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화. 육갑커플의 화려한 부활
우리는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만 같았다.
깊게 날숨을 내쉰 우리가 건우를 봤다. 장기자랑에 대한 생각은 털어버리려는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그나저나 차장님. 저희 통했네요.”
손난로를 꽉 붙잡은 우리가 입을 열었다.
“저도 우팀장님 정말로 피하고 싶었거든요.”
“그랬습니까.”
“똥은 피해야 상책이잖아요.”
우리가 입꼬리에 가득 힘을 주고는 벙긋 웃어보였다.
우리의 미소에 무표정이었던 건우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우리를 닮은 미소였다.
“맞는 말이네.”
“근데 또 장기자랑에서 마주쳐야 한다니까. 운명의 장난인가 봐요.”
“그래도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장님이 그러니까 더 떨리는데요. 제가 실수라도 할 것 같거든요. 정말로 무대체질이 아니라서.”
우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잔뜩 부담을 쥔 얼굴이었다.
잘못 무대에서 실수라도 해서 우팀장의 비웃음을 받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산등어리를 타고 넘어온 바람은 우리를 더욱 바짝 얼어붙게 만들었다.
“너무 긴장돼서 술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가 두 뺨을 쓸어내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더 또렷해지는 것만 같았다.
강당 쪽을 바라보던 우리가 긴장을 누르려는 것처럼 뜨거운 콧김을 쏟아냈다.
“저 되게 멀쩡해 보이죠.”
“예.”
일말의 주춤거림도 없이 건우가 단번에 대답했다.
“더 마셔야하나. 진짜 계속 멀쩡해지는 것 같아요. 차장님은요.”
“견딜 만합니다.”
“차장님 생각대로 강심장이시네요. 전 진짜 떨려서 죽을 것 같은데.”
우리가 제 가슴팍에 손을 올려놨다. 크게 숨을 쉬어 봐도 두근거리는 심장은 정상으로 돌아올 줄을 몰랐다.
“노래도 어려운데 댄스라니…….”
말끝을 흐리던 우리는 청승맞은 얼굴로 제 기억을 헤집었다. 야무지게 추가 조건을 내밀던 선영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대리님. 진짜 하나면 돼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되게 쉽거든요.’
‘그게 뭔데.’
‘장기자랑만 조금 도와주세요!’
애달픈 목소리였지만 선영은 당차게 말했다.
‘혼자는 너무 부담돼서요. 잘하고 싶은데 임팩트도 없을 것 같고.’
‘구체적으로 뭘 도와주면 되는데.’
‘뒤에서 가볍게 흔들어주시기만 하면 돼요.’
‘춤이라도 추라는 건 아니겠지.’
‘어…… 그냥 몸짓 정도.’
누구에게는 절벽 위를 걷는 것만큼 어려울 수도 있고 떡을 먹는 것만큼 쉬울 수도 있는 추가 조건을.
‘두 분이 도와주시면 정말 끝내주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도와주시면 정말 최선을 다해서 대리님하고 차장님 도울게요.’
‘그래도…….’
‘제발요. 대리님.’
선영은 두 손을 맞잡고는 말했었다. 큰맘 먹고 수락한 조건이었지만 우리는 도무지 의연해질 수가 없었다.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후회를 반복했다.
‘대탐소실. 그래. 고우리. 대탐소실이라고.’
우리는 같은 말만을 세뇌하듯 되뇌었다.
5분도 되지 않는 시간. 고 짧은 시간만 갓 태어난 망아지에 빙의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차장님. 저는 다시 가서 술 좀 더 마셔야겠어요.”
우리는 연달아 손을 까딱거리면서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해댔다.
알코올의 충전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해낼 수가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고우리씨.”
건우의 목소리가 강당으로 되돌아가려던 우리의 걸음을 붙잡았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잠깐만.”
건우가 우리에게 바투 다가섰다. 주위도 살펴보지 않는 저돌적인 몸짓이었다.
흠칫 놀란 우리가 건우의 가슴팍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폭주하는 건우를 말리기 위한 나름의 최선책이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을 피하기 위한 우리의 손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분명 단단한 가슴팍이 느껴져야 하는데……. 앞을 보던 우리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건우는 한쪽 무릎을 꿇고는 풀어진 우리의 운동화 끈을 단단하게 묶어주고 있었다.
“걸려서 넘어집니다.”
“제가 해도 되는데.”
“내가 꽤 신발 끈은 잘 묶는 편이라. 잘 풀리지 않을 겁니다.”
