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화. 무시무시한 장기자랑의 서막
우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건우를 빤히 쳐다봤다.
“지금 방금 뭐라고.”
“고대리님이 조장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문제 있습니까.”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 계속 추천 받으시죠. 원하시면 스스로 추천하셔도 되고.”
“아니. 내가 뭘 원한다고. 강차장도 참.”
웃음을 터뜨리는 우팀장의 모양새가 꽤나 어색해보였다. 건우가 먼저 선수를 칠 줄은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팀장의 얼굴에 번졌던 사람 좋은 미소도 전부 사라져있었다.
우리를 쳐다보는 우팀장은 심각하기만 했다.
‘왜 하필이면 미친 고대리를 추천하냐고.’
천하를 호령하듯 조를 끌어나갈 우리를 상상하는 것조차 싫었기 때문이었다.
“더 추천 없나.”
우팀장은 채근하듯 조원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건우만큼 우팀장도 잘 알고 있었다. 대개는 첫 추천이 판세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그럼 저도 고대리님으로 할게요.”
“저도.”
파도타기라도 하듯 모두 건우의 말에 찬성을 외쳤다. 건우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도 없이 조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건우를 바라보던 우팀장의 눈빛은 이글거렸다.
우팀장은 뼈에 사무치도록 얄미운 원수를 만난 기분이었다. 건우의 얼굴만 봐도 재수가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본부장과 건우만 없었다면 힘껏 소리쳐댔을 지도 몰랐다.
강차장, 재수 없어. 꼭지가 돌아버릴 만큼 재수 없다고!
“우팀장님은 이견 없으십니까.”
“왜요. 이견 있을 것 같아 보입니까.”
“예. 조장 하고 싶으시면 직접 본인 추천하셔도 됩니다.”
“완장은 부담스럽기만 하지. 난 별로라. 그리고 대세가 고대리네. 그럼 고대리로 뭐.”
떨떠름한 미소를 날리면서 우팀장도 결국에는 우리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달가운 표정은 아니었다.
“고대리. 근데 진짜 괜찮겠나. 고대리는 모르겠지만 조장이 진짜 쉽지가 않아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괜찮아요.”
“아니. 진짜로 또 소리도 우렁차야 되거든. 조원들 부르려면. 짐 옮기느라 힘쓸 일도 꽤 있을 테고.”
“그래서 우팀장님이 하고 싶으신 건가요.”
빙빙 에둘러서 말하는 우팀장의 말끝을 잡으면서 우리가 물었다. 정곡을 찌르는 말에 우팀장은 뜨끔했다.
하지만 이내 우팀장은 우리의 말을 털어내듯 귀를 후벼댔다.
“나는 조장, 줘도 싫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로 거짓말까지 죽죽 내뱉었다.
“그냥 나는 말이야. 이걸 말해도 되려나.”
“네. 말씀하세요.”
“그냥 뭐…… 조장은 역시 남자가 맡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우팀장은 은근슬쩍 우리에게 조장 포기를 권했다. 우리의 말에 종일 요리조리 움직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강차장이 낫지. 고우리라니.
C조를 진두지휘 하는 우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파삭 죽는 것만 같았다.
“위험한 발언이시네요.”
“왜. 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훌륭한 조언인데.”
“경험에서 우러나온 차별 발언이신 것 같아서요.”
우리는 우팀장의 말에 반박했다.
“잊으셨나본데 제가 작년 팔씨름 1등이었어요.”
우리의 말에 우팀장은 작년 워크숍의 기억을 더듬었다. 우리의 힘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가던 직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팔씨름 여자부 1등.
그야말로 독보적인 팔씨름 괴물의 탄생이었다.
“이제 기억 나셨나 봐요.”
“어우. 그걸 잊을 수가 있어야지.”
“힘은 증명된 것 같고 목소리는 아시죠. 제가 한 목소리 하는 거.”
우팀장은 달리 반박을 하지 못했다. 지축을 흔드는 우리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뭘 그렇게 설명을 하고 그래.”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요.”
“내가 언제 그랬다고. 해. 무조건 해. 아주 잘해보세요. 고대리.”
빈정대듯 말하는 우팀장의 목소리는 유쾌하지는 않았다. 매번 가졌던 조장이라는 완장을 뺏긴 기분이 생각보다 더 짜증스러웠다.
우팀장은 그야말로 굴욕의 날이라고 생각했다.
에라이. 이 C조 같은!
