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화. 진짜 키스를 가르쳐줄 때
건우의 주먹은 금방이라도 우팀장의 얼굴을 날려버릴 기세였다. 그 짤막한 순간. 우리의 눈은 커졌고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건우가 구설수에 휘말리도록 마냥 놔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팀장의 정강이를 힘껏 찼다.
“아!”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욕지기를 누르면서 우팀장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정강이를 감쌌다.
덕분에 건우의 주먹은 우팀장에게 꽂히지 못하고 허공만 스쳤다.
“지금 무슨 짓이야. 고대리.”
우리를 노려보는 우팀장의 얼굴이 마구 구겨졌다.
우팀장은 금방이라도 우리에게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제가 당한 만큼 돌려주고 말겠다는 듯이.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고. 어디서 감히 상사 다리를 차.”
“죄송해요. 바닥이 미끄러워서요.”
“말 같은 소리를 해.”
“굳이 저희 가운데로 지나가다가 절 치셨다는 팀장님 말보다는 제 말이 더 말이 될 것 같은데요.”
우리는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는 지지 않고 대꾸했다. 우팀장에게 약한 모습이라도 보였다가는 금방 기세등등해져서 자신을 맹렬하게 공격할 것이 빤했기 때문이었다.
약한 자에게 한없이 강한 우팀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어디서 말대꾸야.”
우팀장의 강압적인 목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뭘 봐. 구경들 났어?”
우팀장은 주변을 보면서 괜한 시비를 걸었다. 모두 꼭지가 돌아버린 우팀장을 피해 달아났다. 잘못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득바득 이를 갈던 우팀장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제법 두툼한 우팀장의 손이 분노에 차 떨렸다.
“강차장님. 팀원 관리 못하겠으면 팀장 자리를 관둬요.”
정강이를 타고 번지는 아릿한 기운을 견뎌내면서 우팀장은 다리에 힘을 가득 주었다.
“이딴 식으로 천방지축이라 골치 아프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고.”
“…….”
“아주 따끔하게 훈계해줄 수도 있고.”
우리를 보는 우팀장의 얼굴에는 미소 한 줌 없었다.
우팀장이 우악스러운 손길로 우리의 팔을 낚아채려던 순간. 건우가 우팀장의 손목을 잡았다.
“적당히 하시죠.”
“강차장님 지금 나한테 훈계하는 겁니까.”
“아뇨. 주의 말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와…… 살벌하시네.”
말을 끝낸 우팀장은 헛웃음을 뱉었다. 그저 기가 막힌다는 얼굴이었다.
우팀장은 발버둥을 치듯 건우의 손을 떨치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다했다.
건우에게 붙잡혀 파닥거리던 우팀장의 손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우팀장의 손목은 벌게져 있었다.
“그러니까 조용히 계세요.”
건우의 낮은 목소리가 천천히 번졌다.
“내가 왜 조용히 있어야 하는데요.”
“잘못했으니까.”
“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기억은 없어져도 증거는 남는 법이죠.”
건우의 말에 우팀장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간밤에 있던 일을 더듬거렸다.
약을 올리는 건우와 우리의 모습에 열 받아 홧김에 수진을 건드렸다.
주차장으로 밀려들던 발소리만 아니었다면 모든 것이 완벽했을 것이었다.
조용한 그곳에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수진이 할퀴었던 손등도 금방 나을 것이었다.
그곳에 꼬리가 밟힐 만한 증거가…….
기억을 더듬던 우팀장의 눈빛이 우뚝 멈췄다. 본부장의 차에 달려있는 블랙박스가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러니까 벌 받을 때까지만 조용히 계세요.”
“그게 무슨.”
“꿈도 크시네요. 설마 그냥 조용히 넘어갈 줄 아셨습니까.”
건우의 단정한 말에 우팀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블랙박스만 확인하면 모두 끝날 일이었다.
건우는 우팀장이 제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야 이번 일을 넘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짐짓 흔들리던 우팀장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네.”
그리고는 심드렁하게 건우의 말을 넘겼다. 우팀장은 제 주머니에 두 손을 쑤셔 넣었다.
“강차장님 맘대로 하세요.”
우팀장의 말에 우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무도 여유로운 반응이었다.
그깟 증거를 찾을 테면 찾아보라는 표정.
“나 귀찮게 하지만 말고.”
“…….”