건우의 야무진 손끝에서 운동화 끈이 예쁘게 묶였다.
“그리고…….”
건우는 고개를 들고는 우리를 바라봤다. 건우를 보는 우리의 머리칼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따사로운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살짝 일어난 건우가 커다란 손으로 우리의 목덜미를 감쌌다.
“……어디에도 가지 말라고.”
건우의 매혹적인 미소가 천천히 입가에 번졌다.
건우는 우리를 약간 제 쪽으로 당겼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입술이 붙었다.
건우가 살짝 입술을 벌려 우리의 입술을 머금었다. 차가운 바람도 잊을 만큼 달뜬 열기가 두 사람을 사로잡았다.
“잘해봅시다.”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의 입술에 달라붙었다. 조용한 미소와 함께 두 사람은 강당으로 향했다.
건우가 강당의 문을 열었다. 무대에서 흐르는 잔잔한 노래에 본부장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의무적으로 박수를 쳐대던 사람들은 연거푸 술잔만 비워댔다.
지루한 무대보다는 서로 잔을 비우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모양새들이었다.
알코올 향기로 가득한 강당 끝에서 선영이 우리를 향해 반갑게 손을 들었다.
“대리님!”
선영의 목소리에 건우와 우리는 나란히 무대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비장한 얼굴로 서 있던 선영은 커다란 가방을 뒤적거렸다. 한 눈에 봐도 단단히 준비해온 티가 났다.
“대리님. 이거요.”
선영이 선글라스 두 개를 내밀었다.
“갑자기 무대 올라가시는 거라서 두 분이 민망해 하실 수도 있으실 것 같아서요. 그래서 특별히 준비를 좀 했습니다!”
“고…… 고마워.”
“차장님꺼는 아빠 선글라스라서 좀 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얼결에 선글라스를 받았다. 회장님 선글라스라니. 가볍기만 한 선글라스의 무게가 우리는 괜스레 무겁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재빨리 회장님 선글라스를 건우에게 건넸다.
“차장님. 여기요.”
“예.”
건우가 클래식한 구찌 선글라스를 꼈다. 얼떨떨한 얼굴로 선글라스를 보던 우리도 세련된 명품 신상 선글라스를 꼈다.
쉬지 않고 솟구치던 창피함은 선글라스의 힘에 흐늘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다음은 마케팅1팀 신입이죠. 강선영씨인데요.”
술술 말을 잇던 최과장은 무대 아래를 봤다. 검은 선글라스를 착장한 세 사람의 모습에 최과장은 흠칫 놀랐다.
세 사람의 모습이 꼭 맨인블랙 콤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조용한 무대는 아닐 것만 같았다. 선곡도 심상치 않았다.
“아…… 네. 분위기를 바꿀 만한 센스 있는 선곡이네요. 댄스곡 기대하겠습니다.”
최과장은 존경스러운 눈빛을 쏘아대면서 무대에서 내려왔다.
빈 무대. 세 사람은 느리게 무대에 올랐다. 우리와 건우는 마이크를 쥔 선영의 뒤에 섰다.
갑작스러운 육갑 커플의 등장에 모두가 놀란 얼굴이었다.
“……!”
짤막한 적막.
그 사이를 뚫고 반주가 흘렀다. 몸을 가만히 놔둘 수 없게 만드는 간주.
빠른 템포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안다는.
그야말로 유명한 강남 스타일.
신나는 선곡에 본부장이 광분한 얼굴로 크게 박수를 쳐댔다.
“우린 마케팅 스타일!”
수줍은 얼굴로 무대에 올랐던 선영이 마이크에 입술을 붙이고는 크게 소리쳤다. 선영은 물 만난 고기처럼 무대를 헤집었다.
모두의 시선은 무대에 집중됐다.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도 잊은 것처럼 보였다.
뜨겁게 쏟아지는 조명 아래에서 광란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통과할 때까지 올리는 기획안!”
울분을 담은 선영의 노래가 이어졌다. 전부 개사를 해온 모양새였다.
힘찬 선영의 노래에 덩달아 박수소리도 커졌다.
“업무 끝나고 하는 시장조사!”
선영의 노래가 장내에 가득 울려 퍼졌다. 무대 아래에서는 환호가 이어졌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영의 뒤에서 우리와 건우는 두 손을 곱게 모으고는 힘차게 말춤을 췄다.
달그닥 달그닥. 정말 말이라도 타는 것처럼. 격렬하게.
리듬에 몸을 맡긴 우리는 정말로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보였다.
