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화. 비명소리의 정체
절제절명의 순간이었다. 자칫하다가는 건우가 우팀장에게 주먹을 날릴지도 몰랐다.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말을 털어내면서 우리는 있는 힘껏 체중을 실어 팔을 빼냈다.
그리고는 우팀장이 마시려던 잔을 뺏어 원샷을 해버렸다.
“그때는 우팀장님 말고 제가 고생했죠.”
잔을 힘차게 내려놓은 우리가 말했다. 알싸한 알코올은 우리의 목구멍을 훑으면서 천천히 내려갔다.
쓰디쓴 향기가 느릿하게 온몸에 번지는 것만 같았다. 우팀장을 때리는 우리의 말에 건우는 끓는 화를 억눌렀다.
하지만 도무지 그러쥔 주먹까지는 풀지 못할 것만 같았다.
“증거나 증인 찾는데 되게 힘들었거든요.”
“없는 증거를 만들려니까 그게 되나.”
“차라리 그랬으면 아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정작 증거가 있어도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증인도 무서워서 말을 바꾸고. 세상이 그러더라고요.”
담담하게 말을 하던 우리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굴 탓해야 하나.”
우리는 우팀장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무서워서 말을 바꾼 증인을 탓해야 하나. 증인을 무섭게 만든 가해자를 탓해야 하나.”
“고대리. 또 말 험악해지네. 지금 나보고 가해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거 다 망상이라니까.”
몰아치는 우리의 말에도 우팀장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날의 일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처럼 손만 내저었다.
“나도 취향이 있는 남잔데. 고대리는 영 아니야.”
말을 끝낸 우팀장은 우리를 보고는 혀를 찼다.
“앞부터가 앞인지 뒤인지. 구분은 돼야지.”
우리가 들으라는 것처럼 우팀장은 조금 크게 혼잣말을 해댔다. 하지만 우리는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발끈하는 모습을 우팀장이 가장 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팀장의 도발에 상처받고 우는 일은 지난날로 족했다.
“계속 잘 숨기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우팀장님.”
“무슨 개똥같은 말이야.”
“또 같은 일이 일어나면 사냥개처럼 꼭 물어버릴 거거든요.”
“고대리, 많이 컸네.”
“네. 덕분에 잘 컸습니다. 팀장님.”
단단한 말을 날린 우리가 빙글 미소를 지었다. 날카로운 가시를 품은 미소였다. 억지로 짜낸 여유가 우리의 얼굴에 돌았다.
우리를 빤히 쳐다보던 우팀장은 목젖이 보일 만큼 신나게 웃어대고는 건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보셨죠. 강차장님. 고대리가 그래요.”
우팀장은 벌떡 일어나 건우의 옆에 서서는 말했다.
“지금처럼 헛소리도 가끔 하고. 고대리. 거참. 금주하라니까.”
“헛소리 같지는 않은데요.”
“다 헛소리예요. 골치 조금 아프실 겁니다. 아…… 진짜. 내가 된통 당한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뒷골이 당긴다니까요.”
우팀장은 제 뒷목을 주물럭댔다. 본부장에게 한소리를 들은 생각만 해도 다시 뒷목이 뻐근해지는 것만 같았다.
건우는 우팀장이 날려대는 친근한 눈빛을 경멸의 눈빛으로 막아섰다.
제 편을 들어달라는 것처럼 우팀장은 더욱 애절하게 건우를 쳐다봤다.
“고대리님이 더 뒷목 당길 것 같습니다만.”
“고대리가 왜요. 제가…….”
“객관적인 판단입니다.”
건우는 우팀장의 말을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말허리를 잘라버렸다.
우팀장을 보는 건우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한겨울 허허벌판에 몰아치는 매서운 겨울바람만큼.
“그리고 앞으로는 조용히 지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왜요.”
“보는 눈이 적어도 네 개니까.”
건우가 우리와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친근한 척 건우에게 다가선 우팀장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우의 시선에 괜히 딸꾹질까지 나왔다. 마치 거짓말이라도 들킨 모양새였다.
우팀장은 비쩍 마른 손으로 거칠게 얼굴만 쓸어내렸다.
“강차장님. 뭣도 모르시면서 말이 심하시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고도 날리는 거고.”
“지금 방금 뭐라고. 경…… 경 뭐요.”
우팀장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강펀치처럼 날아든 건우의 경고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얼빠진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조용히 계세요.”
