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57화 (57/102)

제 57화. 고대리, 추천하겠습니다

우리는 건우의 선택을 군말 없이 따를 생각이었다. 성민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건우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받아들이죠.”

“그 말은 소개 해주신다는 거죠. 그죠.”

선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물었다. 성민을 소개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영의 심장은 벌렁거렸다.

“예. 협상 체결합시다.”

“진짜 소개를…… 대박.”

“대신 강선영씨가 했던 말은 잘 지켜주길 바라죠. 조력한다는 말도 비밀로 한다는 말도.”

“넵! 지킬게요. 무조건이요. 무덤까지 잘 가지고 가겠습니다.”

선영은 선서라도 하듯 한 손을 바짝 들었다. 한껏 흥분한 선영의 목소리는 커졌고 코도 벌름거렸다.

성민과의 만남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선영은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연한 구름 위를 총총 걷는 것만 같았다.

“제가 뭐든 방어해드릴게요.”

선영은 들뜬 마음을 억누르려고 제 두 손을 맞잡았지만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기쁨의 웃음으로 선영의 입술은 연신 씰룩거렸다.

“잘 지켜야 할 겁니다.”

명랑한 선영의 목소리에도 건우는 담담하기만 했다.

오직 약속을 깨지 말라는 단호하고도 비장한 기운만을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난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이라.”

스산한 겨울바람만큼 피어오르는 묘한 냉기에 선영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에 나온 조항을 건우는 누구보다 잘 실행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눈에 흙이 들어와도 잘 지킬게요. 저…… 근데 차장님.”

집에 돌아갈 기색 없이 서 있던 선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나만 더…… 고려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조건이 더 있다는 겁니까. 곤란한데.”

팔짱을 끼고 있던 건우가 미간을 좁혔다.

“아…… 네. 딱! 정말 하나만. 그냥 서비스로.”

검지를 치켜들고 하나만을 외치던 선영의 얼굴은 간절해보였다. 건우의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흘렀다.

난데없이 등장한 추가 조건에 기가 막힌다는 얼굴이었다.

서비스라니. 배포도 크네.

“결렬입니다.”

“……!”

“협상은.”

건우는 선영이 뱉으려는 조건을 듣지도 않은 채로 단칼에 잘랐다. 갑작스러운 거절에 선영은 세상이 무너진 얼굴이었다.

그야말로 건우의 말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철옹성처럼 단단한 건우를 무너뜨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선영은 타깃을 변경했다.

“대리님. 진짜 하나면 되는데. 딱 하나요.”

선영의 애달픈 목소리가 우리를 흔들었다.

“그게 뭔데.”

“그러니까요.”

슬쩍 우리에게 다가선 선영은 속삭이듯 낮게 말했다. 선영의 말을 듣던 우리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연달아 깜빡거리는 우리의 눈에는 당혹스러움이 녹아있었다.

선영의 추가 조건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골치 아플 만큼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것만 해주시면 정말 열심히 협조할게요. 대리니임!”

애교 섞인 목소리가 흘렀다.

“대리님도 아시겠지만 진짜 조력자는 필수라니까요.”

“…….”

“완전 열심히 할게요. 맹세할게요.”

고민스러운 얼굴로 우리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은밀스러운 사내 연애에서의 조력은 확실히 놓치기는 아까운 카드였다. 지금처럼 골치 아픈 일이 발생했을 때 탈출구를 만들 기반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영씨. 근데 추가 조건이 계속 붙으면 곤란해.”

“절대 안 붙어요. 마지막이에요. 맹세합니다! 회사를 걸고 맹세할게요.”

선영은 손바닥을 쫙 펴고는 단단히 말했다. 회심의 다짐이었다.

우리는 괜히 사무실을 둘러봤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회사를 두고 한 선영의 맹세는 유난히도 믿음직스러웠다.

“수락하죠. 차장님.”

“괜찮겠습니까.”

“네. 소탐대실 말고 대탐소실해보려고요.”

우리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우리는 당장에 작은 것에 집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그마한 추가 조항에 짐짓 고민했다가 도리어 큰 것을 잃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단단한 눈길로 선영을 봤다. 선영의 추가 조건은 정말 눈 한 번 딱 감으면 끝날 일이었다.

당장의 손해를 참고 아군을 얻는 것이 선영의 말처럼 이득일 수도 있었다.

모든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낼지 알 수 없다면 우선은 해보는 것이 좋았다. 적어도 해보지 못해서 후회할 일은 없을 테니까.

“할게.”

우리가 선영을 보고는 말했다.

