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화. 우리 회사에는 슈퍼맨이 산다
수없이 날아드는 우리의 칭찬에 건우는 으쓱했다. 여유와 자신감도 짙어져갔다.
길게 감탄사를 끌어대던 우리가 냉큼 맥주 캔을 집어 들었다.
더는 거짓말을 잇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든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었다.
심지어 하얀 거짓말조차도.
“복권 세 장으로 편하게 살려면 죄다 1등에는 당첨돼야겠네요.”
우리는 알코올에 취한 듯 실없는 농담을 뱉었다.
“그런 셈이죠.”
하지만 건우는 진지한 얼굴로 우리의 농담을 받아냈다.
하늘 높이 솟구치는 건우의 자신감에 할 말을 잃은 우리는 맥주만 꿀떡꿀떡 넘겨댔다.
맥주가 시원스럽게 넘어갔다. 한참 맥주를 비워내던 우리가 제 핸드폰을 봤다.
새벽 3시. 곧 어슴푸레한 빛을 비집고 햇볕이 쏟아질지도 몰랐다.
옅은 술기운과 함께 몰려든 졸음이 건우를 덮쳤다.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던 건우는 테이블에 엎드려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아…… 잘생겼어.’
턱을 괴고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가 속으로 감탄했다. 날카로운 콧날과 촉촉한 입술이 우리의 마음을 잡아당겼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조차 유혹적이게 보였다. 건드리면 톡 깨져버리는 유리알처럼 우리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역시 다들 보는 눈이 있다니까. 이 얼굴을 보고 어떻게 참아. 감탄이 당연히 나오지.’
반상회에서 건우에게 쏟아졌던 시선이 생각났다. 우리는 아주머니들이 내뱉던 말에 절대 공감을 하고 있었다.
소문대로 잘생긴 1601호 바나나 총각!
그야말로 건우만 소화해낼 수 있는 끝내주게 잘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차장님.”
우리가 두 손을 모아서는 곤히 잠든 건우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건우는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이대로 주무시면 내일 뻐근할 것 같은데.”
우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차장님. 차장님?”
우리의 말에도 곤히 잠든 건우는 깰 줄을 몰랐다. 불편한 건우의 자세에 우리는 괜스레 제 어깨가 찌뿌드드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조용히 건우의 주변에 있던 쓰레기를 치웠다.
금세 말끔히 테이블을 치운 우리가 허리춤에 손을 대고 건우를 봤다.
“저 진짜 가야 되는데.”
건우를 옮길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민에 빠진 우리가 소파에 있던 담요를 가져왔다.
급한 대로 담요를 펼쳐 건우에게 덮어주었다. 우리가 테이블에 있던 핸드폰을 들었다.
새벽 3시 30분. 은밀한 외출을 미순이 눈치 채기 전에 돌아가야만 했다.
우리는 꼭 신데렐라라도 된 기분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유리 구두를 놓고 간 신데렐라와 달리 알콜렐라는 빈 캔과 쓰레기만 남기고 간다는 것이었다.
“저…… 가요. 차장님.”
“…….”
“내일 봬요. 진짜 가요.”
착 가라앉은 우리의 목소리는 제법 비장해보이기까지 했다. 건우는 뒤척거림도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살금살금 빈 밀폐 용기를 들고 현관문으로 가던 우리의 발길이 멈췄다.
아침에 일어나면 뻑적지근해 죽을 텐데. 진짜 괜찮으시려나.
일어나면 부지런히 어깨를 두드릴 건우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심각한 얼굴로 건우를 보던 우리가 결국 발길을 돌렸다.
테이블에 잠든 채로 건우를 두고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건우의 팔을 둘렀다. 제법 무거웠다.
“소파에서라도 주무세요.”
우리는 힘껏 건우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건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간힘을 쓰는 우리의 얼굴만 터질 것처럼 빨개지고 있었다.
조금의 들썩임도 없는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심기일전. 그 말도 소용이 없었다.
난감한 얼굴로 건우의 팔을 내린 우리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살살 테이블을 움직이면 건우를 바닥에라도 눕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테이블을 잡아당겼다.
꽤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된다! 된다.’
우리가 성공의 기쁨에 사로잡혔을 때였다.
밀려난 테이블에 건우의 몸은 옆으로 기우뚱했다.
“……!”
쿵. 참 청량한 소리가 번져나갔다. 건우가 테이블에 이마를 박아버린 것이었다.
이마를 타고 번지는 아린 기운에 바닥에 누웠던 건우가 몸을 일으켰다.
건우의 얼굴에는 여전히 졸린 기운이 눌어붙어 있었다.
