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화. 고양이가 됐다가, 여우가 됐다가
선영은 별다른 대답 없이 우리의 손에 마이크만을 쥐여 주었다. 걱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마이크를 잡은 우리는 무대 앞으로 걸어가는 선영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과장님. 저 마이크.”
선영은 최과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이크를 받으면서 쑥덕거리는 선영과 최과장의 모습에 우리의 등을 타고 찝찝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볍게 어깻짓만 하는 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곡을 선택하려고.’
우리는 노래방 기계에 번호를 눌러대는 최과장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반주가 흘렀을 때. 우리는 1등 여행 상품권을 탐냈던 욕심 넘치던 순간을 깊이 후회했다.
[섹시한 남자
노래 : 스페이스 에이]
우리가 취소를 외치기도 전에 속절없이 반주가 흘렀다. 끈적거리면서도 농염한 리듬이 무대를 휘어잡았다.
스포트라이트가 우리에게 쏟아졌다. 마이크를 쥐고 있던 우리의 손에 땀이 흘렀다.
익숙한 멜로디에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커졌다.
“죽도록 너만 사랑하는데.”
조용한 멜로디 위로 선영은 읊조리듯 가사를 뱉었다.
우리를 도발하듯 선영은 건우를 향해 도발적인 눈빛을 날렸다.
‘어쭈. 감히!’
그 모습에 우리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왜 날 믿지…….”
“죽을 때까지 너 하나뿐이야.”
우리가 냉큼 선영의 노래를 빼앗았다. 철두철미하게 내 남자 지키기에 돌입한 것이었다.
우리는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건우에게 다가서려던 선영을 철옹성처럼 막아냈다.
선영이 비집고 들어갈 빈틈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 남자에게 집적거리는 몸짓과 넘실거리는 눈빛은 모조리 막아내고 말겠다는 다부진 방어만이 있을 뿐이었다.
선영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를 자극해 끈적끈적한 육갑 커플의 무대를 만들려는 계략이 통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너 하나뿐이야!”
고백이라도 하듯 힘찬 우리의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완벽한 날 것의 목소리였다.
갑작스럽게 올라온 취기에 들뜬 우리가 흐느적거렸다. 마치 육지로 끌려 나온 쭈꾸미가 꾸물거리듯.
내적 댄스를 분출하던 우리가 끈적끈적한 리듬에 온몸을 내맡겼다.
“고대리님.”
건우는 최대한 침착하게 우리를 불렀다. 폭주하는 우리를 말리는 건우의 목소리는 소용이 없었다.
유혹의 손짓과 질끈 깨무는 입술. 남들에게는 퍼덕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모습도 건우에게는 마냥 유혹적이었다.
정열적인 우리의 춤사위에 환호성은 계속 커졌다.
“너와 나의 gap 차이.”
흥분한 우리가 폭풍 랩을 선보였다. 까만 선글라스가 조명 빛에 반사돼 번쩍거렸다. 우리에게서는 한없이 스웩이 흘러넘쳤다.
바짝 말린 참깨를 털어내듯 우리의 랩이 우수수 쏟아졌다.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면서 랩을 하는 우리의 모습에 열광하는 소리가 커졌다.
찰칵거리는 소리와 동영상을 찍는 소리가 무대 아래를 메웠다. 무대를 헤집은 우리와 선영의 모습에 건우는 바람 빠지듯 웃었다.
“고우리…… 정말 못 말리겠네.”
건우의 낮은 목소리는 반주에 깊게 파묻혔다. 건우는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이미 무대를 집어 삼킨 것처럼 보였다.
내리쬐는 따가운 조명에 우리는 반짝거렸다. 건우는 꼭 우리가 비눗방울처럼 느껴졌다.
영롱하게 빛나지만 만지만 톡, 부서져 사라질 것만 같은.
모두를 열광적이게 만들었던 무대가 끝을 향해 달려갔다.
무대를 휘어잡던 우리가 홱 고개를 돌렸다. 우리와 건우의 시선이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우리는 노래에 녹아있는 맹랑한 고백을 날리고 싶었다.
아주 수줍게 숨겨둔 고백.
“널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
노래 말곤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아 도저히 내뱉을 수 없을 것 같은 말.
우리의 잔잔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번졌다. 우리의 말에 건우는 순간 움찔거렸다.