“정말요?”

“그러니까 잘 부탁해.”

우리는 선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선영은 우리의 손을 덥석 잡았다. 두 사람은 힘차게 악수를 했다.

정상회담만큼 짜릿하고도 놀라운 아군 확보의 현장이었다.

“방해꾼이 슬슬 빠질 때가 된 것 같아서요.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예.”

선영의 말에 건우는 대번에 대꾸했다. 용건이 끝났으면 가보라는 매서운 눈빛과 함께.

건우가 싱글벙글 미소를 짓던 선영에게 턱짓을 했다. 빨리 가보라는 노골적인 몸짓이었다.

“차장님. 대리님. 완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선영다운 발랄한 끝인사였다. 냉큼 인사를 한 선영은 사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뿐하게 사무실을 나서던 선영이 뒤를 돌았다.

선영의 눈에는 두 사람의 연애가 아찔하고도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선영은 입꼬리를 한껏 말아 올리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와 건우를 번갈아 쳐다보던 선영은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해주기라도 하듯 두 사람을 향해 수줍게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갑작스럽게 날아든 손가락 하트를 빤히 쳐다보면서 건우가 우리를 보고는 물었다.

“그러게요.”

“불안하네.”

“그래도 아군은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요.”

건우와 우리의 건조한 눈빛이 선영을 향해 흘렀다. 두 사람의 걱정을 알지 못하는 선영은 진한 미소만을 날리면서 사무실을 나갔다.

우리와 건우는 사무실 출입구 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길 바라야죠.”

건우의 낮은 목소리가 번져나갔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시린 불안이 넘실거렸다. 괜찮은 아군을 사로잡은 것인지 제대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굳은 침을 삼키는 우리는 간절히 바랐다. 강하게 던진 자신의 한 수가 부디 옳은 선택이었길.

***

F&B본부의 워크숍 날.

아침부터 회사는 부산스러웠다. 모두 단체로 맞춘 후드티를 입었다.

정신없는 틈에도 건우는 무심한 얼굴로 살뜰히 팀원들을 챙겼다.

마케팅1팀은 나란히 전세버스에 탔다. 우리와 건우는 따로 떨어져 앉았다. 멀찍이 지정석이 배정됐기 때문이었다.

건우의 옆에 앉은 선영은 불편해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뒤에 앉은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던 선영의 엉덩이가 쉬지 않고 들썩거렸다.

“고대리님!”

선영은 힘차게 우리를 불렀다. 좋은 방도가 있다는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저하고 자리 좀 바꿔주실 수세요.”

“어…… 왜?”

“창가는 이상하게 머리가 아파서요.”

우리가 눈치를 살폈다.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우팀장은 선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근데 차장님도 창가는 별로라고 하셔서…….”

말끝을 끌면서도 선영은 눈썹을 씰룩거렸다. 가히 노골적으로 육갑 커플의 부활을 밀어붙이는 눈짓이었다.

선영은 괜히 멀쩡한 머리만 꾹꾹 눌러대고 있었다.

“아…… 머리야. 죽겠어요.”

“알았어.”

우리는 짐을 챙기고는 일어났다.

“이쪽으로 와.”

“감사합니다. 대리님!”

우렁찬 선영의 목소리가 버스에 번졌다.

우팀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우리에게 태클이라고 걸려고 했지만 건우의 맹렬한 눈빛에 금세 깨갱댔다.

“이봐. 꼭 멋대로라니까. 바꾸지 말고 다들 그냥 앉아.”

우팀장은 애꿎은 팀원들에게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모두 한껏 떠드는 소리에 우팀장의 목소리는 흔적도 없이 파묻혔다.

우팀장의 말을 가뿐하게 털어낸 우리는 건우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불룩한 가방을 다리 위에 올려놨다.

“……겨우 바꿨네.”

건우가 조용히 말했다.

“설마…… 둘이 공모하신 건 아니죠.”

“열심히 했습니다. 공조.”

두 사람은 등을 기댄 채로 꼿꼿하게 앞만 보고는 작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서로의 얼굴을 보면 큰일이라도 나는 사람들처럼.

“숙소도 바꾸고 싶군요.”

“그건 절대 무리예요.”

“무리라니까 도전하고 싶어지네.”

“무조건…… 참는 걸로 해요. 차장님.”

서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두 사람은 소곤거리고 있었다.

“내가 꽤 질척거리는 사람이라.”

“넣어두세요.”

우리의 말을 듣던 건우가 고개를 돌렸다. 앞만 바라보던 우리가 힐끔 창을 봤다.