“아…….”
뒤늦게 아픔을 인지한 건우의 입술 사이로 묵직한 숨이 흘렀다. 건우가 이마를 문질렀다.
새빨개진 건우의 이마에 우리는 재빨리 테이블에 엎드렸다.
모르쇠 전법이었다. 우리는 힘차게 코까지 골면서 자는 척을 했다.
‘꿈인가.’
건우가 잠든 우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꿈결이라고 생각했다. 제집에 곤히 잠든 우리가 있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빨개진 건우의 이마는 조금씩 부풀었다.
“고우리씨.”
나직한 건우의 목소리가 퍼졌다.
‘들켰나.’
두 팔에 얼굴을 묻은 우리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버석하게 마른 목구멍을 달래듯 침을 삼켰다. 우리는 작은 미동도 없이 건우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잡니까.”
건우가 살짝 우리를 흔들었다. 꿈에 나온 우리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건우의 바람에도 우리는 입술을 꾹 다문 채로 자는 척에 열을 올렸다.
빳빳한 우리는 꼭 우직한 나무처럼 느껴졌다.
한편 우리는 들썩거리는 몸을 다잡으려고 애를 썼다. 연거푸 올라오는 웃음을 삼키느라 우리는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애꿎은 콧바람만 푹푹 흩날렸다. 우리는 프로젝트가 깨지는 슬픈 상상을 하면서 힘껏 웃음을 참아댔다.
“불편하게.”
건우가 우리를 가뿐하게 안아들었다. 테이블에서 잠든 우리가 불편할까. 비몽사몽 중에도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건우가 느린 걸음으로 침실에 들어섰다. 건우의 품에 안긴 우리는 억지로 눈을 감은 통에 속눈썹만 파르르 떨렸다.
건우가 조심스럽게 우리를 침대에 내려놨다. 폭신한 침대가 우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덩달아 건우도 침대에 누웠다. 건우는 우리를 바라봤다.
단 기운을 품은 건우의 눈빛이 침대 위로 흘러내렸다.
“고우리.”
건우는 읊조리듯 낮은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그저, 기뻤다. 우리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이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오늘도 예쁘네.”
도저히 우리를 놔둘 수가 없었다. 건우는 우리를 안았다. 너른 품에 우리를 가둔 것이었다.
탄탄한 건우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우리는 굳은 침만 꼴깍꼴깍 삼켜댔다.
건우의 입술을 비집고 기다란 숨이 흘렀다. 매번 지겹게 반복됐던 날선 악몽은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우에게 지독히 눌어붙었던 죄책감과 그리움의 향기가 연해져갔다.
건우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우리의 향기가 건우의 코끝을 간질였다.
“어디도 가지 마.”
“…….”
“……우리야.”
건우는 우리를 더 깊이 안았다. 놓아줄 수 없다는 것처럼.
부드러이 우리를 품은 건우의 숨결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졌다.
“……여기 꼭 붙어있을게요.”
건우는 우리의 말이 아스라이 느껴졌다. 온기가 녹은 우리의 말에 건우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모든 것이 편해졌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평범한 일상이 건우에게 천천히 스미고 있었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진하게 허공을 물들였다.
서로만 있는 밤. 숨결, 향기, 살결. 오감이 서로에게만 예민하게 작동하는 그런, 밤.
건우의 입가를 적신 미소는 서서히 진해졌다.
민우가 세상에서 사라진 이후. 건우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평온한 밤이었다.
***
주말 내내 휘몰아쳤던 눈발이 멈췄다.
사람들의 발길에 뒤채여 바닥에 쌓인 눈은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흐느적거리면서 녹던 눈이 땅을 질퍽하게 적셨다.
하늘을 보던 우리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허연 입김이 길게 흘렀다.
회색 빛깔이 물러간 하늘은 새파랬다. 청량한 기운이 흘렀다.
찌뿌듯한 몸을 풀 듯 기지개를 켜던 우리가 뒤를 돌았다.
적색의 코트를 입은 건우가 공동현관에서 걸어나왔다.
우리는 적색조차 퍽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저희 오늘 커플이네요.”
우리는 수줍게 코트를 열어젖혔다. 선명한 적색 니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우를 보는 우리의 얼굴에 빙긋 미소가 번졌다.
같은 색깔을 고른 것만으로도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근데 조심해야겠어요.”
“뭘 조심합니까.”
“괜히 누가 눈치라도 채면…… 지금 저 되게 제 발 저린 것처럼 보이죠.”
섣부른 걱정을 하던 우리가 건우에게 물었다.