“근데 마케팅은 확실히 여유가 있나 봐요. 영업은 현장 도느라 몸이 부서져라 바쁜데. 상상력이…… 어우! 남다르네.”
우팀장은 소름 끼친다는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간밤의 일을 단호하게 부정하던 우팀장은 우리만 빤히 쳐다봤다.
우팀장에게 우리는 제 앞길을 막는 원흉이었다. 왜 하필 고우리한테 재수 없게 들켜서는.
우리를 쏘아보는 우팀장의 눈빛에는 원망이 그득 담겨있었다.
“다들 여기 있었네.”
묵직하던 기류를 깨고 본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팀장은 재빨리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두 손을 맞잡은 우팀장은 꼭 왕이라도 알현하는 모양새였다.
“아침 다 먹었으면 탁구 내기 어때.”
본부장은 탁구를 하는 시늉을 하면서 껄껄 웃어댔다. 그러다가 묘하게 도는 냉기를 감지하고는 건우와 우팀장을 번갈아 쳐다봤다.
하지만 본부장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간파하지는 못했다.
“무슨 일 있었나.”
“아뇨. 무슨 일은요. 본부장님 센스는 정말. 아침에는 역시 탁구죠.”
“역시. 우팀장이라니까. 사람이 뭘 좀 알아.”
“제가 뭘 알겠습니까. 그저 본부장님 따라가는 것뿐인데.”
우팀장은 슬쩍 두 손을 비비고는 아부 하는데 열중했다. 모닝 딸랑이가 발동한 것이었다.
침까지 튀기면서 본부장 칭찬에 열을 올리던 우팀장은 빙긋 미소를 날렸다. 누가 봐도 진심 따위는 없는 가짜 미소였다.
“강차장은 탁구 어때.”
하지만 우팀장의 노력에도 본부장의 관심은 온통 건우에게 꽂혀있었다.
“강차장님은 피곤한 것 같은데. 저희끼리 하시죠.”
“내가 강차장만 할 때는 말이야. 밤새 마셔도 날아다녔어.”
“어우. 본부장님은 역시 다르십니다.”
우팀장은 본부장을 향해 감탄을 날려댔다. 본부장의 말이라면 하늘이 바닥에 있다는 말에도 맞장구 칠 우팀장이었다.
“근데 강차장님이 보기보다 비실비실해서. 쉬는 게…….”
“하겠습니다.”
건우가 우팀장의 말허리를 싹둑 잘랐다. 우팀장은 가자미눈으로 건우를 흘겨봤다.
갑작스럽게 탁구를 하겠다고 나서는 건우가 못마땅한 눈빛이었다.
조용히 우팀장의 얼굴을 적시던 미소도 조금씩 사악해져갔다.
“강차장님. 탁구는 치실 줄 아시나.”
우팀장은 도발하듯 말했다.
“못 치지는 않습니다.”
“채 흔드는 것만 할 줄 아시는 거 아닙니까. 그럼 골치 아픈데.”
“걱정 마시죠. 우팀장님과 같은 편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낸들 하고 싶은 줄 아나.”
단호한 건우의 말에 우팀장은 구시렁거렸다. 자신이 거절을 외치기도 전에 건우에게 거절당한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셔츠만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그래. 천천히 내려와. 우팀장은 나하고 같이 가지.”
본부장의 말에 우팀장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숙소 문까지 활짝 열어주었다. 마치 숙소 문지기라도 되는 듯.
우팀장은 당장 탁구 경기장이라도 지을 기세였다. 건우는 멀어지는 우팀장을 빤히 바라봤다.
“가죠.”
건우가 제 방으로 향했다. 멈췄던 우리의 걸음도 움직였다.
“차장님. 탁구 쉽지 않을 거예요.”
“이유는.”
“우팀장님이 일은 못해도 탁구 실력 하나는 탑이거든요.”
계단을 올라가던 우리는 마냥 걱정스러웠다.
우팀장은 작년 사내 탁구 대회 남자부 우승자였다. 그 명예를 지키겠다면서 우팀장은 독하게 벼르고 있을 것이었다.
“이길 생각 없습니다. 우팀장 탑은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그게 무슨.”
“다른데 관심이 생겨서.”
“그러니까 그게 무슨 관심인데요.”
우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곧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나지막이 번지는 건우의 말에는 정확한 답이 없었다. 묘한 미소만 건우의 얼굴을 적셨다.