“요즘은 진짜 다들 싸가지가 없어요. 나 때만 해도 팀장님이 말하면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하여튼 당해봐야 알지.”
궁싯거리는 우팀장은 어디 한 번 잘 해보라는 듯 옅은 코웃음을 날리면서 앞장섰다.
“우팀장님.”
“왜.”
“단독으로 움직이시면 곤란하죠. 저희 모여서 이동할게요. C조끼리.”
우리는 부드러운 미소를 날리면서 무리를 이탈한 우팀장을 제지했다. 우팀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여러 색깔로 변했다.
불만스러운 상황에 우팀장의 아랫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우리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결국 우팀장은 투덜대면서 C조의 무리로 돌아왔다.
***
스파르타에 버금가는 엄격한 우리의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겨울산 등산과 역량 강화 교육에 레크레이션까지……. 최고의 단합을 선보였다.
C조는 건드릴 수 없을 만큼 막강한 조가 됐다.
조별 점수에서 역대 최고점까지 얻은 C조는 워크숍의 단합 우승팀이 됐다.
워크숍의 뒤풀이. C조의 테이블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조별 우승 선물로 전달된 상품권은 모두를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술잔을 들고 모두가 우승의 기쁨을 누리는 와중에도 우팀장만은 뚱한 얼굴로 우리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대리님. 진짜 최고였어요.”
“진정한 리더십니다!”
“솔직히 고대리님 아니었으면 우승 못했을 걸요.”
모두 우리를 향해 칭찬을 쏟아냈다. 우리는 쑥스러워 손만 내저었다.
항상 말끔한 일처리로 신임을 얻었지만 동료와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던 우리였다.
되도록 피하면 좋은 고똘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리는 직원들과 살가운 대화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다 잘해줘서 그러지.”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우리에게서 온기를 품은 말이 절로 흘렀다.
“아니죠.”
“오늘은 다 고대리님 덕분이라니까요. 저 진짜 등산 때 고대리님이 등 밀어주시지 않았으면 포기했을 걸요.”
모두의 칭찬을 듣던 우리가 건우를 봤다. 건우는 연한 미소를 흘리면서 살짝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것처럼.
그 미소 하나에 우리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자. 그럼 저희 건배할까요.”
우리가 잔을 들고는 말했다. 고생한 조원들과 건배를 외쳤다.
멀게만 보이던 직원들이 우리와 한결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고생했습니다.”
건우의 다정스러운 목소리가 천천히 번졌다.
“차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직 한 고비가 더 남았지만.”
건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어 있는 무대에 조명이 켜졌다.
워크숍의 하이라이트. 장기자랑의 무대가 열린 것이었다.
“저희 F&B본부의 꽃. 호빵의 단팥 같은 순간! 장기자랑이 돌아왔습니다.”
사회를 맡은 영업팀 최과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취기가 약간 오른 최과장의 목소리는 들떴다.
“그럼 저희 심사를 맡아주실 본부장님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최과장의 말에 본부장은 가벼이 손을 흔들었다. 장원급제를 한 선비의 손놀림만큼 우아하고도 품위 있게 보이려고 나름 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껄껄 웃음을 터뜨리던 본부장은 손을 까딱거리면서 최과장을 불렀다.
본부장의 귓속말을 듣던 최과장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우리 본부장님께서 방금 대단한 의견을 주셨는데요.”
“…….”
“공정한 평가를 위해 한 분이 더 심사를 보셨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최과장의 말에 우팀장은 꿀꺽 침을 삼켰다.
우팀장의 엉덩이는 들썩이고 있었다. 제 이름이 불리기를 바라면서.
“바로…… 마케팅팀 강차장님!”
최과장이 힘차게 말했다. 반쯤 일어났던 우팀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본부장의 선택은 항상 우팀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우팀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건우를 노려봤다.
우팀장은 건우가 제 공간을 침범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것도 야금야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잠식하고 있다고.
하지만 본부장의 선택에 반기를 들 수 없었던 우팀장은 소주잔만 연거푸 비워냈다.
“강차장님!”
최과장은 건우를 모셔가려는 것처럼 C조 테이블로 걸어왔다. 건우가 마이크를 가져갔다.
“죄송하지만 심사는 못할 것 같습니다.”
건우의 뜬금없는 선포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본부장의 권유를 거절한 꼴이 됐기 때문이었다.
본부장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목을 빼고는 건우를 보고 있었다.
마치 우리 강차장이 그랬을 리가 없다고 소리치는 것처럼 보였다.