끓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당장이라도 무대 앞쪽으로 달려가 우리를 안아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텅 비어 있던 속을 가득 채워버린 우리를 품고 싶었다. 손을 잡고 싶었다.
온기를 나누면서 입술을 가득 머금고 싶었다.
입술을 타고 넘나드는 열기를 삼켜버리고 싶었다. 건우는 그냥 우리가 되고 싶었다.
당신의 세상이. 네가 되고 싶은…… 그런 미치도록 매혹적인 밤이다.
“앵콜!”
“멋있다!”
끝없는 앵콜이 쏟아졌다. 힘찬 무대를 마친 세 사람이 무대를 내려왔다.
우리와 건우의 극적인 무대 탈출이었다. 세 사람을 향해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본부장도 냉큼 일어나 양쪽 엄지를 힘껏 치켜들었다. 만족스럽다는 손짓이었다.
세 사람은 각자의 테이블로 돌아갔다. 무대 앞쪽을 메웠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졌다.
계속 이어지는 무대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C조 테이블에 앉은 우리와 건우에게 집중됐다.
“네. 열정적인 무대였죠. 저도 놀랐는데요.”
마이크를 잡은 최과장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최과장은 무대 아래쪽을 힐끔 쳐다봤다.
몸을 풀던 우팀장이 건우를 노려봤다. 기필코 이기고야 말겠다는 전투 의지를 홀로 불태우고 있었다.
본부장의 애정을 절대로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장기자랑의 마지막 무댑니다. 피날레를 장식해주실 영업팀 우팀장님 모십니다!”
최과장이 우팀장을 소개했다. 우팀장은 비장한 얼굴로 무대에 올랐다.
영업에서 배양했던 접대의 기술을 모두 보여주고 말겠다는 여유로움마저 흘러넘쳤다.
장내를 흔드는 반주부터 트로트의 향기가 짙게 풍겼다.
“이 노래를 우리 존경하는 본부장님께 선사합니다.”
심해로 가라앉을 것처럼 착, 깔린 우팀장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퍼졌다.
그야말로 우내시다운 시작이었다. 장기자랑의 인기곡인 무조건이 흘렀다.
“본부장님 부르면 달려갈 거야. 무조건이야!”
하트까지 쏘아대면서 우팀장은 본부장의 관심을 위해 몸부림을 쳤다.
노골적인 우팀장의 애정 갈구에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필살기라도 되는 것처럼 우팀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춤까지 춰댔다. 우팀장의 장기자랑은 오직 본부장만을 위한 것처럼 보였다.
무대를 헤집는 우팀장은 타올랐던 무대의 열기를 단숨에 식혔다. 우팀장의 쇼맨십에도 사람들은 술을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은 정을 생각해서 영혼 없는 박수를 쳐대던 본부장도 결국 술잔을 비우는데 열을 올렸다.
“본부장님 향한 나의 사랑은 특급 사랑이야!”
마이크에 턱을 붙인 채로 열창을 하던 우팀장의 무대는 쓸쓸하게 끝났다.
‘영업팀 인마들이 빠져 가지고는. 어디 상사가 노래를 하는데 박수를 안 쳐.’
무대를 내려가면서도 우팀장은 바드득 이를 갈았다. 지긋지긋한 뒤끝의 서막이었다.
터덜거리면서 무대를 내려온 우팀장의 무대를 끝으로 점수 집계가 빠르게 끝났다.
4등, 3등, 2등……. 순위가 쭉쭉 발표됐다.
우팀장은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1등의 영광이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우팀장을 힐끔 쳐다보던 우리도 두 손을 꽉 잡았다.
아부로 얼룩진 우팀장에게만큼은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도 잘하고 잘 놀기까지 하면 불공평한데…… 허허.”
본부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본부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육갑 커플과 우내시! 본부장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1등은…….”
본부장이 말끝을 끌었다.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대망의 1등이 발표되는 순간.
“우리 강차장의 마케팅 스타일로.”
저울은 기울어졌다. 대번에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C조로 향했다. 분노의 눈빛을 날려대는 우팀장을 건우는 덤덤히 받아내고 있었다.
얼음과 불꽃의 충돌이었다. 파닥거리면서 말춤을 추던 건우의 모습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대박.”
우리의 입술을 비집고 탄성이 흘렀다. 우팀장을 이겼다. 해외여행 상품권까지 거머쥔 채로.