“…….”
“제가 워낙 골치 아픈 일은 싫어해서.”
낮은 건우의 목소리가 우팀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강력한 단어 하나 없었지만 묘한 위압감은 우팀장의 방정맞은 말들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우팀장의 눈동자가 심히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건우의 기에 눌려 쪼그라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팀장은 건우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건우와의 기싸움에서 졌다는 것만으로도 우팀장은 잔뜩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었다.
그대로 건우에게 질 수 없다는 것처럼 우팀장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나도 싫어해요.”
열 받은 우팀장의 목소리는 삐끗했다.
“골치 아픈 일은 별로라고.”
이성을 잃은 우팀장의 말에는 반말이 뒤섞였다.
“누군 골치 아픈 거 좋아하는 줄 아나.”
“그럼 피차 잘됐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니까 팀원 관리나 하면서 가만히 있어요. 박힌 돌 빼겠다고 주접떠시지 마시고.”
화를 제대로 누르지 못한 우팀장의 목소리 끝은 갈라졌다. 제 말에도 꿈쩍하지 않는 건우의 모습에 우팀장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열심히 건우를 향해 눈을 부라려대도 건우의 기선을 제압할 수는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 말은 충고입니까. 아니면 협박입니까.”
건우가 무감한 얼굴로 물었다. 건조한 목소리가 우팀장의 신경을 박박 긁어댔다.
“강차장도 눈치가 없네. 딱 보면 모르나. 친절한 협박이잖아.”
꼬부라진 우팀장의 목소리가 한껏 커졌다. 우팀장의 침이 사방으로 튀었고 모두가 우팀장을 힐끗거렸다.
우팀장이 날린 회심의 한방에도 건우는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우팀장은 건우가 자신의 기세에 눌렸다고 확신했다.
“그러니까 조심해요. 직급이 같다고 다 같다고 판단하면…… 그게 진짜 실수니까.”
우팀장은 멋지게 충고를 날리는 제 모습에 만족스러워했다. 조심하자는 뜻으로 건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기까지 했다.
건우를 이겼다는 생각에 우팀장이 한껏 신났을 때였다.
“우팀장님.”
건우가 우팀장에게로 다가섰다. 흠칫 놀란 우팀장은 건우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지만 테이블에 막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우팀장은 팔짱을 끼고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이려고 애썼다.
“그럼 저는 지금부터 진짜 협박을 해보죠.”
“가짜 협박도 있나. 무슨 협박을 하려고.”
“제 영역, 침범하시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 마케팅1팀 코딱지 만해서는 관심도 없어.”
우팀장은 코웃음을 치면서 부러 크게 혼잣말을 했다.
“잘못해서 침범하면 아주 큰일이라도 내겠는데. 강차장.”
“그럴지도 모르죠.”
“대체 뭘 어떡하려고.”
“잘 보여드려야죠. 제 사람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건우의 날카로운 눈빛에 떠밀려 우팀장은 테이블에 반쯤 걸터앉은 꼴이 됐다.
“그래야 다시는 못 건드리지 않겠습니까.”
“어이구. 무섭네. 무서워. 오금 저려 죽겠네.”
우팀장은 삐뚤어진 말을 힘껏 던져대면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뜨거운 맥반석에 올라간 오징어처럼 순간 쪼그라든 제 모습을 들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싸늘한 건우의 눈빛을 보던 우팀장도 지지 않으려고 눈에 바짝 힘을 줬다.
건우의 태클을 모조리 막아내고 말겠다는 다부진 눈빛이었다. 하지만 우팀장의 모습은 흡사 빈틈없이 가드를 올리느라 정신없는 골골한 약골처럼 보였다.
우팀장은 무서운 표정을 짓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정작 건우에게는 조그마한 타격도 남기지 못했다.
“더 하실 말 없으신 것 같은데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네네. 그러세요.”
빈정대듯 대답하는 우팀장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건우에 기에 눌려 우팀장은 조금 술이 깬 것처럼 보였다.
긴장한 몸을 풀려는 듯 우팀장은 거칠게 술을 마셔댔다. 잔을 타고 흘러내린 술이 우팀장의 입술을 적셨다.
우팀장은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고는 세게 잔을 내려놨다.
“아. 그리고 우팀장님.”
강당을 벗어나려던 건우가 우팀장을 불렀다.
“또 뭐요.”
“반말은 그만 하시죠.”