“아…… 간단하니까 그래도…….”
“공정한 평가의 취지에서 어긋날 수 있을 것 같아서.”
“……?”
“출전합니다.”
건우가 최과장을 보고는 덤덤히 말했다.
“이번 장기자랑.”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건우의 목소리에 장내는 일순간 고요해졌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건우의 말에 모두 뜨악한 얼굴이었다.
모두 설마, 하는 얼굴이었다. 높은 직급의 상사들은 장기자랑에 참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건우가 취기에 어쩔 수 없이 나왔던 육각수 사태와는 엄연히 다른 상황이었다. 건우는 정말로 멀쩡해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이크를 가져가려던 최과장의 손도 허공만을 방황하고 있었다. 모두가 얼떨떨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비장한 얼굴로 건우의 말에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 2의 육각수 사태를 진즉에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아…… 예. 그렇다고 하시는데요.”
최과장은 급히 건우의 손에 있던 마이크를 가져갔다.
“단독 심사. 괜찮으시겠습니까. 본부장님.”
최과장의 말에 본부장은 두 손을 들고는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서프라이즈 같은 건우의 출전에 흐뭇한 얼굴이었다.
“네! 그럼 강차장님 무대도 기대되는데요.”
최과장은 당황한 기색을 애써 눌렀다.
“바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최과장의 쾌활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과장은 빠르게 무대로 돌아갔다. 밝은 조명이 최과장을 환하게 밝혔다.
연습을 했던 것처럼 최과장은 능숙하게 무대를 열었다.
무대는 번쩍거렸고 물 흐르듯 첫 번째 무대가 시작됐다.
‘분명 강차장님이 없었는데…….’
무대에서 내려와 급히 큐시트를 훑던 최과장의 눈이 커졌다.
[마케팅팀 사원 강선영 with 댄서들]
마지막 순서에 적힌 무대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과장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멀찍이 있는 C조 테이블을 바라봤다.
‘강차장님의 무대가 설마…….’
어둠 속에서 보이는 건우는 덤덤한 얼굴로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있었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처럼 술이라도 들이켜는 모양새였다.
“강차장님.”
가재미눈으로 건우를 보던 우팀장이 건우를 불렀다.
“예.”
“진짭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짜 나가냐고 묻는 겁니다. 저기에!”
우팀장은 무대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바짝 건우에게로 몸을 기울인 우팀장은 건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갑니다.”
“왜요. 왜 나가는데요.”
“개인 사유라고 해두죠.”
건우를 노려보는 우팀장의 눈에는 불신이 녹아있었다. 개인 사유라니. 우팀장은 코웃음을 쳤다.
분명 본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함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팀장은 연달아 뜨거운 콧김만 죽죽 쏟아냈다.
본부장의 애정과 신뢰를 이대로 뺏길 수는 없었다.
‘어떻게 얻은 감투인데.’
우팀장은 이를 꽉 물었다.
“아이고. 흥이 오르네.”
괜스레 우팀장은 운을 뗐다. 자연스럽게 장기자랑에 출전하기 위한 밑작업이었다.
우팀장은 힘차게 박수를 쳐대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점차 커지는 소리에 조원들은 우팀장을 힐끔거렸다.
“우팀장님.”
“왜요.”
“조금만 자중해주시죠.”
건우가 건조한 목소리로 우팀장을 말렸다.
“마이크보다 소리가 크셔서.”
“아…… 내가 흥이 남다릅니다.”
“그럼 직접 올라가시죠.”
“그래볼까요. 또 강차장님이 추천을 해주시니까. 내가 뿌리칠 수가 없네.”
우팀장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테이블을 짚은 우팀장은 술 한 잔을 비우고는 무대 근처로 걸어갔다.
기필코 건우는 이기고 말겠다는 다부진 의지만이 불타올랐다.
급히 마지막 무대를 접수한 우팀장은 건우를 봤다.
‘넌 오늘로 나가리다. 굴러온 돌 주제에. 어린놈의 시끼. 넌 죽었어.’
우팀장의 얼굴에는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어둠을 뚫고 쏟아지는 우팀장의 날카로운 눈빛을 우리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우팀장은 맹렬하게 불타고 있었다. 정작 건우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차장님. 괜찮을까요.”
우리가 우팀장을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조용히 노래 연습까지 해대는 우팀장을 보면서 우리는 걱정스러웠다.
