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53화 (53/102)

제 53화. 복세편살을 아는 남자

태양을 마주본 것만 같은 찬란한 빛이 우리의 눈두덩을 찔렀다.

따가운 그 빛에 우리가 눈을 꽉 감았다.

모든 고통과 허망함이 물밀듯 우리에게 밀려들었다.

민우는 죽었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를 죽이고 살리는 재주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제 능력을 원망했다. 누구 하나 살리지도 못하는데…….

제 손을 바라보던 우리의 뺨을 타고 굵직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매캐하게 흐르던 연기 냄새도.

바닥으로 푹 꺼지던 느낌도 금세 사라졌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었다.

“하아…….”

편의점 천장을 바라보던 우리의 입술을 비집고 굵직한 한숨이 흘렀다.

모든 고통이 선명하게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다. 짙게 남은 그 고통이 누구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노파의 것이었는지도 몰랐고 민우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 화마 속에서 살아남고 싶었던 그 누군가의 고통일지도 몰랐다.

우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여전히 심장은 벌렁거렸고 온몸은 떨렸다.

그날의 잔상이 끝없이 우리를 따갑게 찔러댔다.

모두가 사라졌다.

그 무시무시한 불길 속에…….

“고우리씨.”

다정스러운 건우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고우리.”

“…….”

“괜찮습니까.”

묵직한 침을 목구멍 뒤로 넘기면서 우리가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정신없게만 느껴졌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우리가 천천히 다시 눈을 떴다.

넘실거리던 불길도 연기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와 노파의 손도 덜렁 떨어져 있었다. 왈칵 솟구치는 눈물을 참으려고 우리는 애를 썼다.

정작 울고 싶은 사람은 자신보다는 건우와 노파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고개를 돌려 건우를 봤다. 걱정스러운 건우의 눈빛이 우리를 스쳤다.

“고우리씨.”

“……네.”

우리는 얼이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옅게 남은 화마의 공포는 아직도 우리를 맹렬하게 잠식했다.

“우선은 집으로 갑시다.”

건우가 우리의 팔목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봤어요.”

건우의 말을 듣던 우리의 입술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화재였다.

평범한 일상이 갑작스럽게 뒤죽박죽 바뀔 줄은 현장에 있던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었다.

불행이 그리도 조용히 손을 내뻗고 있는지도.

“그날…….”

조용한 테이블. 그 속에서 우리는 노파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민우하고 같이 있으셨죠.”

우리의 목소리 끝이 떨렸다. 눈물을 참는 노파의 코가 벌름거렸다.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 듯했다.

“창문으로 뛰어내리실 때. 그때가지 같이 있으셨던 거죠.”

“내가…… 대신 살아뿟다.”

조용히 말을 내뱉은 노파의 손은 테이블 위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노파가 사진 속의 민우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나중에 갔어야 했는데.”

“…….”

“그 어린 걸 버리뿌고 먼저 살겠다고. 내가 함 살아보겠다고.”

노파가 울먹거리면서 천천히 말을 쏟아냈다.

커다란 불길이 건물을 집어 삼키던 날. 그날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상처로 남은 그런, 끔찍한 날이었다.

그날의 일을 꺼내던 노파가 소매로 눈물을 찍어댔다.

“내가 가 운을 다 뺏들어가 카는갑다.”

“누구 잘못도 아니에요.”

“아이다. 내 잘못이다.”

소매 사이로 얼핏 보이는 화상 자국은 노파의 지난날이 편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주름진 목을 타고 넘어오는 슬픔을 누르면서 노파는 낡은 쌈지를 주섬주섬 꺼냈다.

쌈지 속에서는 민우에게 받았던 깍지 핑거탭이 들어있었다.

민우가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었다.

제 모든 운을 쏟았다던 선물.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

“형 대회 나가서 이기 뿌라고 산 부적을 내한테 다 줘뿟으니.”

노파의 슬픈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편의점을 돌았다. 노파가 조심스럽게 낡은 깍지 핑거탭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노파의 말을 듣던 건우의 시선은 핑거탭에 향해있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미안타. 정말 미안하데이.”

노파의 말을 듣고 있던 건우의 코끝만 싸해졌다. 건우는 쉽게 핑거탭에 손을 내뻗을 수 없었다.