창에 비친 건우의 유혹적인 미소가 짙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건우의 눈빛을 외면하려고 애를 썼다.

잘못하면 홀딱 건우의 말에 넘어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춥지 않습니까.”

“조금요. 곧 히터 빵빵하게 틀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래도 잠깐 덮고 있어요.”

건우가 외투를 벗었다. 꽤 두꺼운 외투였다. 건우는 외투가 두 사람의 다리와 커다란 가방을 덮었다.

“저는 괜찮아요. 가방도 있고…….”

우리가 외투를 걷으려던 순간이었다.

“내가 아쉬워서.”

매혹적인 말과 함께 건우가 우리의 손목을 잡았다. 우리의 손이 멈췄다. 콩닥거리는 맥박이 건우에게 그대로 전해질 것만 같았다.

두꺼운 외투 속. 우리는 손목을 붙잡은 건우의 손가락을 고스란히 느꼈다.

우리의 눈빛이 출렁거렸다. 거미처럼 손목을 휘감은 건우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우리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건우가 잡은 손목을 타고 짙은 온기가 천천히 번져나갔다.

우리는 버석해진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조심스럽게 침을 삼켰다.

“아무도 모를 겁니다.”

“…….”

“절대로.”

우리가 약간 고개를 돌려 건우를 봤다. 손목을 간질이는 온기가 우리도 싫지만은 않았다.

버스가 출발했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우리의 마음도 파도처럼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연달아 목구멍 위로 불쑥 솟는 웃음을 힘겹게 삼켰다. 꿀꺽. 또 꿀꺽.

우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 들킬까. 작은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외투 속은 금세 뜨거워졌다.

후텁지근한 기운에도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았다.

고요하고도 은밀한 스킨십의 마력에 빠져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내리기 싫다.”

“연수원이라니…….”

한참 서로에게 붙어있던 두 사람의 손길이 떨어졌다. 도로를 내달리던 버스가 멈췄기 때문이었다.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졌다. 세차게 불어오는 칼바람과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잠기만으로도 사람들은 지친 얼굴들이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해대는 사람들이 차례로 버스에서 내렸다.

몸을 풀면서 버스에서 내리던 우팀장은 같은 외투를 덮고 있는 우리와 건우를 봤다.

꼬투리라도 잡고야 말겠다는 것처럼 우팀장은 빠르게 눈알을 굴려댔다.

“어우! 다정하시네.”

우팀장의 목소리는 꽤나 뾰족했다. 뜨끔한 우리가 건우의 손을 빼내려고 했다. 외투가 살짝 들썩거렸다.

건우는 움직이지 말라는 것처럼 우리의 손목을 더 부드러이 잡았다. 건우의 힘에 우리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다.

“강차장. 누가 보면 오해라도 하겠네요.”

“무슨 오해 말씀입니까.”

“그때 왜 고대리하고 커플로 유명해지셨잖습니까.”

“그러게요. 유명했죠. 왜요. 탐나십니까.”

건우는 우팀장의 말을 여유롭게 받아쳤다. 무서울 정도로 매섭게 날아든 우팀장의 공격은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우팀장은 그저 육각수의 흥부 하나로 본부장의 사랑을 얻은 건우가 미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만 가시죠. 길 그만 막으시고.”

건우가 우팀장의 뒤를 보고는 말했다. 좁은 버스 복도를 벗어나지 못한 직원들이 말은 하지 못했지만 불만 섞인 얼굴로 전부 우팀장을 보고 있었다.

사방에 침을 튀기면서 열성적으로 건우를 공격하던 우팀장은 금세 쭈글거렸다.

“강차장이 말하지 않아도 가려고 했습니다.”

“가시죠.”

“예예. 계속 말하지 않아도 갈 겁니다. 가요!”

우팀장은 빽 소리를 지르고는 버스에서 내렸다. 막혔던 길이 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직원들은 차례로 버스에서 내렸다.

모두가 내린 버스에는 우리와 건우만 남았다.

슬며시 주변을 살피던 우리가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전 수상해보였겠죠.”

우리가 건우의 외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정하게 외투를 덮고 있다니!

정말 말렸어야만 했을지도 몰랐다. 늦은 후회가 우리의 얼굴에 흘렀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어요. 보는 눈도 많고.”

“잘 참을 수 있을지를 모르겠네.”

건우는 장담할 수 없다는 듯 말끝을 늘였다.

“당연히 참을 수 있죠. 의지의 차이입니다. 차장님.”

우리가 버스를 나서면서 단단한 눈빛을 날렸다. 우리는 건우가 마냥 걱정스러웠다.