넘치는 기쁨이 삽시간에 우리를 뒤덮었다. 우리의 고갯짓에 선영은 재빨리 무대 위로 올라갔다.
선영도 솟구치는 흥분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축하해요.”
본부장이 선영에게 상품권을 건네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넙죽 상품권을 받은 선영이 헤벌쭉 웃었다.
“고대리님! 1등이에요.”
무대 위에서 선영은 힘차게 해외여행 상품권을 흔들어 댔다.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면서 장기자랑의 쓴맛에 몸부림을 치던 우팀장을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팀장은 매서운 눈빛으로 건우를 노려보면서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고대리.”
한참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은 우팀장이 우리를 불렀다.
“이쪽으로 와봐.”
우팀장은 제 옆자리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강압적인 목소리와 손짓에 테이블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살짝 눈이 풀린 우팀장을 쳐다보던 건우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한겨울에 부는 찬바람만큼. 아주 매섭게.
쉬지 않고 들이켠 소주에 우팀장은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간신히 붙잡았던 이성도 알코올에 마비된 것처럼 보였다.
우팀장이 다시 한 번 제 옆자리를 세게 두드렸다. 당장 우리에게 제 옆으로 오라는 강압적인 손짓이었다.
“고대리.”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슬쩍 우리를 쳐다봤다. 술잔을 잡은 사람들은 적당한 타이밍에 다른 테이블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우팀장의 고약한 술주정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빨리 안 오고 뭐하고 있어. 팀장이 부르는데.”
“저희 팀장님도 계셔서요. 그만 하세요. 취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적당한 선에서 우팀장을 잘라낼 생각이었다. 매서운 건우의 눈빛과 순식간에 험해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나름의 노력이었다.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삐뚤어진 우팀장의 목소리가 테이블에 울려 퍼졌다. 꼬부라진 혀는 정상으로 돌아올 줄을 몰랐다.
우리가 깊은 날숨을 조용히 내뱉었다. 상황이 짧게 종료될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입술을 악문 우팀장의 눈빛은 끝없이 날카로워졌다. 우리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기세였다.
“무시는요. 그냥 취하신 것 같으셔서. 제 숙취 음료라도…….”
우리는 솟구치는 화를 힘겹게 누르면서 우팀장을 달래듯 말했다. 우리가 테이블 숨겨뒀던 비장의 숙취 음료를 내밀었다.
온갖 성분이 우팀장의 취한 정신을 깨워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취하기는 개뿔.”
우팀장은 입을 쌜쭉거렸다. 여간 불만스럽다는 얼굴이었다.
“아…… 내가 실수했나?”
“…….”
“감히 장기자랑 1등에 빛나는 귀한 고대리를 부르다니. 미천한 소신이 일어나야지요.”
우팀장이 비꼬듯 말했다. 테이블을 짚은 우팀장은 비틀거리면서 우리에게로 걸어갔다.
테이블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이었다.
제 술잔을 잡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일어나 테이블을 옮겼다.
C조 테이블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우리와 건우가 전부였다. 우리가 불안한 얼굴로 건우를 봤다.
건우는 당장이라도 우팀장을 향해 주먹다짐이라도 할 기세였다.
상상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절대 안 돼!
“에…… 고대리. 어디 가게. 그냥 거 있어.”
우팀장은 일어나려던 우리를 막았다. 비척거리면서 걷던 우팀장은 우리와 건우의 사이를 깊이 파고들었다.
말릴 새도 없이 일어난 습격이었다.
“우리 대단하신 고대리님을 움직이게 할 수는 없지.”
“우팀장님.”
우리의 말에도 꿈쩍하지 않고 우팀장은 제 잔을 들었다.
“맛있는 술 좀 한 잔 따라봐.”
우팀장이 우리에게 술잔을 들이밀었다. 거침없는 우팀장의 손길에 우리는 짐짓 당황한 얼굴이었다.
술잔을 코앞에 들이미는 우팀장을 보던 건우가 우팀장의 손목을 잡았다.
싸늘한 건우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건우의 목소리가 살짝 격양됐다.
“취하신 것 같은데 들어가서 쉬시죠.”
우팀장의 손목을 잡은 건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팀장은 이를 악물고는 손목을 타고 흐르는 아린 기운을 바득바득 참아내고 있었다. 인내를 새기는 우팀장의 얼굴을 점점 빨개졌다.
“강차장님은 너무 뻣뻣하다니까. 사람이 말이야. 이리 빳빳해서 쓰나.”