민우가 죽고 건우는 양궁을 관뒀다.

비틀린 관계, 균형을 잃은 아버지의 애정, 참혹했던 화재…….

그 모든 것의 시작점에는 양궁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민우를 위해 양궁을 관뒀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민우에게 사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마지막 순간 민우도 그것을 원했다고.

그런데 죽는 순간까지도 민우는 자신을 걱정했다고 했다.

멋지게 화살을 날리는 그 꿈을 응원하면서. 촌각을 다투는 그 절제절명의 순간까지도 핑거탭만은 구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건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깟 대회가 뭐라고. 그게 뭐라고. 마지막까지…….’

메말라버린 건우의 눈에서는 눈빛 한 줌 흐르지 않았지만, 건우는 확실히 울고 있었다.

꺼이꺼이. 무너져 내리는 속을 붙잡고 구슬프게 울었다. 건우가 제 손을 말아 쥐었다.

꽉 감은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슬픔을 누르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건우의 입술을 비집고 묵직한 숨이 흘렀다.

테이블에 떠도는 적막은 너무도 견고해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심해로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얼른 와야 된대이.’

‘그럼요. 저도 얼른 가야죠. 우리 형이 기다릴 거거든요. 목 빠져라.’

우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건우를 봤다. 건우의 얼굴 위로 깨진 창문을 보면서 벙긋 미소를 짓던 민우가 자꾸 생각났다.

민우의 말대로 건우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죽은 민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오길.

그래서 자신을 향해 힘껏 외치길.

‘진짜 목 빠지게 기다렸네.’

해말간 미소를 지으면서 능청스럽게 자신에게 다가올 민우를.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제자리에 서서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고요하고도 어두운 빛깔이 세 사람을 진하게 물들였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만큼 구슬픈 침묵이었다.

고요는 한참이고 세 사람을 맴돌았다.

***

시간이 지날수록 눈발은 거세졌다. 차가운 눈길을 뚫고 두 사람은 아파트로 들어섰다.

건우가 우산을 접자 우산살에 쌓였던 눈이 후드득 땅으로 떨어졌다. 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차장님.”

침묵을 깨고 우리가 입을 열었다.

“내일은 쉬세요.”

우리는 조심스럽게 건우에게 말했다.

건우의 머릿속이 누구보다 복작거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 중입니다.”

“무조건 쉬세요. 잘 쉬어야 월요병도 이기죠.”

“고우리씨는?”

“아…… 저는 소설 좀 쓰려고요. 또 좀 쉬면 감을 잃거든요.”

우리의 말에 건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평소라면 제 옆에 꼭 붙어서 소설을 쓰라고 졸랐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복작거리는 머릿속에 건우는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15층. 굳게 닫혔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차장님.”

“가는 거 보고 가겠습니다.”

“괜찮아요. 바로 앞인데요. 그럼 조심히 가세요. 가서 꼭 쉬시고.”

우리는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엘리베이터에 내리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건우가 걱정됐다.

건우는 얼이 빠졌다가 정신을 차리다가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연락하겠습니다.”

건조한 기운을 실은 엘리베이터의 문이 천천히 닫혔다. 한 층은 순식간에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서 내린 건우가 집으로 들어섰다. 스산한 바람이 거실에 밀려든 것만 같았다.

건우가 불을 켰다. 우리가 없는 집은 황량하고도 쓸쓸해보였다.

건우는 커피를 내렸다. 쉬이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진한 커피의 향기가 집안에 번져나갔다. 쓴 커피를 마시면서 건우는 리모컨으로 커튼을 열었다.

천천히 열린 창으로 굵어진 눈발이 선명하게 보였다.

‘형 대회 나가서 이기 뿌라고 산 부적을 내한테 다 줘뿟으니.’

창을 바라보던 건우가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굳게 닫혀있던 방문을 열었다.

창고로 쓰는 방이었다. 잡다한 물건은 꽤 깔끔하게 정리돼있었다.

건우는 구석에 박혀있던 활을 꺼냈다. 멀리 치워놨던 활에는 먼지가 쌓여있었다.

46파운드의 묵직한 활은 여전히 무게감을 자랑했다. 오래 쓰지 않았던 활을 건우는 어색하게 잡았다.