“제가 언제 반말을 했다고.”
건우의 말에 우팀장은 재빨리 태세전환을 했다.
반말은 해본 적도 없다는 순진무구한 눈빛까지 날려댔다.
“여기 회삽니다. 믿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저희 직급도 같고.”
“그래서요.”
“예의 지키세요. 우팀장님이 마구잡이로 행동하시면 저도 똑같이 대해드릴 수밖에 없으니까.”
건우의 말에 우팀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자존심에 길게 스크래치라도 난 모양새였다.
우팀장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건우를 쏘아봤다. 우팀장의 마른 볼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리고 충고 하나 더 드리죠.”
“또 무슨 충고를 날려주시려고.”
“비뇨기과에 한 번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거길 왜 갑니까. 나 장난 아닌데.”
“원기가 부족하면 쩍벌이 된다고 하길래.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서.”
건우는 여전히 쫙 벌어진 우팀장의 다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무미건조하게 건우의 말을 흘려듣기 위해 우팀장은 발버둥을 쳐댔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에 다리가 조금씩 오므라졌다.
우팀장은 금세 다소곳해진 자세로 건우를 쳐다봤다.
“그럼.”
깔끔하게 제 말을 끝낸 건우의 얼굴에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푸석한 사막에서 말라버린 꽃처럼.
“고대리님 갑시다.”
“네.”
차가운 눈빛을 흘리면서 건우는 우리와 나란히 강당을 나섰다.
“지 혼자 잘났지. 재수 없는 자식.”
속삭이듯 내뱉은 우팀장의 말은 우리와 건우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건우가 강당의 문을 열었다.
시끌시끌한 강당과는 달리 밖은 조용하기만 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강당에서 멀어졌다. 숙소 쪽으로 향할수록 왁자지껄한 목소리는 조금씩 옅어졌다.
산등성이를 타고 찬바람이 흘렀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바람을 따라서 흔들거렸다.
숙소 쪽으로 걸어가던 두 사람의 발소리만 고요히 번졌다.
사부작사부작 걷는 발소리마저도 묘하게 은밀해보였다.
“차장님. 저희 산책하고 갈까요.”
“괜찮겠습니까.”
“술도 깨야할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아까 너무 광분한 것 같아서요.”
“그러죠.”
“그럼 저쪽으로.”
우리는 숙소와 산이 맞닿았던 조용한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발길도 없었고 적당히 어둠이 녹아있기도 했다.
음흉한 미소를 날리면서 앞서 걷던 우리가 짐짓 속도를 줄였다.
“쭈그리고 갈까요.”
우리가 숙소 근처에 주차된 본부장의 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어둑한 암흑 속에서도 블랙박스가 파란 불빛을 간헐적으로 흘리면서 제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그냥 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블랙박스 보시면.”
“극히 드문 일이죠.”
건우의 말에도 우리는 괜스레 몸을 숙였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조그마한 확률이라도 갑자기 본부장이 블랙박스를 확인할 수도 있으니까.
지나치게 조심하는 통에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본부장의 차 앞을 지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건우가 피식 웃었다.
“웃지 마세요. 차장님.”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지경입니다.”
“것도 완전 금지예요. 제가 지금 조심하느라 얼마나 힘든데.”
“그러니까 그냥 가자니까.”
“조심만이 살길이라니까요.”
최대한 몸을 쭈그리느라 우리의 다리는 절로 후들거렸다. 평온하게 우리를 따르던 건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돌았다.
할 수 있다면 힘껏 소리치고 싶었다.
우리와 사귀고 있다고. 그러니 그 누구도 우리를 힘들게 할 생각은 말라고.
***
구석진 곳에 앉은 우리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까만 하늘에 박힌 별이 반짝거렸다. 금방이라도 별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사방에서 전해지는 청량한 풀냄새에 섞여 건우의 향기까지 우리의 코끝을 적셨다.
우리는 정말로 천국에라도 온 것만 같았다.
“진짜 좋네요.”
“예. 방해꾼 없어서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매번 워크샵은 오기 싫었는데.”
“지금은 좋다는 말로 들어도 됩니까.”
“네. 좋아요. 정말로.”
하늘을 보던 우리가 고개를 돌려 건우를 바라봤다.
제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건우의 모습이 여전히 낯설게만 보였다.
“저 근데 진짜 그만 주물러주셔도 될 것 같아요.”
“아까 너무 열심히 쭈그리고 걷느라 아직도 단단합니다.”