누구 보다 우팀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팀장은 바퀴벌레처럼 악착같은 사람이었다.
한 방에 죽을 것만 같지만 극악한 상황에서도 신기할 정도로 악착스럽게 살아남는 그런 사람.
“놔두면 알아서 꺼질 겁니다.”
“열정이 쉽게 꺼지지가 않을 것 같은데…….”
“그럼 차근차근 꺼드려야죠.”
우팀장의 눈빛을 털어내는 건우는 차갑기만 했다. 건우는 테이블로 돌아오는 우팀장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모습이 꼭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보였다.
“나는 절대 못 참습니다.”
“뭘요.”
“……내 사람, 건드리는 건.”
건우는 우리를 봤다. 우리가 소상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건우는 대강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좋지 못한 일에 얽혀 우팀장이 우리만보면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도.
우팀장이 다시 우리를 건드리면 건우는 정말 폭발해버릴 지도 몰랐다.
“든든하네요.”
건우의 말에 우리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무슨 얘기를 그리 재밌게 해.”
우팀장은 우리에게 친한 척을 하면서 물었다.
“업무 얘기요.”
“워크숍까지 와서 업무는.”
“워크숍도 업무의 일환이니까요.”
“하여튼 우리 고대리가 열정하나는 피곤할 정도라니까요. 사람이 유도리도 없고. 그죠. 강차장님.”
우팀장은 날름 건우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건우를 내리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 어깨에 있는 손을 보던 건우가 우팀장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미소 한 줌 없는 메마른 얼굴이었다.
“쓸데없이 아부에 열을 올리는 것보단 낫죠.”
건우가 담담히 대꾸했다. 확실히 우팀장을 저격하는 말이었다.
건우는 어깨에 있는 우팀장의 손을 밀어냈다. 우팀장의 손이 힘없이 허공으로 툭 떨어졌다.
“그렇기는 한데. 여자가 살살대는 맛이 있어야 결혼 확신도 드는 거지. 고대리 남친도 참 피곤하겠어.”
우팀장의 말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우팀장이 잊었던 문규의 기억을 톡, 건드릴지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있잖아. 7년인가 8년 사귄 남친.”
“헤어졌어요.”
말을 던진 우리는 별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팀장님 같이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요. 힘들더라고요.”
“다 고대리 걱정해서 말해주는 거지.”
“네. 그러니까요. 관심 볼륨만 조금 줄여주셨어도 괜찮았을 텐데.”
우리는 벙긋 미소를 지었지만 말만은 날카로웠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큰 말다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보였다
“남탓을 하면…….”
“우팀장님. 죄송하지만 저희는 일이 있어서.”
건우가 우팀장의 말허리를 자르고는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건우의 말은 정중해보였지만 동시에 묘한 위압감을 풍기기도 했다. 맹수가 날카로운 발톱을 내민 것처럼 보였다.
우팀장의 추태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듯 건우가 일어났다.
“가죠. 고대리님.”
“아…… 네.”
덩달아 우리도 일어났다. 건우가 앞으로 손을 내뻗었다.
먼저 가라는 표시였다. 우리는 고맙다는 것처럼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건우의 커다란 덩치에 가려져 우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강당을 나섰다. 짐짓 갈피를 잃은 두 사람의 걸음은 숙소 쪽으로 향했다. 강당에서 최대한 멀찍이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강당에 모인 덕분에 숙소 쪽은 썰렁하기만 했다.
두 사람은 숙소와 산이 맞붙은 으슥한 곳으로 들어섰다.
“산이라 더 쌀쌀하네.”
건우가 바람이 몰아치는 방향을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외투를 벗어 우리에게 덮어주었다.
“저 괜찮아요. 차장님.”
“입고 있어요. 춥습니다.”
“진짜 저 따뜻해요.”
우리는 주머니에 있는 손난로를 꺼내어 흔들어댔다.
하지만 산을 타고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이 금세 두 사람을 덮쳤다.
우리가 찬바람이라도 맞을까. 건우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서서는 산바람을 막아섰다.
“근데 진짜 잘 출 수 있을까요. 아…… 노래가 너무.”
“지나치게 패기 넘치기는 하죠.”
“……네.”
아련한 눈빛으로 강당을 바라보던 우리가 한탄하듯 말했다. 완전 광란의 무대가 될 것이다.
어쩌면 모두가 포복절도 할지도. 놀라서 얼어붙을지도.
어쨌든 갓 태어난 망아지가 무대를 날뛸 것만은 확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