건우는 굳게 닫혀있던 제 방문을 열었다. 은은하게 번지는 건우의 향기에 취해 우리는 방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살폈다. 모두 아침을 먹거나 탁구 경기 준비로 바쁜지 복도는 조용하기만 했다.
바람이 잔잔히 창문을 흔드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건우의 방을 보던 우리는 뜨뜻한 침만 삼켰다. 익숙한 방이 사뭇 은밀하게만 느껴졌다.
“들어와요.”
“아뇨. 저는 밖에 있을게요. 보는 눈도 많을 것 같고.”
“그럼 더 은밀히 행동하죠.”
건우의 얼굴에 매혹적인 미소가 돌았다. 건우가 우리의 팔목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그 손길에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할 시간도 없이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조용했다.
“저는 그냥 밖에…….”
“지금은 여기가 더 안전할 것 같습니다.”
“되게 변명처럼 들리는데요. 차장님.”
우리가 제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들켰네.”
건우의 목소리가 방을 맴돌았다. 묘하게 유혹적인 말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움질거렸다.
건우가 현관에 덜렁 서 있던 우리에게 다가갔다.
“변명 맞습니다.”
건우의 얼굴에 스민 미소가 제법 유혹적이었다.
“단둘만 있고 싶어서.”
곧은 말이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우리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건우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던 우리는 건우에게 홀딱 홀려버렸다.
“제가 진짜 들킬까봐 들어가는 거예요. 혹시 바깥에 누가 있을까봐.”
“당연하죠.”
“소리도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변명처럼 여러 말이 우리에게 달라붙었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섰다. 건우의 방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기만 했다.
건우가 카디건을 벗었다. 젖은 건우의 흰 셔츠 위로 탄탄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무튼 그래도 너무 오래 있으면…….”
우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건우가 우리의 허리를 안았다.
“큰일 날 수도 있겠죠.”
밀착된 몸을 타고 건우의 온기가 선명하게 전해졌다. 건우의 가슴팍을 빤히 쳐다보던 우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남들의 생각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얼굴로 건우는 우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우리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얼른 갈아입어야 할 것 같은데요. 차장님.”
“그러니까 더 갈아입기 싫네.”
“왜요.”
“다 갈아입으면 나가야 될 거 아닙니까.”
건우는 생각만으로도 미련이 남는다는 목소리였다. 밤새 얼마나 우리와 둘만 있는 시간을 꿈꿨는지 몰랐다.
우리를 볼 수 있는 아침만을 간절히 기다리기만 했다. 그런 굶주림 끝에 다가온 기회를 건우는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는 모양새였다.
“점점 더 나가기 싫어집니다.”
우리의 허리를 감싼 건우의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건우는 제 쪽으로 우리를 당겼다.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성은 건우의 품에서 벗어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본능만은 건우를 지독하게 갈구했다.
‘진짜 큰일 날지도 몰라.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된다고.’
애절한 외침에도 우리의 눈길은 건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가지 말까.”
마침내 건우의 말이 흘렀을 때. 단단하게 쌓은 우리의 이성은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건우의 뜨거운 말은 우리에게 박혀버렸다. 절대로 빠지지 않을 것처럼 아주 단단하게.
“그럼 진짜 큰일 나겠죠.”
“아마도.”
“누가 방에 들이닥칠지도 모르고.”
우리의 말은 느릿하게 건우에게 달라붙었다.
“거기다 아직도 젖은 셔츠 입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결론은.”
“키스만 하고 얼른 내려가는 걸로 해요. 나머지는 올라가면 그때 하겠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주변 눈치를 살피고는 냉큼 까치발을 들었다.
건우와 우리의 입술이 딱 붙었다가 떨어졌다. 날랬던 우리의 동작에는 제법 절도가 있었다.
“그럼 저는…….”
“어디 가려고요.”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우리가 방 한 구석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건우는 우리를 놓아줄 기색이 없어보였다.
“키스는 생략입니까.”
“그건 방금 해드렸는데.”
우리는 건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입술은 스쳤는데 키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설마요. 키스 맞을 걸요.”
능청스러운 건우의 말을 우리는 힘껏 방어했다. 정말 제대로 키스했다가는 간신히 붙잡았던 이성의 끈을 놓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절대 밀려날 수 없다는 것처럼 우리는 눈에 꽉 힘을 주었다.
“잘 가르쳐줘야겠네.”
“뭘요.”