색깔이야 겹칠 수도 있었고 모두 아무 생각이 없을 확률이 높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으니. 우리는 괜한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멈췄던 두 사람의 걸음이 움직였다.
“잊으세요. 쓸데없는 걱정…….”
“쓸데가 있는 걱정일 수도 있죠.”
우리가 건우를 봤다. 건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몰래 자랑하고 싶어서.”
“뭘요.”
“커플, 놓칠 수 없잖습니까.”
건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없던 병도 생긴다는 월요일 출근길.
북새통을 이루는 인파를 뚫고 회사에 도착한 순간.
우리는 커플을 놓칠 수 없다는 건우의 말을 뒤늦게 이해했다.
“……!”
건우는 적색 코트를 절대 벗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뜨겁게 달구는 난방의 위력에도. 본부장실로 향할 때조차도.
맙소사!
우리는 당황한 얼굴로 적색 코트를 휘날리면서 본부장실로 걸어가는 건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커플, 놓칠 수 없잖습니까.’
살짝 펄럭거리는 건우의 적색 코트는 슈퍼맨의 망토만큼이나 강렬했다.
차장님, 코트는 왜 그렇게 신나게 휘날리면서 다니시는 거냐고요!
직원들의 이목은 건우에게 집중됐다. 건우가 땀을 흘리면서도 코트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색 코트를 휘날리면서 건우는 본부장실로 사라졌다.
본부장실 쪽을 바라보던 우팀장은 탐탁찮은 얼굴이었다.
“추워서 돌았나.”
우팀장은 모두가 들을 정도로 크게 중얼거렸다.
본부장의 애정을 듬뿍 받는 건우가 그저 밉게만 느껴졌다.
팔락거리던 코트도 꼴사납게 생각될 만큼.
“아니. 진짜 돌았네. 확실히 돌았어.”
말을 끝낸 우팀장이 세차게 혀를 찼다. 불만스러운 기분을 마구잡이로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팀장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는 마케팅1팀으로 걸어갔다.
꼬투리라도 하나 잡겠다는 맹렬한 눈빛으로 마케팅팀을 훑었다.
찰싹찰싹. 바닥을 때리는 슬리퍼 소리가 우리의 귓가를 긁었다. 외부 프로모션 제안서를 수정하던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우팀장은 꼭 호랑이 없는 동굴을 힐끗거리는 여우처럼 보였다.
은근슬쩍 마케팅팀 팀원들의 모니터를 훑던 우팀장과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우내시의 습격이라니…….’
우리는 우팀장의 속내를 꿰뚫은 얼굴이었다.
필시 먹잇감을 찾고 있을 터였다.
“우팀장님.”
“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갑작스럽게 닥친 질문에 우팀장은 흠칫 놀랐다. 달리 꼬투리 잡을 만한 구석을 아직은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일어난 우리는 선영의 뒤에 섰다.
순식간에 모니터를 살피던 우팀장의 시야를 가려버린 것이었다.
“논의하실 내용이라도 있으신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CCTV인 줄 알았어요. 하도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셔서.”
우리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뼈가 있었다.
“화보!”
우팀장은 질 수 없다는 것처럼 빽 소리를 내질렀다. 우팀장의 목소리는 우렁차고도 잔뜩 날이 서 있었다.
“화보는 뭐…… 지지고 볶아서 만드나. 콘셉트 공유도 없고.”
“최종 결정 나면 공유 드리겠습니다.”
“차암내. 이거는 뭐. 영업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우팀장님.”
“매일 소화제라도 먹나. 이 팀은 편해도 너무 편해.”
우팀장은 우리의 속을 박박 긁었다. 짜증스러운 얼굴로 우팀장은 우리의 주위를 얼쩡거렸다. 도저히 잡을 수가 없는 모기처럼.
울컥 솟은 화를 달래면서 우리는 최대한 덤덤한 얼굴로 우팀장을 봤다.
괜히 언성을 높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군 새빠지게 밖에 도는데.”
우팀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마케팅팀을 내리훑었다.
여름의 햇볕만큼 따갑게 내리쬐는 우리의 눈빛을 우팀장은 가볍게 털어냈다.
대리 주제에 어디 감히 팀장한테.
우팀장은 우리를 보고는 조소를 흘렸다.
“그러니까요. 밖에 춥던데.”
“……?”
“저도 영업비 신나게 긁으면서 추위 좀 녹여보고 싶더라고요.”
우리는 능글맞은 얼굴로 법인 카드를 긁는 시늉을 했다. 옅은 미소조차 없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우리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황주임의 고개가 돌아갔다.