삐걱거리는 두 사람의 춤은 선영의 노래만큼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춤사위는 격렬해졌다. 쏟아지는 환호성과 온몸을 도는 알코올 기운에 숨겨뒀던 내적 댄스 본능이 터진 것이었다.
“우린 마케팅 스타일!”
목에 핏대가 서는 열창의 현장. 열정적인 춤사위를 선보이는 우리와는 달리 건우는 차분한 얼굴로 준비한 안무를 쏟아냈다.
꽤 절도 있지만 사막의 모래바람만큼 무미건조한 파닥거림이었다.
뜨거운 취재라도 하듯 모두들 무대 앞으로 몰려나와 동영상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두가 다 같이 마케팅 스타일을 외쳤다.
그리고 마지막 완벽한 엔딩.
노래가 끝나고 무대를 보던 선영과 우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조명은 세 사람을 강렬하게 비췄다.
“워! 앵콜!”
“육갑!”
모두 흥분한 얼굴로 마케팅 스타일을 외쳐댔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도리어 앵콜을 외치는 소리만 깊어질 뿐이었다.
박수소리와 함성소리가 뒤범벅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육갑 커플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우리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목까지 차오른 숨을 간신히 달래고 있었다. 여름의 태양만큼 뜨거운 조명의 열기가 세 사람을 달궜다.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을 봤다. 묘한 기분이었다.
인기스타라도 된 것만 같은 그런, 기분.
“괜찮습니까.”
건우가 우리에게 다가서면서 물었다. 굳은 침을 삼키던 우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건우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조명에서 쏟아지는 열기에 건우의 목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숨을 돌리던 건우가 최과장 쪽으로 걸어갔다.
“물 좀.”
“아…… 물이요? 잠깐만요. 김대리! 여기 물!”
최과장이 힘껏 물을 외쳐댔다.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비장한 목소리였다.
번개만큼 빠른 속도로 최과장에게 물이 전달됐다. 물을 갈구하는 건우의 눈빛이 깊어졌다.
“강차장님 물…….”
최과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건우는 물을 가져갔다. 건우의 목도 버석해졌지만 목을 축일 생각도 없이 곧장 우리에게 걸어갔다.
건우에게는 제 갈증보다 우리의 갈증을 해결해주는 것이 최우선인 것처럼 보였다.
“고대리님.”
건우가 우리를 불렀다. 손부채질을 열심히 해대던 우리가 건우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란 조명이 우리의 얼굴에 녹아있었다. 건우는 뚜껑을 열고는 다정스러운 손길로 우리에게 물을 내밀었다.
“마셔요.”
“차장님은요.”
“괜찮습니다.”
“그럼 빨리 마시고 드릴게요.”
우리는 고맙다는 것처럼 약간 고개를 숙이고는 물을 받았다.
차가운 냉기가 우리의 손을 타고 번졌다. 가쁜 숨을 크게 내뱉은 우리가 물을 들이켰다.
말랐던 목이 금세 촉촉해졌다. 타는 듯 치솟았던 열기도 한결 잠잠해지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마셔요. 체하겠습니다.”
물에서 입을 떼지 못한 채로 우리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우물거리는 소리는 박수소리에 묻혔다. 반쯤 물통을 비운 우리가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입술에 붙었던 물방울이 우리의 손등에 천천히 스몄다.
우리가 크게 날숨을 뱉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은 여전했지만 호흡은 한결 안정됐다.
우리는 제 얼굴을 바라보는 건우에게 물병을 내밀었다. 정신없이 춤을 추느라 건우도 분명 목이 마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한 번만 드세요. 땀이 무슨. 거의 탈수 직전이라니까요.”
우리는 이마를 적신 땀을 훔치면서 말했다.
“좀 더 마셔요.”
“저는 충분히 마셨어요. 그러니까 얼른 드세요. 차장님.”
“고우리 말이면 거절할 수가 없네.”
“저희 근데 그냥 내려가도 되겠죠. 앵콜은 뭐…….”
우리는 환호성을 만끽하고 있는 선영을 보고는 말을 아꼈다. 선영이 알아서 뒷일은 해결할 거라는 눈빛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건우와 우리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격렬했던 무대의 민망함이 뒤늦게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내려갑시다.”
“네. 물 좀 드시면 바로 갈게요.”
건우가 버석했던 목을 축였다. 건우의 목울대는 느릿하게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그 모습에 홀랑 반해버린 것처럼 우리는 넋을 잃고 건우의 목울대를 바라봤다.