“아시면 적당히 하시죠.”
“너무 뻣뻣하면 부러지는 수가 있는데.”
위협적인 말과 함께 우팀장은 건우의 손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버둥거리는 우팀장의 손은 애처로워 보였다.
“오가는 술잔 속에 피어나는 동료애. 설마 모르는 건가.”
“예. 모릅니다.”
건우는 우팀장의 말을 단칼에 잘라냈다. 매섭게 날아든 말에 우팀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 코만 벌름거리던 우팀장은 쫙 다리를 벌렸다.
절대로 일어날 생각이 없다는 몸짓이었다.
“왜 모르지. 이게 바로 경험과 연륜의 차이인가보네. 강차장님이 어려서 모르는 것 같은데.”
우팀장은 발끝에 있는 영혼까지 바짝 끌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려 안간힘을 썼다.
“몰라도 됩니다.”
“알아야…….”
“나쁜 관습을 구태여 배울 필요는 없죠.”
“뭐…… 나쁜 관습?”
우팀장이 반문하듯 물었다.
“틀린 말입니까. 제 귀에는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말로 들렸는데.”
건우의 말에 우팀장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한없이 건우에게 말리고 있다는 조급함이 우팀장을 집어삼켰다.
마른 침을 삼켜대던 우팀장의 다리가 달달 떨렸다.
끝을 모르고 쫙 벌어지는 우팀장의 다리에 우리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정말 그래? 고대리?”
우팀장은 건우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우리에게 물었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도와달라는 간절한 눈빛까지 강렬히 쏘아대면서.
난감한 질문이 우리에게로 굴러간 것이었다.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가 우팀장의 손목을 놨다.
“고대리님.”
건우가 우리를 불렀다.
“네.”
“이만 일어나시죠.”
건우의 말에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러운 상황에서는 대적하는 것보다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팀장은 테이블을 벗어나려는 우리의 손목을 낚아채듯 잡았다.
제 손목에 붉게 남은 건우의 손자국을 보던 우팀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어디 가려고.”
“우팀장님께 보고 해야 하나요.”
“해야지.”
“저희 팀장님도 계신데 왜 보고해야하는지 설명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야무진 우리의 말에 우팀장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우팀장이 꽉 손목을 붙들고 있는 탓에 우리는 옴짝달싹 못 했다.
우팀장의 분풀이 타깃은 우리로 바뀌어 있었다.
같은 직급의 건우보다는 우리를 상대하는 편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제 팀원을 지키겠다고 바동바동하는 건우를 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기도 하고.
우팀장은 제 삶의 신념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그럼 고대리는 내가 잘 지켜봐야지. 고대리가 워낙에 시끌시끌한 캐릭터잖아.”
“…….”
“예전에 고대리 때문에 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어우! 지금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니까!”
의기양양한 우팀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케케묵은 과거를 헤집는 우팀장은 얼굴은 평온했다.
도리어 손목이 잡힌 우리의 낯빛만 어두워졌다.
힘겨웠던 우리의 노력에도 우팀장의 난잡한 추행 사건은 대강 덮어졌기 때문이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고대리가 딱 그거라니까.’
‘솔직히 고대리가 여우인줄 어떻게 알아. 꼬시려고 계획한 걸 수도 있는 거고.’
‘막말로 찌르니까 넘어가는 거지. 와…… 근데 우내시를. 진급할 수 있대도 싫다. 나는.’
그날의 일은 수많은 뒷말만 우리에게 짙게 남겼다.
그 말들은 조금도 늙지 않았고 선명하게 살아남아 여전히 우리를 괴롭혔다.
“강차장님은 모르겠네.”
우팀장은 비밀스러운 말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건우의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리 고대리가 예민해요. 예민해도 너무 예민해.”
우팀장이 우리를 힐끔 쳐다봤다. 그날의 일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꽤나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우리가 우팀장을 빤히 쳐다봤다.
그날의 사건 이후. 우리는 뼛속 깊이 깨달은 것이 있었다.
우리는 때린 사람은 발을 뻗고 자지 못한다는 옛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도리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게도 맞은 사람이라는 것.
연달아 솟는 억울함과 아픔에 우리는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살결도 예민하고.”
말을 끝낸 우팀장이 껄껄 웃어댔다.
속을 뒤집는 그 말에 건우의 이성은 끊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