“……진짜 키스.”
건우의 얼굴은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뜨겁게 녹아내리는 말에 우리는 굳은 침만 넘겼다.
“가르쳐주시더라도 셔츠는 갈아입고…….”
“그건 고우리씨한테 맡기죠.”
건우는 우리의 손을 제 가슴팍에 올렸다. 우리의 손끝을 타고 건우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원초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건우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우리를 집어삼킬 것처럼 보였다.
“후회하실 걸요.”
촉촉한 건우의 셔츠 단추를 매만지던 우리가 적막을 흐트러뜨렸다.
“즐겁게 후회해보죠.”
건우는 우리의 농담을 가볍게 받아쳤다.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 우리는 건우의 단추를 풀었다.
톡, 소리와 함께 단추가 열렸다. 그 소리가 제법 야릇하게 들렸다.
터질 것만 같은 욕망을 누르면서 건우는 천천히 우리의 입술을 탐했다.
뜨겁게 젖어든 건우의 미소도 우리에게로 흐무러졌다. 벌어진 입술을 타고 달뜬 숨이 넘나들었다.
아찔해지는 정신을 바투 붙잡은 우리가 마지막 단추를 풀었을 때였다.
건우는 거침없이 제 셔츠를 벗어젖혔다. 설핏 보였던 탄탄한 몸매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차장님. 일단 셔츠는…….”
슬그머니 흐르던 우리의 목소리를 건우는 그대로 머금었다. 깊이 파고드는 건우에게 밀려 우리는 벽에 붙어버렸다.
등을 타고 번지는 단단한 기운도 말캉하게만 느껴졌다. 건우의 키스에 모든 감각이 녹아내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우리도 어느 샌가 셔츠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렸다. 건우의 목에 팔을 두른 채로 목을 축이듯 건우만을 탐했다.
짙은 건우의 향기가 온몸을 타고 번지는 것만 같았다.
거칠어지는 숨소리가 방을 채우기 시작할 때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현관을 바라보던 우리는 총알처럼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놀랄 만한 운동신경이었다.
우리는 심신을 팔딱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는 것처럼 베개를 끌어안은 채로 두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일입니까.”
건조한 건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부장님이 준비 끝났다고 전달하라고 하셔서요.”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넵! 근데 차장님 진짜 몸…… 좋으십니다. 따로 운동하시나 봐요.”
황주임과 사귀는 사원은 연달아 감탄을 내뱉었다. 남자가 봐도 멋진 남자의 몸이었다.
건우가 하는 운동이라면 전부 따라할 기세로 사원은 캐물어댔지만 건우는 마냥 귀찮은 목소리였다.
“운동은 나중에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주겠습니다.”
“차장님. 무조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원은 잔뜩 격양됐다. 건우만큼 탄탄한 몸매를 뽐내고 싶다는 의지마저도 느껴졌다.
“이제 내려가 보셔야 할 것 같은데. 내가 헐벗은 채로 나갈 생각은 없어서.”
“넵! 곧 내려오신다고 전달하겠습니다.”
“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장롱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혹시 사원이 다시 들이닥칠지도 몰랐다.
여전히 벌렁거리는 심장을 붙잡으면서 우리는 눈동자만 열심히 굴려댔다.
대강 셔츠를 걸친 건우가 장롱 문을 열기 전까지.
“갔나요. 갔겠죠. 문은요. 단단히 잠그셨죠.”
우리가 수없이 질문을 던졌다. 목을 빼고 문을 바라보는 모양새가 꼭 침입자를 경계하는 문지기처럼 보였다.
방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건우는 우리에게 눈을 맞추고는 바투 다가섰다.
좁은 장롱 속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놀랐습니까.”
“그럼요. 까딱하면 위기였는데요.”
“그런가.”
“방까지 들어왔으면 잘못 걸렸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것도 차장님은 웃통 벗은 채로.”
“하긴 큰일일 수도 있었겠네.”
건우는 제법 심각한 얼굴로 우리를 봤다. 잘 개어진 이부자리에 어정쩡하게 앉은 우리는 건우를 빤히 쳐다봤다.
색기 어린 미소가 건우의 얼굴을 짙게 적셨다.
“……막 달려들 뻔했거든.”
건우의 말에 우리는 뜨끈한 침을 삼키는 것조차 잊었다.
“당신한테.”
좁은 장롱에 건우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정말, 진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