잘못하다가는 비밀스러운 사내 연애가 들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공개 연애를 할 용기가 없었다.

온갖 사소한 일과 다툼으로 인한 변화까지 전부 회식의 안줏거리로 전락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못 건우와 헤어지기라도 하면…….

우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사람들은 친절을 가장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설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행복보다 불행에 더 친절한 법이니까.

수없는 위로의 손길은 상상만으로도 사악하고도 끔찍해보였다.

“무튼 저희 조금만 조심해요. 내일이면 다 끝나니까.”

우리의 말에도 건우는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가만히 우리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고우리씨.”

“네?”

“혹시 숨 참아본 적 있습니까.”

“어…… 있죠. 근데 그건 왜요.”

우리는 건우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만큼입니다.”

“……?”

“고우리 참기.”

건우의 목소리는 진지하기만 했다. 웃음 한 줌도 없었다. 농담이 아닌 것이었다.

“의지로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겁니다.”

당황한 얼굴로 서 있던 우리에게 고요한 건우의 말이 찬찬히 물들었다.

우리는 이상하게 건우에게 설득돼가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새에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버스에서 내려던 찰나였다.

“강차장님!”

다시 버스로 올라온 황주임이 황급히 건우를 불렀다.

“본부장님이 애타게 찾으셔서요.”

“본부장님 벌써 오셨습니까.”

“아침부터 차타고 오셨대요.”

“알겠습니다. 가죠.”

건우가 천천히 버스에서 내렸다. 건우를 발견한 본부장은 극도로 신이 난 얼굴이었다.

“강차장!”

본부장은 열심히 보필을 하던 우팀장의 손까지 뿌리치고는 버선발로 건우에게 달려갔다.

본부장의 등장에 우리와 건우의 거리가 살짝 멀어졌다.

“그때 말한 바이오주 말이야. 진짜 급등했더라고.”

“그랬습니까.”

“아니. 이런 고급정보는 어떻게 알았어.”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이네요.”

“강차장. 정말 복덩어리라니까. 대체 강차장 같은 복덩어리가 어디서 온 거야.”

본부장은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고는 너털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내가 강차장한테 크게 한 턱 내야하는데 말이야.”

“마음만 받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건우에 대한 본부장의 호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충실한 개처럼 본부장에게 충성하던 우팀장은 적잖이 열이 올랐다.

바짝 가까워진 건우와 본부장을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별로 모입시다!”

우팀장은 너른 건우의 등을 향해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본부장과 건우 사이에 도는 훈훈한 기운을 깨뜨리려는 것처럼.

“C조! 늦게 모이면 감점이라고!”

우팀장의 방법은 통했다. 본부장과의 대화를 적당하게 끊은 건우가 우리에게 다가섰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조 중에서도 단연 눈에 튀는 것은 C조였다.

그 누구라도 피하고 싶어 하는 살벌한 죽음의 C조.

육각수 노래를 신명나게 불러재꼈던 육갑 커플과 본부장의 딸랑이 우내시의 조합만으로도 C조는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세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경계와 긴장은 C조 조원들을 모두 얼어붙게 만들었다.

“조장은 강차장이 하려나.”

우팀장은 심히 완장을 갈구하면서도 은근슬쩍 건우를 떠봤다.

“흥미 없습니다.”

“에이. 설마요. 하시고 싶으실 것 같은데.”

“우팀장님이 하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건우의 말에 우팀장은 뜨끔했다.

“나도 그다지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꼭 필요하다고 하면 해야겠지만 욕심은 없어요.”

우팀장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심드렁한 척을 했다. 건우만큼 쿨하게 조장에는 관심도 없다는 것처럼.

하지만 담담한 척 애를 쓸수록 우팀장의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욕심주머니는 점점 선명해졌다.

“생각 없으시다니 그럼 투표로 하죠.”

건우의 말에 우팀장은 미간을 좁혔다.

‘강차장 자식. 성가시게.’

조원들의 추대를 받아 어쩔 수 없이 조장을 맡으려던 우팀장의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투표라면 조장 투표를 하자는 거죠.”

우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예. 민주적으로.”

“아…… 투표. 좋네. 민주적이고 좋습니다.”

우팀장은 터지려는 코웃음을 삼키면서 어색하게 박수만 쳐댔다.

“그럼 누가…….”

“고대리님 추천하겠습니다.”

모두 후보로 나올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눈빛을 날리던 우팀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살짝 손을 들고 우리를 추천한 건우의 말, 그 한 마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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