우리와 우팀장의 눈빛에서는 스파크가 튀었다.
모두 다른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일촉즉발의 상황에 집중하고 있었다.
고똘과 우내시의 1차 대전!
짙어진 적막을 타고 긴장감이 돌았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온풍에 우리와 우팀장의 머리칼이 비장하게 흩날렸다.
“고대리.”
“네.”
우팀장의 부름에 우리는 고민하지도 않고 칼같이 대답을 했다.
“지금 우리 영업 깔보는 거야?”
우팀장은 냅다 성을 냈다. 우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목소리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논리로는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우팀장은 잘 알고 있었다.
우팀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여러 색깔로 변했다.
“말투부터가 확실히 비꼰 건데.”
“그럴리가요.”
“영업비는……,”
“잘 쓰시겠죠.”
우리는 부드럽게 우팀장의 말허리를 잘랐다. 단숨에 매듭짓는 우리의 말에 우팀장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입만 쌜쭉거렸다.
접대를 핑계 삼아 사리사욕을 채우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었다.
“근데 영업비도 영업력도 충분하신데. 화보 하나 때문에 영업을 못하신다는 게 말이 되나요.”
“누가 못 한다고 했어? 우리도 무기가 있어야지.”
“제품 드릴게요.”
우리가 책상에 있던 신제품을 우팀장의 두 손에 쥐어주었다.
꼿꼿한 우리의 태도에 우팀장의 눈은 이글거렸다.
우리가 거슬려 죽겠다는 눈빛이었다. 우팀장은 우리의 허벅지를 더듬던 순간을 후회했다.
‘상대를 잘 골랐어야했는데. 이런 상또라이를!’
제 잘못에 대한 반성보다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단순한 후회였다.
“제품만한 무기가 없잖아요.”
우팀장은 뜨거운 콧김만 죽죽 쏟아냈다.
“하긴. 우팀장님이 금방 잘 넣어주시겠네요. 예전에 팀장님이 본부장님께 그러셨잖아요.”
“내가 뭐랬는데.”
“사하라 사막에서 온풍기도 파실 수 있다고. 그런 분한테 음료 팔기는 껌이죠.”
우리가 말에 힘을 주었다. 말문이 막힌 채로 입만 벙긋거리는 우팀장과는 달리 우리에게서는 여유가 넘쳤다.
구시렁거리던 우팀장의 말도 목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우리의 부드럽고도 단단한 방패는 뚫릴 줄을 몰랐다.
“영업이 얼마나 힘든 줄은 알기는 하나. 죄다 책상에만 앉아있으니…….”
재공격을 시작하려는 것처럼 우팀장이 운을 뗐다.
우팀장은 마케팅팀을 돌아보면서 맹렬하게 혀를 차댔다.
“컴퓨터만 잡고 있으니까 기깔나는 아이디어 하나 없지.”
“…….”
“현장의 반응. 이게 중요한 건데. 쿵짝이 맞아야 대박도 나는 거고. 근데 그저 책상에 박혀서 지들 잘났다고.”
우팀장의 대범한 펀치였다. 우리는 별다른 대꾸 없이 우팀장의 말을 듣고 있었다.
우팀장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직설적인 화법에 우리가 꼼짝없이 얼어붙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우팀장님.”
“왜.”
“현장 반응 좀 정리해서 공유주세요.”
“뭐…… 뭐?”
“그러지 말고 저희 차장님께 말씀드려야겠네요.”
우팀장의 미간은 절로 좁혀졌다. 갑작스럽게 일만 얻어가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정식으로.”
우리는 뒷말에 꾹 힘을 눌렀다. 부드럽고도 살벌한 말이었다.
벌집을 건드린 우팀장은 한방 제대로 쏘인 얼굴이었다.
일을 털어내기도 바쁜 마당에 업무 붙이기라니.
우팀장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걸 왜 우리가 하는데.”
“전문가시잖아요.”
우리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딱 부러진 말이었다.
“무튼 좋은 제안은 감사드려요. 저희 차장님께 잘 말씀드릴게요.”
우리의 말에 우팀장의 눈빛이 휘청거렸다.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고 괜한 일을 보태고 싶지도 않았다.
우팀장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끝난 대화의 불씨를 살릴 방법을 강구하느라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고대리.”
우팀장의 목소리가 한껏 커졌다. 우리에게 한소리를 하려던 순간이었다.
본부장실을 나온 건우가 우팀장의 앞을 막아섰다.
꼭 적색 코트를 펄럭거리면서 우리에게로 날아온 것처럼 보였다.
진짜 슈퍼맨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