건우가 조심스럽게 현을 쓸어내렸다. 늘어진 시간만큼 현도 단단한 기운이 사라져있었다.

활을 되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건우는 도망치거나 숨지 않았다.

그게 민우가 바라는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대로 도망치듯 양궁을 외면하는 것보다.

건우는 활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양궁, 하지 않을 겁니다.’

커다란 창에 활을 세워둔 채로 건우는 노파에게 받은 깍지 핑거탭을 봤다. 손길을 타지 않은 핑거탭은 새것처럼 보였다.

건우가 조심스럽게 핑거탭을 손가락에 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건우의 손가락에 맞았다.

‘강건우!’

‘다시는 못합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양궁을 포기한 것은 죗값이었다.

민우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애정과 삶은 빼앗아버린 죄.

‘양궁…… 관두겠습니다.’

그 속죄가 민우에게 짐이 됐을지도 몰랐다. 결국 민우는 창공을 뚫고 날아가는 활을 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모든 굴곡조차 넘어서서 멋지게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화살을 꿈꿨는지도.

힘찬 손길로 활을 잡았다. 허리를 곧게 펴고는 활시위를 그러잡았다.

시간이 지났어도 건우의 몸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자세였다.

팽팽해진 줄. 건우의 손등에 있던 퍼런 핏줄이 솟았다.

“……강민우.”

보이지 않는 화살의 끝. 그 끝에 민우가 서 있었다.

창에 비친 민우의 모습은 흐릿하기만 했다. 지독히도 그리웠던 민우였다.

흔한 꿈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녀석. 그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다니.

건우의 입술 사이로 쓴 미소가 흘렀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민우는 말이 없었다.

“정말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이 나쁜 새끼야.”

건우는 짐짓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감정이 복받쳤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랐다. 한 번은 꼭 나타나주기를 바랐다.

사죄하고 싶었고 더는 힘들지 말라고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민우에 대한 그리움이 닳고 닳아 헤져버린 순간.

정말 그 마지막 순간. 민우가 나타났다.

사진 속에서처럼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미안하다.”

해묵은 사과가 건우의 입술 사이로 흘렀다. 민우가 사라지고 건우는 차라리 죽고 싶었었다.

살아있다는 고통보다는 죽었다는 편안함이 덜 잔혹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모조리 착각이었다.

“너무 늦어서.”

죽은 사람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미안해.”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이었다.

“……민우야.”

건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민우가 서 있던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빈곳을 보던 건우의 눈가를 타고 굵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민우가 떠나고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눈물은 건우의 뺨을 축축하게 적셨다. 마음을 다잡는 것처럼 활을 쥔 건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건우는 사라져버린 민우를 향해 소리 없이 말했다. 양궁 없이도 잘 살고 있다고.

새 꿈을 꾸면서 잘 살아내고 있다고.

그러니까…… 더는 걱정 마.

***

샤워를 마친 건우가 거실로 나왔다. 뜨거운 열기가 솟아올랐다. 건우는 젖은 머리칼을 털어냈다.

균형이 잘 잡힌 탄탄한 근육들은 건우의 움직임을 따라 불끈거렸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건우의 몸은 매끄러워 보였다.

노곤한 기운이 소파에 앉은 건우를 적셨다.

건우는 소파 근처에 세워진 활을 봤다. 다시 활을 잡다니……. 상상에도 없던 일이었다.

바람 빠지듯 웃는 건우의 미소는 한결 평온해 보였다. 작은 숨을 내쉬던 건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주무시나요.

깊은 고뇌의 흔적이 남은 우리의 메시지였다.

-주무시겠죠. 네…… 주무시겠지. 주무세요.

건우가 메시지를 날리기도 전에 우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1초 만에 날아온 답이었다.

냉큼 끝인사까지 날린 우리의 메시지에 건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안 잡니다.

건우의 메시지가 날아갔다.

-설마. 갑자기 불면증이라도 걸리신 건 아니죠.

-불면증이면. 재워줄 생각입니까.

가히 유혹적인 메시지였다. 건우는 소파에 기댔다. 메시지를 읽은 우리에게서는 별다른 답장이 없었다.

분명히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건우는 울리지 않는 핸드폰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열어주세요.

