이 올라갔다.
“대박. 대리님. 벌써 1대 0이예요.”
선영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점수판을 가리켰다. 첫 번째 게임은 건우의 완승이었다.
맹렬한 건우의 공격에 우팀장은 꼼짝하지 못했다.
F&B사업부 최고의 탁구왕이라는 수식어가 고꾸라지는 순간이었다.
우팀장은 씩씩거리면서 탁구공을 쫓는데 정신이 없었다. 수비에 온 힘을 쏟느라 땀을 비처럼 쏟아낼 지경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팀장의 신경을 긁는 것은 건우의 서브였다.
던지는 족족 우팀장의 이마를 톡톡, 때렸기 때문이었다.
“강차장! 진짜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냐고.”
우팀장은 목에 핏대까지 세우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도 제대로 화가 풀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우팀장은 겉옷까지 거칠게 벗어젖히면서 건우에게 다가갔다.
“일부러 그러는 거죠. 나 신경 긁으려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서브는 쥐약이라.”
“아니. 못하는데 자꾸 똑같은데만 맞출 수가 있나.”
“기분 탓일 겁니다.”
건우의 말에 우팀장은 달리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화를 내고 있는 스스로만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돌아가시죠.”
건우가 탁구 라켓으로 반대쪽을 가리켰다.
“깔끔한 승부. 알죠. 강차장님.”
“예.”
“페어플레이 합시다. 자꾸 허접한 서브 말고. 지켜봅니다.”
“얼마든지.”
제자리로 돌아가면서도 우팀장은 건우를 빤히 쳐다봤다. 지켜보고 말겠다는 제스처까지 가감 없이 취했다.
그야말로 우팀장은 이판사판이었다.
얍삽한 기술을 써서라도 건우의 승리만을 기필코 막겠다는 듯 탁구 라켓 타면을 손바닥으로 힘차게 두드려댔다.
‘들어와. 다 막아줄 테니까.’
우팀장은 손을 까딱거렸다. 냉기 섞인 조소와 함께 건우는 강한 서브를 날렸다.
매섭게 날아드는 탁구공의 속도에 우팀장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꼭 맹수를 발견하고 냉큼 목을 숨기는 노쇠한 자라처럼.
잔뜩 쭈그러든 몸으로 우팀장은 주변 눈치만 살폈다.
“거참! 강차장님. 서브 한 번 진짜 못하시네.”
우팀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민망한 기운을 털어내고 말겠다는 민망한 웃음이었다.
“잘 봐요.”
“잘 보고 있습니다.”
“서브도 가르쳐 드려야하나. 손이 많이 가는 분이네. 봐요. 부드럽게.”
우팀장의 부드러운 서브 끝은 유쾌하지 않았다.
살벌한 탁구 경기 속에서 우팀장은 몇 번 더 이마를 얻어맞았다.
게다가 2대 0으로 완벽하게 패배하기까지 했다.
“라켓이 별로네.”
축축한 윗옷을 흔들어대는 우팀장의 얼굴은 구겨졌다.
“내가 진짜 강차장님 봐준다고 라켓까지 좋은 걸로 넘겨주고.”
우팀장은 탁구대에 거칠게 탁구 라켓을 던졌다. 그리고는 벤치로 걸어갔다. 윽박지르는 우팀장의 목소리에 영업1팀 팀원들만 어쩔 수 없이 우팀장을 챙겼다.
우팀장은 가자미눈으로 건우에게 버선발로 달려가는 본부장을 쳐다봤다.
“강차장. 탁구까지 잘하면 어쩌나.”
본부장은 감탄하듯 말했다.
“누가 하늘이 공평하다고 그래. 서브만 잘 넣으면 더 끝내주겠어.”
“서브는…….”
흐르는 땀을 닦던 건우가 직원들 속에 섞인 우리를 바라봤다.
“전문가한테 배우겠습니다.”
“전문가 누구.”
본부장은 건우의 시선을 따라갔다. 시원한 냉수를 들고 있던 우리의 눈동자가 한없이 빠르게 굴러갔다.
무슨 상황인지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설마 고대리 말하는 건가.”
“예.”
“고대리가 탁구를 잘하는 줄 몰랐는데.”
본부장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그럼 한 수 배우러 가겠습니다.”
“아…… 그래. 그래.”
건우의 말에 본부장은 기꺼이 길을 내주었다. 숨겨진 탁구 인재의 폭풍 성장을 장려하는 몸짓이었다.
건우가 우리에게 다가섰다. 그리고는 냉수를 가져갔다. 뜨거웠던 손바닥의 열기가 한결 식어가는 것만 같았다.
“근데 본부장님이 너무 쉽게 보내주시는데요.”
“좋죠. 덕분에 둘만 있을 시간도 벌고.”
아무도 보지 않는 짤막한 찰나. 건우가 우리를 향해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은 건우를 찬란하게 비췄다.
호수를 적시는 물비늘처럼 눈부신 미소에 자신도 웃어버릴까. 우리는 입술에 꾹 힘을 주었다.
“아까는 괜히 탁구공 잘못 날리신 거죠.”
“기술입니다.”
“무슨 기술인데요.”
우리는 순수한 얼굴로 물었다. 탁구대에서 멀찍이 멀어진 건우는 우리의 쪽으로 약간 몸을 기울였다.
“혹 만들기 기술이랄까.”
“혹 만들기 기술이요?”
아무도 없는 벤치 앞에서 건우는 우리의 이마를 가리켰다.
“꽤 아플 겁니다.”
“설마…….”
“같은 곳만 때렸거든.”
사악한 미소가 건우의 입가를 적셨다.
아무도 몰랐던 탁구의 기술에 우리는 슬그머니 엄지를 치켜들었다.
혹을 만들어내는 탁구 기술이라니…….
정말 끝내주게 마음에 드는 기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