‘아우…… 목젖도 잘생겼어!’
까만 선글라스가 음흉한 눈빛을 가려주리라 생각하면서 우리는 편히 마음을 놓았다.
건우가 물을 비우는 순간까지도 거대한 환호성을 계속됐다.
좁지도 넓지 않은 무대 위에서 우리와 건우는 서로를 바라봤다. 달달한 눈빛이 선글라스 뒤로 넘나들었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선영의 얼굴에 번지는 묘한 계략의 미소를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선영은 사랑의 큐피드처럼 둘을 바투 붙이고 싶어 안달이 난 얼굴이었다.
“저희 마케팅, 앵콜 하겠습니다!”
마이크를 타고 선영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영의 말에 모두 환호를 질러댔다.
순식간에 귓가를 파고드는 불길한 느낌에 우리는 선영을 봤다.
시원스럽게 선글라스를 벗은 선영의 눈빛은 번뜩거렸다.
“고대리님하고!”
마이크를 잡고 있던 선영은 한 손으로 우리를 가리켰다. 열정적인 기운을 품은 손길이었다.
우리는 절대로 앵콜은 있을 수 없다는 것처럼 엑스 표시를 해댔다.
“육갑!”
“앵콜! 앵콜!”
하지만 모두 우리의 거부 표시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연달아 날아드는 힘찬 목소리에 우리는 짐짓 당황했다. 곱게 깔린 멍석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우렁찬 박수 소리에 떠밀린 것처럼 선영이 팔락거리면서 우리에게 다가갔다.
“대리님. 한 곡만!”
마이크를 내미는 선영의 목소리는 명랑하기만 했다. 우리는 빙글 미소를 머금은 선영을 봤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없다는 말은 확실히 거짓말이었다.
어차피 뱉을 침은 무슨 얼굴을 했다고 해도 날아가기 마련이었다. 웃는 얼굴이든 찡그린 얼굴이든.
“강선영씨.”
“넵! 대리님.”
“앵콜은 계약에 없던 걸로 알고 있는데.”
날카로운 질문이 우리의 입술을 비집고 날아갔다.
“딱 1절만 하고 끝낼게요.”
“절대 허락 못 해.”
우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열정적인 춤사위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뜨겁게 내리쬐는 조명을 헤집고 무대 아래로 도망치고 싶을 뿐이었다.
“1등은 확실히 굳혀야죠!”
“그래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열심히 두 분을 돕겠습니다.”
“그건 본래 있던 조항이고.”
우리의 말에 선영은 할 말을 잃었다. 별달리 우리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영은 질끈 입술을 깨물면서 뒤를 돌았다. 유성처럼 수없이 떨어지던 반짝이는 모두의 눈빛을 져버릴 수가 없었다.
“그럼…… 두 분께 1등 상품 전부 드리겠습니다!”
선영이 우리의 손을 꼭 붙잡았다. 1등 상품이라는 소리에 우리가 주춤거렸다.
100만원 값어치의 해외여행 상품권!
누구든 탐낼 수밖에 없는 상품이었다. 우리의 눈빛이 조명만큼 뜨겁게 번뜩댔다.
선영의 말대로 1등이 코앞에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꼭 1등 먹고 싶어서요.”
“왜 1등이 하고 싶은 건데. 상품까지 주면 남는 것도 없잖아.”
우리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마이크를 턱에 대고 있던 선영은 눈을 깜빡거렸다.
1등에 집착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어…… 박수가 남잖아요.”
우리가 생각조차 못했던 대답이었다. 별난 대답. 걱정이라고 눈곱만큼도 없는 해맑은 미소가 선영의 입가를 적셨다.
우리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선영을 빤히 쳐다봤다.
‘반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뭐가?’
‘부탁을 거절한 남자! 정말 처음이었어요!’
성민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소리치던 선영의 모습이 우리의 뇌리를 스쳤다. 그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선영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우리의 입술을 비집고 피식 얇은 웃음이 흘렀다.
“방금 약속한 거다. 1등 상품.”
우리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가끔은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쉬운 곡으로 부탁해. 격렬한 춤은 출 기력이 아니라서 나 쓰러질지도 몰라.”
“당연하죠. 두 분께 잘 어울리는 곡으로 달릴게요!”
“달리지 말고 천천히.”
“사실 이미 결정했거든요. 앵콜곡이요.”
“무슨 곡인데.”
우리의 질문에 어둠을 헤치는 별빛처럼 선영의 눈이 반짝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