덜렁 도착한 메시지에 건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려던 순간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을 보던 건우의 입술 사이로 실소가 터졌다.

밤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열정적으로 맥주를 흔들어대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급히 현관문을 열었다.

“야밤에 무슨 일입니까.”

“재워드리려고요.”

우리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맥주를 들었다.

“어머니는……?”

“몰래 나왔죠.”

“괜찮겠습니까.”

“저도 입이 심심했거든요. 글도 잘 안 써지고. 완전 불면증 걸리기 직전이었어요.”

우리의 얼굴에 벙긋 미소가 번졌다. 은근슬쩍 우리는 건우의 집안으로 밀려들었다.

현관문의 틈을 타고 불어 닥치는 찬바람처럼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옆구리에 맥주를 끼고는 우리는 밀폐 용기를 내밀었다.

“안주요.”

자랑하듯 우리가 뚜껑을 열었다. 뜨끈한 온기를 품은 김이 피어올랐다.

고소한 버터 냄새가 거실에 퍼졌다.

“버터하고 마늘하고 새우하고 볶았어요. 진짜 맛있거든요.”

“맛있어 보입니다.”

“드시면 깜짝 놀라실 걸요.”

우리가 건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맥주 두 캔과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새우 감바스. 군침이 돌기에 적당한 시간과 메뉴 선정이었다.

“바게트만 있어서도 딱인데.”

우리의 목소리에는 아쉬운 기운이 돌았다.

“충분히 군침 돕니다.”

“그죠. 제 솜씨가 또.”

기가 막히게 자화자찬을 날리면서 우리는 맥주 캔을 땄다.

몽글몽글 거품이 피어올랐다. 놓칠 수 없다는 것처럼 우리가 쭉, 거품을 마셨다.

고소한 맥주의 맛이 입 안 가득 번졌다.

“건배도 없이 마시기 있습니까.”

“아…… 흘리면 큰일이잖아요.”

건우의 말을 우리는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그럼 건배할까요.”

우리가 캔을 들고는 말했다. 높게 든 캔을 바라보던 건우도 캔을 들었다. 맥주 캔은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부딪쳤다.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켜는 우리를 보던 건우도 천천히 맥주를 마셨다.

건우의 목울대를 타고 시원한 맥주가 넘어갔다.

“역시.”

우리는 일품이라는 듯 엄지를 치켜들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새우에 잘 구워진 마늘을 얹었다.

한 입 크게 새우 감바스를 먹는 우리의 입은 분주했다.

“이게 진짜 복세편살이네요.”

“아…… 그럽니까.”

소파에 기댄 우리를 보던 건우가 무심히 대답했다.

“복세편살, 아셨어요?”

우리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건우에게 바짝 다가서서는 물었다. 인터넷을 떠도는 용어에는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우리는 놀랍다는 눈빛을 건우에게 날려댔다.

바투 다가온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의 얼굴에는 묘한 자신감이 흘렀다.

“대충 알 것 같습니다.”

건우는 덤덤히 대답했다.

“쉽지 않으실 텐데…….”

“쉬울 것 같습니다.”

“어려우실 것 같은데. 저도 얼마 전에 황주임한테 배워서 간신히 알았거든요.”

“내가 줄임말에 강한 편이라.”

건우는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신기한 눈길로 우리는 건우를 쳐다봤다.

“복세편살.”

어허! 정말 아는 거야?

“복권 세 장이면 편하게 살 수 있다.”

“……!”

“왜요. 너무 쉽게 맞췄습니까.”

우리는 얼이 빠진 얼굴로 건우를 봤다. 틀린 답을 말하고도 당당할 수 있다니!

자칫 정신을 놓쳤다면 우리는 건우의 말에 반쯤 홀렸을지도 몰랐다.

맥주를 들이켜는 건우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어깨는 하늘 높이 치솟아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그게 맞는데…….’

우리는 건우의 말을 잡아주려다가 말았다. 기분 좋은 분위기만 이어지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건우가 신세대 용어를 갑자기 쓸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 대박. 아시네요.”

다가올 난감한 상황은 생각지도 못한 채로 우리는 감탄사만 내뱉고는 박수를 쳐댔다.

그야말로 상사에서 사랑받는 부하직원의 특급 아부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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