“다 풀렸어요. 진짜로.”
우리가 진심이라는 것처럼 두 손을 펼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건우의 열정적인 안마는 한참이고 계속됐다.
건우의 손길에 우리의 다리는 금세 가뿐해졌다.
“손 아프시죠.”
“예.”
“제가 손을 만져드릴 수는 없고…….”
“보상법은 내가 결정하겠습니다.”
건우의 얼굴에 유혹적인 미소가 번졌다. 건우는 대담하게 우리의 허리를 감쌌다. 온몸을 돌던 알코올 기운이 우리는 훅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우리는 건우의 품에 반쯤 안긴 모양새가 됐다.
건우가 우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사방에서 전해지는 청량한 풀냄새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건우의 은은한 향기가 우리의 코끝을 돌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굳은 침을 넘겼다. 끈적끈적한 침마저 뜨뜻하게 느껴졌다.
“좋네.”
건우의 뜨거운 목소리가 우리의 목덜미를 적셨다.
보드라운 살결에 무르녹는 말이 금세 우리의 온몸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나 참았는지 압니까.”
“참았다면…… 아.”
건우의 말에 우리의 눈길은 사방을 떠돌았다. 예상치도 못한 음란 마귀의 급습에 말끝까지 떨렸다.
어떤 반응을 내던져야 할지 우리는 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우팀장 말입니다.”
“아…… 그 참는 거요.”
“누구 손목을 감히.”
“손목 말하는 거였구나. 그죠. 제 손목을 잡고.”
우리가 제 손목을 매만졌다. 짧은 순간. 참는다는 말만으로도 온갖 상상을 해댔다는 말은 죽어도 꺼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차라리 건우가 우팀장을 떠올리면서 분노에 빠진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반짝거리는 별로 음탕한 상상에 빠졌던 순간을 털어내려고 내적 몸부림을 쳐댔다.
우리가 멍하니 별을 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우지끈. 아주 선명한 소리였다.
‘누가 오는 것 같은데.’
우리는 얼어붙은 채로 부스럭대는 소리에 집중했다. 누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귀를 쫑긋 세우던 우리는 조용히 일어나서는 걸음을 움직였다.
좁은 건물 틈 사이로 숨어든 우리는 숨을 죽인 채로 바깥 상황을 살폈다.
“진짜 아무도 없다니까.”
“그래도 누나.”
“나만 믿어. 여기 올 사람도 없어. 다들 강당에 있느라 정신없을 거야.”
바깥을 보던 우리의 눈이 커졌다. 박력 있게 영업팀 사원의 손을 잡아끄는 누나의 정체는 황주임이었기 때문이었다.
허억! 놀란 소리라도 날까. 우리가 재빨리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내가 누나,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르면서.”
“오구. 그랬어요. 나도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황주임은 영업팀 사원의 엉덩이를 열심히 토닥거렸다.
애교가 잔뜩 묻은 두 사람의 혀는 짧아질 대로 짧아진 것처럼 보였다.
‘황주임도 사내 연애 중이었다니. 뭐야.’
우리는 황주임의 연애를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얼빠진 우리 위로 건우도 고개를 내밀었다. 묵직한 무게에 우리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뭐예요. 놀랐잖아요!’
입을 벙긋거리면서 말을 하던 우리가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잘못 밟았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명랑하게 퍼져나갔다.
‘맙소사!’
우리가 급히 건우의 팔을 잡아끌고는 벽에 붙었다. 벽에 그려진 벽화라고 착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 있는 거 같아. 누나.”
“누가 있기는 누가 있어. 일단은 굿바이 키스부터 하자.”
“방금 저쪽에서 소리 난 것 같아.”
“없다니까. 빨리 키스나 하자. 나 진짜 내내 참았단 말이야.”
우리는 속으로 황주임의 키스를 적극 응원했다.
“확인 한 번만 하고 할게.”
“맘대로 해라.”
토라진 황주임의 목소리에도 영업팀 사원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확실히 해두고 싶다는 목소리였다.
생각보다 여유로운 건우와는 달리 우리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사원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출전하기 전에 울리는 북소리처럼 우리의 삼장은 뛰었고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서로의 비밀을 빌미로 거래라도 해야 하나.
아랫입술을 바짝 깨문 우리가 가까워지는 사원의 목소리에 대적하려던 순간이었다.
“……!”
주차장 쪽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